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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ashes 1

긴것/Blue Ashes 2014. 9. 21. 17:30

Blue ashes 1 

 

희석된 눈물을 닦아주려던 카이토는 입술을 올리려다말고,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카이토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지 못할정도로, 망가진 기계처럼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유정은 약을 먹고 나서도 우는 날이 많아졌다. 어떠한 일인지, 카이토에겐 말해주지 않을 작정으로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의자에 위태롭게 걸터앉아서 소리없는 눈물을 식탁에 떨구었다. 숨이 멎은듯 조용하게, 단단한 식탁에 떨어지는 액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강을 이룰지도 모르겠다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카이토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오늘은 저리가라고 손을 쳐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는게 더 정확했지만. 어깨를 건드리려다 공연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커다란 물에 섞인 숨소리가 막혀 흐르지도 못하고 고여있는 유정의 감정을 간질였다.

 

얼굴을 감싸쥔 양 손이 개화하자, 벌개진 눈끝에서는 하염없이 흘렀을 진득한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어있었다. 망가진 얼굴을 보는건 카이토도 괴로워서, 쳐다보지 말라는듯 호소하는 눈빛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열기가 떨리는 어깨에서 부터 손끝까지가 어떠한 덩어리로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옆에 있으니까, 큰소리로 목놓아 울지 못하는것은 아닐까. 숨이 막힌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흘러간다. 차라리 어딘가로 사라지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것 조차 허락을 받을 수 없지만.

 

'웃는 얼굴을 본게 언제였더라.'

 

의자 등받이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함께 웃었던 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기억으로 밖에 회상할 수 밖에 없다. 눈 언저리가 쓰려와 카이토는 눈을 비적댔다. 같이 울었던 날도 있었다. 그것을 '같이' 라고 한다면 장소의 동일성 밖에 없었지만은. 혹시나 자신이 울게되면, 유정이 그치진 않을까 하는 작은 믿음에서였다. 자신이 그만큼의 공간을 허락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그만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소나기가 그친듯 뚝. 멈춰선 순간이 카이토를 바라보았다. 아직 물기어린 검은눈동자가 휘어졌다. 근 두시간을 울어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척, 장식장 위에서 티슈를 꺼내 건넸다. 지친듯 하늘거리는 손으로 건네받아서는 티슈를 꽉 주먹 쥐었다. 카이토는 다시 하나를 빼내서 눈 가를 닦아주었다. 짧은 한숨에서 남은 한이 밀려왔다. 목소리에 울먹임이 역력하게 전해졌다. 

 

"보지마. 차라리 눈을 감던지 해줘."

 

오랫만에 듣는 유정은 물기어린 목소리로 건조한 명령을 내린다. 더 울고싶어도 남은 기운이 없었다. 저리 가라고 말해도 가지 않을꺼지. 난처한듯 카이토는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했다. 

 

"그것보다 더 상위의 명령이 있으니까요."

"알아, 죽지 않을께."

 

죽지 않아서, 너의 필요를 계속 만들어 주도록 할께. 

잔인하게도.

무거운 숨이 따갑게 기도를 타고 들어왔다. 유독가스를 마시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억지로 밀려오는 숨을 받았다.

카이토는 여전히 티슈를 든채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화가 나려다가 푹 식어버린다. 

화낼 상대도, 목적도 아니란 것은 잊지않았다. 

그저 그곳에 카이토가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랬다.

 

 

*

 

 

 

끝내 유정은 몇 마디 효력없는 단어를 끊어질듯 말듯 억지로 토해내고는, 들어오지마. 다섯글자만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부탁에 가까운 명령을 저녁 약 시간 전 까지는 지켜주기로 했다. 지쳐서 잠에 들어주면 좋으련만, 침대에 누워서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무거운 생각을 수집하다간 가벼운 이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확 내던져버릴것이다. 힘이 좀 남는 날에는 벽에 물건이 깨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깨져서 조각이 날만한것은 유정의 방에서 거의 치워진 뒤였지만 고집스레 책이며 하다못해 플라스틱 컵을 던져버린다. 벽에 부듸치고도 그대로 모양을 유지하면 바닥에 내리쳐서라도 균열을 내고야 만다. 썩어 문드러지고 다 망가진 자신만큼. 올곧은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카이토를 보지 못하게 된걸 지도 모르겠다.

 

거실엔 카이토의 생활공간에 해당하는 깔려진 담요위에 앉아서 줄곧 시계를 쳐다본다. 6시반엔, 저녁과 저녁약. 신경은 수직선상의 방에 꽂혀있다. 조그만 소리에도 끔쩍끔쩍 고개를 돌려 집중력을 유지했다. 문가에 앉아있을까 고민하다가 들키면, 힘은 없어도 악바라진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채 벽에 내리친다. 방안의 물건들과 카이토의 취급은 똑같았다. 이마에 핏줄기가 흘러내리면서도 손은 괜찮냐고 물어보고는. 좀처럼 망가지거나 하지 않아서 분한 기분이 들 뿐이다. 약기운이 사라지면 카이토를 뿌리치고 죽어버려야지. 꼭 그래야지.

커다란 배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계까지 숨을 참았다. 하얗게 바래진 머리는 언제쯤 생각이란걸 하지 않게 될런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원망, 후회, 자책, 끝없는 종말같은 미로속에 웅크리고 앉은 검은 동물은 하도 보지못한 빛에 시력을 잃어버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세번 횟수를 반복할때까지 유정은 숨을 쉬지 않았다. 사라져버리고 싶다.

쓸데없는 약기운에 죽은듯 잠들기도 싫고, 바작바작 말라가는 입을 닦아주는 카이토도 보기 싫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개나 시트에 입술에서 나온 피가 말라붙었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는. 누에고치 같은 생활이 역겨워진다. 아버지가 마지막의 알량한 배려로 붙여준 안드로이드는 억지로 생을 구축한다. 

 

"마스터, 약.."

"듣고있는거 알아요."

"들어갈게요."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흘긴 카이토는 들리지 않게 조그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만났을때도 바짝 마른 몸이 점점 사라질듯 부피를 줄여간다. 삐쩍 튀어나온 앙상한 목덜미가 푹 들어가있었다.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검은 머리칼을 살짝 건드리면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다.  

 

"안먹어."

"네에."

"안먹을거야."

"소온. 아니면 입에 넣어드릴까요?"

"노려봐도 안무서운데."

 

그 증오가 저를 향한게 아니라서, 매서운 눈빛을 가뿐히 넘겨낸다.

오늘은 왠지, 한 번에 입을 벌려 주었다. 꾸울꺽. 하고 삼키는 시늉을 한 카이토는 아, 삼키셨어요? 하고 입안을 확인 받고서야 만족한듯 미소지었다. 칼만 있다면 저 얼굴을 다 찢어놓고 싶어진다. 

 

"나가."

"알겠습니다. 주무세요."

 

떨어진 이불을 챙겨 침대머리맡에 접어 두고는 동굴을 나가듯 쏙 빠져나간다. 

이미 바닥에 최악을 보인지는 오래 되었다. 유정은 더이상 잃을것도, 얻을것도 없었으니까.

곧 밀려올 몸의 수면에 정신을 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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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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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그녀는 늘 그렇듯 회색의 수수한 브이넥과검은 청바지를 입고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났다억지로 밝은 척 거짓으로 입은 요란한 분홍색보다는 그게 더 그녀에게 어울렸다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출근을 알린 그녀는 감기 기운이 있다는 핑계로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리고 있던 유정의 눈을 피하며 뭉개지듯 자리에 들어가버렸다그녀는 알고 있는지 어떨지 몰라도사무실의 모든 눈빛이 그녀와 유정을 따라가고 있었다어제의 격정적인 회사연애 드라마가 다음엔 어떻게 될지누가 봐도 평범한 여주인공에겐극적으로 나타날 멋진 왕자님이 필요해 보였다.

 

그게 왜 유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어째서 그녀가 도시락을 좀 주었다고 해서눈을 좀 많이 마주쳤다고 해서더 나은 관계로 발전해야만 하는 건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데스크탑의 사내메신저를 켜 그녀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다. [말로 하면 시끄러워 질 테니까천천히 읽고 답은 해주지 않아도 돼요.] 로 시작하는 유정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을 담은 글을이게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이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사람은 여기에 없어요.] 로 마치는 메시지를 읽은 그녀는 화장실에 뛰어 나갔다며칠 새 두 번이나 여자를 울리다니올해 남은 운수는 최악이다오늘의 이야기를 해주어도 카이토는 자신을 착하다고 말해줄까.

 

답장은 마음속에 담아 둘 거라고 생각했는데눈물에 쓸려나간 렌즈를 빼고 안경으로 갈아 쓴 그녀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투둑투둑내려치는 타자마다 그녀의 봄빛 꿈이 사그라졌다.

 

[미안해요사실은 알고 있었어요그동안 받아줘서 고마웠어요.]

 

모니터 밖의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선한 사람이다.

순간 마음이 흔들릴 뻔했다그녀라면 자신의 비밀을 이해해줄지도보듬어 줄지도 모르겠다고여느 만남처럼 가볍게 영화를 보고밥을 먹고서로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까하는 안일한 미래그렇지만 내심무심코라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메시지의 읽음표시만이 마침표로 남겨진다회사 사람들에겐 그녀가 여자무리를 가라앉힐 것이다조만간에 동기들에게 술이나 사야겠다가끔은 일상에 이런 일화도 필요하다심심하니까.

입원하면서 아버지 회사의 인턴을 그만두고퇴원 후엔 굳이 주겠다는 회사를 뒤로하고 다른 회사를 찾아 서울 인근으로 떨어져 나온 뒤로 필요한 일이 아니면 부모님을 만나질 않았다싫었다결국병원에 입원해버린 망가진 자신을 인정할 수도 없었고그걸 망가뜨린게 불특정 다수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세상을 원망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유정에겐 원망할 상대가 없었다그건 정말 방향성 없는 일이다검사결과에서 나오지 않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인증잃어버린 현실감각수용하는 언어.

 

정말로 잃어버린 건 무엇인지조차 잃어버려서자신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찾을 수가 없다그저 결핍 되었다는 사실만이 세상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닿아버린 생각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복잡했던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그냥 카이토가 보고 싶다아무 생각 없이 무릎을 만지고 오솔하게 튀어나온 붉은 치부를 손가락으로 느끼고 싶다내가 거짓으로 웃으면 마냥 환하게 웃는 멍청한 얼굴을 놀려도 모든 것이 수용되는 세계가 너무 달콤해서그녀가 만들어 내는 담백한 도시락은 혀를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은 일을 하며 줄곧 침대에 기대어 있을 동그란 어깨를 생각했다어서 가서 깨워주지 않으면평생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가련한 기계를.

 

널 데려와서 다행이야.‘

 

정말진짜로.

 

-

 

카이토는 무덤덤하게 그녀와의 종결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였다점심시간 후에 모두에게 커피를 돌린 그녀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조곤조곤 설명했고여직원들이 호들갑 떨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어좀 민망하더라나도 사과했어당황해서 도망가 버린 거 미안하다고.

평소와 같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유정을 바라보며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듯 시큰둥한 눈치로 고개를 느리게 끄덕인다.

 

그렇군요.잘 끝내셔서 다행이에요.”

반응이 아쉽다는 느낌이네.”

설마요깊은 생각 하지 않아요.”

 

그래도 여자친구 생기시면주말에 저랑 틀어 박혀 있지도 않으시고더 좋지 않을까요남자한테서 얻을 수 있는 거랑 여자한테서 얻을 수 있는건 달라요.”

 

나랑 틀어박혀 있는 거 싫어?”

"아뇨..마스터는 정말 피곤하게 사시네요남 탓은 그 정도만 하세요."

 

나는 남 탓 한 적 없어.

한 번도.

 

책 뒤의 얼굴이 대충 상상이 갔다. 7살 아이가 혼나고 난 뒤에 제 탓 아니라고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선 속으로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꿍얼대는 미운 나이이야기로만 들었지만그녀라면 꼬일 대로 꼬여서 이제는 잘라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자신을 정의하는 마스터를 곱게 풀어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잠시 했었다고양이가 털실을 굴리듯 아무리 굴려봤자 뭉툭한 손으로는 섬세한 대화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말꼬리를 잡아 다음 대화를 이어가는 게 고작인 수박 겉핥기식 대화는 피곤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아우라가 되고저러다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사라져 버린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이미 이곳에 미련이 없으니까그 조그만 미련의 한 가닥이 될 수 있다면그건 너무 큰 바람인 걸까.

 

"자기 탓을 하는 것도 안 좋은 버릇이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도대체?"

 

너 언제부터 이렇게 건방져 진 거야네가 뭔데 남 탓 자기 탓을 운운하는 거지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는 하는 소리야?

 

노기가 없는 목소리는 더욱 날카로웠다손을 휘저으며 그게그게 아니라하는 당황스러운 말을 모두 무시하고 유정은 이번 주에 있었던 모든 불쾌했던 생각의 잔재들을 토해냈다전하지 못하고 지워버린 공책의 자국에 카이토의 파란잉크가 물들어 의식으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좋게 대해주니까 친구인 척 모든 걸 이해하려 들지 마기계 주제에."

"이해..이해 안 해요못해요그치만 원한 건 마스터였잖아요."

 

"난 널 원한 적 없어날 원한 건 너였잖아."

 

그 공장에서날 부른 건 너였어다리를 부수는데도 한마디 않고 있었던 것도 너였고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아아프면 아프다고싫으면 싫다고자기표현을 한단 말이야넌 의지란 게 있긴 한 거야없겠지걷고 싶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난 그 프로그램을 사 왔을 거야.

 

"보행 프로그램은 따로 설치할 수 있어나는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지."

그렇게 병신처럼 기어 다니기 싫지 않아아니면 좋아너도 본능에 충실해서 남 밑에 있을 때 행복한 거야내 비위 그렇게 맞춰주고 있으면 좋아?

 

"어째서자기가 표현하지 않는 걸 가지고 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이 다리를 준 건 나야.

너에게 다시 생명을 준 것이.

말할 권리를 준 게 나라고.

 

쓰이지 않는 발목을 잡았다힘을 주는지 다리는 떨리고 있었다살이 붙어있지 않은 발목은 이제 주먹을 조금 더 쥐면 부서질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탄력이 느껴진다.

 

"말을 해네가 진짜 생각하는걸그렇게 쓸데없이 빙빙 돌리지 말고말 안하면 아무것도 몰라."

"그러세요그럼 원하시는 대로마스터는정말어리광쟁이에요..그냥 어린애야!!!"

 

나는아니다저는혼나야 하는 아이를 달래주는 것밖에 못해요마스터는 혼이 덜 났어요못됐고유치하고말 못 알아듣는 것도 사실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죠재활에 성공한 건 마스터가 똑똑하고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그 여자가 고백을 한것 도 그 여자만의 착각이라고그렇게 인간이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는 거라면 저희랑 다를 게 하나도 없네요제가 사람이었다면마스터를 정말 혼냈을 거에요.

 

"세상에 한쪽만의 탓인 건 아무것도 없어요왜 인정하지 않으세요제가 의지가 없는 건 마스터가 제 의지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휘두르려 하는 거정말 어린애 같은 생각이에요."

 

눈앞에 있는 카이토에게서 기시감이 그날의 먼지처럼 휘날렸다무심코 했었던 말들행동암시 속에 너와 나의 관계가 수평이 아니라는 전제가 뭉그러졌다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져서속에서 끓어오르는 깊은 숨을 푹푹 내쉬었다쓸려나온 피곤함에 어깨가 뿌듯하다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또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카이토는그 뒤에 미안하다고 한참을 울면서 칭얼거렸다아무 대답 없이 무릎 꿇은 카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무렇지도 않게 미안해요죄송해요하는 낯부끄러운 사죄의 말을 하는 카이토가정말 불쌍하다고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럽다고.

 

그날은 침대 옆의 콘센트에서 카이토와 함께 잠이 들었다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미안하다는 말을 그치질 않길래달래보려고 침대에 앉혔다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같이 자는 건 처음이라고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얼굴로 신나게 이불을 풀럭이며 어서 누으시라고 베개를 팡팡 두드렸다시시콜콜한 주제로 대화하고사이에 지나가는 말로 미안하다고 하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끌려가는 대화를 하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혀뿌리에 감긴다.

