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lace 04(完)

긴것/My Place 2014. 8. 18. 17:47

04

A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기 집 안방 드나들 듯 D의 집에 찾아왔다. 처음엔 외출용으로 보이는 반바지에 깔끔한 티셔츠로 그나마 격식 있던 옷차림은 점점 잠옷이라고 밖에 말 할 수준으로 추레해졌다. 카이토는 A보다는 적은 횟수로 동네 마트에서 할인 중이라는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왔다. 냉장고에는 아직 어제 가져다준 녹차맛 롤케잌이 반토막 남아있다. 사오는 간식에는 녹차맛이 많았는데, A가 녹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뒤로 D는 카이토가 사온 간식은 가능한 그가 먹도록 남겨두었다. A가 짜준 매뉴얼에 따라 연습을 하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좋아졌다. 멜로디가 생각이 나지 않은거 라기 보단, 머릿속에 있는 멜로디를 꺼낼 만큼의 실력이 아니었다고 A는 설명했다.

“종종 그럴 때가 있어요. 다룰 수 있는 악기 수가 모자랄 때도 그렇고.”

“헤헤. 마스터는 그냥 실력이 모자라서.”

“너 요즘 심하게 의기양양하네. 이거다 만들어도 안 줘 버릴거야.”

기타를 잡고 있던 내 옆에서 롤케잌을 세 개째 잘라먹고 있는 카이토의 포크를 뺏어 커다랗게 한 입 잘라먹은 A는 우물거리며 앞에 놓인 작은 건반을 두드렸다. 별 생각 없이 연주하는 것처럼 보여도 D가 치는 기타에 화음이 섞여 들어갔다. 그러면 D는 머릿속으로 악보를 그렸다. 카이토는 A와 D사이에 기어코 끼여 앉아 몸을 좌우로 까닥이며 가사의 대부분이 아이스크림으로 구성된 말도 안돼는 가사를 흥얼거렸다. 그러면 A는 정신 사납다고 카이토의 머리를 쥐어박고. 카이토는 D에게 달라붙는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웃음 끝에 D는 문득 A의 집에 혼자 있을 카이토가 떠올랐지만,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별 일 아니라는 식이었다.

“너 이렇게 맨날 우리집에 있으면 카이토는 혼자 있잖아. 괜찮아? 우리집은 그러면 난리 나는데.”

“걔는 혼자 있는거 좋아해요. 일부러 내쫓을 때도 있어요. 혼자 있고 싶다고. 걔는 사람이였으면 히키코모리에요. 지금도 억지로 붙어있는거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말씀 드렸잖아요. 사람이면 질색을 한다니까요. 조금만 터치해도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요. 사람 무안하게.”

“싫어한단 말이라던지 한 적 있어?”

“아뇨. 걔는 자기 아이스크림 뺏어먹어도 가만히 방긋방긋 웃고 있어요. 싫어한단 말 나오게 하려면 손가락이라도 하나 부러뜨려야.”

아. A는 말을 하고서야 그것이 심한 종류라는 것을 깨달았다. D는 조금만 터치라는 A의 기준이 과연 그가 말하는 대로 조금일지 의문을 가졌다. A가 장난으로라도 등짝을 내리치면 등뼈가 터져나갈듯한 충격인데, A에 비하면 훨씬 자그마한 카이토한테 얼마나 큰 충격이였을까. 예전에 카이토와 잠시 혼자 있게 되었을 때 물어보자 싸움을 말리다가 휘두른 팔에 맞아 벽에 틀여박혔더니, 상체 전부 수리가 필요하지 뭐에요. 하고 난처하게 웃었던 것이 떠올랐다. D는 다음날부터 A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악의가 없다는 것은 이때까지의 A를 보았을 때 충분히 알수 있었기에 더 무서웠다. A는 손뼈소리를 뚝뚝 내며 손을 털었다.

“흠. 아까건 취소. 아무튼 이상한 녀석이에요. 뭘 생각하는지 통 모르겠고.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고.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요.”

“잘 해주고 싶으시면 제발 다른 분 집에 갈때는 옷 제대로 챙겨입고 가세요.”

A만 몰랐던 카이토의 등장에 A는 놀랐잖아. 하며 카이토의 팔을 주먹으로 쳤는데, 둔탁하게 찌잉하고 울리는 소리에도 카이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단련된 것이겠지. 그동안의 생활이 눈에 불을 보듯 뻔했다. 오늘도 천사 같은 미소를 D에게 여과 없이 선사한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려 있길래 실례지만 멋대로 들어왔습니다. 카이토 안녕.”

