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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lace +

긴것/My Place 2014. 8. 18. 17:49

<알아도 전혀 도움 되지 않는 프로필>

- D(이게 풀네임입니다. 이름 짓기가 귀찮았어요.)

나이 : 28

키 : 174.6

학력 : P대 컴퓨터공학과

혈액형 : O형

취미 : 게임

갈색머리, 반곱슬. 갈색눈.

좋아하는 것 : 커피

전형적인 my way스타일. 쉽게 사는편.

- A(얘도 이게 풀네임)

나이 : 25

키 : 187cm

학력 : T예고 피아노과

혈액형 : B형

취미 : 스포츠 전반, 복싱은 체육관다님.

검은머리, 투블럭, 검은눈

좋아하는 것 : 녹차맛 음식

정직한 성격. 화내는 허들이 낮은게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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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

my place 04(完)

긴것/My Place 2014. 8. 18. 17:47

04

A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기 집 안방 드나들 듯 D의 집에 찾아왔다. 처음엔 외출용으로 보이는 반바지에 깔끔한 티셔츠로 그나마 격식 있던 옷차림은 점점 잠옷이라고 밖에 말 할 수준으로 추레해졌다. 카이토는 A보다는 적은 횟수로 동네 마트에서 할인 중이라는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왔다. 냉장고에는 아직 어제 가져다준 녹차맛 롤케잌이 반토막 남아있다. 사오는 간식에는 녹차맛이 많았는데, A가 녹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뒤로 D는 카이토가 사온 간식은 가능한 그가 먹도록 남겨두었다. A가 짜준 매뉴얼에 따라 연습을 하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좋아졌다. 멜로디가 생각이 나지 않은거 라기 보단, 머릿속에 있는 멜로디를 꺼낼 만큼의 실력이 아니었다고 A는 설명했다.

“종종 그럴 때가 있어요. 다룰 수 있는 악기 수가 모자랄 때도 그렇고.”

“헤헤. 마스터는 그냥 실력이 모자라서.”

“너 요즘 심하게 의기양양하네. 이거다 만들어도 안 줘 버릴거야.”

기타를 잡고 있던 내 옆에서 롤케잌을 세 개째 잘라먹고 있는 카이토의 포크를 뺏어 커다랗게 한 입 잘라먹은 A는 우물거리며 앞에 놓인 작은 건반을 두드렸다. 별 생각 없이 연주하는 것처럼 보여도 D가 치는 기타에 화음이 섞여 들어갔다. 그러면 D는 머릿속으로 악보를 그렸다. 카이토는 A와 D사이에 기어코 끼여 앉아 몸을 좌우로 까닥이며 가사의 대부분이 아이스크림으로 구성된 말도 안돼는 가사를 흥얼거렸다. 그러면 A는 정신 사납다고 카이토의 머리를 쥐어박고. 카이토는 D에게 달라붙는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웃음 끝에 D는 문득 A의 집에 혼자 있을 카이토가 떠올랐지만,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별 일 아니라는 식이었다.

“너 이렇게 맨날 우리집에 있으면 카이토는 혼자 있잖아. 괜찮아? 우리집은 그러면 난리 나는데.”

“걔는 혼자 있는거 좋아해요. 일부러 내쫓을 때도 있어요. 혼자 있고 싶다고. 걔는 사람이였으면 히키코모리에요. 지금도 억지로 붙어있는거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말씀 드렸잖아요. 사람이면 질색을 한다니까요. 조금만 터치해도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요. 사람 무안하게.”

“싫어한단 말이라던지 한 적 있어?”

“아뇨. 걔는 자기 아이스크림 뺏어먹어도 가만히 방긋방긋 웃고 있어요. 싫어한단 말 나오게 하려면 손가락이라도 하나 부러뜨려야.”

아. A는 말을 하고서야 그것이 심한 종류라는 것을 깨달았다. D는 조금만 터치라는 A의 기준이 과연 그가 말하는 대로 조금일지 의문을 가졌다. A가 장난으로라도 등짝을 내리치면 등뼈가 터져나갈듯한 충격인데, A에 비하면 훨씬 자그마한 카이토한테 얼마나 큰 충격이였을까. 예전에 카이토와 잠시 혼자 있게 되었을 때 물어보자 싸움을 말리다가 휘두른 팔에 맞아 벽에 틀여박혔더니, 상체 전부 수리가 필요하지 뭐에요. 하고 난처하게 웃었던 것이 떠올랐다. D는 다음날부터 A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악의가 없다는 것은 이때까지의 A를 보았을 때 충분히 알수 있었기에 더 무서웠다. A는 손뼈소리를 뚝뚝 내며 손을 털었다.

“흠. 아까건 취소. 아무튼 이상한 녀석이에요. 뭘 생각하는지 통 모르겠고.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고.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요.”

“잘 해주고 싶으시면 제발 다른 분 집에 갈때는 옷 제대로 챙겨입고 가세요.”

A만 몰랐던 카이토의 등장에 A는 놀랐잖아. 하며 카이토의 팔을 주먹으로 쳤는데, 둔탁하게 찌잉하고 울리는 소리에도 카이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단련된 것이겠지. 그동안의 생활이 눈에 불을 보듯 뻔했다. 오늘도 천사 같은 미소를 D에게 여과 없이 선사한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려 있길래 실례지만 멋대로 들어왔습니다. 카이토 안녕.”

“뭐야. 왜 왔어. 안 올거라며?”

“아무리 찾아봐도 마스터가 옷을 바꿔 입고 나간 흔적이 없어서요. 설마하니 정말 잠옷 그대로 입고 나오셨네요.”

“이거 운동복인데. 물론 잘 때도 입지만.”

장난스레 티셔츠를 펄럭이며 구김살 없이 당당한 A의 발언에 카이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앞에 놓인 건반과 D가 든 기타를 보고 곡 작업 중이신가봐요. 하고 화제를 돌렸다.

“잘 되가시나요? 마스터 옆에서 얼핏 들었는데 좋은 느낌.”

“으응. 뭐. A가 도와주니까 술술 풀린다. 온 김에 어제 사왔던 롤케잌 먹고 가. 맛있더라. 매 번 안사와도 돼. 정말로.”

“마스터랑 놀아드리는데 이정도 뇌물은 드려-앗!”

