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shes 2

긴것/Blue Ashes 2014. 9. 21. 17:31

blue ashes 2

 

물속에서 헤엄치는 상어를 본다. 

꿈이었다. 꿈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독한 약기운이 코를 스쳐가는 정신의 환각이 시간을 묵직하게 덮고 있다. 죽어버린 이성 아래에 잠자던 무의식이 어릴적 기억의 단편이라도 꺼냈나 보지. 

상어는 유유히 물속을 헤엄치며 수족관의 다른 물고기들 위에 군림한다. 수족관 밖의 시선은 그러하였다. 회피하는 군중위에 당당히 행차하는 군주가 어떠한 것을 군림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방치속에서 자라난 가시덤불이 가득한 월계관에서는 영광스럽지 않은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몽롱한 약기운에 받쳐 풀린 눈동자를 수족관의 표면에 가져다 댄다. 상어는 멈추지 않는다. 

유정은 어릴때에 읽었던 책의 한구절을 뇌에서 기억해낸다.

 

[상어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을 멈추면 죽는다.]

 

장면은 연관성 없이 고장난 TV채널을 마구 돌리는것 마냥 불쾌하게 의미없는 정보를 쏟아낸다. 약기운이 언제쯤 떨어져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까. 약을 먹으면 죽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지 몰라도 몸을 죽인다. 신체와 정신을 떨구어 놓는다. 인형처럼 침대에 늘어져 있을것이다. 자신의 진짜 인형은 침대 밖 거실에서 다음 약시간과, 약간의 충전. 자그마한 노래등을 일상 삼은채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 명령은 유정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 죽고싶어 미치겠다.'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들로 가득차버린지 오래로, 압축되지 않는 어리석은 후회와 불쾌한 과거가 여기저기 늘어나 발 딛는 걸음 마다 돌멩이 처럼 채인다. 던져버리고 걷어차버려도 그것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죽고싶어. 죽어야겠다. 세포자살을 하는게 좋겠다. 온 몸의 세포가 한번에 녹아내려서 개체를 사라지게 하는게 옳다. 나는 옳은 일을 하는것이 옳다. 

 

어디선가 알람소리가 들린다. 유정이라는 세계의 멸망을 알리는 신호소리라고 믿고싶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세계. 어디로도 끼일수 없는 교집합과 무관심속에서 군림하는 군주를 가진 세계따위.

후련하게 자기증오의 시간을 가진 유정은 알람의 소리가 끝나자마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카이토의 발가락을 겨우 볼정도로 작게 눈을 뜬다. 가시지 않은 약기운과 이미 세월을 함께 해온 무기력함이 굳게 짓눌러 있었다. 카이토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멜로디는 매번 똑같은 것이었다. 집 안을 굴러다니는 낡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구식의 노래. 그것을 똑같이 모사한 구식의 멜로디가 입안의 녹음기에서 약간의 기계음과 함께 흘러나온다. 손을 까닥여 의사표시를 했지만 뒤돌아선 카이토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멜로디의 끝을 잡은채로 약봉지를 비벼 바스라지는 소리를 냈다.

 

"음, 음. 자는 척 하시지 마세요, 마스터."

"주인...이라고 생각을 하긴 하니?"

"생각 이전의 본능이랍니다."

 

입을 열자 식도를 타고 약냄새가 밀려올라온다. 오늘 아무것도 안먹었던가. 어제도, 그제도. 탈수가 오기 전엔 열이 오르는 몸때문에 카이토가 눈치를 채고는 혈관을 잡아버린다. 강제로 들어오는 영양분을 곱게도 받아먹는 욕망스러운 신체에 저주를. 듣지 않는 유정을 무시하고 카이토는 가장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오늘 날씨 어떠세요- 기분은? 

 

건조한 눈을 힘주어 누르자 둥그러진 눈은 기괴하게 웃는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보다 최악일수는 없을 정도로."

 

 

*

 

 

마지막으로 만났던 아버지의 손에는 처음보는 안드로이드의 손이 겹쳐있다. 아무렴 어때. 침대난간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행위에 집중한다. 아버지가 망가져버린 아들새끼 대신 대용품이라도 키워보려는 작정인걸까. 그럼 이제 내 역할은 끝난게 되겠다. 막을 내려주세요, 아버지. 

 

그 사이에서 커튼콜을 외치는 카이토를 목졸라 죽이는 환상을 여러번 본다.

환상이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빈다.

널 죽여야 그 다음 차례가 내가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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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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