“뭐야. 왜 왔어. 안 올거라며?”

“아무리 찾아봐도 마스터가 옷을 바꿔 입고 나간 흔적이 없어서요. 설마하니 정말 잠옷 그대로 입고 나오셨네요.”

“이거 운동복인데. 물론 잘 때도 입지만.”

장난스레 티셔츠를 펄럭이며 구김살 없이 당당한 A의 발언에 카이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앞에 놓인 건반과 D가 든 기타를 보고 곡 작업 중이신가봐요. 하고 화제를 돌렸다.

“잘 되가시나요? 마스터 옆에서 얼핏 들었는데 좋은 느낌.”

“으응. 뭐. A가 도와주니까 술술 풀린다. 온 김에 어제 사왔던 롤케잌 먹고 가. 맛있더라. 매 번 안사와도 돼. 정말로.”

“마스터랑 놀아드리는데 이정도 뇌물은 드려-앗!”

“너 진짜...내가 가자고 할때는 단칼에 안가겠다고 해놓고. 이젠 내 말이면 아예 안 듣겠다는 방침이야?”

A는 커다란 손으로 카이토의 목을 개 훈련하듯 틀어잡는다. 처음 몇 번은 깜짝깜짝 놀랐지만 이제 그런 A의 행동이 놀랍지 않았다. 그 동안 A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A는 피아노 이외의 물건은 막 다루는게 습관이었다. A집에 있는 7년된 피아노라는 것도 소리는 매번 조율해서 괜찮을지 몰라도 바깥의 나무는 온갖 흠집이 가득했다. 그게 가장 아낀다는 피아노였다. 그의 핸드폰은 보통 석 달을 가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에 들고 다니는 것도 액정이 다 깨진 상태로 전화를 받을때엔 간당간당해 보였다. 보컬로이드 같은 정밀기계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수리 안 해 본 곳이 없다고 삭신이 쑤신다며 어깨를 두드리는 카이토는 A가 번 돈의 대부분을 C사와 수리센터에 갖다 바치고있다고 했다. VIP제도가 있었으면 VVIP정도는 거뜬하게 차지할 정도.

“A.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 놔줘.”

“형. 얘 요즘 진짜 반항기라니까요. 튕기는 것도 정도것이여야지.”

“놔. 카이토 부셔지겠어. 말로 해, 불만이든 뭐든.”

목을 풀린 카이토는 걱정하며 달라붙는 D의 카이토에게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A의 얼굴은 곧 터질기세로 엄청난 표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D는 곧 카이토가 예의 웃음으로 유들하게 넘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A의 카이토는 일전에 본 적이 있는 무표정한 얼굴을 보란 식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 D님 집에서 마스터랑 싸워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더 하실거면 이만 내려가요.”

“뭘 더해. 내가 물었잖아. 너 요즘 나한테 불만 있냐?”

“더 할거면 집에 가-”

누가 당해도 기분 나쁠 정도로 빈정대며 A는 카이토의 머리를 후려쳤다. 동네깡패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닌 듯 했다. D와 카이토가 보고 있는 앞에서 보기 좋게 무시당한 카이토는 아아. 하고 돌아서며 입술을 깨물었다.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A의 모습에 D와 카이토는 폭풍전야를 보는 기분으로 A의 앞에 있던 건반과 놓여있던 롤케잌 그릇을 슬쩍 옆으로 밀어냈다. 두 개 다 깨지거나 망가지면 곤란했다.

“요즘? 아시면서. 전 처음부터 불만이 있었는데요. A."

"마스터 호칭은 어디 갖다 팔아 먹었나보지? 내가 기껏 구해다주고 노래도 부르게 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뭐가 그리 불만이 생길 데가 있어?“

“고마워라. 눈물 나겠어요. 제가 무슨 강아진 줄 알아요? 이게 캐릭터 육성 게임이에요? 동네 강아지한테도 이렇게 안해요!

A. 잘 믿기지 않겠지만, 나한텐 감정이란게 있어요. 사람의 그것과는 다를지 몰라도 내가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는건 사람의 무게 만큼 일거에요. 그걸 틔워주고 키워주는게 마스터의 역할이에요. 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니까.“

“누가 너 감정 없다고 한 적 있어?”

“나의 감정을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에 대한 감정을 말하는 겁니다. A가 아무리 노래를 잘 만든다고 해도, A는 마스터가 되기엔 한참 모자란거 같아요. 말해봐요. 나를 보면 어떤 감정이란게 생기긴 해요?”

“감정이라니. 어떤. 뭘 말하는거야 도데체.”