“너 진짜...내가 가자고 할때는 단칼에 안가겠다고 해놓고. 이젠 내 말이면 아예 안 듣겠다는 방침이야?”

A는 커다란 손으로 카이토의 목을 개 훈련하듯 틀어잡는다. 처음 몇 번은 깜짝깜짝 놀랐지만 이제 그런 A의 행동이 놀랍지 않았다. 그 동안 A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A는 피아노 이외의 물건은 막 다루는게 습관이었다. A집에 있는 7년된 피아노라는 것도 소리는 매번 조율해서 괜찮을지 몰라도 바깥의 나무는 온갖 흠집이 가득했다. 그게 가장 아낀다는 피아노였다. 그의 핸드폰은 보통 석 달을 가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에 들고 다니는 것도 액정이 다 깨진 상태로 전화를 받을때엔 간당간당해 보였다. 보컬로이드 같은 정밀기계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수리 안 해 본 곳이 없다고 삭신이 쑤신다며 어깨를 두드리는 카이토는 A가 번 돈의 대부분을 C사와 수리센터에 갖다 바치고있다고 했다. VIP제도가 있었으면 VVIP정도는 거뜬하게 차지할 정도.

“A.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 놔줘.”

“형. 얘 요즘 진짜 반항기라니까요. 튕기는 것도 정도것이여야지.”

“놔. 카이토 부셔지겠어. 말로 해, 불만이든 뭐든.”

목을 풀린 카이토는 걱정하며 달라붙는 D의 카이토에게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A의 얼굴은 곧 터질기세로 엄청난 표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D는 곧 카이토가 예의 웃음으로 유들하게 넘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A의 카이토는 일전에 본 적이 있는 무표정한 얼굴을 보란 식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 D님 집에서 마스터랑 싸워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더 하실거면 이만 내려가요.”

“뭘 더해. 내가 물었잖아. 너 요즘 나한테 불만 있냐?”

“더 할거면 집에 가-”

누가 당해도 기분 나쁠 정도로 빈정대며 A는 카이토의 머리를 후려쳤다. 동네깡패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닌 듯 했다. D와 카이토가 보고 있는 앞에서 보기 좋게 무시당한 카이토는 아아. 하고 돌아서며 입술을 깨물었다.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A의 모습에 D와 카이토는 폭풍전야를 보는 기분으로 A의 앞에 있던 건반과 놓여있던 롤케잌 그릇을 슬쩍 옆으로 밀어냈다. 두 개 다 깨지거나 망가지면 곤란했다.

“요즘? 아시면서. 전 처음부터 불만이 있었는데요. A."

"마스터 호칭은 어디 갖다 팔아 먹었나보지? 내가 기껏 구해다주고 노래도 부르게 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뭐가 그리 불만이 생길 데가 있어?“

“고마워라. 눈물 나겠어요. 제가 무슨 강아진 줄 알아요? 이게 캐릭터 육성 게임이에요? 동네 강아지한테도 이렇게 안해요!

A. 잘 믿기지 않겠지만, 나한텐 감정이란게 있어요. 사람의 그것과는 다를지 몰라도 내가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는건 사람의 무게 만큼 일거에요. 그걸 틔워주고 키워주는게 마스터의 역할이에요. 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니까.“

“누가 너 감정 없다고 한 적 있어?”

“나의 감정을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에 대한 감정을 말하는 겁니다. A가 아무리 노래를 잘 만든다고 해도, A는 마스터가 되기엔 한참 모자란거 같아요. 말해봐요. 나를 보면 어떤 감정이란게 생기긴 해요?”

“감정이라니. 어떤. 뭘 말하는거야 도데체.”

“지긋지긋하게 말하는 미안함 말고요. 오래된 값싼 동정심으로 날 움직이려 들지 말아요.”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D는 6년전 T예고의 기악실을 떠올렸다. 점심을 먹고 매점을 가는 길이었다. 보통이라면 2층을 통해서 바로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왠지 1층까지 내려가 조용한 복도를 즐기고 싶었다. 기악실을 지나다가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에 나는 의뭉스럽게 기악실 창문을 빼꼼 내다보았다. 기악실 안에 있던 것은 반에서 질 나쁘기로 소문난 녀석과 부하에 가까운 패거리였다. 밑에 깔린 무언가는 녀석들이 틀어막고 있어 팔 다리 정도가 간간히 다급하게 올라갔다가 곧 잡혀 떨어졌다. 간간히 있는 학교폭력이거니, 하고 지나가려다 스치는 손에 보이던 파란매니큐어를 보고 나는 발로 문을 차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은 피떡이 돼서 널부러진 녀석들과 옷이 반쯤 벗겨진 카이토가 벽에 처박혀 기침을 하는 장면이었다.

“동정심이라니. 솔직하게 말해? 난 널 동정한 적 없어. 그때 그 새끼들이 부러웠어. 시발. 나도 해보고 싶다. 생각만 했는데 이 새끼들은 실천했네? 나도 못해본걸? 내가 빡돈건 그 포인트였지. 아. 그리고 솔직히 할 수 있는건지도 그때 알았지만. 딸이라도 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저 새끼들이 먼저 따먹으면 수가 없겠다 싶은거야. 그래서 들어간거고.”

D는 조그맣게 휘파람을 불었다. 솔직함의 정도를 넘어선 노골적인 발언에 어이가 없어진 카이토는 말을 멈추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녹화해놓고 심심할때마다 틀어보면 팝콘이나 다른게 없어도 시간가는줄 모를것 같다. D와 카이토는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관전하며 침을 삼켰다.

“어.....음.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당신 정말 쓰레기네요. A."

“그래. 시발 마음대로 해. 나도 더 이상 못 해먹겠어. 손에 들어오면 뭐해. 따먹질 못하겠는데.”

“그러니까 그게 왜요. 자기가 사놓고 왜 못써먹어요? 답답해 미치겠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난 그 새끼들처럼 억지로 하고 싶진 않아. 그런데 넌 8년전이나 지금이나 날 T예고 학생 A로 밖에 보지 않잖아.”

