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shes 3

긴것/Blue Ashes 2014. 9. 21. 17:32

Blue ashes 3


환상은 환상 일 뿐.

 

 

이제 유정은 취미용으로 만들어진 약한 보컬로이드의 신체로서도 휘둘러지는 가느다란 손목에 잔뜩 그어진 붉은 흔적들과, 6개월 전의 부주의로 인한 투신-이 일로 카이토는 한동안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때 얻은 부셔진 몇 개의 갈빗대가 이제 겨우 나아가고 있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몸을 가졌기에.

목을 조른다고 해서 카이토가 죽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불에만 잘 못 스쳐도 찌릿하게 통증이 밀려온다. 온 몸이 매일 두드려 맞은 것처럼 욱신거려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났다. 주먹을 쥐고 때리면 오히려 유정 쪽의 데미지가 더 컸기에, 손을 내민 카이토를 잡고 손톱에 남은 힘을 주었다.

 

 

“아야. 손톱 좀 깎아 드려야겠다. 놓아보세요.”

“죽어..”

“저도 마스터가 원한다면 그래드리고 싶지만. 아직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카이토를 보면 새삼 자신이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졌는가를 실감한다. 그 애처롭다는 물젖은 푸른 눈빛에 쾌감을 느낀다. 손톱이 밀려들어가 카이토의 손등에 파인 초승달 모양의 자국이 몇 개 남겨졌다. 살이 다시 돌아오는 데는 한참 시간이 필요했다. 카이토는 자신의 손을 구겨 넣는 유정의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유정의 원망스러운 눈길을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너 때문이야..”

“어떤 것이요?”

“나는, 너를. 볼 때마다..”

 

 

내 모든 인간성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야.

 

 

 

“네가 살아있는 이유가 나라면. 내가 이 지옥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에 네가 필요해 진거야.”

 

 

다시 염분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만. 너만 없었으면. 유정은 짧은 단어를 토해내며 굵은 눈물자국을 누인 베게에 쏟아낸다. 몸을 웅크리고 조절되지 않는 눈물샘을 끌어안았다. 아이처럼 울고 싶지 않은 발악은 윽윽대는 소리로 이불 밖으로 새어나왔다. 원인 없는 깊은 한이 유정의 몸 깊숙이 배어나온다.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것은 아주 무거운 검은 빛일 것이다.

우울은 새파란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미안해요…….정말. 진짜 죄송해요.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아요.

 

 

 

카이토의 밝은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인간의 우울은 안드로이드에게는 전염되지 않았다.

유 회장은 사람 몇을 붙여 유정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몹쓸 짓이란 것을 곧 깨달았다. 훨씬 더 인간적인 도구를 사용하자 매 달 정기적인 보고는 신뢰감이 높아졌다. 메모리를 이용한 감시영상을 잠깐씩 돌려보고 카이토의 객관적인 평가. 대처와 유정의 반응 등을 들은 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땐 똑똑했는데. 오래 두어 썩은 과일을 뱉는 모양새로 혀를 찬다. 별도로 들인 몇 개의 프로텍트를 다시 걸어 잠그고 카이토를 내보내면, 헤집어진 머릿속이 어떨떨하게 흔들려 멍한 표정으로 굽은 인사를 하고 나선다.

 

 

 

"너의 주인이 누구인지, 항상 기억하길 바라네."

"네, 알고 있어요."

 

 

집에 돌아오면 유정은 아버지의 안부를 묻다가 이내 헤집어졌던 머리를 잡아 바닥에 내리치고 그 위에 유리컵을 던졌다. 우습게도 사람흉내를 낸 피부아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구나. 눈을 멀게 하면 나를 기록할 수 없게 되니?"

작지만 날카로운 펜 끝을 파란 안구에 올곧게 가져간다.

 

"서비스 센터에 가게 되겠죠. 제 안구는 비싼 편이랍니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지 않은 카이토는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제 머리를 깨부수고, 산산조각을 내도 메모리는 자동 연동되어 전해지니 걱정하지 마세요."

"알아. 이건 그냥 화풀이지."

 

 

아신다면 다행이네요. 툭, 바닥에 고개 숙인 카이토는 유정의 기분이 풀릴 때 까지 누워 있다가 한참 뒤에 조용히 털고 일어나서 유리조각을 치웠다. 피부를 봉합하러 서비스 센터에 다녀오려면, 유정이 약을 먹고 잠든 틈을 이용해야 했다.

 

 

 

 

 

 

*

 

 

 

 

 

유정이 의미 없는 눈물을 쏟는 동안 카이토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목욕은 위험하다. 잠깐이라도 죽을 만한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유정에게 많은 물에 잠기는 시간은 절호의 기회였다. 가능하다면 샤워만 하는 것이 편했지만, 목욕은 유정이 몇 안 되게 카이토에게 '하고 싶다' 고 조르는 것이었기에 매 번 이기지 못하고 미지근한 물을 채워 손을 담가 온도를 측정했다. 뒤에서 조용히 타월을 허리에 감싼 유정이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모시러 갈려고 했는데, 오세요."

"응. 너무 울어서 머리 아프네."

 

 

짧은 욕조가 아니었지만 꽤 큰 키인 유정에게 그 욕조는 다리를 접어야 상반신을 담글 만큼의 크기였다. 무릎을 세우고 미지근한 물과 귀에 스며드는 물의 소리에 집중한다. 무심코 기분 좋다.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그 말을 듣게 되면 카이토는 일주일 내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것이다. 귀찮아. 어깨까지 물을 담그려 몸을 숙이자 욕조 옆에 쭈그려 앉은 카이토가 음. 하고 불안한 듯 몸을 움직였다. 입을 떼려다 마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유정이 가장 카이토에게서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점이었다. 어차피 자기 말을 듣지도 않을 거면서, 눈치보고 신경 쓰는 척은 또 뭐람.

 

 

 

"왜 또.."

"너무 깊게 들어가시는 것 같아서요."

"나 죽을까봐 걱정이야?"

"으음…….나오세요, 조금만."

"내가 죽으면, 너의 쓸모도 사라지겠지. 알고 있어. 한동안은 죽지않을거야."

 

 

어깨를 잡는 카이토의 손을 뿌리치고 유정은 물에 머리끝까지 담갔다.

카이토의 불안한 소리가 물을 굴절한다. 미지근한 물 안은 태초처럼 따뜻하게 몸을 감싸온다.

 

이대로 물 안에서 평생 살 수 있는 어떤 물고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어라든지.

 

 

공기는 자신과는 맞지 않게 가볍고, 천박하고, 불순하다.

유정은 카이토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을 흔들며 떨 때까지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손에서 떨어지는 물을 닦지 않은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쳐도 카이토는 나오셔서 다행이라고, 젖은 어깨에 매달려 흐느끼며 이상한 재회를 기뻐했다. 불필요한 헌신과 호의에 유정은 머리끝까지 진절머리가 나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 생길 리 없는 배타에 대한 파괴욕구가 솟아올랐다.

죽기 전에 이 기계는 내손으로 부수고 말겠다는 남은 하나의 목표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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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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