 

찰그랑대는 족쇄 소리가 하얀색의 꿈에서 통통 메아리쳤다어딘가 떨어져 있을 열쇠를 찾아 걸어가다가붉은색의 강을 만났다그리고 문이 잠긴 상자직설적인 꿈이었다아무것도 열지 못한 채로 깨어나자 켜놓은 야간 등에 비친 카이토가 쳐다보고 있었다푸른 안광이 희미하게 빛난다.

"안 좋은 꿈 꾸셨어요손이 너무 차가운데숨소리가 불규칙적이어서 일어나봤어요."

"아무것도 아닌 꿈을 꿨어."

"제가 나왔나 보네요."

"넌 아무것도 아니지 않아.더 잘래너도 눈감아."

 

손으로 빛이 투사되는 파란 눈을 덮었다그랬듯이 카이토는 그 손을 겹쳐 덮었다슬쩍 올라간 입 근육이 느껴진다.

06.

 

 

그다지 프로그램이 비싸지 않다는 설득에도카이토는 보행 프로그램을 거부했다이건 제 의지에요하고 무릎에 손을 가져간다이제 붉은빛이 거의 사라진 연분홍빛의 자국은 만져도 밋밋해져 아쉬웠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야정기 검진할 때 가서 프로그램 받고 같이 걸어오자 손잡고."

"싫어요업고 가시던지상자에 넣어 가시던지 둘 중 하나에요."

"난 널 업지도 못하고 상자에 넣으면 내 차에 안 들어가.왜 안 걷겠다는 거야?"

 

나 때문에 걷지 못하게 된 건데고쳐준대도 싫다고내가 계속 네 기는 것 보고 맘이 안 좋았으면 좋겠어?"

"마스터가 평생 저한테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으니까짐을 얹혀 주지 않으면 제가 좀 불안해서요."

 

유례없이 다른 모습의 미소를 지었다늘어난 건 말 실력만이 아니다유정의 교묘한 생존방식을 닮아간다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은 걸 참고그냥 잠든 걸 데려다가 프로그램 설치를 할까하는 고민사이에서 서서 마구 뛰어다니는 카이토는 상상해보니 이상하다센터까지 상자에 넣어갈 자신이 없어서 돈을 좀 더 주고 방문 검진 서비스를 신청했다결제를 마치고 의자에 앉은 카이토를 노려보았다상전이야 아주하고 놀리는 말에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운다.

"알겠어평생 걷지 마울어도 안 해줄 거야 이제."

"안 걸을 거라고요그보다 프로텍트 메모리를 열어볼 생각은 없으세요전 그게 더 궁금한데."

"해커 써서 열면 고소당한다며..넌 내가 고소당하는 게 보고 싶은 거야?"

 

"코드를 직접 푸시면 되잖아요제가 최근에 좀 풀어봤어요."

 

코드는 꼭 음성언어가 아니라특정 행동도 되는 건데저한테 접촉되는 행동제가 스스로 해제 해본 건 여기까지더 이상은 진짜로 접근불가이거까지 가는데에도 몇 번 쓰러졌는지 모르겠어요.

 

"손은 잡아봤고꼬집거나 주무르기도 해봤잖아."

 

머리무릎다리안 잡아 본 곳이 없는데등도 차봤고손으로 카이토의 가슴이나 배를 툭툭 만졌다무안하게도 조용한 반응다른 방식으로 추리해보기로 한다만약 내가 카이토에게 프로텍트 메모리를 설정한다면그걸 어느 접촉하는 행동으로 설정한다면 무엇을 할까타인은 할 수 없는 주인만이 할 수 있는 행동버려진 상태에서도 당하기 힘든 행동.

 

너 혹시 거기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손댄 적 있어?”

있죠성적인 것 말씀이시라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안 풀렸으니까뽀뽀나 키스는 한 적 없어요입은 시끄러우니까 막는 게 좋고약한 건 흥미없는 분들이었거든요.”

 

.

카이토는 깨달은 듯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성취감으로 유정은 열쇠를 가져갔다.

 

이렇게 너하고 뽀뽀하고 싶진 않았는데궁금해서 안 되겠다.”

제 거부권은 없는 건가요?”

 

거부 안 할 거면서장난기 어린 올라간 입술을 포갠다카이토는 목을 안았다그 입안에서 오래된 기억의 맛이 났다시스템이 움직이는 소리를 무시하고 행복한 이 순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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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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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고백이라도 하면 어떡하시게요하던 카이토의 말을 고심해 볼걸 그랬다소심한 성격이라 몇 달은 갈 줄 알았던 그녀의 짝사랑은 넘실거리는 꽃 봄바람에 이기지 못하고 분홍빛 리본의 끝을 맺을 날을 혼자 정해버리고 만 것이다유정은 아침에 평소와는 다르게 화사한 원피스와 짧은 가디건을 입은 그녀에게

 

오늘 옷 예쁘네요.” 하고 웃어주었던 것을 후회했다.

 

여자들은 어찌 그리 외모에 홀리고 또 자기들만의 환상을 다른 사람한테까지 덕지덕지 붙여서는그게 자신의 환상에 맞지 않으면 순간 적으로 돌려버리고선회사에서 몇 달 동안 물 밑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노골적으로 표하던 부서의 여직원은 며칠 전에 도시락을 가져다주더니끝내 유정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저 그런 고백을 해버린다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사귀어 달라고.

남은 점심시간동안 밖을 나가있을걸 그랬다속으로 거절 할 그럴싸한 말을 짜낸다.

 

마음은 정말 고마워요도시락도 돌려주면 무안할까봐 먹었는데그게 오해를 하게 만든 거 같아요.”

이미 그녀는 마음은-에서 생각을 멈추고 얼굴을 붉게 달았다이 부분이 정말 싫다울지만 말아줬으면.

 

맛있었어요.”

..아니에요...”

 

그렁그렁 맺힌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평소엔 다른 기 센 여직원들 사이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웃고만 있었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긴 고민이 필요했을지 물어보지 않아도 뻔히 보였다출근 시간을 일부러 맞춰서 들어와 인사 한번눈 한 번 더 마주치려고 하는 것도 알았고점심시간엔 굳이 먹던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서라도 같이 식당을 가려고 했었던 것도마주 보는 자리에 앉으려 일부러 뒤에 들어오는 것도.

 

친구라도퇴근 후에 밥이라도 같이 먹는 사이부터라도 안 되는 걸까요?”

그렇게 하면 제가 너무 나쁜 사람이 되잖아요.”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그때부터 입술을 읽을 수가 없었다오랜만의 고백에 당황한 것 까지 합쳐져 그녀가 울며 속삭이는 외계어는 고막을 지나 뇌로 들어가 아무런 의미가 되지못하고 흘러 사라졌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을까고백은아니 그녀는.

 

아마도 여자들의 입방아에서 한참은 오르락 내르락 했을 주제휴게실의 뒤편에서 사무실의 굵직한 자리들을 맡은 여자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줄곧 피해왔었던 여러 음성이 겹친 외계어의 오케스트라에서가락을 잡을 수 없는 귀머거리처럼평소처럼 상대방의 태도와 다른 요소들을 비교하면서 더듬어 보려고는 했는데흔들린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는다.

 

어떡하지..”

 

진정하자분명히 특이한 말을 하진 않았을 거다유정은 자신이 세워두었던 위급 시의 대책을 떠올렸다무조건 수긍의 대답을 하면서 웃는다-하지만 그건 지금에서는 위험했다만일 고개를 끄덕이다가 혹시 그녀와 사귀겠다는 말에 수긍한다면 상황은 최악이 된다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언어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그녀는 이미 한 여직원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흐느끼는 소리만이 희뿌연 언어 사이에서 또렷이 들린다드디어 유정을 똑바로 쳐다보고 여직원은 입을 움직였다.

 

“..유정씨 너무해요.”

 

차라리 가슴을 쓸었다그런 건덕지는 없었나 보다.

 

미안해요정말로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건조했던 그 대화는 회사 여자들의 입속에서 씹히고 씹혀 그 침에 불리고 풍선껌처럼 부풀려져 그 사건저 사건 때처럼 유정의 손을 훌쩍 떠나 멀리 사라졌다아주 익숙하고도 지겨운 입소문의 눈덩이가 소리 없이폭삭 자신에게 떨어지는 부드럽고 차가운 기분기껏 점심시간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사무실의 문을 열자 눈빛이 와르르 쏟아졌다.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벌게진 눈의 그녀는 퉁퉁 불어터진 얼굴로 유정을 바라보았다고백하고도 아무런 대답을 받지 못한 그녀의 모든 수치심은 대중의 분노로 치환되고 있었다평소에 시답잖게 말을 걸어오던 가벼운 옆자리의 사람이

 

그런 새낀 줄 몰랐다.” 하고는 어깨를 툭치고 지나가는 고등학생 때나 할 법한 시비를 걸었다어깨를 털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한동안 말할 필요 없고 잘됐다조용히 커피나 마시고 싶다 치면 헐렁하게 걸어와 책상에 기대서 한다는 얘기들이란 싸구려 신문의 귀퉁이를 장식하기에도 가치 없는 주제였다입술 보기도 귀찮아서 대충 대답을 해주고 만다이런 관계였는데 내가 어떤 새끼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지비논리성에 할 말이 없다차라리 카이토가 더 논리적이겠다.

 

-

 

왜 오늘은 그 여자 얘기 안 해주세요?”

할 필요가 없으니까.”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앉아있던 카이토를 밀어 내치고 옷을 벗지도 않고 누웠다엉겁결에 나동그라진 카이토는 씩씩대며 발밑으로 기어왔다내일 출근부터 펼쳐질 밀고 당겨지고 아래에 흐를 수많은 소비적인 감정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머릿속에서는 마지막 퇴근 전에 보았던원망이 가득 담긴 그녀가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지금 친구들과 술집에서 신나게 자신을 씹어대고 있을까아니면 유정의 예상대로 아기자기한 그녀의 방에 틀어박혀 배개에 얼굴을 묻고 있을까자신처럼.

 

피곤해.”

이불 빨래 맡기신지 얼마 안됐는데씻고 누우세요.”

피곤해.”

 

이불에 얼굴을 틀어박고 쫑알대는 카이토의 모든 잔소리에 피곤해하고 성의 없는 대답을 했다정말 피곤했다피곤함이 다른 생각을 모두 지워버린다.

 

뭐가 그렇게 피곤하세요?”

말하는 게.”

 

말로써 누군가를 이해시키고 이해한다는 게이해란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 알고 있어카이토모두 다른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거가장 가까운 부모님도 자식을 이해하지 못해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지이해는 너무 어려운 일이야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힘든 사람이 많아평생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 남에게 보여주고 퍼주기다만 가는 게-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제가 알아듣진 못해요.”

그게 참 재미있는 점이야.”

 

유정은 얼굴을 빼꼼 내밀고 기쁘지 않게 웃었다.

그게 흥미롭고불확실하지만 거기에 믿어볼 수밖에 없는 게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그러니까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는 거지.

 

넌 나를 이해할 수 있어?”

 

그 웃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카이토는 깊은 의미를 헤아리기를 포기했다여러 의미가 합쳐져 더는 하나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의미가 끈적하게 입꼬리 끝에 달랑거린다어떤 걸 잡아도 근원을 들어내자면 유정이라는 개체의 모든 것을 뒤엎을 대답밖엔아니면 그저 기계가 뱉어내는 단어의 모음엔 감흥 없이 으응하고 평소 같은 얼굴로 돌아올지도 모른다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이런 걸 물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이해라는 건저도 잘 모르지만하지만 저는 이해를 해야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다고 배우지 않았는데요.”

정말 내가 원하던 답이 아니잖아실망이야.”

 

그러나 누운 채로 손을 뻗어 바라보는 카이토의 볼을 손으로 잡아당겼다카이토는 반항이란 게 입력되지 않은 모양이다그 손을 겹쳐 잡을 뿐이었다.

 

넌 통각이란 게 없어왜 아프단 말을 안 해.”

 

사실은그때 말이에요.

 

카이토는 아주 천천히 이야기했다.

 

통각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그때는 마스터가 아니었던 어린 인간이알량한 연민에 그대로 절 놔두고 가면 어떡할까제가 연산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인 거죠그게 제 생존방식이에요.”

 

유정은 몇 달 전의 폐공장을 기억했다구둣발로 한 번에 부서졌으면 좋았을 텐데뜻밖에 단단한 다리는 몇 번을 밟고밟아도밟아도되지 않아서 필통에 어설프게 들어있던 커터칼로 칼집을 내고쑤시고자르고마지막으로 두 손에 잡고 질긴 나뭇가지를 억지로 휙휙 돌려 마지막 전선을 끊어냈을 때까지그 사이에서 수도꼭지처럼 쏟아지는 붉은 윤활제를.

줄곧 보고 있었다고기쁘게.

 

마스터의 생존방식이 그것이라면그건 나쁜 것이 아니에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그것보다 쓰레기처럼 사는 인간이 넘치는 세상이니까볼과 손과 손은 섞이지 않는 온도를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애를 쓴다마지막으로 사람의 볼을 만진지가 언제더라.

 

언제부터 손을 잡는 게 아무렇지 않게 되었는지만난 지 고작 반년 남짓한 안드로이드에게선 거울을 보는듯한 평온한 마음이 들었다아주 조용한 음악처럼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카이토는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아도물어보지 않아도 항상 웃어오는 얼굴이진심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던 기계의 말은 그 어떤 울림보다 따뜻하게 들려왔다이것 또한 카이토의 생존방식이라면개발자는 카이토를 사랑했음이 틀림없다.

 

정말 피곤해.”

 

목을 끌어안았다심장이 있어야 할 장소와 가까운 곳이었지만카이토의 몸속에서는 자그마한 기계음과 관이 공명하는 소리만 났다차라리 그게 더 진실 된 것 같다고건방지게 머리를 쓰다듬는 카이토를 이번만은 그래그냥 이대로만 있자그러자하고 혼자 뛰는 가슴을 가라앉힌다머리카락이 손에서 물결친다.

 

미안하다고 말해야겠지?”

마스터는 착한 사람이에요.”

 

아주정말진짜로힘주어 말하는 발음이 너무 정확해서 입술을 보지 않아도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아마 그랬을 것이다.

 

모처럼 꿈을 꾸지 않았다.

목에 안긴 카이토는 배터리가 닳은 채로 그대로 잠들어 있다한번 충전하면 며칠은 간다는 요즘 기종과는 다르게 하루 종일 버티기가 힘들었다무거워서 침대 위로는 옮기지 못하고고개만 침대로 살짝 내려다 주었다처음의 그때처럼그대로 충전코드를 연결했다오랜만에 노래 없는 조용한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한다침대 위로 엎어진 어깨를 멀뚱히 쳐다보며 셔츠 단추를 잠갔다고요하게 햇살만 드는 방이 어색하다.

 

아침부터 피곤해피곤하다하고 중얼거리면 어디서 주워들은 노래를 불러준다말 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노래는 카이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준다.

 

음만 겨우 지키지만요.”

 

끝을 맺지 못하는 노래의 가사는 허밍으로 끝난다조잡스러운 가사보다는 그게 더 듣기가 편하다가사가 있으면그것에 대한 생각밖에 하지 않게 되지만가사가 없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노래에 까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면사는 건 왜 이렇게 피곤한 일인지주어진 목적에만 맞춰 살면 되는 카이토가 조금 부러워진다카이토가 움직이는 것을 산다고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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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안녕하세요.”

 

책을 든 카이토는 아주 또박또박하게 문장을 읽었다유정은 흘린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말 한마디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줄줄이 토를 달았다안녕하세요라고안녀엉하세요이런 게 아니야입술은 왜 제대로 안 움직이는 거야어조가 너무 기계 같잖아.

기계니까요.’ 라는 투정에도 유정은 다시 읽으란 대답뿐이었다웃지도 않으시고 노려보면 한숨조차 쉬기에 민망하다유정의 객관적이란 단어는 상당히 주관적이었다표준발음이 꼭 잘 알아들어지는 발음은 아니니까.

