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ashes 4(完)


비가 내렸다.

여름이지 참.

 

 

사소한 것을 기억해 내버린 무감각한 목소리로 비가 내리는 거실의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은 무심하게도 흐른다. 타박타박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득 메우는 눅눅한 거실에 나올지도 오랜만이다. 낡은 담요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놓고 담요 끝자락을 만지작 거리는 카이토는 눈 한번 깜빡이질 않고 유정의 사그러진 등을 바라본다. 렌즈가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에 유정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카이토의 시선이 움직였다는 것은.

 

“마스터, 약 먹을 시간이에요.”

“아-. 아. 조금만 있다가.”

“으음..곤란하네요.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짜인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거니까?”

 

으응. 카이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니, 당연히 인간인 자신을 이기지 않으려 할 것이란 것은 유정의 큰 착각이었다. 정해진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늘 생글거리는 얼굴은 가면을 벗고 무표정하게 유정의 턱을 잡는다. 손가락을 물면 이가 시린 금속감이 느껴졌다. 죽을 힘을 다해 끊어질 듯 물었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밀려들어오는 알약의 더러운 삽입감이 틀어막은 식도를 타고 들어온다. 그럴때면 카이토는 벽 뒤의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으로는 초기 프로그래밍 된 매크로를 중얼거렸다.

 

“약 시간은 이십분 이상 지연해서는 안 됨.”

 

인공이건, 창조이건. 그것도 결국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살아갈 뿐이다.

과거 몇 번의 사투를 생각하고 그럼, 십구 분 뒤에. 하고 타협안을 내놓은 유정은 자신의 옆자리를 내주었다.

 

“비가 오네요.”

“그러네. 눈이 부시지 않아서 좋아.”

“좋다는 단어를 오랜만에 쓰셨어요. 기뻐요.”

 

십구 분. 착실하게 시간을 체크하며 손에 쥔 약봉지를 바닥의 물 컵 옆에 내려놓는다. 어깨에 얹은 회색빛 가디건의 빈 끄트머리를 잡았다. 팔짱을 낀 채 먼 곳을 바라보는 유정의 시선에는 아무것도 맺히지 않는다. 풀린 흑청빛 눈동자에 습기 찬 유리창 너머의 세계가 투과된다. 카이토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만한 여지를 찾지 못했다. 유정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심심하면 초기화되는 기억덕분에 1년 정도 세상에 노출된 인공지능은 깔끔한 초기화나 마찬가지인 수준이었다.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보슬거리는 가디건의 감촉을 저장했다. 그것 또한 십 수번은 넘게 저장했던 기억 이겠지만. 메모리는 회사의 깊숙한 금고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삼분 남았어요.”

“그래. 자고 나면 비가 그치려나.”

 

언제 이 비가 그칠까.

언제 이 삶이 끝날까.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삶을 마칠 수 있게 되는 때가 올까.

자신의 선한 심성을 아버지는 철저하게 이용한다.

 

옭아매는 약기운이 올라오기 전에, 약을 삼킨 유정은 걸음을 휘적대며 침실에 들어가 하얀 이불에 스며들었다.

 

한참 창밖을 바라보던 카이토는 배운 적 없는 노래에 대해 생각한다.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3시간 15분짜리 CD에 든 것 이외의 노래는 알지 못한다. 유 회장이 카이토를 선택한 것은 다른 안드로이드에 비해 ‘노래’라는 덕목에 의해 최소한의 감정을 가졌다는 얄팍한 이유에서 였지만, 정작 시범기동이후로는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다. 노래가 어떤 것인지, 그래서 잘 알지 못한다.

 

 

*

 

 

 

잠에서 깬 유정은 카이토의 논리회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기지 말아야할 금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혹시 말을 해서도 안 되는 금기가 있는지에 대해서 물은 후, 침대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그런걸 왜 묻느냐고 불안하게 손가락을 만지작대던 카이토는 드물게 웃는 유정의 모습에 아이스크림 녹듯 사르르 녹아 자기가 아는 모든 금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시나리오는 매번 금기에 막힌다. 머리를 긁적인다. 쉽지 않다.

 

“사용자의 죽음이 최고 금기라니.”

 

딱 그것만 해주면 되는데.

자신을 살해해 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 모두가 유정의 죽음에 대한 당위성에 동조하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처럼.

 

“그럼 사용자의 죽음을 방관하는 것은?”

“그건 인간들 사이에서도 죄로 통하는 것 아닌가요?”

“맞아. 살인방조죄. 아버지가 붙여준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죄목이지.”

 

왜 그렇게 죽고 싶어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지리멸렬한 대화에 카이토는 기지개를 폈다.

 

“나는 살 이유가 없어.”