“정말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네. 나는 T예고 학생A에 대한 기억은 아주 작은 것 밖에 없어요. 나한테 관심 가진 적도 없잖아요? 우리가 실제로 대화 했던 건 교무실에 끌려 갔을때가 처음이라고요. 그때도 나한텐 말 안했잖아요. 우리의 관계는 A가 다시 날 데리고 나왔을 때 부터가 시작이였어요.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뭐? 그럼 넌 나랑 그런..그런거 해도 상관 없단 말이야? 아까 들었잖아. 난 그런 마음 이라고.”

“그건 A가 하는 행동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니까 입으로 들었다고해서 별로 놀랍지 않아요. 그리고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거죠. 나는 원래 A소속이에요. 마음대로 쓰시란 말 몰라요? 그때도 말했는데. 마음대로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억 안나요? 너무 어릴 땐가.”

“아. 아아. 아..시발. 야. 지금 당장 집에 가자.”

짧은 이해의 시간 뒤 A는 카이토의 손목을 잡아챘다. 살살, 이라고 말하려다 끌려가며 D와 카이토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 내일 올게요.”

“어...응. 그래. 잘가..화해. 이미 했나. 응..”

서먹하게 손을 흔들자 A는 카이토의 손목을 붙잡고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이 지나간 듯 했다. 방송되지는 못할 B급이지만. 이미 정해진 답을 돌고 돌아 찾는 고리타분한 연출로 치자면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그들은 아마 긴 밤을 가지고 A는 내일 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처음 하면 기빨려서 일어나지도 못할 거니까. 그것이 8년을 참아온 하룻밤이기에 더욱더.

*

D는 손에 남은 기타줄의 흔적이 굳은 살로 바뀔 때 까지 한 번도 집을 들리지 않은 A에게 간간히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으로 치면 2주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일 오던 녀석이 오질 않으니 그런가. 한가롭게 D는 카이토를 안은채 기타를 쳐보겠다는 야심을 펼치고 있었다. 이미 A가 주고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혼자서 남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사이트에 간간히 습작 이라고 올려 놓은 것을 A는 아마 듣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하루에 한번은 A의 블로그에서 새 게시물이 없는지 확인하곤 했으니까. 방문자 수가 늘어날 때 마다 D는 그 숫자의 하나를 A가 채워준 것이리라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완성한 곡은 A가 오면 들려주려고 사이트에 올리지 않았다. 카이토는 그 노래를 부르며 아주 즐거워했다. 그 동안의 과정을 계속 봐왔던 터라 지적하지 않아도 알아서 포인트를 찾아 부르는건 집에서 작업하는 것의 장점이었다.

[곡 작업 거의 다 했어. 바쁘지 않으면 놀러와.]

나는 의무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놓고 휴대폰을 덮었다. 잠시 한 눈을 팔았다가 넌지시 보니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 깜빡였다. 으레 [오늘은 바빠서요. 죄송해요.] 이려니 했지만

[네. 좀 있다가 놀러갈게요.]하고 왠지 모르게 신나보이는 대답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문자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침없이 두들기는 소리에 카이토가 쪼르르 뛰어나갔다. D는 느릿하게 현관을 쳐다보았다. A와 A의 카이토는 똑같은 무늬의 티셔츠를 입고 손에는 잔뜩 봉지를 든 채였다. A의 목소리는 평소의 쾌활함을 넘어서 보였다. 신발을 대충 휙휙 던져벗으며 봉지를 받아드는 카이토의 머리를 사정없이 헝클어 놓았다.

“형. 오랜만이에요. 곡 작업 다 했어요?”

“어. 덕분에. 들어봐, 꽤 괜찮은 것 같아. 카이토도 엄청 신나게 불렀고.”

“그랬나요, 재밌었겠다.”

“응! 정말 재밌었어. 가사도 좋고. 나중에 카이토랑도 같이 불러 보고 싶어.”

D는 자랑스럽게 녹음된 노래를 재생했다. 사온 맥주를 마시던 A는 과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에서 지휘자처럼 손가락을 휘젓더니, 몸을 일으켜 맞은 편에 앉은 D의 카이토에게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바닥을 가져갔다. 어설프게 손을 가져다 대는 카이토와 큰 소리가 나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머리를 커다랗게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 머리카락으로 얼떨떨한 표정으로 D를 바라보자 그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잘 하잖아. 그럴 줄 알았어.”

“맞아요. 저도 카이토가 이 노래를 잘 소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D님도.를 덧붙이는 카이토는 정말로 천사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2주 동안 여간 즐거운 시간을 보낸게 아니였나보다. A의 팔에 팔짱을 낄 정도로 대담해진 카이토는 A가 곡에 대한 총평을 하는 도중 D만 보일 정도로 눈웃음을 보였다.

“카이토가 좋아보여서 다행이다. 다칠까봐 걱정했는데, 괜찮았나봐.”

“음...사실 며칠 전에 또 서비스센터 다녀왔어요. 아직 고쳐나갈게 많아요. 처음이니까.”

“그런 얘긴 좀..”

이야기를 막아서며 A는 부끄러운 듯 카이토의 어깨를 잡았다. 엄청 아파보였는데 손가락으로 벌레잡듯 꼬집으며 떼어놓는게 아무래도 마음속의 계단을 세 개는 올라간 것 같았다. D는 카이토가 제안한 카이토와의 듀엣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공동제작이니까, 그런 버전도 좋지 않을까.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았다. 자신에게도, 카이토에게도.

“이미 녹음해 왔으니까 이거 믹싱해요.”

“엥. 같이 녹음하는게 아니라?”

“같이 녹음해서 뭐해요. 전 녹음할 때 엄청 예민해요. 형 짜증날걸요?”

“예민...한 정도가 아니니까, 그 생각은 그만 두세요 D님.”

두 음악 파일을 합쳐 스피커로 나오게 커다랗게 재생했다. A의 카이토가 부르는 노래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첫 작품인 카이토를 배려하는게 분명한 저음의 화음까지 완벽하게 겹쳐 노래는 더 풍성하게 귀에 감겼다. 두 마디정도 생각했던 가벼운 멜로디가 쌓이고 움직여 하나의 노래가 되는 과정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고 A에게 말했더니 그는 손가락을 굽히며 오글거린다는 시늉을 했다.