 

시간이 나면 퇴근 후에 커피와 함께 한 시간주말엔 한나절을 읽었다처음엔 안녕하세요.’에서 넘어가지 못하던 문장은 감사합니다다음에 또 봬요.’로 넘어가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다가오는 주말은 새로운 문장인 여기는 어디인가요.’를 말할 차례였다주말이 오기 전까지 카이토는 유정이 근무하는 아침과 낮 동안또 어느 날엔 주위가 깜깜해질 때 까지 침대에 앉아 여기는 어디인가요여기는 어디인가요하고 연습했다결국걷는 건 어물쩍 포기하게 되었다밤엔 충전을 위해 카펫이 깔린 바닥에 기어 내려가거나 기분이 좋은 날은 백허그로 안겨서도 움직였다그때마다 상승하는 유정의 맥박수를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지만 카이토는 참았다올라가는 심박수를 세고 있다는 것을 알면 다시는 손 안 댈 거라고 질색할 게 뻔했다그러면서도 퇴근하자마자 슬쩍 자신을 들여다보며

 

성하지 않은 다리로 어딜 기어 다니는 거야.” 하고 잔소리를 인사 대신으로 하는 유정이 카이토는 싫지 않았다의자에 앉혀서 무릎을 털어주는 정장 차림의 마스터는 멋있다흔들리는 어깨로 슬쩍 풍기는 남성용 향수와 묻혀온 담배 냄새열심히 다려준 정장은 가동범위 이외에는 구김이 없다다리의 흉터를 만지면서 흠하고 물건 감정하는 모양으로 이리저리 휙휙 돌려본다동그란 무릎뼈에 맞춰 원형으로 돌리니 미세한 톱니 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움직인다움직임을 방해하던 흉터는 새 살에 잘 적응해서 많이 가라앉았다하지만 과거의 석유찌꺼기같이 검고 찐득한 메모리의 조각은 무릎에 박힌 오돌토돌한 붉은 균열로서 그 존재를 잊지 말라고꾸준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카이토는 볼멘소리를 했다만져봤자 뭐하느냐고.

 

그런다고 못 걷는 걸 갑자기 걷게 되지 않아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있는데 못 걷는다는 건 모순이지.”

 

입을 떼자마자 유정은 쯧혀를 찼다문장이 쌍방향의 검이 되어 꽂힌다들을 수 있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디서부터 생긴 모순일까들고 있던 다리를 놔주고 넥타이를 풀었다카이토는 손을 뻗다 멈췄다.

 

제가 풀어주고 싶었는데.”

괜찮아씻고 올 테니까 책이나 보고 있어.”

 

앉은 채로는 닿지 않을 책상 위에 놓인 책을 건넸다하고 지겹다는 표정을 짓는 이마를 톡 밀었다나는 삼 년을 읽었다고꼬박 삼 년을 읽고 쓰고 보고 아주 그 책의 여백이나 온점이 삐뚤어져 있다면 알아차릴 정도로샤워하는 머릿속에선 조금 전의 울림이 계속된다씻겨나가는 피로와 달리 영 기분이 나빠졌다자신의 모순을 부정했다는 사실에 맞서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한 아둔한 사고방식이 더욱 신경이 쓰인다문 뒤에서 카펫 끌리는 소리가 났다수건이라도 가져다 주기위해 기어가고 있을 카이토를 생각하니 살그머니 웃음이 난다가운을 입고 문을 열면 앉은 자세로 수건을 내밀고 있을 것이다카이토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더 이상 회화집의 녹음파일이 유정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차라리 대화상대를 만들어 보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지만어느 누구에게 이 기괴한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기엔적이 너무 많다당장에라도 사실을 퍼뜨려 유정이 서있는 자리를 무너뜨리려 망치를 휘두르는 자들이 가득한 귓속 밖의 세계.

 

차라리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게 다행인지도확실히 이전보단 받는 스트레스도 덜하다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언제는 현실에 발붙인다고 현실감이 들었던가.

 

문을 열자 예상대로 정좌로 수건을 내미는 것을 받아들었다수건을 치우자 카이토는 웃고 있었다언제나 똑같은 각도로 웃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뜨거운 물에 노곤해진 몸에 김이 모락모락 솟았다.

 

뭐에요저 데리고 가셔야죠수건만 들고 가시면 어떡해요.”

올 때도 기어왔으니까갈 때도 기어가면 되잖아.”

 

물기 조심해또 넘어질라.

친절한 것인지 놀리는 것인지 바닥에 발바닥 떨어지는 소리를 짝짝 내며 유정은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다어쩔 수 없이 온 그대로 기어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저번처럼 물기에 꼴사납게 넘어지면 마스터는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웃어댈 것이다옆에 있던 다른 수건으로 주변에 떨어진 물을 닦고서야 무릎을 끌어 기어가 카펫에 앉았다.

 

너 그러다 바지 무릎 부분 다 닳겠다.”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로 카펫 뒤의 쇼파에 유정은 털썩 앉았다오늘도 힘들었어누구누구 보험료 내려면 아주아주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들리도록 넋두리를 하며 파란 뒤통수를 쳐다본다한 대 쳐주고 싶은 동그랗고 시퍼런 뒤통수예전에 누군가에게서 얄미우니 뒤통수 한 대만 때려봐도 되냐는 실없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이런 느낌인가인공적인 파란 물이 든 머리는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백열등에 비춰 군청빛이었다가하늘빛이었다가뒤에 나온 커스텀 모델은 손톱 색까지 파랗게 멍든 것처럼 나왔다고카이토의 자라지 않는 손톱은 닳았지만 투명하다.

 

옷보단 연골이 닳는 게 더 큰 일이실걸요이게 얼마짜리냐 하면.”

넌 생산적인 일은 못 하는 거야소비적인 기계 같으니.”

제가 일을 하게 되면 인간들은 뭐 하고 삽니까남의 밥줄 잘라먹으면서 까지 살고 싶진 않아요.”

너 말 진짜 많이 늘었다.”

마스터 덕분에요.”

 

쳐다보지도 않고 쫑알거리는 얄미운 뒤통수를 축축한 수건으로 내려쳤다처음에 올 때 만해도 카이토는 바짝 움츠려서는 종일 침대에 앉아만 있었다징그럽게 붉은 뿌리를 줄기까지 뻗은 가지들은 기능이 사라진 화석처럼 줄곧 이불속에 퇴적되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출근하기 전에 덮어준 그대로 퇴근 시간까지가구처럼 틀어박혀서는 퇴근한 유정을 보고 그간의 외로움을 가득담은 얼굴로 다녀오셨어요하고 고개가 떨어지면 해묵어 퀴퀴한 회한은 침대위로 가득 떨어질 것만 같은 게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허무하다평소의 템포였다면 나의 일이 아닌 것은 세 발짝 뒤에서그러나 그림자는 그것을 덮도록 조절하는 것을 인생의 미덕으로 여기는 유정이었지만 기껏 비싼 돈 줘가며 고쳐온 게 저 꼴을 하고 있으니 영 마음이 쓰였다텅 빈 얼굴은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는 채로 웃어 보이는 기이한 환상이 겹쳐 보인다분명 어떠한 과거가 있는 게 분명했는데프로텍트 메모리는 해제키가 없으면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굳이 부가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한 프로텍트 메모리를 심어놓고발목 크기에 맞춘 족쇄를 채워 버려놓은 이유는카이토는 기억에 대한 권한이 전혀없다고 했다억지로 기억을 하려고하면 모든 프로그램이 꽝닫혀서 접근 거부를 당한다나유정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식의 설명을 했다.

 

그럼 그 강아지 뼈는그것도 과거의 기억 중 일부잖아.”

그건 제가 혼자 메모리를 유지했던 1년 정도 그 아이와 같이 있었으니까요아마....”

 

하고 과거 얘기를 조금이라도 꺼내보려 하면 카이토는 느려졌다그게 저장된 프로텍트의 작용이었다기면증에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헛하고 멀뚱거렸다.

 

사설 해커를 시키면 해제는 가능할 거에요하지만 당연히 불법이고 만약 프로텍트의 주인이 살아..계신다면 마스터가고소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카이토는 자신의 예전 주인 된 자를 그렇게 정의했다한때 유정과 같이 아주 가까웠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유정은 더 이상 그것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옛 주인의 향수의 자락이라도 잡아보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고그럴 때마다 처음의 쓸쓸한 표정으로의 회귀가 그동안 유정과 쌓아왔던 것들이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서.

 

카이토와의 생활은사람들과의 것에선 느끼지 못했던 정말 이상하고 미묘한 균열을 눈에 보이게 한다그것만으로도 유정은 카이토가 얼마나 자신과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가까워지기 힘든 거리감을 훌쩍 뛰어넘은 것인지그것을 서로 보고도 잠잠히 덮어두는지는 몰라도 관계는 아주 미적지근하게그래가물가물 잠이 오려는 주말 오후의 그런 대화처럼.

 

성장 이란 건 정확히 어떤 개념인가요?”

 

성장은 교육이나 학습과는 다른 개념인가요?

의자에 앉은 카이토는 발을 동동거렸다지표면에 닿으면 눈 녹듯 사르르 무너지고 마는 발목이 공중에 덜렁거리는 느낌이 좋았다책을 읽으며 이어진 시선으로 카이토와 대화를 이어가던 유정은 무릎에 책을 내려놓았다회사에서 어떤 여자가라는 주제였던 말꼬리가 갑자기 엉뚱한 곳으로 순식간에 튀어 버린다그런 일이 종종 있다술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바다는 어떤 곳인가요.' 하고 묻는다든지.

 

성장은 세포가 분열하는 것이나인격체가 발전하는 것도 성장이라고 해교육과 학습은 성장의 수단인 거고갑자기 그건 왜?”

 

사람은 성장할 때 아프다고 해서요궁금했어요진짜 아프셨어요?”

 

그랬나그건 사람마다 달라서 겪는 사람도 있고 안 겪는 사람도 있어나는,

겪었던가기억이 안 나니까 없었겠지학창시절 어느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녀석은 무릎을 붙잡고 엉엉 울어대는 바람에 응급실에 간 적도 있다고 하고근데 좀 시끄러운 성격이긴 했어정신적인 걸로도 원래 사람은 자기가 힘들어야 그게 진짜란 걸 아는 멍청이들이 많으니까그걸 성장했다고 포장하는 거야대답이 되었을까.

 

즐거운 아픔이네요멋지다성장할 수 있다는 건.”

그렇게 말하면 듣는 내가 이상해지는데.”

 

성장.

즐거운 아픔.

 

같은 단어를 들어도 카이토의 울림에서는 낡고도 진실한 부러움이 묻어나온다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지도물건에서 벗어나 주체를 가지고발을 디디고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까사람이 된다고 해서 그다지 자유롭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실망스럽겠지만.

 

많이 아팠죠아프지 않았던 게 아니라 너무 아파서 잊어버렸을 거에요마스터라면.”

 

더 할 말이 없을 땐 카이토는 항상 웃었다알고 하는 것인지그저 어떤 단어의 모음들인지 모를 말들은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서 꼭 한 두 번씩은 곱씹어 보게 된다조용히 카이토가 충전되는 자그마한 소리에 휩쓸려 과거의 잔 상처들의 기억들이 바닷물에 닿은 것 마냥 쓰라리게 닿았다가 밀려나는 사이로 불편하게 잠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그런 날은 다음도그 다음날도 별로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마스크를 회사에서까지 끼고 싶을 만큼잠을 설친 것 과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남은 실컷 잠을 들쑤셔놓고는 새벽녘에 무거운 머리를 어설푸레 들어 카펫에 등을 구부리고 누워 눈 감은 카이토를 보고 있으면처음 보았던 공장에서의 먼지만큼의 무게가 꼭 가라앉았다.

 

널 데려온 게 좋은 일인지안 좋은 일인지아직도 모르겠어.”

저한텐 더 없이 좋은 일이에요.”

 

반바지 아래 다리의 찢겨나간 상처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책을 읽어 드릴까요하는 부탁에 손을 저었다네가 말하는 책의 문장들을 듣고 있으면 책 내용보다 다른 것에 더 신경 쓰여움직이는 입술이 진짜인지. ‘자신의 의지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문장을 읽는 네가 그 말을 이해하고 읽는 것인지.

 

발음 아직도 별로잖아..싫어그냥 내가 읽을게.”

심심한데.”

심심하면 내가 하는 얘기나 듣고 고개나 끄덕이란 말이야.”

그 귀엽게 생긴 여자가 그래서 오늘도 도시락을 줬는데마스터는 같잖았지만 웃으면서 받아주었다는 이야기요?”

 

책등으로 머리를 때렸다말을 할수록 느는 건 넉살뿐이다거짓말처럼 미소 짓던 얼굴이 어느새 자신보다 더 자연스러워졌다주말 동안 다음 주에 할 대화목록을 생각해보고연습도 한다준비를 하면 불안이 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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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정확히 3일 뒤전신 복구가 끝난 카이토는 낯선 공간으로 옮겨졌음을 감지했다늦은 오전께의 가라앉은 공기 속의 방은 주인의 영혼을 그래도 빼다 박은 듯 동선에 따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누워있던 침대 옆의 작은 선반 위에는 쪽지가 놓여있었다희미한 눈을 깜빡여 환기를 시켜도 글은 아주 느릿하게 읽히었다.

 

[회사 다녀올게아직 복구진행 중이라니까 일어났다고 해도 많이 움직이면 안 됨. 7시쯤 돌아올 예정.]

 

발목에는 이어붙인 새로운 피부가 반들반들한 색상으로 이어져 있다힘을 넣자 간신히 눈에 보일 정도로만 발가락이 까닥거린다아직은 걷진 못하겠구나팔을 뻗어 선반위에 놓인 서류 몇 개를 들어본다안드로이드 사용인증확인서보험안내서사용취급안내서수리비용 청구서합산하면 꽤 목돈이겠지만비용은 모두 정갈한 사인으로 일시금처리가 되어있다벽에는 자그마한 그림 액자와 화이트보드가 걸려있다노트북과 연필꽂이만이 놓인 책상붙어있는 책장엔 두꺼운 양장본의 책들이 빼곡하다이어진 부엌과 보이진 않지만그 뒤에 있을 화장실깔끔한 오피스텔의 넓은 창밖으로는 기다란 강이 흐르고 있다강을 실제로 본건 처음이라 몸을 움직여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복구 프로그램을 돌리느라 남은 메모리가 많지 않아 복잡한 움직임이 좀처럼 실행되지 않은 채로 로딩만 계속된다.

입고 있던 낡은 디폴트 옷 대신 가벼운 티셔츠와 반바지 아래에는 찢고 꿰맨 수리흔적이 무릎 아래를 가로지른다새로운 혈관 가지가 발등에서 간지럽게 끔실거린다목 뒤에 손을 가져가자 생경한 새 피부에는 새로운 시리얼 넘버가 각인되어 있다끝에 남은 흉터 자국에 덧 씌워진 새 각인은 오랜만에 소속감을 느끼게 해준다좋아두 번째 생이번엔 정말 잘 해보리라.

 

머릿속 텅 비었던 메모리에 마스터가 각인된다인간의 기준에서 잘생겼다고 할 수 있을 호감형의 외모새까만 머리와 각 잡힌 몸매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는 공장에서부터 머릿속의 빈 공간을 휘감는다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는 단정한 눈매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던-이제 차차 알아가면 될 것이다이렇게 구조도 해주고 치료까지 해주고 심지어 사용자 등록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이전에 몇 번 카이토를 깨웠던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으로 다가왔다가 존재하지 않는 신분이라는 이유하에 더러운 욕망을 주기적으로 풀고 가는 두 무리그리고 비싼 기계를 공짜로 주웠다는 심리에 새 주인이 되어주겠노라 다짐했다가 카이토가 간단하게 설명한 엄청난 치료비와 보험료에 질색하고 그저 코드를 뽑고 도망간 게 몇 번비록 생명이 아니더라도 존재 하나를 가진다는 것엔 아주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기본적인 도덕이 없는 사람들이 그 공장가에는 맴돌았다그들의 때묻어 더러운 손만큼이나 더러운 생활상의 가장 아래에 카이토가 있었다가끔씩 깨어나면 드문드문 기억을 잇기가 어렵다.