“그럼 죽으실 이유는 있나요. 뭐.”

“많지. 나 하나만 사라지면 편해질 사람들이 많아.”

 

너도 그렇고.

마지막 문장을 마음에서 지운 유정은 그만 나가봐. 하고 손을 휘저었다. 침대 가에 앉아 있던 파란 자국이 알 수 없는 웃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저번의 투신은 카이토가 잠들어있을 때 몰래 집을 빠져나가 벌인 것이었다. 네 달간 병원 신세를 지고 아버지의 경호원 손에 붙들려 돌아와보니, 집 현관에는 안에서부터 번호를 알아야 열 수 있는 도어 락이 설치되어 있었다. 번호는 카이토가 아버지에게 다녀 오는 날 마다 바뀐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철저함을 실감한다.

 

다시 카이토를 방으로 불렀을 때, 카이토는 낡은 라디오를 손에 쥐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유정도 들어본 적이 있는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를 불러보고 싶냐고 묻자 아주 당연하다는 듯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이전의 본능이지요. 이것도.”

“그렇구나. 그보다, 우리 하늘 보러 가지 않을래?”

 

하늘, 보고 싶다. 완전 보고 싶어. 유리창에 비친 거 말고. 옥상에서 보는 하늘.

유정은 곁에 앉은 카이토의 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1. 사용자의 원함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행한다.]

 

“카이토가 옥상까지 데려다 주면 정말 기쁠 텐데. 카이토랑 같이 보면 더 행복할거야.”

“행복..와아, 정말요? 가요. 얼른!”

 

[2.사용자가 행복해지는 것이 안드로이드의 행복.]

 

미안해.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팔을 잡아 부축하자 유정은 못이기는 듯 회색 가디건을 받아 들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현관의 비밀번호를 능숙하게 치고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견디기 힘든 오후의 노을이 쏟아졌다. 나른하게 밀려오는 잠을 이겨내고자 살짝 쥔 손을 굳게 잡았다. 곧 영원히 잘 수 있다. 졸음은 죽음의 전조일지도.

 

“하늘이 멋지네요. 옥상으로 올라가 봐요.”

“그래. 고마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카이토는 신난 듯 공간 안의 거울에 비친 유정과 자신의 모습을 보고 키득댔다. 부축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이 뼈대만 남아 허수룩하게 큰 가디건에 얇은 허리가 잡힌다.

옥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에서 유정은 두 번을 멈추고 가쁜 숨을 골라야만 했다. 텃밭과 하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관상용 식물이 심어진 옥상에 들어서자 넓게 노을이 구름에 퍼지고 있었다.

 

감탄사를 내뱉는 카이토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떨리는 입으로 유정은 시나리오의 첫 페이지를 넘긴다

자신이 주인공인 지독하게 길었던 연극의 마지막 장을 .

 

 

“카이토. 우리 같이 죽자.”

 

유정은 카이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방관도, 동조도 아니잖아.

너의 금기를 깨지 않아. 정말로 미안해. 하지만 이거 밖에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유정은 고해성사하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운이 좋다면, 전체수리가 될 수도 있어. 물론 사용자계약도 사라지도록. 내가 유서에 꼭 그것만은 해달라고 부탁했거든. 아버지가 들어 줄진, 사실 잘 모르겠지만.

 

 

카이토의 허리를 쥔 팔이 떨려왔다.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힘으로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서라도 혼자 옥상 난간에 뛰쳐들 것이다. 유정은 각오로 입을 꾹 깨물었다.

 

“네, 그렇게 해요.”

 

카이토는 활짝 웃었다. 푸른 머리칼이 오후의 노을에 비쳐 반짝이고 있었다. 축 쳐져 보이던 머플러가 바람에 가볍게 흩날렸다.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하늘이 정말 예쁘네요. 어디, 난간에서 뛰어내리 실건가요?”

 

허리를 잡은 것은 유정 쪽이었지만, 철조망 없는 난간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난간 위로 올라 갈 수 있도록 유정의 허리를 받쳐주고, 올라가 앉자 낑낑대며 자신도 올라가 앉았다. 발밑에 훤한 공간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길.

기도를 마친 유정은 카이토를 바라보았다. 물장구치듯 발을 공중에 흔들고 있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음.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이걸로 마스터도 행복하고, 마스터로 인해 행복해질 사람도 여럿 생기나요?”

“결론적으로는.”

 

그럼 됐어요.

손잡아 주실래요?

 

유정은 수족관에서 상어를 바라보았던 유년시절의 기억. 혹은 꿈의 일부분을 떠올린다. 지느러미가 잘리면 배를 내밀고 바다위에 둥둥 떠오르는 상어의 시체를 건져 올리는 어부의 희망찬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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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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