“지긋지긋하게 말하는 미안함 말고요. 오래된 값싼 동정심으로 날 움직이려 들지 말아요.”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D는 6년전 T예고의 기악실을 떠올렸다. 점심을 먹고 매점을 가는 길이었다. 보통이라면 2층을 통해서 바로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왠지 1층까지 내려가 조용한 복도를 즐기고 싶었다. 기악실을 지나다가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에 나는 의뭉스럽게 기악실 창문을 빼꼼 내다보았다. 기악실 안에 있던 것은 반에서 질 나쁘기로 소문난 녀석과 부하에 가까운 패거리였다. 밑에 깔린 무언가는 녀석들이 틀어막고 있어 팔 다리 정도가 간간히 다급하게 올라갔다가 곧 잡혀 떨어졌다. 간간히 있는 학교폭력이거니, 하고 지나가려다 스치는 손에 보이던 파란매니큐어를 보고 나는 발로 문을 차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은 피떡이 돼서 널부러진 녀석들과 옷이 반쯤 벗겨진 카이토가 벽에 처박혀 기침을 하는 장면이었다.

“동정심이라니. 솔직하게 말해? 난 널 동정한 적 없어. 그때 그 새끼들이 부러웠어. 시발. 나도 해보고 싶다. 생각만 했는데 이 새끼들은 실천했네? 나도 못해본걸? 내가 빡돈건 그 포인트였지. 아. 그리고 솔직히 할 수 있는건지도 그때 알았지만. 딸이라도 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저 새끼들이 먼저 따먹으면 수가 없겠다 싶은거야. 그래서 들어간거고.”

D는 조그맣게 휘파람을 불었다. 솔직함의 정도를 넘어선 노골적인 발언에 어이가 없어진 카이토는 말을 멈추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녹화해놓고 심심할때마다 틀어보면 팝콘이나 다른게 없어도 시간가는줄 모를것 같다. D와 카이토는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관전하며 침을 삼켰다.

“어.....음.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당신 정말 쓰레기네요. A."

“그래. 시발 마음대로 해. 나도 더 이상 못 해먹겠어. 손에 들어오면 뭐해. 따먹질 못하겠는데.”

“그러니까 그게 왜요. 자기가 사놓고 왜 못써먹어요? 답답해 미치겠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난 그 새끼들처럼 억지로 하고 싶진 않아. 그런데 넌 8년전이나 지금이나 날 T예고 학생 A로 밖에 보지 않잖아.”

“정말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네. 나는 T예고 학생A에 대한 기억은 아주 작은 것 밖에 없어요. 나한테 관심 가진 적도 없잖아요? 우리가 실제로 대화 했던 건 교무실에 끌려 갔을때가 처음이라고요. 그때도 나한텐 말 안했잖아요. 우리의 관계는 A가 다시 날 데리고 나왔을 때 부터가 시작이였어요.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뭐? 그럼 넌 나랑 그런..그런거 해도 상관 없단 말이야? 아까 들었잖아. 난 그런 마음 이라고.”

“그건 A가 하는 행동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니까 입으로 들었다고해서 별로 놀랍지 않아요. 그리고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거죠. 나는 원래 A소속이에요. 마음대로 쓰시란 말 몰라요? 그때도 말했는데. 마음대로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억 안나요? 너무 어릴 땐가.”

“아. 아아. 아..시발. 야. 지금 당장 집에 가자.”

짧은 이해의 시간 뒤 A는 카이토의 손목을 잡아챘다. 살살, 이라고 말하려다 끌려가며 D와 카이토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 내일 올게요.”

“어...응. 그래. 잘가..화해. 이미 했나. 응..”

서먹하게 손을 흔들자 A는 카이토의 손목을 붙잡고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이 지나간 듯 했다. 방송되지는 못할 B급이지만. 이미 정해진 답을 돌고 돌아 찾는 고리타분한 연출로 치자면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그들은 아마 긴 밤을 가지고 A는 내일 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처음 하면 기빨려서 일어나지도 못할 거니까. 그것이 8년을 참아온 하룻밤이기에 더욱더.

*

D는 손에 남은 기타줄의 흔적이 굳은 살로 바뀔 때 까지 한 번도 집을 들리지 않은 A에게 간간히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으로 치면 2주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일 오던 녀석이 오질 않으니 그런가. 한가롭게 D는 카이토를 안은채 기타를 쳐보겠다는 야심을 펼치고 있었다. 이미 A가 주고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혼자서 남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사이트에 간간히 습작 이라고 올려 놓은 것을 A는 아마 듣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하루에 한번은 A의 블로그에서 새 게시물이 없는지 확인하곤 했으니까. 방문자 수가 늘어날 때 마다 D는 그 숫자의 하나를 A가 채워준 것이리라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완성한 곡은 A가 오면 들려주려고 사이트에 올리지 않았다. 카이토는 그 노래를 부르며 아주 즐거워했다. 그 동안의 과정을 계속 봐왔던 터라 지적하지 않아도 알아서 포인트를 찾아 부르는건 집에서 작업하는 것의 장점이었다.