 

이제 그런 흑역사는 압축해서 메모리 구석에 박아둬야지기다랗게 펼쳐진 너덜너덜한 시간의 종이 타래를 차곡차곡 말아 넣는다움직일 수도 없으니 마스터가 올 시간까진 대기모드로깊게 숨을 내쉬자 몇 년간의 피로감이 어깨에 스려올라온다책장엔 노래나 작곡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괘념치 않다그런 사치스러운 목적은 포기한 지 오래니까.

객관적인 언어체계 공급옆에서 백과사전이나 들고 줄줄 읽어드리면 되는 걸까하는 실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

 

 

도어락이 눌러지는 버튼 음이 들리자 카이토는 눈을 번쩍 떴다시계를 올려다보자 시계는 벌써 돌아오리라 약속한 시간이불 끄트머리를 주먹 쥐었다사용자 등록 후의 첫 만남이라 설레고 두근거린다그러니까 그거조금 과장하면 태어난 아이가 처음 부모를 보는 상황괜히 눈을 뜨고 있으면 민망할까 눈을 감아버린다빠른 버튼 음 뒤엔 터벅거리는 경쾌한 구둣발 소리테이블에 가방을 두는 소리넥타이를 푸는 소리사각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부엌의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셨다그리고 하아하는 한숨을 길게 쉬고는 쇼파에 풀석 앉는다실눈을 뜨고 바라본 마스터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마치 혼자 집에 있는 마냥 무덤덤하다.

 

나는 언제 깨워 주시는 거지.

 

이제 스스로 일어나기도 민망한 타이밍이다능청스럽게 방금 일어난 척을 하기엔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을 거고마스터는 왠지 눈치를 챌 것 같다머릿속으로 열두 가지 정도 연산을 했다이대로 누워있거나아까부터 일어나 있었다고 사실대로 말하거나뒤척거려서 관심을 보이게 한다거나-

 

일어났으면 나한테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시선은 여전히 두드리고 있던 휴대전화에 고정되어있다카이토는 슬그머니 목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내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너 때문에 저번 달 월급 반이 날아갔어무슨 수리비가 그렇게 비싸.전신 수리까지 해야 했을 줄이야너 생각보다 많이 망가졌었어.”

 

난 발만 붙이면 될 줄 알았지다리에 흉터는 부품세대 차이가 너무 나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발만 최신형이야언어랑 신체조정은 그냥 기본 업그레이드만나머지 서류들은 이미 다 처리했으니까더 할 말 없겠지체크리스트를 지워가는 식으로 문장을 끝맺던 유정의 시선에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카이토가 맺혔다업그레이드해서 그런지 움직이는 표정이 더 자연스럽고 풍부해진 느낌이다아이가 배워나가는 것처럼 하나하나 축적된 파일들이 그것을 대신한다니 흥미로운 존재이다.

 

그럼 여기까지질문?”

네에마스터, 26분 전에 복구 프로그램 진행이 끝났습니다만메모리에 보행법이 들어있지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펄럭이불을 걷자 양다리를 가로지르는 붉은빛의 도드라진 이질적 흉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두 다리의 것을 이으면 하나의 붉고 솟아오른 선을 만든다금방이라도 건드리면 핏물이 터져 나올듯한 위태로운 모양의 흉터를 움직여 침대 밖으로 몸을 돌려 발을 바닥에 대고 일어선다.

 

직립이건 가능하네요.”

 

발을 내딛자 나무 블록의 핵심을 뺀 것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바닥에 주저앉은 카이토는 보시다시피하고 어깨를 으쓱한다기는 것도 가능합니다신체기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복구프로그램을 한 번 더 설치하면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만그렇게 하시려면 인증등록부터 다시 하셔야 합니다말 그대로 모든 유효 메모리를 삭제하고 다시 설치하는 거여서요.”

 

유정은 대리점에서 치렀던 귀찮고 복잡한 인증등록절차를 떠올렸다국가에 매인 존재가 되는 게 하등 카이토 뿐만이 아닌 것 같은 지문인식몇 번을 반복하는 동공인식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법안문서들하나하나 따져 묻고 싶은 조항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사족을 붙이기 싫어서 주는 대로 순순히 사인을 넘겨주었다그걸 다시 해야 하는 건 정말 귀찮다그리고 이제 그렇게 낼 만한 시간도 없고.

 

당분간은 기어 다녀도 괜찮은데요.”

내가 안 괜찮은데그냥 안 움직이는 건 어때

 

움직일 필요란 게 있나너는 나랑 대화만 하면 되니까저기 안 쓰는 의자 갖다 줄 테니까-

멋진 새 발을 얻었는데 안 쓰기는 아깝습니다.

 

생소하지만 카이토에겐 틀린 것 없는 문장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월급의 한 귀퉁이를 베어 먹어간 비싸고 가벼운 최신 티타늄합금 기반의 발을 장식용으로 썩히긴 아까우니까.

 

그럼 따로 입력할 순 없는 거야?”

거기까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프로그램이 보행법만 삭제한 것인지혹은 정품대리점에서 설치한 건데 누락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고그건 기본프로그램에 원래 내장이 되어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 따로 설치되는지해당 대리점에 다시 가셔서 의뢰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혹은 보행법을 교육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 방법은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카이토는 가이드를 타자기 두드리듯 내뱉는다.

 

그만알겠어.”

 

한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쓸데없는 말 하지 마나 그거 싫어하니까.

 

난 네가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 널 비싼 돈 줘가며 고쳐온 게 아니니까그런 식의 프로토콜대로의 말은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끄덕인 카이토는 멀뚱히 입을 닫는다더 이상의 명령이 없는 이상은 입을 열지 말라는 소리시겠지인간을 대해본 지가 오랜만이라 그들의 함축적 의미를 따라가기가 힘들다차라리 어떠한 형식의 명령이 더 편한데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즉각 처리되는 정보는 그들에겐 무례하거나무례하게 보이는 언행으로 인식되나 보다머릿속에 마스터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입력한다.

 

[필요 없는 말을 하지 말 것설명서의 내용을 그대로 읊지 말 것.]

[먼저 인사를 할 것.]

 

가만히 있다가 쳐다보는 것 같으면 방긋 웃고또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면 가만히 있다가 다시 쳐다보면 몇 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웃는 카이토를 유정은 몇 번이고 놀려먹었다아마 계속 말하던 내장된 행동양식인듯한데 너무 멍청하게 무방비한 얼굴이라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보통 몇 번쯤 하면 놀리지 말라며 화를 낼 법도 하건만그런 건방지게 움직일 기전은 안드로이드에게선 해당사항 없음인가터지는 유정의 웃음에 카이토는 다시금 따라 웃었다말을 하지 않는 것도 아까 자기가 한 말 때문일 것이다복종도는 여타 생물에 비할 바가 아니라던 센터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숨 쉬지 말라면 숨넘어갈 때 까지 안 쉴 거니까뭐 숨넘어가도 죽질 않아서 그런가.”

 

잘 사용 하세요같이 동봉되어 가는 설명서도 잘 읽어보세요.

 

멀티 탭을 사온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제멋대로 쓸 수 있는데다가 보안도 철저하고.

유정은 책장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 건넸다. [쉽게 배우는 한국어 회화]라고 쓰인 모서리가 바짝 마른 외국인용 회화집을 넘기자 몇 번이고 다시 그어진 줄과 빼곡한 포스트잇들이 사용흔적을 말해주고 있다각 잡힌 깔끔한 글씨로 상황에 맞는 다른 표현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기본적인 인사서부터 생활 전반 상식선의 대화는 정식의 규격이라 어색하다책을 넘기던 카이토는 유정을 올려다보았다.

 

마스터께서는 내국인이 아니십니까?”

아니너보단 한참 내국인이지이제부터 네가 할 일은시간 날 때마다 나랑 그 책 같이 읽는 거야실제로 대화하는 것처럼그냥 대화하는 것도 포함.”

 

어렵지 않지유정은 끄덕였다너도 끄덕여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지만기껏 책을 든 카이토는 이상한 별세계의 물건이라도 손에 놓인 듯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희득 자신을 올려다보며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이해할 만한 설명을.

 

해줄 의무가 있나?”

아뇨문장 읽는 것 정도는 지금도 가능하고대화는 데이터베이스에 축적하면 할수록 자연스러워 질 거에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카이토는 책의 첫 장을 넘겼다. J.Y 멋들어진 필기체에 비해 책의 내용은 초등학교 대화수준가장 맨 첫 장에는 으레 그렇듯이 인사말들이 적혀있다.

 

안녕하세요저는 유정이라고 합니다.”

그건 내가 읽을 부분이야그리고 지금 하잔 얘기 안 했어.”

 

책을 든 팔을 낚아채자 힘없이 책은 바닥에 떨어진다눈살을 조금 찌푸리고유정은 카이토에게 손을 내밀었다계속 그대로 주저앉아있을 거야침대에 가서 앉든지 눕든지다리의 선명한 붉은 선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게다가 기껏 바꿔놨더니 걷지도 못한다니걷는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산 김에 회사일 바쁠 때 즉각 못하는 빨래나 청소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피땀 같은 자신의 월급이 선명한 빨간 흉터로 밖에 돌아오지 못했다기계 주제에 효율성이 좋지 못하다유정은 이 정도의 높이차이가 카이토와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손을 잡은 카이토는 그 팔에 힘을 주지 않는다.

 

저 많이 무거울 텐데요가능하시다면 양쪽 팔을 빌려주시겠습니까?”

무슨 소리야그냥 잡아.”

 

입술을 비쭉 내밀더니 잡은 그대로 유정은 바닥에 뿌리를 박은 무게감에 어어어하고 단말의 무력한 소리를 내며 카이토쪽으로 무너졌다안긴 품새가 당황스러웠다카이토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스터는 제 말을 안 믿으시나요단백질로 만들어진 신체보다는 아무리 가벼운 재질이여도..”

쓸데없이 말 길게 하는 건 원래 내장된 거야알겠으니까 일절만 하고 이 팔 치워.”

혈압맥박호흡수호흡음 정상이십니다맥박은 조금 빠르나 방금 크게 움직이신 점을 감안하면 정상체온은 약간 낮으시군요.”

너 그런 것도 체크할 수 있어노래 부르는 안드로이드 아니었나?”

 

마스터가 사용 목적에 의료기구라고 설정을 하셔서 기본프로그램에 딸려 들어갔습니다기본으로 혈압맥박호흡수호흡음체온까지 접촉으로 측정 가능하십니다그 외에-”

 

그럼 정말 떨어져기분 나쁘니까.”

 

유정은 저 혼자만 일어나 다리를 털었다팔을 내미는 카이토를 무시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수천 번 읽고 듣고 썼던 문장들분리되는 활자는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엎으며 인식을 잡아먹고 부서진 조각을 생산했다그 조각을 귓속에 처박고 싶다부서진 활자는 다시 재건할 수 없다.

 

거울을 쳐다보며

 

안녕.

안녕이 도대체 어떤 말이었더라. '안녕.'이라고 내뱉어 본다여전히 안녕’ 은 하나의 소리에 불과하다안녕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자신이 안녕이라고 말하긴 한 것인지. ‘안녕’ 다음엔 어떤 의미가 이어져야 하는지 텅 빈 머릿속에서 다만 메아리가 울린다.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찢었다가 다시 투명 테이프로 이은 흔적이 남은 자신의 모든 언어를 담은 책대화 할 수 없는 나날들.

들리는 것의 뜻을 깡그리 지운 이상한 사전을 의사는 청각실인증이라는 생소한 단어로 정의한다청각의 인식을 잃어버린 거예요사람의 뇌라는 건 참 이상하죠외계어가 들린다진료실에 멀뚱히 앉아 선한 인상의 의사는 의미 없는 소리만 내뱉었다먼 외국의 언어소리의 무게만을 가진 표백된 음성.

 

[사람의 뇌라는 게 참 이상하죠.]

 

유정은 .’ 하고 대답을 했지만 .’ 라고 대답을 했는지 의심했다아직은 이십 년 동안 축적되었던 반사적 대답이 남아 있네요의사는 웃으며 말했지만유정은 이해하지 못했다분명히 귀로 들어오는 음성은 고대의 이집트의 상형문자만큼이나 의미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의사는 웃으며 화이트보드 판을 내밀었다.

 

[써보세요.]

[저는 미친 건가요?]

 

의사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답답해진 유정은 눈살을 찌푸렸다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하고도 3년의 입원기간은 모자랐지만알아듣는 척을 배우기엔 넉넉했다입술을 읽고무의식적인 동작을 잡아내서상황에 따른 뜻을 유추하고그에 맞는 대답을 책에서 연상한다하나의 문장에서 대답할 수 있는 수 백 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분위기에 맞는 하나를 선택하는 것원래는 뇌에서 자동으로 하는 기능을 생각에 맞춰 하기는 꽤 습관이 되질 않았다일 년이면 될 거로 생각했던 입원기간은 삼 개월만 더육 개월만 더하더니 꼬박 삼 년을 채웠다.

유정은 입원을 했던 기간 동안 치료시간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꿈쩍없이 회화책을 필사했다필사한 공책은 침대 난간을 넘어 쌓인다폐쇄병동은 계절과 상관없이 항상 적정온도를 유지한다규격화된 생활양식을 시간의 흐름을 잊을 수 있게 도와준다말 그대로 폐쇄와 격리의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치료시간을 알리러 온 간호사가 테이블에 놓인 화이트보드를 들면 유정은 고개를 돌렸다아무런 약도 처방받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는 유정은 자신에게 과분하게 큰 환자복을 사각거리며 언어치료실로 갔다소매에는 항상 검은 잉크가 물들어 있다그 병동의 환자들 중 유정은 가장 자유로운 사람 축에 속했다매일 자신을 보러오는 간호사들이 그렇게 썼다미치지도 않았는데 미친 사람들 사이에 갇힌 게 자유라니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아직 말이 제대로 안 나왔던 때라웃는 얼굴을 좋아하는것 같은 간호사들에게 매일 웃어주었다.

 

치료란 개념보다는 익숙해진다고 생각하고사회로 돌아가야죠젊은데.”

 

분명 호의가 넘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유정은 그 말이 매우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치료사는 차트를 정리하며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보기 드문 케이스를 맡은 것은 그들에겐 행운 축에 속했다완벽한 비밀보장을 확인받고 진행하는 특수치료엔 그 병원 언어치료사 모두가 이름한번 넣어보려고 달라붙었다.

 

마지막 퇴원 날 의사는 유정에게 여전한 외계어로 악수를 청했다유정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손을 놓은 유정은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렸다제대로 말했겠지표정이 변하지 않았으니까이어폰을 끼고 회화집의 음성을 들었다.

실어증이란 거짓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은 비슷한 종류이기도 하고시나리오는 늘 그러했다교통사고를 당했는데그 후에 생겼어지금은 많이 치료해서 이 정도드라마에서 몇 번 본적이 있다는 반응과 오히려 신비스럽단 분위기를 자기들끼리 만들어내는 사람들병이 생기기 전에도 유정은 분위기를 읽고 그 흐름을 조절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회사의 사람에겐 예전에 앓은 적이 있다.’ 는 과거 완료형의 짧은 문장으로나마 양심을 지켰다병을 앓기 전 만큼 지인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그 지인들을 절대로 엮어 만나는 일이 없었기에 가능했다낡은 폐공장에 버려져 있던 구닥다리 안드로이드를 제외하면유정의 거짓말은 아주 손쉬운 안전장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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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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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살픗 눈을 감으면 세상은 혼자인 듯 몇 개의 발자국만 남겨진다.

길을 걷는 유정은 위험하게도 거리의 득실거리는 세균 같은 감각을 차단하기 위해 병원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하얀빛의 멸균 마스크를 끼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플레이 리스트를 헤매는 음악을 배경 삼아 넓은 보폭으로 사람들 사이를 물살 가르듯 지나친다.

머릿속으로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의 문장을 나열하자 어느새 하고 싶은 일들은 의식의 저편으로 가라앉는다어느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이십 대 후반자신의 나이에선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의무와 부담감만이 보란 듯이 길을 비추고사람들은 좋지도 않은 머리를 굳이 굴려 실낱같은 기회라도 잡아보려 애쓴다.