한바탕 떠들고 웃으며 밤 늦게 A가 돌아간 뒤에 카이토와 함께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D는 카이토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화나 행동을 관찰하는 것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몇 년 사이 느껴 본적 없는 가장 커다란 만족감을 가득 안고 먼저 잠든 카이토의 옆으로 기어가 눈을 감았다.

분명히 무언가로 이어져 있다. 손을 잡지 않아도.

그는 안심하고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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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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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lace 03

긴것/My Place 2014. 8. 18. 17:47

3.

A는 D의 집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이었다. 이미 그것은 다섯 번째의 시도로 아이스크림 패밀리 사이즈를 포장한 드라이아이스가 녹겠다고 카이토는 A를 보챘다. 아침을 먹자마자 긴장된 얼굴로 사과. 하고 못할 말이라도 한듯 소스라친다. A는 밤새 열을 앓은 다음 날 떠오르는 흑역사로 죽고 싶었다. 혼자서 이불을 걷어차고 베개를 샌드백 삼아 주먹질했다. 머릿속에서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의 D가 끊임없이 그려졌다. 섣부른 판단과 자폭. 머릿속에서 폭탄이 펑펑 터져나가는 상상을 하자 부끄러움은 배가 되어 얼굴에 날아왔다.

“이번엔 분명한 줄 알았는데….아악!! 옘병….쪽팔려 죽겠다.”

“저는 할 수 있는 만큼 해드렸어요. 이제 마스터 몫이에요.”

“알겠으니까 닥쳐봐…. 10분만 있다가.”

“이번에 안 들어 가실 거면 전 집에 갈래요.”

집 안에서 D와 카이토는 한 시간째 문밖에 서서 대화하고 있는 A들이 언제쯤 초인종을 누를 것인가에 대해 대화했다. 성량이 좋은 편이구나. A는. 문을 타고 들어오는 낮은 목소리에 D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현관의 작은 구멍으로 밖을 눈을 대고 바라보며 카이토는 아직 먼 것 같다며 보고했다. 커피포트의 전원을 끄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갔다.

곡 작업은 생각만큼 진행되지 않는다. 새 기계에 새 작업실이라 산뜻한 마음으로 가뿐히 나올 줄 알았던 노래는 수렁에 박힌 마냥 진득한 오오라를 풍기며 머릿속에서 나올 듯 간당간당하게 애간장을 태웠다. 답답해진 D는 담배를 몇 대 태우고 연기라도 도망가지 않게 눈을 감았다.

새집이라 소중히 다뤄야겠다는 다짐은 나오지 않는 멋진 멜로디에 대한 원망에 묻힌다.

‘A는 고등학생 때 벌써 그런 걸 할 수 있었단 말이지.’

역시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다르구나. D는 A의 CD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밀려오는 부러움을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올려둔 A의 블로그에 공개되어있던 최근의 음악을 들었을 때, 그 부러움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D를 휩쓸고 지나갔다. 비록 A가 인간적으로는 비뚤어지고 자기가 누구를 , 무엇을 이라고 해야 하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해도 그의 음악은 확실한 정체성도 있고. 듣는 맛도 있고. A와 직접 이야기하는 것 보다 A의 음악을 듣는 게 그를 이해하기에 더 쉬운 방법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현관에 달린 조그만 유리창으로 A들을 보고 있던 카이토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제 들어오시려나 봐요!”

“그래? 드디어.”

문을 신중하게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간격마다 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을 A가 눈에 그려졌다.

“형. 저에요.”

“어. 들어와. 아침부터 집 앞에서 고민하느라 힘들었겠다.”

“헉….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소리를 치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오. 선물.”

A의 카이토는 오늘도 말쑥한 피케 티셔츠를 입고 민망하다는 듯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이 든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간편한 무늬의 셔츠는 A가 입은 것과 세트다. 이러면서 좋아하느니 마느니 하는 말이 나온다는 게 웃겼다.

눈이 마주치자 작은 인사를 끄덕이고는 카이토에게도 손을 흔들었지만 카이토는 이미 A가 가져온 아이스크림에 혼이 팔려 인사는 생략한 뒤였다. 드라이아이스를 빼내자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는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에서 하얀 연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맛있는 것만 골라 담았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우와, 우와. 당장같이 먹자. 마스터도. A님이랑도.”

D는 안절부절못하고 시선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A에게 자리를 권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부었다. 카이토는 다리를 떠는 A의 허벅지를 찰싹 꼬집었다. D는 머그잔에 커피 두 잔을 가져와 내밀었다.

“자. 일단 좀 진정해봐. 보는 내가 불안하다, 인마.”

“고마워요. 아. 음…. 으. 어. 어디까지 이야기 들으셨어요?”

“어디까지? 뭐 과거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힘들었겠다.”

“예. 하아, 일단 며칠 전엔 정말 죄송했습니다.”

A와 A의 카이토가 고개를 숙이고, 어색한 순간이 지나간다.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건 A답지 않아 보였다. 그만큼 그가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D는 가벼운 눈인사로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표현을 한 뒤 무거워진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녹차와 초콜릿 맛과 무슨 맛인지 알기 힘든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이상한 색을 하고 있었다. 놔두고 있어봤자 전부다 카이토 입속에 들어갈 것이 뻔해서 D는 네 개의 커다란 그릇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퍼 담았다. A의 카이토는 그릇을 받아들고 기쁜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 모습은 작은 동물처럼 귀여웠다. 이런 녀석과 함께 살면서, 좋아하면서 손을 안 대다니 혹시 A는 자기도 모르는 성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형, 진짜 화 안 났어요?”

“응? 사과했잖아. 그리고 나랑 카이토 하는 거 보면 그런 착각 할 수도. 있나? 암튼….미안 하면 나중에 곡 하나 써주든지.”

“으으….사람 찝찝하게. 그럼 정말 이걸로 끝? 남은 거 없는 거죠?”

“그래. 그리고 슬쩍 넘어가는데 곡 하나 써 달라니까.”

A는 녹차 맛 아이스크림만 교묘하게 잘라 먹으며 곡? 하고 되물었다. 주도권이 다시 바뀌었다. A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작곡가니까 아마 정식으로 부탁하면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대가 없이 곡을 주는 것에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 일이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A의 곡이 가지고 싶었다. 잘 생각해보면 A와 알게 된 건 굴러 들어온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으음, 지금은 하고 있는 게 있어서. 아. 그리고 형 지금 작업하는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하. 있지. 근데 잘 안 풀려서 말이야. 말했다시피 난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이것저것 눈대중으로 끼워 맞추는 식이고.”