[곡 작업 거의 다 했어. 바쁘지 않으면 놀러와.]

나는 의무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놓고 휴대폰을 덮었다. 잠시 한 눈을 팔았다가 넌지시 보니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 깜빡였다. 으레 [오늘은 바빠서요. 죄송해요.] 이려니 했지만

[네. 좀 있다가 놀러갈게요.]하고 왠지 모르게 신나보이는 대답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문자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침없이 두들기는 소리에 카이토가 쪼르르 뛰어나갔다. D는 느릿하게 현관을 쳐다보았다. A와 A의 카이토는 똑같은 무늬의 티셔츠를 입고 손에는 잔뜩 봉지를 든 채였다. A의 목소리는 평소의 쾌활함을 넘어서 보였다. 신발을 대충 휙휙 던져벗으며 봉지를 받아드는 카이토의 머리를 사정없이 헝클어 놓았다.

“형. 오랜만이에요. 곡 작업 다 했어요?”

“어. 덕분에. 들어봐, 꽤 괜찮은 것 같아. 카이토도 엄청 신나게 불렀고.”

“그랬나요, 재밌었겠다.”

“응! 정말 재밌었어. 가사도 좋고. 나중에 카이토랑도 같이 불러 보고 싶어.”

D는 자랑스럽게 녹음된 노래를 재생했다. 사온 맥주를 마시던 A는 과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에서 지휘자처럼 손가락을 휘젓더니, 몸을 일으켜 맞은 편에 앉은 D의 카이토에게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바닥을 가져갔다. 어설프게 손을 가져다 대는 카이토와 큰 소리가 나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머리를 커다랗게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 머리카락으로 얼떨떨한 표정으로 D를 바라보자 그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잘 하잖아. 그럴 줄 알았어.”

“맞아요. 저도 카이토가 이 노래를 잘 소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D님도.를 덧붙이는 카이토는 정말로 천사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2주 동안 여간 즐거운 시간을 보낸게 아니였나보다. A의 팔에 팔짱을 낄 정도로 대담해진 카이토는 A가 곡에 대한 총평을 하는 도중 D만 보일 정도로 눈웃음을 보였다.

“카이토가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다칠까봐 걱정했는데, 괜찮았나봐.”

“음...사실 며칠 전에 또 서비스센터 다녀왔어요. 아직 고쳐나갈게 많아요. 처음이니까.”

“그런 얘긴 좀..”

이야기를 막아서며 A는 부끄러운 듯 카이토의 어깨를 잡았다. 엄청 아파보였는데 손가락으로 벌레잡듯 꼬집으며 떼어놓는게 아무래도 마음속의 계단을 세 개는 올라간 것 같았다. D는 카이토가 제안한 카이토와의 듀엣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공동제작이니까, 그런 버전도 좋지 않을까.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았다. 자신에게도, 카이토에게도.

“이미 녹음해 왔으니까 이거 믹싱해요.”

“엥. 같이 녹음하는게 아니라?”

“같이 녹음해서 뭐해요. 전 녹음할 때 엄청 예민해요. 형 짜증날걸요?”

“예민...한 정도가 아니니까, 그 생각은 그만 두세요 D님.”

두 음악 파일을 합쳐 스피커로 나오게 커다랗게 재생했다. A의 카이토가 부르는 노래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첫 작품인 카이토를 배려하는게 분명한 저음의 화음까지 완벽하게 겹쳐 노래는 더 풍성하게 귀에 감겼다. 두 마디정도 생각했던 가벼운 멜로디가 쌓이고 움직여 하나의 노래가 되는 과정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고 A에게 말했더니 그는 손가락을 굽히며 오글거린다는 시늉을 했다.

한바탕 떠들고 웃으며 밤 늦게 A가 돌아간 뒤에 카이토와 함께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D는 카이토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화나 행동을 관찰하는 것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몇 년 사이 느껴 본적 없는 가장 커다란 만족감을 가득 안고 먼저 잠든 카이토의 옆으로 기어가 눈을 감았다.

분명히 무언가로 이어져 있다. 손을 잡지 않아도.

그는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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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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