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shes 1

긴것/Blue Ashes 2014. 9. 21. 17:30

Blue ashes 1 

 

희석된 눈물을 닦아주려던 카이토는 입술을 올리려다말고,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카이토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지 못할정도로, 망가진 기계처럼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유정은 약을 먹고 나서도 우는 날이 많아졌다. 어떠한 일인지, 카이토에겐 말해주지 않을 작정으로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의자에 위태롭게 걸터앉아서 소리없는 눈물을 식탁에 떨구었다. 숨이 멎은듯 조용하게, 단단한 식탁에 떨어지는 액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강을 이룰지도 모르겠다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카이토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오늘은 저리가라고 손을 쳐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는게 더 정확했지만. 어깨를 건드리려다 공연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커다란 물에 섞인 숨소리가 막혀 흐르지도 못하고 고여있는 유정의 감정을 간질였다.

 

얼굴을 감싸쥔 양 손이 개화하자, 벌개진 눈끝에서는 하염없이 흘렀을 진득한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어있었다. 망가진 얼굴을 보는건 카이토도 괴로워서, 쳐다보지 말라는듯 호소하는 눈빛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열기가 떨리는 어깨에서 부터 손끝까지가 어떠한 덩어리로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옆에 있으니까, 큰소리로 목놓아 울지 못하는것은 아닐까. 숨이 막힌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흘러간다. 차라리 어딘가로 사라지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것 조차 허락을 받을 수 없지만.

 

'웃는 얼굴을 본게 언제였더라.'

 

의자 등받이의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함께 웃었던 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기억으로 밖에 회상할 수 밖에 없다. 눈 언저리가 쓰려와 카이토는 눈을 비적댔다. 같이 울었던 날도 있었다. 그것을 '같이' 라고 한다면 장소의 동일성 밖에 없었지만은. 혹시나 자신이 울게되면, 유정이 그치진 않을까 하는 작은 믿음에서였다. 자신이 그만큼의 공간을 허락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그만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소나기가 그친듯 뚝. 멈춰선 순간이 카이토를 바라보았다. 아직 물기어린 검은눈동자가 휘어졌다. 근 두시간을 울어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척, 장식장 위에서 티슈를 꺼내 건넸다. 지친듯 하늘거리는 손으로 건네받아서는 티슈를 꽉 주먹 쥐었다. 카이토는 다시 하나를 빼내서 눈 가를 닦아주었다. 짧은 한숨에서 남은 한이 밀려왔다. 목소리에 울먹임이 역력하게 전해졌다. 

 

"보지마. 차라리 눈을 감던지 해줘."

 

오랫만에 듣는 유정은 물기어린 목소리로 건조한 명령을 내린다. 더 울고싶어도 남은 기운이 없었다. 저리 가라고 말해도 가지 않을꺼지. 난처한듯 카이토는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했다. 

 

"그것보다 더 상위의 명령이 있으니까요."

"알아, 죽지 않을께."

 

죽지 않아서, 너의 필요를 계속 만들어 주도록 할께. 

잔인하게도.

무거운 숨이 따갑게 기도를 타고 들어왔다. 유독가스를 마시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억지로 밀려오는 숨을 받았다.

카이토는 여전히 티슈를 든채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화가 나려다가 푹 식어버린다. 

화낼 상대도, 목적도 아니란 것은 잊지않았다. 

그저 그곳에 카이토가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랬다.

 

 

*

 

 

 

끝내 유정은 몇 마디 효력없는 단어를 끊어질듯 말듯 억지로 토해내고는, 들어오지마. 다섯글자만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부탁에 가까운 명령을 저녁 약 시간 전 까지는 지켜주기로 했다. 지쳐서 잠에 들어주면 좋으련만, 침대에 누워서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무거운 생각을 수집하다간 가벼운 이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확 내던져버릴것이다. 힘이 좀 남는 날에는 벽에 물건이 깨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깨져서 조각이 날만한것은 유정의 방에서 거의 치워진 뒤였지만 고집스레 책이며 하다못해 플라스틱 컵을 던져버린다. 벽에 부듸치고도 그대로 모양을 유지하면 바닥에 내리쳐서라도 균열을 내고야 만다. 썩어 문드러지고 다 망가진 자신만큼. 올곧은 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카이토를 보지 못하게 된걸 지도 모르겠다.

 

거실엔 카이토의 생활공간에 해당하는 깔려진 담요위에 앉아서 줄곧 시계를 쳐다본다. 6시반엔, 저녁과 저녁약. 신경은 수직선상의 방에 꽂혀있다. 조그만 소리에도 끔쩍끔쩍 고개를 돌려 집중력을 유지했다. 문가에 앉아있을까 고민하다가 들키면, 힘은 없어도 악바라진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채 벽에 내리친다. 방안의 물건들과 카이토의 취급은 똑같았다. 이마에 핏줄기가 흘러내리면서도 손은 괜찮냐고 물어보고는. 좀처럼 망가지거나 하지 않아서 분한 기분이 들 뿐이다. 약기운이 사라지면 카이토를 뿌리치고 죽어버려야지. 꼭 그래야지.

커다란 배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계까지 숨을 참았다. 하얗게 바래진 머리는 언제쯤 생각이란걸 하지 않게 될런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원망, 후회, 자책, 끝없는 종말같은 미로속에 웅크리고 앉은 검은 동물은 하도 보지못한 빛에 시력을 잃어버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세번 횟수를 반복할때까지 유정은 숨을 쉬지 않았다. 사라져버리고 싶다.

쓸데없는 약기운에 죽은듯 잠들기도 싫고, 바작바작 말라가는 입을 닦아주는 카이토도 보기 싫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개나 시트에 입술에서 나온 피가 말라붙었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는. 누에고치 같은 생활이 역겨워진다. 아버지가 마지막의 알량한 배려로 붙여준 안드로이드는 억지로 생을 구축한다. 

 

"마스터, 약.."

"듣고있는거 알아요."

"들어갈게요."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흘긴 카이토는 들리지 않게 조그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만났을때도 바짝 마른 몸이 점점 사라질듯 부피를 줄여간다. 삐쩍 튀어나온 앙상한 목덜미가 푹 들어가있었다.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검은 머리칼을 살짝 건드리면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다.  

 

"안먹어."

"네에."

"안먹을거야."

"소온. 아니면 입에 넣어드릴까요?"

"노려봐도 안무서운데."

 

그 증오가 저를 향한게 아니라서, 매서운 눈빛을 가뿐히 넘겨낸다.

오늘은 왠지, 한 번에 입을 벌려 주었다. 꾸울꺽. 하고 삼키는 시늉을 한 카이토는 아, 삼키셨어요? 하고 입안을 확인 받고서야 만족한듯 미소지었다. 칼만 있다면 저 얼굴을 다 찢어놓고 싶어진다. 

 

"나가."

"알겠습니다. 주무세요."

 

떨어진 이불을 챙겨 침대머리맡에 접어 두고는 동굴을 나가듯 쏙 빠져나간다. 

이미 바닥에 최악을 보인지는 오래 되었다. 유정은 더이상 잃을것도, 얻을것도 없었으니까.

곧 밀려올 몸의 수면에 정신을 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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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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