“그래서 제 곡 받아서 불러보시게요? 그런 거라면 안돼요.”

A의 카이토는 A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어디에 투고하거나 하면 저작권 제대로 표시할 거고. 기본적인 수고비 정도는 줄 수 있어.”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형 아직 카이토한테 완성된 곡 줘본 적 없다고 했죠.”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은 A는 카이토, 하고 카이토를 불렀다. 테이블엔 두 명의 카이토가 있었지만. A의 카이토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는 듯 태연했다. D는 자신의 카이토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분명해 보였다. 두 번 부르는 게 귀찮은지 A는 표정을 구겼다.

“야. D형네 카이토.”

“아. 네? 저는 본인 소유를 부르시는 건 줄 알고. 왜 그러세요?”

“너는 내 곡을 불러 보고 싶냐, 아니면 D형꺼 불러보고 싶냐? 건방지지만 말하자면 들어봤겠지만 내건 당연히 형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계속 배워 왔으니까, 내가 실력이 있다고 말하는 건 자만이 아니라 당연한 거야. 형도 그렇구요.”

“조금 자만하고 있는 건 맞아요. D님의 곡을 들어보진 못했지만 저는 분명 멋질 거라고 생각해요”

A는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A의 카이토 등 뒤에 숨겨진 천사 날개나 후광이 보일 지경이었다. 자신감과 건방짐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A의 발언을 수습하느라 카이토는 예의 웃음을 엄청나게 쏟아내는 중이었다.

“당연히 마스터의 곡이요. A님곡은 A님의 카이토가 부르는 게 제일 잘 어울리고. 저한텐 마스터의 것이 제일 잘 어울리고. 그런데 제가 아직 그만큼 잘 부르질 못하니까.”

그래서 곡을 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먹던 커피를 뱉을 뻔했다. 카이토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었다. 그리고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이거 보컬로이드로서 엄청나게 자존심 상하는 말 아닌가. 카이토에게 잘 대해 주고 있다는 말을 취소해야겠다. 카이토의 폭탄발언에 A는 노골적으로 짜증 난다는 얼굴을 내게 쏘아댔다. 카이토의 손을 잡으며 절대 그렇지 않다는 듯 A의 카이토는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활발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D님은 카이토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죠?”

“아….아!! 당연하지. 무슨 소리야. 한 번도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 정말로. 세상에.”

“에….그럼 왜 2년 동안 연습만 시킨 거에요? 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그건….”

“다른 사람 들 것만큼 제대로 된 게 아니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사람들 것 보면 척척 잘도 만들던데. 자기 건 아무리 봐도 마음에 안 차니까. 그저 내 취향에만 맞춘 취미일 뿐.”

숨기고 있던 나의 대답은 A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속마음을 읽힌 나는 밀려오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카이토를 쳐다 볼 수 없었다. 자리에서 쪼르르 일어난 A의 카이토는 불쌍하게도, 가여워라. 하는 말을 반복하며 카이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졸지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마스터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었다. A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팔짱을 낀 모습이 완전히 원래의 여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형 지금 작업하고 있는 거 있죠. 없다고 하지 마요. 거짓말인 거 아니까. 그거 나한테 들려줘요. 내가 봐줄게요. 미안한 것도 있고, 내가 카이토 쓰면서 이것저것 공부했던 자료도 빌려 줄테니까….지금 형한테 카이토나 집에 있는 기계들은 과분하네요.”

“으으, 고맙긴 한데 진짜 상처다. 지금은 한 대 때리면 안되냐?”

“기한 끝. 치라고 할 때 치셨어야죠.”

A는 악마처럼 웃었다. 나는 예전 대학을 다닐 때 교수님에게 과제를 엄청나게 까였을 때보다 더 처참한 기분으로 작업실에 터벅터벅 걸어갔다. 카이토와 A들은 뭐가 그리 신 나는지 꺄르륵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기초도 안 잡힌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을 보는 미술전공자의 기분이겠지, 안 그래도 낮은 자존심을 겨우 붙들고 있던 마지막 기둥이 머릿속에서 산산조각이 나 파괴된다.

*

예상 그대로 A에게 가이드를 들려주자 그는 음. 으음. 하고 부분마다 걸리는 게 있는지 헛기침을 하고 휴대폰에 빠르게 메모했다. 나름 자신 있는 걸 들려준 거 였는데. 물론 그 곡을 처음 들었을 카이토는 D에게 열렬한 사랑의 눈빛을 보냈다. D는 그 눈빛을 무시하고 노래를 듣는 A를 쳐다보며 입을 꾹 깨물었다. A의 카이토가 말을 시작하려는 A의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다.

“마스터, 예의 바르게 말씀하세요. 알겠죠?”

“넌 도대체 날 뭐로 보고 있냐. 동네 양아치?”

“돈을 뺏지 않는 것 빼면은요.”

“참나. 그리고 형은 일단 기본적인 걸 좀 해야겠어요. 피아노로 치면 하농같은건데. 형은 기타를 쓰신다고 했으니까….”

A는 이것저것 설명하며 그래도 나쁘진 않아요. 주제가 재밌으면 살만 잘 붙이면 되는 거니까. 하고 약간의 칭찬을 잊지 않았다. 할 마음이 제대로 생겼는지 피아노의 음은 자신이 붙여오겠다고 스스로 나선 뒤 휴대폰에 있는 피아노 연주 앱으로 즉석 해서 멜로디 라인을 만들었다.

“대충 이런 정도려나. 집에 가서 제대로 가져올게요. 이런 건 시간 끌어봤자 거기서 거기에요. 여기서 갑자기 음이 뛸 수도 없는 거고.”

“이야….고마워. 확 풀리는 느낌이네. 나도 학교 다시 다닐까 봐.”