유정은 가끔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주위의 누군가가 들으면 엉뚱하게 생각할진 몰라도세상 어느 것에도 쓸모없는 말들을 웃어가며 듣고 있는 동안엔 자신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화살표 사이를 훌쩍 뛰어넘는 유쾌한 상상들을 하면그것은 현실성 없는 진실한 웃음으로 나타났다.

 

약속까지 남은 네 시간.’

 

주위엔 싸구려 커피를 내려 파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몇 개 있었지만커피 맛은 둘째 치고라도 추운 겨울 날씨에 사람들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몇 개의 주요 가닥만 붙잡으면 눈에 훤히 보이는 멍청한 상황이 가득한 군중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어질러진 방에 사람을 가둬놓고 치우지도 못하게 하는 건 고문이다속 시끄러운 생각을 접어버린다.

 

입고 있던 코트를 목까지 다시 여미고 귀에서 살짝 빠져나온 이어폰을 다시 밀어 넣는다어제는 잔업이 바빠서 운동을 못 했으니대신으로 오늘은 남은 시간동안 여기저기를 둘러 걸어 다니기로 마음먹었다몇 번 와보지 않은 장소라 익숙하지 않은 건물들이 시야에 펼쳐진다번화가를 벗어나자 풍경은 금방 주택과 공장지대로 모습을 바꾼다흙바닥에 구둣발이 맞붙어 끌리는 소리가 옆의 나대지에 퍼진다가까이에는 높은 철조망 뒤에 높게 쌓인 커다란 고철들이 산을 이룬다겨울의 바람에 노출된 버려진 중장비들이 나열되어있는 맞은편인기척 없는 공장의 한쪽 벽 커다랗게 [임대 매매]라고 써진 낡은 현수막은 한쪽 귀퉁이가 떨어진 채로 바람에 날린다몇백 평은 되어 보이는 버려진 공장은 커다란 문에 몇 년은 삭아 들어간 녹이 퇴적되어 손을 대면 그대로 거친 붉은빛이 묻어난다.

 

유정은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마스크를 벗었다.

시원한 겨울바람을 한껏 들이마시자 묵직했던 폐에 물이 찬 듯 살아난다여전히 귀에선 가사 없는 악곡이 재생된다혼자 있는 시간에서까지 남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한꺼번에 넣어둔 언어 없는 음악은 건조한 공장 문을 여는 호기심의 배경음이 된다유정은 보통 자신의 안위 이상의 일엔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지만이렇게 떡하니 열쇠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문 앞에선 어린 시절에 잠시 가졌던 치기라던 지가 되살아난다손목의 시계는 아직 충분하다.

 

커다란 자물쇠를 떨어내자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거대한 철문이 바닥에 끌린다잘 밀리지 않아 발로 걷어차듯 밀어 넘기자 끼긱-하는 육중한 소리가 빈 공장에 메아리친다외국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곳에서 늘 몇 달 방치된 시체가 발견되곤 한다.

오싹한 상상을 하며 맨 크로스 백의 끈을 움켜쥐었다한 손에는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를 위해 휴대전화의 잠금을 풀어 들었다꼭 있을 법한 버려진 낡고 녹슨 중장비들빛바랜 쓰레기들높은 곳에 있는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들이 풀풀 휘날린다차가운 금속의 냄새에 유정은 가라앉은 안정감을 느꼈다.

 

예상했던 풍경에 풀어진 어깨로 여유롭게 공장을 둘러보던 유정은 쌓여있던 드럼통 뒤에서 시체를 발견했다흠칫 놀라 손에 쥔 휴대폰을 눌러 빛을 가까이 대자 마치 잠든 모습으로 바닥에 박힌 표지에 사슬로 연결되어있는 시체.

 

시체.

 

머리칼이 쭈뼛 섰다얼어붙은 걸음에 머리는 급속도로 회전을 시작한다.

 

저게 정말 시체라면?’

시체가 아니라면?’

 

두 가지의 선택지를 시작으로 알고리즘으로 펼쳐진다눈으로는 빠르게 시체를 분석했다. 20대 초반의 남성주위의 바닥은 오래된 핏자국 없이 깨끗하다굵은 사슬로 묶인 발목과 연결된 바닥의 커다란 못직사광선에 사그라지기 시작한 입혀진 옷그리고 인공적인 파란빛의 머리색가장 수상한 것은 주위에 뿌려진 조그만 뼛조각들어깨와 다리에 쌓인 보얀 먼지는 시체가 적어도 몇 달은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았단 것을 말해준다그 정도 시간이면 원래 썩고도 남았을 텐데.

방부제를 많이 먹으면 시체가 썩지 않는다는 괴담이 사실로 밝혀지는 증거로 쓸 수 있을 만큼 시체는 멀쩡했다죽은 것이라는 사실만 빼놓고는.

그리고 알고리즘의 끝에서 유정은 결론을 내렸다.

 

이건 시체가 아니다.’

 

목에 걸려있던 사레를 밀어 넘기고 일단은 사라진 하나의 선택지에 안도를 느낀다복잡한 일은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가까이 다가가 발과 연결된 쇠사슬을 건드렸다묵직한 두께만큼의 무게가 끝에 닿는다유정은 턱에 괴고 있던 마스크를 다시 코끝까지 밀어 올린다직접 손을 대고 싶진 않지만딱히 바닥에 떨어진 나무토막들도 깨끗해 보이지 않아 소매를 팔꿈치 아래까지 걷어 올려 대충 목 언저리를 건드렸다하는 작은 충격에 어깨에 쌓여있던 먼지가 우수수 휘날린다마스크에 다시금 고마움을 느낀다.

 

짐작 가는 바가 맞는다면.

 

떨어져 한쪽으로 꺾인 목 뒤로 검은색의 각인된 숫자가 적혀 있다들어맞은 예상에 유정은 싱긋 웃었다그럼 그렇지저것도 여기에 남겨진 공장용 기계들과 다름없는 폐품이군완성된 안드로이드 기술의 유희용 확장판의지를 갖춘 신디사이저.

실제로 본건 처음이지만, TV나 컴퓨터에서 문득 지나가는 선전에서는 이렇게 처참한 몰골이 아니었다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형형색색의 머리와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초보자들도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로 만들어져 홈 레코딩의 신세계를 열었다-주인 없는 공장에 버려진 고가의 보컬로이드이름이 그랬던 거 같다.

 

깨워볼까?’

 

그렇게 동한 이유는 눈치를 채고 보니 이제야 등 뒤로 떨어져 있는 충전 케이블이 보였기 때문이다그리고 바로 옆의 콘센트아주 오래 꺼져있었을 기계는 사람의 손길 한 번이면 깨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생명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무심하게도 잔인한 일이다한 치의 관용도인권도 없는 물체.

창조주가 새 생명을 움트는 마음으로 콘센트를 연결한다움찔하는 작은 미동이 시작을 알린다.

기계는 파란 구슬이 박힌 눈으로 유정을 바라본다눈꺼풀에 앉은 먼지가 깜빡임에 우수수 떨어졌다고개를 훌훌 돌리자 시야를 가릴 정도로 먼지가 춤을 추며 휘날린다쿨럭하는 기침을 몇 번 하고 기계는 입을 열었다생각보다 목소리는 깔끔하다.

 

지금은 몇 년도 지요?”

 

대답 대신 유정은 시간이 적힌 휴대전화의 잠금 화면을 내민다. 2-0-1-X.

 

“3년 4개월 19일 6시간 39.40.”

 

침묵이 감돌았다유정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계속 자신이 달고 있던 먼지를 털어내다가 그걸 마시고 기침하는 바보 같은 행동을 빤히 쳐다보며 최소한의 예의로 유실물 센터에 전화를 해주어야 하는 건지혹은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이 기계의 주인을 위해 구경 잘했습니다-하고 코드를 뽑고 갈 길을 가야 하는 지를 저울질한다. 3년 동안 버려놓은 기계를 지금 와서 데려갈 것 같진 않지만복잡한 서류와 처리절차과태료를 감수하면서까지 기계를 폐기처분 시켜주려는 인덕 높은 사람이 아니었나이것의 주인은게다가 혹시나 모를 상황을 위해 묶어두고 가는 철저함인지 잔인함인지 모를 것 까지.

 

계속 재채기와 싸우고 있는 기계는 일말의 긴장감마저 녹아 없애고 있다멍청하게 소매로 얼굴을 닦으려다 아하고 그제서 자신의 결박상태를 눈치 챈 듯 발을 흔들어 소리를 냈다유정은 바탕화면의 가장 가까운 아이콘을 눌러 메모장 앱을 꺼내 툭툭 두드렸다.

 

[신고해줄까]

에취어디를 말씀하십니까?”

[안드로이드 유실 센터]

전 유실된 상태가 아닙니다.”

 

연 갱신기간 동안 서비스 센터 인증을 갱신하지 않은 안드로이드는 모두 유실로 처리될 텐데, 3년 만에 깨어났다는 정보와 모순된다폐기처분이 되었더라면 당연히 센터에서 보호처리유실보호처치그 이외에서 주인과 떨어질 방법이 있었던가기이한 모습만큼이나 그 기계의 존재는 장면에 모순된다고개를 갸웃 이며 다시 자판을 톡톡 두드렸다.

 

[그럼경찰서에 신고 할 문제가 있어?]

당신은 말을 할 줄을 모르십니까?”

[나에 대해선 알 것 없어.]

그렇습니까그럼 갈 길 가시길 바랍니다.”

[풀어줄까?]

당신은 풀어줄 마음이 없고저도 풀려날 의무가 없습니다.

다시당신은 말을 할 줄 모르십니까혹은 안드로이드와 대화하는 것을 혐오하십니까?”

 

똑똑한데안드로이드는 말의 무게를 알아차린다유정에겐 남은 약속시각까지 위협적인 커다란 사슬을 풀 방법도 기력도 의무도 없다이제 슬슬 이 가벼운 일탈적 산책을 끝낼 때였다하매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니 평소 매뉴얼대로 하기로 한다.

 

[나는 실어증이야그건 말을 하는 법을 잃어버렸다는 뜻이지.]

그렇지 않습니다당신의 호흡음을 기초로 발성기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감지되지 않습니다당신은 저의 말을 올바르게 이해합니다당신은 문자를 통한 언어표현이 가능합니다두 가지가 가능한 실어증은 현대의학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설정된 문자가 재생되는 모양인지 뒤의 단어가 앞의 단어를 잡아먹는 형태는 자연스러운 음성과 다른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가벼운 트릭이지만 거기에 정황 가능한 상황자연스러운 연기가 합쳐진 가면은 아무에게도 벗겨진 적이 없다감히 높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도 벗길 사람도 없을 것이라 유정은 믿는다대학 다닐 때는 몇몇이 모기처럼 피 한 방울 빨아보겠다고 나서면 끝끝내 밤을 새워서라도 후려쳐야 직성이 풀리던 것을 생각하면 성격이 많이 죽은 편이다힘 뺄 필요 없이 모기장을 설치하면 되는 일이었던 것을.

 

유정은 손에 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목 뒤를 쓰다듬었다어느 정도 크기를 내야 공장 구석구석에 퍼지지 않을 정도로 소리가 나오더라.

 

사람은 객관적인 사실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더 신뢰하는 편이지.”

음성이 멋지시네요.”

.그래그럼 신고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원하는 것이 없다면 이만 가보도록 할게충전 케이블은 안 빼고 갈 테니 알아서 하고.”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그리고 바이바이눈웃음과 입에선 미소공장에서 찍어 나온 한 세트를 트릭을 알아낸 서비스로 주고선 미련 없이 이어폰의 음량을 키웠다.

멀뚱히 대꾸 없이 뚜벅뚜벅 울려 퍼지는 구두 소리가 빈 콘크리트벽에 울려 퍼진다앞으로 안드로이드는 주의해야겠다. 3년이나 된 구식기계가 간파할 정도로 얕은 수였었나마스크로 입김을 불어내자 더운 김이 푹푹 빠져나갔다열린 채로 있던 문을 발을 밀어냈다.

 

잠시만요!”

 

그래야지하나열까지 마음속으로 센다처음에 잡았으면 바로 대답해줬을지도절그럭절그럭하는 쇠붙이는 급한 소리와 저기요-사용자님-하는 조금 전과는 다른 애타는 목소리기껏 깨워줬는데 감사인사조차 듣지 못하고 가는 건 좀 아쉬웠다흥미롭기도 하고돌아본 뒤에는 자신을 가로막는 구속을 낑낑거리며 손으로 빼려 엉거주춤하게 일어날 태세를 하고 있다쩔뚝이며 두 발자국세 발자국부터는 기어서.

 

돌아오는 유정의 인영은 네 발자국 앞에 섰다무릎을 꿇은 기계는 유정을 올려다본다.

 

갑자기 왜 마음이 변한 거지?”

저기저것.”

내려다보는 팔 움큼에는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뼈들이 있었다그 뼈를 모았던 건가혹시 전 주인의-

어딘가에서 있을 법한 신파소설이 머릿속에 스쳐 간다사용자의 사망으로 인증이 소멸한 안드로이드는 어떻게 됐더라가리킨 저쪽엔 작고 건조하고 기다란 뼛조각사그라지는 살과 대조적으로 보존된 기계.

 

가져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부탁이에요.”

질문에 대답하면 못 해줄 것도 없지.”

어떤 질문이시죠?”

첫 번째이 뼈는 누구의 것이지대답 여하에 따라 나는 네 의사와 상관없이 경찰에 신고 할 수 있어두 번째넌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원인과 원인 제공자에 대한 설명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힐긋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오래 주진 않을 거란 암묵적 표시를 한다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이라면 깔끔하게 가설의 논리를 확정할 것이고어려운 수학문제를 해설을 조금 참고하긴 했지만 풀어냈다는 승리감에 약속장소로 향할 것이다이해하지 못할 답은 그것을 안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으니까.

 

잠시 연산할 시간을 부탁드립니다부디 오래된 모델이라 이해를.”

아아-.”

 

무릎 꿇은 앞에 뼈가지를 우수수 내려뜨리고 기계는 눈을 감는다눈 밑으로 이진법의 숫자들이 지나가고 귀의 위치에 달린 원판의 파츠에서 턴테이블이 돌아간다방금 만난 사람의 뇌 속을 파헤치지 않아도 이해선 상을 해부하는 톱니바퀴의 숨 가쁜 움직임이.

 

첫 번째이 유골의 주인은 저와 3년 4개월 19일 6시간 39분 전 함께 있었던 개의 것입니다인간의 것이 아님을 설명해드릴 증거가 있으니 부디 신고는 삼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두 번째당신께 죄송하오나 본 기체는 왜 이 장소에 있는지에 대한 원인이 메모리에서 검색되지 않습니다프로텍트 접근을 원하시면 코드를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프로텍트메모리에 암호가 걸려있어?”

그렇습니다암호해제를 원하신다면 가까운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셔서-”

 

잠시왜 내가 해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거야기본해제코드는 너의 어느 곳에 기록되어 있지보통 목 뒤?”

 

끄덕인 그대로 기계는 순종적으로 목을 내밀었다유정은 파란 머리칼 사이로 기본 해제코드가 쓰여 있었을 자리의 칼자국을 발견했다시리얼 코드가 있었을 자리까지 길게 날카로운 것으로 움푹 팬 상흔에 손을 가져다 대니 움찔시리얼 코드의 아래쪽에는 K-A-I-T-O. VER. 2.5 모델의 이름인가.

 

기종의 이름은?”

사용자 지정 명칭은 검색결과가 없습니다기본정보를 말씀드립니다.

본 기체 명은 카이토마지막 갱신은 2-0-1-U년 6월 15업데이트 버전 2.5. 당신의 질문에 대답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그럼 이제하고 카이토는 공손하게 손을 그것이 말하는 대로 개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의 뼈로 가져간다발로 스윽 밀어 손에 닿을 정도의 제한선에서 허겁지겁 손을 뻗어 자신의 가슴에 알을 품는 어미 새의 모양을 한다.

 

너무 늦었어미안해.”