“형 나이에 무슨, 학원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는데….거기도 요즘 어린 애들 많아요. 그리고-”

카이토가 A의 팔을 쿡쿡 찔렀다. 그는 D의 계면쩍은 표정을 보고서야 말을 멈추었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 뱉으며 반주에 맞춰 흥얼거렸지만 딱히 D가 즐거워 보이진 않았다. A는 카이토의 ‘괜한 참견’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깨달을 일이다. 기본 연습이 부족한건 몇 달만 연습하면 금방 생각한 멜로디가 표현이 안 될 정도는 벗어 날것이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란건데, 너무 갑자기 충격을 받은 탓인지 카이토가 달라붙어서 한껏 어리광을 피워도 평소 같았다면 웃으면서 받아 주었을 것도 데면데면 굳은 표정으로 넘기고 있었다. A는 자신의 카이토에게 눈짓을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좀 더 있다 가지 왜. 맥주 많이 남았는데.”

“아니에요. 사과도 했고, 형 음악도 들었고. 목적 달성했어요. 다음에 올 때 곡 대충 짜들고 올게요. 형쪽 기계 써야겠다. 써보고 싶었는데.”

“응. 그래 그럼. 고맙다. 카이토도 수고많았어. 아이스크림 좀 들고갈래?”

“아니에요. D님에겐 몇 번 감사하다해도 모자라네요.”

연신 꾸벅대는 카이토와 즐거워 보이는 A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D의 집을 나섰다.

둘이 떠난 집은 갑작스러운 적막이 어색하게 흘렀다. A의 블로그에는 D를 배려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초보를 위한 참고 사이트들과 추천 책이 새 게시물로 올라왔다. 한참 책 목록을 검색하고 있으니, 자신의 토끼인형을 껴안은 카이토가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신나게 말을 걸 법도 했는데 카이토는 아무 말 없이 토끼 귀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아까 무뚝뚝하게 한 것의 시위라도 하는 듯 카이토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채였다.

“할 말 있어?”

“으응. 없으니까 암말 않잖아요.”

할 말이 없어져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카이토에게 잘 못 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과를 해야 할 만큼. 그런데 지금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그러고보면 D보다 내가 더 제 멋대로 인걸지도. 카이토를 전부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은 멈춰버린 모양이다. 잘못이라면 그것이겠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과거의 어느 새벽에 결정했다.

문득 카이토를 가득 껴안고 그 속에든 모든 생각을 물어보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것은. 마스터와 아이스크림. 대답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것 말고, 정말 좋아하는 것은. 머릿속에 잔뜩 카이토에 대한 상념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득 차오른다. 나는 모니터를 보는 것에 집중 하기가 힘들어졌다. 생각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옆에서 커다란 토끼인형을 푹 껴안고 있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오늘 한 말 있잖아. 그거 정말 줄곧 그렇게 생각 했던 거였어?”

“네. 심각하게는 아니고. 그런게 아닐까-정도. 저 원래 심각한 거 싫어하잖아요. 저는 A님네 카이토 만큼 큰 바램도 없고.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어디까지나 가벼운 관계로. 심각하게 들어가면 복잡해질 계산이 많아진다. 그저 카이토는 노래와 마스터만을 바라보면 그걸로 좋다. 마스터가 원하는 바도 그러했다. 우리는 그래서 궁합이 잘 맞는거라고 마스터는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게 큰 바램인가. 그렇게나.”

“아아, 마스터도 A님한테 물들어가는군요. 컴퓨터 언제까지 하실거에요? 안아주세요.”

“그냥 이 안으로 들어와. 그래서 일부러 좌식으로 산거니까.”

품에 쏙 들어와 껴안은 카이토는 내 목을 조를 기세로 푹 안겼다.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헝크러트리는 사소한 장난을 쳤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쇼핑몰의 장바구니에 A가 추천한 책을 담았다. 아이처럼 어깨에 얼굴을 비비다가 목덜미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춘다. 순간 카이토는 눈을 올려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새로 산 좌식의자는 등받이의 각도를 조절 할 수 있었다. 등받이를 뒤로 넘기자 그대로 겹쳐 누운 꼴이 된다. 카이토는 나를 내려다보며 신나는 듯 목에 감고 있던 얇은 머플러를 풀어 던졌다. 카이토가 옷을 벗겨주는 것을 움직거리며 도와주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카이토에게 나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A는 A의 방식이 있고, 나는 나의 방식이 있고.”

“카이토한테 거짓말 한 건 좀 너무했어요. 진짜인줄 알거에요.”

그럼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말해, 매일매일 즐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고

“언젠간 말 해줄거야.”

“그럼 A님이 정말 마스터를 때릴지도 몰라요. 죽을지도.”

“그러게.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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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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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lace 02

긴것/My Place 2014. 8. 18. 17:46

2.

A는 정중하게 보내온 문자를 받았다. 막 늦은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던 참이었다. 며칠 전에 이사 온 D에게서의 문자였다. A는 옆에서 양치질하는 카이토의 어깨에 장난스럽게 팔을 걸고 큰소리로 읽었다.

“D입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짐 정리가 끝나서 연락드립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신다면 답장 주시길….이 형 왜 이렇게 예의가 바른 거지?”

“예의가 바른 건 좋은 거죠. 마스터는 배울 필요가 있어요.”

“시끄러. 암튼 들었지? 놀러가자. 맥주 몇 개 챙겨갈까.”

저도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카이토에게 A는 칫솔을 물고 끄덕였다. 입에서 부글거리는 거품소리와 말이 섞이자 A는 양칫물을 뱉어냈다. 능숙하게 고개를 숙여 잡힌 목을 빼낸 카이토는 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이사 선물 사가야 하나? 보통 뭐 사가더라.”

“아이스크림 패밀리사이즈.”

“웃기고 있네….야. 그보다. 이 형 카이토랑 사귀는 사이 같던데. 너도 그렇게 보였어?”

“으음. 글쎄요. 저는 잘.”

모르. 모르겠어요.