조용히 그것은 둥그런 뼈의 구멍으로 속삭인다그 구멍은 귀가 아닐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무생물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기시감만 밀려온다결국이 이상한 장면에서 알게 된 건 아무것도 없다괜히 이쪽 패만 내준 꼴이다오래된 안드로이드는 정말 주의해야겠군표정을 읽지 않는 모델은 요즘 없으니까오히려 이쪽이 더 위험해.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그보다 발목안 아픈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아예 안으로 굽혀져서 부셔졌는데발목에 쇳덩이를 깔고 무릎을 꿇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 아냐.”

 

하고 카이토는 오른 다리를 뻗었다발이 안쪽으로 비정상적인 형태로 굽혀있다부러진 발목의 티타늄 접합부 사이로 붉은 윤활제가 떨어졌다족쇄는 발목 크기에 맞춰 제작한 것인지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아 보인다누가 저렇게 악취미에 돈을 들였을까인터넷 뉴스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던 안드로이드 학대와 그때마다 여론에서 들끓는 인권에 대한 새로운 정의들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종은 먹이사슬 중간에 끼어들어 피라미드를 무너뜨린다덕분에 그들에겐 여러 제약이 걸어졌다경제활동 금지미등록 기종 폐기처리제도섬뜩한 SF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인류 멸종의 근원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유만이 그들에게 주어졌다한때 세상을 뒤흔든 이종 간 연애금지법은 비록 논란 속에 아무런 결말 없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그들이 외쳤던 [LIKE HUMAN, NOT LIKE HUMAN]의 문구는 군중 인식의 바닥에 자리 잡아 비인간 경시 풍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오롯이.

 

오른쪽 발목의 연결부가 비정상적인 각도 계산으로 부러졌군요.”

각도 계산 때문이라.”

 

괜찮습니다별로 걸을 일이 없으니까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바닥에는 뼛조각이 섬뜩하게 피 웅덩이에 가라앉고 있다헛구역질 나는 오일냄새가 마스크를 꿰뚫는다유정은 이 상황이 실제 사람에게서 일어났더라면 과연 자신이 어느 정도의 침착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양심을 시험한다개의 뼈안드로이드의 윤활제그리고 다음 약속까지 남은 시간 삼십 분이대로 놔두고 가면 과다출혈로 충전 여하와 관계없이 카이토는 멈출 것이다서비스 센터에 데려간다면 보험이 없는 안드로이드는 수리할 수 없으니까보호자 신청을 권유받을 테지그렇게 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n년산 기계를 사용등록과 동시에 폐기등록을 하기위해 여러 절차를 처리해야 하나도대체 이 법체계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다일반인은 한 번 읽어선 알 수도 없는 서류들을 만들어가야 겨우 폐기등록을 해주는 건 그만큼 폐기율을 줄이려는 의도였겠지만 그것은 불법폐기와 암시장형성만 부추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남성형은 암시장에서 잘 팔리지도 않는다고 들은 데다가유정은 복잡한 폐기서류를 처리할 생각도직접 손을 더럽혀 가며 암시장에 팔아넘길 생각도 없었다사용한다면어느새 구두 밑으로 스며드는 윤활제를 피하려 한 발짝 물러섰다카이토는 손에 든 뼈를 떨어뜨리며 발목을 부여잡는다눈꺼풀이 떨리고 있었다.

 

체내 잔여 윤활제가 70% 미만으로 떨어집니다강제종료를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질문할게정말 아무 도움 필요 없어?”

저는 그 도움에 상응하는 대가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야시간이 없으니 짧게 설명하자면나는 아직 사용자 등록을 한 적 없는 순정사용자이고보험료를 낼 정도의 금전적 능력은 있어너에게 원하는 건 교감이 들어가지 않은 객관적인 언어체계 공급.”

 

쓰레기도 잘 사용 해보면 어딘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해서좀 이런 것에 오기가 생기거든.

슬쩍 떠본 쓰레기라는 호칭에도 기분 나쁜 눈치는 없다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토는 윤활액이 찐득하게 묻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언어는 업그레이드된 확장판 구매를 하신다면 더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십니다사용자 등록은 아직 이니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크로스백을 뒤져 물티슈를 꺼낸 유정은 가득 그 손에 건넸다악수하자는 의미인데요손을 닦으며 의아하게 묻는 카이토를 무시한다이 충동적인 결정은 회사와 집의 무한 반복인 요즘의 지루한 생활을 하는 자신에게 주는 조그마한 이벤트이자 자신에게 주는 약간의 유희이기도 하다.

 

등록을 하면 뭐라고 부를 건데?”

당연히 마스터입니다.”

좀 오글거리네내 이름은 유정이야정이 이름그렇다고 해서 정이란 이름으로 부르란 건 아니지만카이토.”

그럴 일 없습니다유정님.”

그건 더 이상해

 

휴대전화를 꺼내 약속 취소 문자를 보낸다다음에 신경 써서 만나줘야 할 것을 기억한 후 머릿속에 다음 약속 날짜를 기록한다시계를 줄곧 흘깃거리던 유정을 감지한 카이토는 약속이 있지 않으냐고 물었지만유정은 그쪽이 취소해버렸어하고 미소 지을 뿐이었다.

 

손 다 닦았으면 이제 일어나볼까?”

경찰이나 119에 신고를 접수하신 다음 4~5cm 두께의 쇠를 부술 만큼의 기계를 들고 와 달라고 요청을 해야.”

너 왠지는 모르지만발목 부러져도 안 아프지아까도 그런 것 보니.”

 

이미 덜렁거리는 발목에서 구속의 효력을 잃은 오른쪽은 손으로 몇 번 살살 돌리자 무거운 소리를 공장 벽에 울리며 발과 함께 떨어졌다즉시 몽땅 난 발목을 휙 잡아 들어올린다더 이상의 추가적인 손실은 위험하겠지.

 

수리 당연히 해줄 테니까이쪽 발도 잘라버리자.”

.저의 선택권이 있는 질문입니까?”

바보 같은 말투랑 다르게 똑똑하네없어.”

 

눈을 감는 것이 낫지 않을까유정은 커다란 손으로 눈을 덮어버린다반항한 번 못하고 출혈량을 감당하지 못한 기계는 강제종료로 쓰러진다오히려 다행이었다한 번에 제대로 두 동강난 두 쪽의 발을 닦아 가방에 불룩하게 튀어나오게 넣고 뒤로 넘어간 카이토를 옆구리에 끼워 공장을 나가 가까운 대리점을 찾아갔다이것저것 무슨 내용인지 읽을 시간도 주지 않고 사인을 받아가는 서류 속에서 유정은 흥미로운 문항을 발견했다.

 

[주요사용 목적 의료보조기구 ]

 

체크를 하는 손에 담당 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보컬로이드에게 으레 주어지는 목적이란 취미용가사용정도의 시답잖은 고가의 취미용품에 불과하다그저 기본의 안드로이드에 노래를 위한 몇 가지 부가기능을 더 붙인 것에 의료보조라니혹시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싶어 친절하게 그는 설명을 덧붙이려 했으나한사코 휴대폰의 메모장으로 [이거만 작성하면 되는 건가요?] 하는 문장만 들이대는 커다란 마스크를 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의 손님은 비싼 수리비와 등록요금을 모두 일시금으로 긁어버린다또 어딘가의 돈 많고 시간 많은 도련님이겠거니 하고 서류를 넘긴다어차피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고자그마한 대리점에 전체 수리는 잘 맡겨지지 않으니 오래간만에 찾아온 커다란 일거리두 발이 잘린 안드로이드를 손에 아무런 흔적 없이 들고 매장의 문을 여는 모습에 직원들은 한순간 얼어붙었지만유기된 것을 주웠다는 문자의 설명에 모두 수상한 모습의 손님을 웃으며 맞았다좋은 일 하셨네요하는 호의적인 웃음에도 젊은 그는 아무 대답 없이 휴대폰 액정을 내밀었다.

 

맡겨놓고 가시겠어요적혀진 주소로 수리 끝나면 배송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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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

아...정말....올릴때마다 심장백번씩 후벼파는 강력한 흑역사의 기운



The Office! 02


따사로운 아침의 가을햇볕이 오피스텔의 큰 창문으로 쏟아졌다. 겨울에는 춥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아침에 시끄럽고 인위적인 알람소리로 일어나는것이 아니라 눈으로 쏟아지고 몸에 따스한 느낌이 들며 서서히 일어나게 되는것을 포기할수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주워입은 커다란 티셔츠를 걸친 과장님은 이불속에서 배게 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얼마전에 길거리 호객꾼한테 잡혀 거의 반 강제로 바꾼 스마트폰이란것은 그에게 퍽 어려운것이였다. 버튼을 누르는데 익숙했던것이 터치로 바뀌면서 문자 하나 보내는것도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했다. 폰을 산 다음날 회사로 들고가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대리한테 부탁하여 이것저것 다운받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확인 할 수 있단것을 배운후엔 다른것엔 일절 손대지 않았다. 익숙하게 잠금해제를 하고 달력을 폈다.

 

오늘의 일정 : 메이코 과장님 결혼식 오후 3시, MerryMarry결혼식장.

 

하루종일 이불속에서 뒹굴거릴려던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자 과장님은 머리를 북북흐트렸다. 이미 일어난 시간도 오전 열한시로, 이른시간이 아니였기에 당장 일어나 준비해야지-하고 생각했지만 푹신한 이불과 따뜻한 햇살은 하나의 헤어날수 없는 늪을 만들었다. 잠으로는 풀리지 않는 피로를 안은 과장님은 노곤노곤하게 삼십분 정도 더 이불에 파묻혀 있었다.
마음속으로 일분만더, 일분만더 하던것을 시계를 보니 열두시 사십분이였다. 이젠 어쩔수 없는 한계시간에 도달한것을 인정하고 휘적휘적 화장실로 향했다.


평소엔 회사의 경조사라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았지만, 메이코 과장님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후배로 들어온 메이코는 다른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그와 마주쳤고, 싹싹하고 시원시원한 말투로 처음만난 사람에게 어수룩한 카이토과장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오랫만에 회사에 친근하게 지낼 사람이 생겨 기뻤던 과장님도 메이코과장이 싫지 않았고, 사랑은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좋음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회사를 마치고 밥을 먹는 일도 생기고, 술을 마시는 일도 생겼다.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같이 공유하는것이 카이토 과장은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 메이코과장님과 사귀게 된다면 .. 하고 남모르게 망상을 해보곤 했다. 좀더 친해지면 고백을 해볼까- 밥 한번 더 먹으면 고백해볼까, 하고 한달 두달을 미약한 가슴두근거림으로 보내던 과장님께 일이 바빠 만나지 못할것같아요, 라는 연락을 남기고 메이코과장은 결혼소식을 알려왔다.

 

아,사랑은 아니였으니까. 괜찮아.

 

축하드립니다..하고 문자를 하던 날 카이토 과장은 오피스텔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회사에서 가장 먼저 결혼소식을 알게된건 메이코과장님의 배려였음을 생각하니, 그녀는 참 좋은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뒤 그녀는 결혼할사람과 자신의 사진을 넣은 청첩장을 회사에 돌렸고, 카이토과장을 찾아와

 

" 과장님, 꼭 오셔야해요! 저 기다릴꺼니까요. 알겠죠? " 
" 네에, 알겠습니다. 누구결혼식인데요.. 꼭 가야죠. " 하고 구두약속을 받아내갔다.

 

샤워를 마친 카이토 과장은 옷장속에서 제일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빨간 넥타이를 했다. 메이코과장의 이미지는 항상 붉은색이였으니까, 따뜻한 불같은 그 느낌까진 아니더라도 샛빨간 색이아닌 약간 밝그스러운 색이라 마음에 들어 사두었던 것이다. 
항상 부시시하게 나가던 머리도 깔끔하게 빗질을 하고, 평소엔 절대로 뿌리지 않는 언젠가 선물받은 남성용 향수를 뿌렸다. 시원한 향이 몸 전체로 스며들어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았을때 꽤나 깔끔한 모습이라 그는 마음에 들어 생긋 웃었다. 작은 검정색 크로스백에 지갑과 청첩장을 넣고 아무도 들을사람 없는 "다녀오겠습니다" 를 중얼거린후 문을 나섰다.

 

 

 

 

*

 

 

 

 

과장님이 예식장에 도착한건 예상보다 조금 늦은 두시반이였다. 청첩장의 지도는 무심하게도 주변의 건물을 모두 삭제한 상태로 자신의 건물 위치만 떡하니 적혀있어, 비슷한곳에 도착하면 대충 찾아들어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론 찾을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헤메는 사이 자가용을 단체로 오는 회사사람들을 만나 같이 들어 올수 있게 되었다. 얼굴과 이름정도만 아는 사람들이 어색하기 짝이없었지만 그래도 과장님은 어색한 웃음이라도 지어 예의를 지켰다. 그들은 과장님이 모를 이야기를 했고, 과장님또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은채 신부대기실을 눈으로 찾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한복을 입은 친지들로 가득한 예식장홀은 시장통급 데시벨을 냈다. 회사사람들이 모여있는 신부측 자리로 자리를 옮기니 부서 사람들이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과장님을 보곤 반가운듯이 손을 흔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대리님을 보고 그는 왠지 마음이 놓여 쪼르르 달려갔다.

 

" 와, 과장님 오늘 힘좀 주셨네요? "

" 아이고 무슨 .. 대리님이야 말로 오늘 새 양복 입으셨나요? "

" 새 양복살 돈이 어딨습니까 .. 오늘 축의금도 겨우 마련해 왔다구요 "

 

신부측 명단에 이름을 적고, 축의금 봉투를 테이블앞의 남자에게 주었다. 그는 자신이 메이코 과장의 동생인 메이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갈색빛의 머리와 시원시원한 웃음이 누나와 닮은 준수한 청년이였다.
그리고 악수를 하며 카이토과장을 뚫어지게 쳐다본후 예의 웃음을 지으며 질문했다.

 

" 혹시 카이토 과장님되십니까? "

" 어? 네 .. 어떻게 아십니까? "

" 누나가 과장님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보기드문 파란빛머리와 파란눈을 가진 멋진분이시라고 "

 

네에, 그렇군요 .. 하는 뒷맛이 씁쓸했다. 메이토씨는 신부대기실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구석진데에 숨겨져 있었다. 식이 곧 시작하니까 잠시만 뵙고 식장으로 들어가시는게 좋을것 같네요, 하고 메이토씨는 문을 열어주었다. 신부 대기실 안은 화장대 위의 엄청난 화장품들과 옷, 장식품, 소품들로 엉망이였다.
그러나 그 사이의 새하얀 드레스와 면사포를 쓴 메이코과장님은 이때까지의 모습중에 가장 아름다운얼굴을 하고있었다.
가슴에 달린 새빨간 코사주가 그녀와 잘 어울렸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였다.
카이토과장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다시 반하고, 다시 가슴이 욱신거림을 느꼈다.

 

사랑은 아니였어, 그저 호감일뿐.

정말정말 사랑은 아니였는데.

 

멍하니 서있던 과장님을 메이코과장은 반갑게 깨웠다.드레스가 길어 앉아있는것을 양해해달라며 생긋웃는 메이코과장은
와줘서 고맙다며 카이토과장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엔 흰색의 레이스로된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 멋지게 하고 오셨네요, 과장님 " 하고 메이코과장은 카이토과장을 올려다 보았다. 왠지모르게 카이토과장은 그 눈빛을 쳐다볼수 없었다.

칭찬으로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위해 그는 서둘러 식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 정말 축하드립니다. 오늘 정말 아름다우세요 .. 회사를 그만 두진 않으시죠? "

" 아유, 어떻게 회사를 그만두나요. 신혼여행 다녀와서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

"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식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결혼 축하드립니다."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꾸벅 인사를 한후 식장을 향했다.

식장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었다.과장님은 붉어진 얼굴을 차가운 손으로 식히며 빈자리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신부측 자리의 맨 뒷줄, 가장자리에 부장님이 옆자리를 남겨놓은채 앉아있었다. 과장님은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갔다. 부장님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채 시끄러운 식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 하고 그의 귀에 대고 말하니, 부장님은 깜짝 놀라 과장님을 쳐다보곤
" 사람을 놀래키십니까 " 하고 고개를 숙여보였다.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은 과장님은 멍하니 앞의 화촉을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을 시작한다는 사회의 말이 들려왔고, 군중들은 조용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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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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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누가 흑역사를 잘하는지 대회하면 제가 1등


The Office! 01

서늘한 가을바람이 사무실의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바람소리를타고 키보드치는 소리, 간간히 들리는 마우스 누르는소리만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가슴에 '보고서 제대로 써오세요'를 깊이 새긴 카이토 과장은 음울음울한 부끄러움의 바다속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를 들었다. 부하직원들도 다 보는곳에서 그런일이라니.. 너무해요, 라고 말해야할까. 남자답게 화를 낼수도 없는 처지인게, 부장님이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오죽 답답했으면 그러셨을까. 하고,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게 우선으로 작용하는 과장님의 생각구조는 다른 평범한 사람이였다면 화를 백번은 내고 부장의 멱살을 잡을 상황을 그럴수도 있는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으므로 풀이 죽은얼굴로 퇴짜맞은 보고서를 이리저리 작업했다.

 

' 얼른 집에가서 이 매직낙서 지우고싶다 .... 집에가서 잔업 해온다고 하면 화내실까? ' 하는 과장님의 타자치는 손길이 빨라졌다.

집중하기위해 입술을 깨문 그의 표정은 미묘하게 귀여운것이였다.

이윽고 사원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들리고, 시간에 맞춰 "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하고 흥겨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몇몇의 직원이 생겨났다. 십분, 이십분이 지나면서 다른 직원들도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고, 시계가 일곱시를 가리켜 해가져서 어둑어둑 해질무렵엔 여전히 보고서를 고치는 과장님과 무심한 눈길로 자리에서 서류를 살피는 부장님 단 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장님은 흐음- 하고 무언가 고민하는듯한 소리를 냈다. 이정도면 통과시켜 주시려나, 얼른 집에가서 이 가슴팍에 쓰인 매직 지우고싶은데..

그나저나 이거 뭘로 지워야 하는거지? 몸에 아세톤을 끼얹을수도없고, 뜨거운 물에 푹 불려서 이태리타올로 빡빡 밀면 지워질까.

보여드릴까? 또 화내시면 어떡하지, 지금보고있는 서류 다보시면 말을 꺼내자- 한게 벌써 다섯서류째다.

힐끔힐끔 자기쪽을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을 모를리가 없는 부장이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부장은 둔한 과장님이 눈치채지 못할정도로만 그의 배부분을 쳐다보고있었다. 혹시나 아까 썼던 낙서가 셔츠사이로 보일까 싶어 힐끗거렸지만 커다란 셔츠만 입고있었다면 충분히 비쳐보이거나 했을텐데, 멜빵이라는 방해물이 그것을 방해했다. 에잇,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과장님께 말을 걸었다.

 

" 할말 있으십니까 과장님 "

" 아, 저기. 아까 오더하신 문서 고쳤습니다. "

" 그것 참 다행이네요, 보내시고 가시죠. "

 

그말에 휴우하고 자그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과장님이 양복자켓을 챙겨들고 휘리릭 주워입었다. 삼사년쯤 입은 낡은 양복자켓은 보풀제거기가 절실했다. 결벽증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깔끔한 것에대해 집착이 있는 부장님눈엔 ' 저 옷을 도데체 왜 입고다니실까, 월급을 안받는것도 아니고..'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양복자켓과 함께 늙은 가죽으로된 서류가방을 들고 과장님은 하루중 가장 명랑한 웃음을 보였다.

 

" 감사합니다. 부장님은 안가시나요? "

" 저는 조금 할일이 남아있어서, 먼저 들어가세요. 수고 많았습니다." 하고 부장은  책상에 앉은채로 고개를 예의상 까딱 숙였다.

 

" 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크게 구십도로 부장에게 인사를 하고 생긋 웃으며 문을 나섰다. 퇴근은 회사생활의 꽃이라 했던가, 신이 나는지 흥겨운 선율의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지나서, 회사를 칠년째 다니다보니 이젠 친구할 정도가 된 로비의 경비원께 인사를 드리고 정문을 나왔다.

아직 운전면허도 없고 차도 없는 과장은 통근지하철의 사람이 많지 않기를 빌며 집으로 향했다.

 

 

 

 

*

 

 

 

 

 

그는 낡은 서류가방에서 열쇠를 뒤적거려 문을 열었다. 금속의 찰칵하는 쇠음이 울리며 냉랭한 그의 오피스텔이 반나절만에 돌아온 주인을 맞았다. 아무도 없지만 씩씩하게 " 다녀왔습니다 " 라고 경쾌하게 말하고  그리고 평소처럼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뒤집은채로 두고 서류가방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의 집에 정리된곳이라고는 음악 CD를 모아놓은 유리장식장 단 한곳이였는데, 이곳마저 장식장의 가동범위 외에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보풀제거기란 그의 집과같은 환경에서는 거의 사치에 해당했다. 혼자산지가 여러해가 넘어가고, 취직 이후에는 누가 집에 찾아올 필요도 없었다. 매일을 고단하게 보내는 그는 지금의 오피스텔에 만족하며 살고있다. 회사일 외의 다른것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여유가 없었다. 어쩔수 없지. 피곤하니 샤워나 하자- 샤워를 하기위해 홀딱 벗고 욕실에 들어간 카이토 과장이 소리쳤다.

 

" 아악!! 이거 와이셔츠에 묻어서 번졌잖아?! "

 

살에 적힌 매직은 잘 마르지 않았었나보다.몸 은 몸대로 더럽혀지고 와이셔츠는 와이셔츠대로 더렵혀졌다.  아.. 부장님은 1타2피를 성공하셨군요 .. 샤워기에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추적추적 맞으면서 배에 새겨진 부끄러운 글자를 어떻게 지워볼까 고민했다. 도장처럼 찍혀나온 와이셔츠의 매직도 지워야하니 이중일이 생겨버렸다. 카이토과장은 하루의 피곤함을 집약한 한숨을 크게 내쉬고, 욕조에 있던 커다란 대야를 꺼내 뜨거운물을 받기 시작했다. 락스를 조금풀고 와이셔츠를 넣어 일단 일차방도를 구해놓고, 느릿느릿하게 몸을 씻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는것은 노래부르는것 다음으로 그가 좋아하는 일이였다. 그러니까 그가 가장 좋아하는일은 뜨거운물에서 목욕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였다. 화장실의 음향효과까지 더하여 더욱 노래가 잘되는 느낌이 들기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목에 검은 글자라도 박힌듯이 노래가 나오지않아 간간히 슬픈음의 허밍만을 넣을뿐 별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 까지 끝냈지만 가슴팍 아래의 선명한 글자들은 오히려 더 색이 짙어진것같았다.

그는 머리에 수건을 얹은채로 욕실바닥에 주저앉아 대야와 그 옆에있는 빨래판을 가져왔다. 빨래판에 와이셔츠의 검게 염색된부분을 박박 문질러 보았지만 껌딱지 처럼 달라붙은것도 아니고 아예 스며들어 전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와이셔츠를 문지르고, 락스물에 담그고, 문지르고를 반복했다. 여러번 반복하니 조금씩 색이 옅어지긴 했지만, 셔츠를 들어 확인하니 글자가 뒤집어진채로 비쳐보였다. 으으- 하고 싫은소리를 내며 와이셔츠를 다라이에 던져버렸다.

 

" 아, 정말 ... 이 와이셔츠는 집에서나 입어야겠다. 이렇게 되면 몸에있는건 더 안지워질것같은데 ... 하아 "

 

으쌰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옆에 걸린 이태리 타올을 꺼냈다. 몸에 있는것부터라도 지우겠다는 생각으로 비누칠을 해 뱃가죽을 마구 문질렀다.

마찰감이 심해져 점점 피부가 빨갛게 되고 통증이 밀려왔지만 유성매직은 하얀 피부에 깃들어 꼼짝을 하질 않았다. 결국 이태리타올의 흔적이 더해진체 빨갛게 부어오른 배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에서 통증이 아려왔다. 따끔따끔해서 더이상은 이태리타올은 못쓰겠다.

그럼 내일도 이 글자를 배에다 적은채 회사를 가야한단 말인데, 그건 정말 싫었다.

 

과장님은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하였다.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자기는 영업1부의 최고 연장자이고, 직책도 위에서 두번째인 과장인데. 어째서 매일 부장님께는 혼이나 나고, 부하직원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는걸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오늘 한 그 어플인지 뭔지도 사실은 직원들이 짜고 한것은 아닐까... 일을 못해서 다들 화가났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장님의 눈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혔다.

 

" 흑...내가 뭘잘못했다고 .... 흐엉... 따가워어, 이거 왜 안지는거야... 부장님 미워...흑.....내일 회사 어떻게 가.... 흐잉"

 

울먹울먹 하던것이 배의 따가움과 합쳐져 울음으로 변했다. 최근이년동안의 회사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힘든것이였다.

새로온 부장이 자신의 모든일에 태클을 걸때부터였다. 부장님과 함께있을때에 과장님은 항상 자신이 부장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렇게 내가 싫으셨으면 그냥 불러서 말을하시지.

어째서 이렇게 못살게 구는걸까 ...

 

흑흑하고 나오는 콧물을 들이마시면서 물소리와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욕실에 쪼그려앉아 우는 자신이 더 처량해서 과장님은 더욱 눈물이 났다.

한번 나오기 시작한눈물은 육개월전의 서러운 일까지 땔깜으로 하여 끝없이 차올라 흘러내렸다.

혼자 살아서 다행이야, 이런 추한 꼴 남한테 보일필요가 없으니까..

 

 

 

 

*

 

 

 

 

" 조..좋은아침 입니다.. "

아무리봐도 좋은아침같지 않은 잠긴 목소리를 한 과장님이 부서의 문을 열었다. 어제의 서러운 통곡의 눈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퉁퉁부은 얼굴을 한 그는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으나 누가보기에도 ' 나 어제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 하는 표시가 나타났다.

사원들은 채팅창을 열어 " 과장님 우셨다... 심하게 우셨는데? " " 어제 부장님일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가고난뒤에 또 혼나셨나? " 하는 추측성 발언을 내놓았다.

과장님은 축 처진 어깨에 위태롭게 매달린 서류가방을 책상 밑으로 내리고 컴퓨터를 켰다.

퉁퉁부은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눈이 시려 다시 눈물이 맺혔다. 군대에 다닐때도 눈물이 하도 많아서 하품한번 했는데 울었다고 얻어맞은 일이 있는 그의 화수분같은 눈물샘이 아침부터 따갑도록 마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태리타올로 빡빡밀어버린 배쪽은 낙서가 지워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빨간 발진이 생겨 아침에 옷을 갈아입을때 따가워서 죽는줄 알았다. 뭔가 심장박동에 맞춰서 두근두근하게 따가움을 전해오는게 며칠은 갈 기세였다.

 

왼손잡이인 과장님은 왼손은 마우스에, 오른손은 욱신거리는 배를 잡고 회의 건안을 살폈다.

이안건 .. 이건 부장님께 말씀을 드려야하는건데 ...

하고 앞앞자리의 부장의 책상을 살폈지만 부장님은 자리에 없었다. 아까 내가 출근할땐 계셨는데, 잠시 일이있어서 나갔나 보다.

잠시후 돌아온 부장이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있었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 부장님께

 

" 아, 부장님 오셨습니까.. 저번의 인터넷무역과의 회의안건에 대해서 말씀드릴께 있는데요. " 하고 쪽지를 보냈다.

" 저도 과장님께 할 말이 있습니다. 잠시 그 말씀은 뒤로 밀어두시고 나가시죠. " 하고 문쪽으로 손짓을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기에 바깥에 까지가서 ... 하는 의문으로 따라나섰다. 부장님은 검은봉지를 들고 사원휴게실로 향했다.

 

출근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사원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장님은 중간의 동그란 테이블에 검은 봉지에서 꺼낸 연고를 꺼냈다.

앉으시죠- 하고 의자에 손을 내밀어 과장을 앉힌 부장님은 연고가 든 통에서 새살이 솔솔돋게 해준다는 광고문구로 유명한 작은 연고를 꺼냈다.

 

" 왜 부르신거죠? 전 아픈데 없는데요.. 연고는 왜 .. " 

 

의자에 정자세로 앉은 과장님이 의아한 눈으로 연고의 뚜껑을 돌리는 부장님께 말했다. 혹시 부장님이 오다가 다치셔서 나한테 연고를 발라달라고 하는걸까? 그런거면 미쿠씨가 있는데, 역시 내가 제일 만만해서 그런거겠지.

 

" 약 발라줄테니까 옷좀 들어보세요. "

" 네? "

" 배에 상처난거 다 알아요, 약발라 줄테니까 옷들어 보시라구요. "

" 안...안다쳤습니다. 배에 상처라뇨, "

" 그렇습니까? "

 

하고 부장은 큰손을 내밀어 과장님의 배를 스윽하고 만졌다. 남의 손길이 닿아 예민해진 발진이 통증을 보내왔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 흐익 , 아얏 .. "

" 이래놓고 안다치셨습니까, 며칠 지나면 물에 저절로 씻길거라 생각했는데 .. 과장님이 그렇게 싫어하셨는지는 몰랐습니다. 더이상 실랑이 하기 싫으니 제가 제손으로 벗겨서 약 바르기전에 어서 단추좀 풀어보세요. "

 

단호하고 단정하게 자신을 쳐다보며 벗기기전에 벗어보라는 협박을 받은 과장님은 이 실랑이에서 자신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바지안에 넣은 와이셔츠 자락을 빼내고 아랫단추를 네개정도 풀었다. 어제와는 다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제는 보는눈이 많아 부끄러웠다면, 오늘은 한사람의 눈빛이 짙은 농도로 다가왔으니 정도는 어제와 비슷했다.

 

양복 소매를 걷은 부장님은 연고에서 흰색투명한 연고를 듬뿍 짜서 과장님의 붉은 발진에 발랐다. 부장님의 손은 그의 차가운 성격만큼이나 차가울것 같았지만 반대로 무지 따뜻해서 과장님은 따가움에 움찔움찔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말없이 한참이나 꼼꼼하게 과장님의 상처에 약을 바르던 부장님이 연고를 끝에서부터 밀어 마지막 남은것을 짜냈다.

감사인사를 드릴 타이밍을 기다리던 과장님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 아유.. 감사합니다 이거, 주책맞게 이태리타올로 마구 문질렀더니 ... 덕분에 빨리 나을것 같습니다. " 헤헷하고 수더분하게 웃었다.

 약을 다 발랐는지 손가락에 남은 약을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휴지에다 슥슥닦은 부장님이 옷을 내리려던 부장님의 손을 톡쳐서 막았다.

"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잠시만 그러고 계세요 "

한통 전부다 쏟아붓다시피 했으니 떡처럼 찐득하게 붙어있었다. 부장님은 아무말없이 연고의 층에 뭐라도 달라붙어있는듯이 뚫어져라 상처를 쳐다보았다. 그것이 미안해 하고 있는것이라고 카이토 과장님은 생각했다. 역시 일에 까다로울 뿐이지 나쁜사람은 아냐. 저렇게 따뜻한 손길을 주는사람이 날 미워할리도 없을꺼야. 하고 어제의 오해를 불태웠다.

 

" 부장님 나중에 결혼하시면 아내분한테 사랑받겠어요, 손길이 아주 부드러우시네요. "

" 아, 저는 결혼할 생각이 아직 없습니다. "

" 그러신가요... 하긴 아직 어리시니까. 몇년만 지나 저처럼 되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흐흣 .. 이나이쯤 되면 결혼식도 많고,

아, 그러고보니 이번주 주말에 영업3부 메이코과장님 결혼식이군요. 청첩장돌린거 보셨습니까? "

" 네, 청첩장안에 든 메이코과장님 사진정말 예쁘시더군요 .. "

 

하는 회사안의 소소한 이야기를 몇분쯤 하다가 " 이제 옷 내리셔도 될것 같습니다. 돌아가죠. " 하는 부장님의 말에 총총거리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삼십분 정도 지났을꺼라 생각했던 시간은 한시간이 훌쩍 넘어있었고, 그날의 일이 많단것을 기억해낸 과장님이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배에 발라진 약때문에 찹찹하고 찐득해 유쾌하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전날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과장님이여서 부하직원들은 '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부장님이 과장님을 기쁘게 했다 ' 란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약이 효과가 좋은것인지, 몸이 자가치유를 빨리 한것인지 몰라도 삼일은 갈것같았던 발진은 감쪽같이 사라져 다시금 하이얀 상태로 돌아왔다.