카이토는 아직도 애정, 관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과거의 그림자를 드리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고개를 젓는다. 철없는 고등학생들의 악의 서린 장난은 카이토에게 현실이었다. 걔들은 아마 지금쯤 카이토는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 반의 여자애들은 말 잘 듣는 착하고 귀여운 애완견 같은 느낌의 카이토를 좋아했다. 본사 직원이 와서 알려준 카이토는 T예고에만 특별히 맞춤 제작된 공용형이라고 했다. 원래 사용자 등록제가 필수인데, 어쩌고저쩌고. 나는 작곡에는 흥미가 없던 피아노쟁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교실 앞에서 꾸벅 고개를 숙인 카이토를 보고서 머리카락 색이 특이하네. 정도의 작은 관심만 주었을 뿐이다. 사람흉내를 내느라 입혀놓은 T예고 교복이 자로 잰 듯 맞아 떨어졌다. 노란 체크 넥타이가 파란색의 머리와 대비되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때 교실 뒤편 책상에서의 속삭이던 몇몇 목소리를 기억한다.

시범용. 노래를 위한 안드로이드. 마음대로 사용해주세요.

깃털보다 가벼운 인식이 모인 교실에서 카이토는 2년간 생활했고, C사는 이후 공용형 개발을 취소했다. 나는 최우수졸업자의 특별혜택으로 카이토를 받아 나왔다.

다시 사용자형으로 바꾸는데 들었던 돈은 지금까지 갚고 있다. 최우수졸업을 하지 않았으면 갚아야 할 돈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됐어. 말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 D형네 집도 안 가고 싶으면 넌 집에 있어.”

“아뇨, D님네 집은 저도 가보고 싶은데. 혹시….”

“뭐, 내가 또 가만히 안드로이드랑 애정질 하는 거 지적하다가 멱살 잡고 싸울 것 같아?”

“맞아요. D님은 착하신 분이에요. 그분의 카이토도 좋은 아이고. 저희가 건드리는 건 괜한 참견이에요.”

*

괜한 참견.

남의 일에 참견하는 더러운 성격 때문에 고등학교 마지막 추억은 주먹질과 합의로 끝났고, 평소에도 완고했던 부모님과의 연도 끊었다. 심심할 때마다 운동을 해놓은 게 이럴 때 쓰일 줄 몰랐다. 생명이나 다름없는 손에 박혔던 유리조각을 빼고 붕대가 감긴 손으로 교무실에 끌려갔다. 내 앞에 앉았어야 할 쓰레기만도 못한 새끼들은 자리에 나오지 못할 만큼 병원 신세를 졌다. 선생님들은 치기 어린 아이를 보는 눈으로 그럴 수 있다고 나를 설득했다. A의 상황은 알겠고,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이해하겠지만.

‘물건이 부서졌다고 친구를 때리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란다.’

내가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건 그 말이었다. 함께 듣고 있는 카이토의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곤란한 것도 카이토였다. 본사 직원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서류 몇 개를 선생님과 주고받았다. 카이토는 나를 뜯어말리다가 벽에 처박혔던 모습 그대로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쓰레기들의 부모님은 나를 질책하다가 결국에 원인이 된 저 기계를 폐기처분 하라고 소리 질렀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아줌마. 제정신이에요? 얘는 피해자라고요. 아줌마네 아들이랑 부하놀이하고 노는 새끼들이 좆딸질 할 곳이 없어서 반항도 못 하는-”

“피해자라니. 너야 말로 제정신이니?”

인칭이 필요 없는 존재.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꼼짝없이 본사 직원의 팔에 붙들려가는 카이토의 뒷모습은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처럼 처절하고 처량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무력감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산산조각나 무너진 자존심을 채우는건 평생동안 매달렸던 피아노로는 부족했다. 나는 한동안 공허함에 사로잡혀 꼼짝없이 암흑기를 보내야만 했다.

*

막 정리한 D의 집은 깔끔했다. 손이 닿는 대로 동선에 맞춰 전체적으로는 뒤죽박죽으로 되어있는 A의 집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한 쪽에 있는 방에는 올해 새로 나온 믹싱장비가 가득했다.

같은 작곡을 한다 해도 방식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A는 피아노로 작곡을 시작 해놓고 악보로 옮겨쓰고,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게 하는 방식이라면, D는 시작부터 카이토에게 맞춰진 음악을 만드는 방법으로. 덕분에 맞춰놓은 기계가 A보다 훨씬 많고 사양이 좋은 편이었다.

방 구경을 하는 동안 D는 A가 오피스텔 앞 편의점에서 사온 물건을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기어코 감시하려는 것인지,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카이토를 무시하고 방을 둘러본다. 언제 따라붙었는지 등에 들러붙은 카이토는 두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이 녀석은 D형이 어리광을 다 받아 주었는지 어린애의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고 있다. 딱히 고깝게 보이진 않았다. 뭐라고 조잘대는 걸 무시하고 다시 거실로 나오자 마침 짐을 다 정리한 참이라며 D형은 자리를 권했다.

“우와. 집 깨끗하네요. 역시 새집.”

“곧 더러워질걸. 작업 시작하면 살림엔 신경 못쓰니까.”

“흐음. 어떤 곡 쓸 생각이에요? 데모 버전 이라도.”

“아직 녹음 안 했어. 하게 되면 들려줄게.”

A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툭툭 뱉는 편이다. 테이블에 다리를 꼬아 앉아 먼저 펴놓은 맥주를 따는 모습이 자기 집보다 편해 보였다. 나쁜 건 아니지만.

“형. 앉아요. 맥주 많이 사왔어요. 아이스크림도.”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에 버튼이라도 달린 듯 카이토들은 눈을 번뜩이며 식탁 위에 올라가 앉았다. 느긋하게 의자에 앉은 그동안 뭐 했어, 하고 D는 의례적인 인사를 물었다. D는 친해져 보려는 의지가 가득 담긴 A의 격식 없는 문자에도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답장을 보냈다. A는 당장에라도 윗집에 올라가 문을 두드리고 싶었던 충동을 참아냈다. 겉도는 대화는 쓸모없고, 가식적이다. A는 D의 음악을 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음악이 어떤 방식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음악만큼 자신의 사상과 생각이 잘 드러나는 도구는 없으니까.

“잘 먹네. 맛있어?”

“네! 역시 여름엔 아이스크림이 최고에요.”

아이스크림을 먹는 카이토의 머리를 쓰다듬는 D를 보며 A는 삼키던 맥주가 쏠려 올라오는 듯 구토감을 느꼈다. ‘음악성’ 하나로 카이토를 사용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것일까. 여자들이야 유사 남자친구 격으로 남자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인터넷의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혼자 하는 착각 속의 비밀연애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가짜 몸과 만들어진 마음을 이용한 관계라니!