저녁에 샤워를 하며 기분좋아진 과장님은 뜨거운 욕탕 안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을 부르며 혼자만의 콘서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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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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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글입니다.........할말이없슴...

고치려다가 읽을수가 없어서 걍올립니다 보고싶으셨다니 놀라워라

진짜 막장 오피스물....



 

 

 

 

나른한 오후의 사무실에 젊은 회사원들의 장난기가 가득찼다. 보카로상사라는 약간은 우스운 이름의 그 회사는 삼십년 전쯤에 작은 무역 상회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영업팀만 3개가 생긴 중견회사로, 업무능력이 가장 좋은 순서라고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영업1부에는 장난기 가득한 사원들의 표적이 되고야 마는 만년과장. 햇수로는 입사 칠년차로 꽤나 잔뼈 굵을 듯한 년수지만 업무능력은 삼년차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카이토 과장님이 있다.

그는 높은곳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도, 그 욕망을 받춰줄만한 능력도 부족한 그저 그런 사원이였지만 오후 네시의 나른한 사무실에서는 항상 그가 주목되곤 했다.

그시간 쯤에는 항상

 

" 카이토 과장님 "

 

하고 나즈막하니 앞앞 자리에 앉은 과장을 부르는 얼굴에 '화가 나지만 참고있습니다' 라고 써둔듯한 표정을 지은 영업1부의 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원들의 뒷담화에서 빠지지 않는 영업1팀의 부장님은 외모, 키, 몸매, 능력까지 하나도 빠지지않는 엘리트로, 입사 3년만에 과장, 그리고 5년차인 현재는 한 부서를 이끄는 부장자리를 떡하니 꿰차고 앉았다. 낙하산으로 앉은것도 아니고 순전히 그의 노력과 능력으로 올라간 자리므로 사원들은 부러움이 섞인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어떤 프로젝트도 완벽하게 성공시키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두통유발자는 책상에 처박고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 그를 쳐다보고, 벌떡 일어나 그의 자리로 다가왔다.

 

 " 네? 네에 부장님 부르셨나요... 올려둔 보고서는 받으셨습니까? "

 

사무톤에 어울리지않는 아름다운 중저음이 가늘게 떨렸다. 항상 있던 일이지만 역시 혼나는건 익숙해 지지 않았다. 게다가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부장이라니! 게다가 왜이렇게 비쩍마르고 힘없는 자신과달리 자신감넘치고, 또 몸매도 남자답고.. 분명히 저 살짝 달라붙은 와이셔츠 안에는 식스팩들이 으쌰으쌰하고 있겠지? 하고 자신의 가는 손목에 힘겹게 매달린 큰 시계를 시간이 보이도록 돌렸다. 몇분 혼나는지 재야겠다 이번엔.

 

" 받았으니까 부르는거겠죠? 하 ..뭡니까 도데체? 제가 과장님께 어려운거 부탁드렸습니까? 3분기 결산한거 정리해서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회사 일이년다니시는것도 아니신분이 매번 왜이러십니까 도데체 어째서 이런걸 주시는겁니까 ... 저는 결재를 하고싶은거지 서류를 다시쓰고싶지 않습니다. 과장님도 부하직원들 시키신거 아닌가요? 제가 대리분들 바로 시켰을때는 좋은결과물 받은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과장님 손만 거치면 이런게 나옵니까? 뭘 손대셨어요? "

 

 

" 아니 조금 편하게 보시라고 프로그램으로 손봤을 뿐입니다만 ... 보시기 어려우신가요? " 하고 호소하는 말투의 과장의 눈에는 초롱초롱하게 물기가 젖어있었다. 서른 두살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동안의 그는 스스로를 아저씨처럼 보이기 위해 멜빵을 하고 다니는 과거패션을 주로 했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귀여워라고 멜빵을 하셨나-하는 생각을 일으킬 뿐이였다.

 

" 어! 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르겠습니다! 제가 퇴근하기전에 당장 다시 만들어주세요. 제발! "

 

더 혼내고 말하고 정말 아주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까요, 당장 자리에 돌아가서 이거 제가 이해할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주세요. 아시겠어요? 로 끝. 평소라면 이십분은 잡아먹었을텐데 오늘은 정말 시간이 없으니까 속전속결로 짧게 끝났다. 과장님이 혼나는 시간동안 나머지 직원들은 고개를 모니터에 처박고 사원채팅을 열어 야 오늘은 몇분이나 하려나? 를 시작으로 약간의 비웃음을 담은 대화를 했다. 그러나 나머지 사원들 모두 과장님의 능력이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오늘 엄청나게 퇴짜를 받은 그 문서도 자신들이 먼저 확인했을때는 보통의 문서였다. 문제는 부장님의 눈에는 쓰레기로 보인다는 것이지, 너무 완벽주의자니까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것이겠지, 또

부장님의 업무에 대한 완벽성 추구는 항상 과장님을 야근으로 몰아넣는 주범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회사원들이 공감하듯이 야근을 한다고 해서 문서가 갑자기 황금빛 찬란한 문서로 탈바꿈해 주는건 아니였다. 야근에 찌들어 안그래도 작은 체구가 쪼그라들것같은 과장님을 부장은 또 후라이팬에 볶듯 들들들볶아댔고, 결국엔 자신이 손을 대고나서야 만족을 할수있었다.

 

' 나같으면 부장이랑 한판 싸우고 회사 때려친다 ' 가 부하직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였다.

그렇지만 '카이토과장님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꺼야' 란것도 공통된 의견이다. 착하다 못해 순해 빠진인상의 그는 인상 그대로의 사람이니까,

이렇게 혼나고나면 풀이 죽어 울듯한 얼굴로 모니터를 십분쯤 그냥 쳐다보다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고쳐지지 않는 보고서를 이리저리 구색맞춰 낑낑대며 고쳤다.

왠지 과장님이 계속 풀이 죽어있으면 다른 사원들은 그것을 풀어주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그것은 모성본능과 비슷한 성질의 것 같았다. 파란빛의 머리가 덥수룩하게 부시시한 과장님은 혼자사는 티를 팍팍내고 다니는 불쌍한 사람인데다가 풀이 죽으면 초롱초롱하던 물빛색 눈이 그렁그렁하게 빛을 잃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서의 분위기 메이커를 하는 비서겸 잡무를 해주는 미쿠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과장님께 코코아를 가져다주며

 

" 에이이 과장님! 힘내요 힘! 우리 맛있는거 사먹을까요? " 하고 생글생글 간식타임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항상의 영업1부 였으나, 오늘은 이 시나리오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미쿠가 과장님께 코코아를 갖다주기 전, 신문물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의 한 사원이 핸드폰에 재밌는 어플을 받았다며 모두를 불러모은 것이다.

처음엔 주위의 몇명만 관심을 보일 뿐이였지만 넉살 좋은 그중 하나가 " 과장님! 거기서 잉잉대지 마시고 이거 한번 해봐요 우리 " 하고 손짓했고, 부장또한 이러한것에 관심이 없는것은 아니였으므로 은근슬쩍 그들 뒤에 서서 곁눈질로 어떤 어플인지 살폈다.

 

" 이게 뭐에요? "

 

한 여직원이 스마트폰 화면속 동그란 다트판을 보고 물었다. 다트판을 터치하니 빈칸이 뜨면서 [벌칙입력] 란과 [사용자명]을 적는곳이 나타났다.

사원은 자랑스럽게 요즘엔 복불복도 다 스마트 하게 할수있는것이라며 신이나서 마구 입력하기 시작했다. ' 간식사기 ' ' 야근 하루 대신권 ' ' 회식쏘기 ' 등의 귀여운 것에서 부터 '남자일경우 상의탈의 여자는 섹시한 포즈" 와 같이 정말 저것만은 걸리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들또한 선택지에 있었다. 

 

" 이거 진짜 넣을꺼야? 대리님 몸 자신있나봐? " 하고 깔깔웃는 여직원들은 은근히 저 선택지가 몸좋은 부장님이 걸렸으면- 하고 생각했다.

무뚝뚝하고 여사원들에게 친근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부장이였지만 그런것또한 잘생긴 그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기회에 눈호강이나 하자싶은 그녀들의 마음이 두근두근뛰었다.

그리고 뒷편에서 스마트폰이 뭔지, 어플이 뭔지도 헷갈리는 과장은 신기한 눈빛으로 까치발을 서서 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앞줄의 직원들이 마음대로 벌칙을 적고, 부서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흔들어 다트가 돌아가게 했을때 모두는 조용히 그 다트판이 멈추는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그제서야 과장님은 폰화면을 제대로 볼수있었고, 때 마침  '남자일경우 상의탈의 여자는 섹시한 포즈"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 .. 과장님.. "

 

" 네? 누가걸렸나요? 헉..."

 

 

 

 

 

 

*

 

 

 

 

" 옷벗고 오겠습니다 ... "

 

 

회사 다닌지 칠년, 옷을 벗기기 전엔 절대 옷벗을 생각은 없다며 다짐했는데 문자 그대로의 상황이 펼쳐진것이다.

과장님은 화장실에서 와이셔츠를 벗으며 온갖 생각에 휩싸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이나 좀 해둘껄, 그럴 시간도 없지만. 일부러 와이셔츠 큰 사이즈로 입고다니는거 이제 끝이구나.. 그나저나 젖꼭지는 어떻게 해야하지? 방송같은데선 반창고로 가리던데. 그건 개그프로였나,

이걸 여직원들한테 보여줄수도 없고, 내나이가 서른둘인데 ... 이젠 결혼은 정말 물건너 갔겠다. 그냥 화장실로 달려오지말고 그자리에서 남자답게 휙 벗는게 좋았을까? 하지만 멜빵이 있으니까 그렇게도 못했을꺼야. 정말 .... 못났다, 나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쪽이라서 천만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며 과장님은 벗어든 와이셔츠로 몸을 가려들고 쭈뼛쭈뼛 문을 열었다.

과장님이 없었던 십분동안 다른 룰렛을 돌려정해 놀이는 끝난상태였다. 모두 제자리에앉아 과장님이 들어오기만을 눈치껏, 업무를 하는 척 하며 문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원들의 카페채팅은 웃는이모티콘의 행진이였다. 부서에서 가장 나이많고, 가장 벗어서는 안되는분이 상의탈의라니!

부장님 조차도 일하는 중간중간 자신의 옆통로에서 언제 과장이 들어올까 내심 기다리는 눈치였다.

 

" 저 ... 이거 몇분동안 하고 있어야 하는거에요? "

 

하고 벌개진 얼굴의 카이토과장이 들어온순간 모두는 과장님의 허여멀건한 피부색에 놀라고, 커다란 와이셔츠안에 숨겨져있던 유실한 몸매가 너무나 여러보여서 쳐다보질 못했다. 차라리 배불뚝이 아저씨라면 하하하웃으며 놀려먹을텐데,  그리고 나름의 방책이라고 생각해간것이

 

" 과..과장님, 그 포스트잇은 뭡니까? "

 

어째서 이렇게 예의가 바른겁니까..하고 묻고싶을 정도로 예의바른 포스트잇 두장이 판판한 가슴 두곳에 붙여져있었다. 게다가 죽어도 빼먹지 않는 멜빵도 하고있는데다가 넥타이는 왜 하고 계신건지. 정말 과장님다운 상의탈의세요 .. 라고 게임을 주도한 사원은 생각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와이셔츠로 가린 과장님이 자기자리에 앉아서 경직된 자세로 눈을 굴렸다. 어느타이밍에 옷을 입어야할지 맞추지 못한것이다.

여직원들이 " 어머 과장님! 살좀 찌우셔야겠어요, 허리가 나보다 얇아, 부럽네요~ " 하고 칭찬아닌 칭찬을 했다.

남자 사원들은 모두 난생 처음느끼는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였다. 어째서 저런데에 침이 넘어가는거지, 상대는 나이도 많으신 아저씨인데. 그런데 ....

 

' 하의벗기도 추가할껄 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아 '

분명히 저 마른다리와 허벅지라면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한걸까-하고 발기하기 일보직전의 누군가가 딴생각을 하기위해 노력했다.

얼른 집에가서 자위해줄테니까 잠시만 참으렴, 하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자위대상으로 나이많은 상사를 삼는다는건 흔하지 않은 일이였으나, 지금의것을 본이상 영 무리도 아니다. 여자보다 더 야한몸에 틀림없다.비쩍마른 어깨에는 여자보다 깊고 넓은 쇄골이 키스한번 해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남성성의 상징이라는 치골조차 과장님에게서는 여성의 유선함이 들어있었다.

 

자리에서 고개숙인채로 있던 과장님이 발그레한 얼굴을 살짝 들여올려 휙휙하고 주위를 살폈다.

나름대로 이제 옷을 입겠다는 신호를 보낸것이다. 그리고 접어두었던 와이셔츠를 활짝 펴기위해 팔을 들었다.

 

" 과장님 " 하고 부장님이 나즈막히 과장을 불렀다. 그의 얼굴에 미세한 미소와 홍조가 있었다. 그에게도 이장면은 남기고싶은 명장면임에 틀림없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 아유, 보기 민망하네요. 어서 옷입겠습니다. " 하며 과장은 슬슬 웃어보였다.

 

" 이리 와보세요 옷입으시지 마시고 " 하고 부장은 손짓했고, 과장님은 와이셔츠로 가슴팍을 가린후 쭈뼛쭈뼛하게 부장의 책상옆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카이토과장의 얼굴은 사과같이 빨개져있었고, 여자만큼 하얀몸은 흰 도화지 같이 창백했다.

영문모르는 과장님이 음? 하는 찰나 부장은 싱긋웃으며 유성매직으로 도화지같은 배에다가

 

[ 다음부터 보고서 제대로 써오세요 ] 하고 낙서를 했다.

 

유성매직이 차가웠는지 과장님은 " 흐익, 뭐.. 뭐하십니까 부장님 .. " 하고 반항 축에도 끼지못할 반항을 했고

이상황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앉아있던 다른 부하직원들이 모두 충격받은 얼굴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부장님의 책상쪽을 쳐다보았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색깔의 낙서는 형광등 빛에 비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한순간에 낙서장이 되버린 과장은 충격에 울먹거리며 와이셔츠를 서둘러 입으며

 

" 부..부장님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 " 하고 손을 낙서자국에다 얹고 고개숙였다. 사원들은 드디어 과장님이 우는 날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반면에 아무렇지 않은듯한 부장은 기분좋은듯 싱글싱글웃으며 낙서도구였던 매직을 한손으로 빙그르르 돌렸다.

 

" 과장님이 하~도 제말을 못 알아들으시는것 같길래요, 몸에다가 써드리면 기억하실까 싶어 한번 적어봤습니다. 이제 보고서 잘 써오실것같네요

그리고 와이셔츠 한치수 줄이셔야겠어요, 옷에 파묻히실라- 다른분들 뭐하세요? 얼른 일하시지 않고, 오늘 집에 안가고싶습니까? "

 

과장님은 어짜피 못갈것 같지만요. 그죠?

옷좀 줄이세요, 이만큼이나 남다니-하고 과장님의 어깨쪽의 남은 천 부분을 손으로 흔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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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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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lace +

긴것/My Place 2014. 8. 18. 17:49

<알아도 전혀 도움 되지 않는 프로필>

- D(이게 풀네임입니다. 이름 짓기가 귀찮았어요.)

나이 : 28

키 : 174.6

학력 : P대 컴퓨터공학과

혈액형 : O형

취미 : 게임

갈색머리, 반곱슬. 갈색눈.

좋아하는 것 : 커피

전형적인 my way스타일. 쉽게 사는편.

- A(얘도 이게 풀네임)

나이 : 25

키 : 187cm

학력 : T예고 피아노과

혈액형 : B형

취미 : 스포츠 전반, 복싱은 체육관다님.

검은머리, 투블럭, 검은눈

좋아하는 것 : 녹차맛 음식

정직한 성격. 화내는 허들이 낮은게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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