A는 표정을 숨기는 게 서툴렀다. 숨길 생각도 없었다.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미간을 찌푸리는 A를 보고 D는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형. 아. 아- 젠장. 형. 저 말을 돌려 하는 것 싫어해요. 제가 앞으로 말할 것에 기분 나쁘시면 한 대 치셔도 돼요.‘

“응? 무슨 말이야?”

“뭐에요. 형은 카이토 왜 샀어요? 아니, 그것보다 형 게이에요? 아니지. 안드로이드 성애자예요?”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지뢰게임의 작은 클리어 버튼을 누르듯 A는 말을 쏟아냈다. 게이라는 단어에 D의 카이토는 먹던 아이스크림의 스푼을 멈추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의 A의 카이토는 묵묵히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렸다. 곧 쫓겨나갈지도 모르니까 빨리 먹어둬야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빨리 움직인다. 이번엔 이사 온지 얼마 된 이웃이라, 한동안은 집 밖을 나갈 때 주의해야 할지도.

A는, 그러니까 마스터는. 자기가 한 말의 심각성과 무례함의 후폭풍으로 더러운 기분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인정받지 못한 과거에 얽매여서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기준을 들여다보다가 돌아오는 건 그때의 불쾌함에 대한 표상적인 화풀이. D는 요즘 사람 답지 않게 안드로이드를 배려하는 편이다. 상황이 잘 풀린다면 카이토는 D에게 자초지종을 설명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화풀이니까 마음 쓰지 말라고. 굴레의 책임은 A와 자신에게 있지 다른 사람에게서 기인하는 게 아니다. 카이토는 자신을 곧 깨질 유리처럼 다루는 A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자 억지로 보통의 관계처럼 대하려는 때는 행동의 무가치함을 느꼈다.

“아-저기. 뭔가 큰 착각을 하는데. 뭐 어디서부터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열 받으시면 치세요. 그 정도 각오는 하고 한 말이니까.”

“마스터 게이였어요? 나도 몰랐는데.”

“너는 또 무슨 소리야….알겠으니까 진정하고 앉아. 일단 난 게이 아니고. 여자 사귀어 본적도 있어. 이런 걸 왜 말해 줘야 하는건지. 그리고 안드로이드 성애자는, 음. 기왕 그랬다면 여성형으로 사지 않았을까….인데.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네.”

“말이랑 행동이 다르니까요.”

“마스터, 그만하세요. 제가 이래서, D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요. 실례가 많았습니다.”

“놔. 아직 이야기 덜했어.”

“A. 제발.”

A의 손목을 잡은 카이토의 손은 곧 으스러질 듯 으겨졌다.

카이토는 6년 전 버렸던 호칭의 이름을 상기했다. A. 점심시간엔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없어야 할 기악 실에서 흐린 눈으로 보았던 교복에 자수 놓여 있었다. 스스로 전원을 놓으려다가 끝까지 기록해서 본사에 보고하려던 메모리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지긋지긋한 이름이지만 입으로 꺼내본 적은 많지 않았다.

“이름 불렀어. 우와. 멋있다.”

“너도 버그 몇 번만 먹으면 가능할 거야. 다음에 보자. D님,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실례했어요.”

“어어. 머리 좀 식히라고 해줘.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는 정도라. 지금은.”

고개 숙인 A는 끌려나가다시피 D의 집을 빠져나왔다. A의 손을 잡는데 모든 힘을 실은 카이토는 잡힌 손목이 빠질 것 같았다. 손을 잡은 A의 악력은 보통사람 이상이다. 십 원짜리가 달린 쌍욕을 하며 화를 삭이지 못하는 A는 밤새 오래된 열에 시달렸다.

*

그런 녀석도 있구나.

D는 A가 사와 놓고 미처 풀지 못한 과자 봉지를 찬장에 던져 넣었다. 자기 혼자 열에 올라 이것저것 이해하지 못할 말을 욕설 뱉듯 뱉어놓고 덩칫값 못하게 얇은 카이토 손에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라니.

“뭔가 일이 있었나 봐.”

“으응. 궁금하다. 다음에 카이토가 오면 물어봐요.”

그러게.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둘만의 세계가 펼쳐진 듯 A를 노려보는지, 혹은 애원하는 듯한 카이토의 눈빛과 마스터의 호칭을 뛰어넘은 단호한 목소리에 D는 둘의 눈치를 살피며 눈을 굴렸다. 드라마의 남녀에서만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A는 카이토와 사귀었던 것일까. 아무리 봐도 그래 보이는데, 정작 A는 단호하게 거부를 하고 나서니 D는 입을 다물었다. 홧김에라도 A의 주먹에 맞았다간 병원에 실려갈 것이다.

A의 졸업앨범을 재생하려는 카이토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 전에 산 토끼모양 쿠션을 안고 있었다.

“실망하지 않았어?”

“어떤 것에요. 마스터가 게이가 아니라는 것? 안드로이드 성애자가 아니라는 것?”

“뭐, 그렇지. 그래도 난 네 노래가 좋아. 목소리도 좋아하고.”

“게이에 안드로이드 성애자인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어요. 저도 딱히 남성 선호에 사람 성애가 아닌걸요. 저도 노래가 좋고 마스터가 좋을 뿐이에요.”

“응. 그런 거면 된 거지. A는 뭐가 그렇게 심각할까.”

“의외로 진지한 성격 일지도. A님의 노래도 그랬으니까.”

A의 졸업앨범이나 마찬가지인 CD에는 정직하고 기본에 충실한 피아노 반주. 그리고 담담한 카이토의 목소리가 어울리는 네 개의 연결된 주제의 노래가 있었다. 고등학생들의 콜라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실력은 역시 T예고의 명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노래가 끝나자 생각했던 박수 대신 야유가 들려와 D는 함께 듣던 카이토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골적인 야유를 무시하고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남기고 사라지는 어린 A의 목소리가 CD의 마지막.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완벽하고 이상한 졸업연주였다.

“이걸 들어보라고 준 것부터가..”

“그러게요. A님은 마스터가 정말 마음에 드셨나 봐요.”

“응, 하지만 A가 원하는 방향의 친구는 되지 못할 것 같아.”

그런가요, 벽에 기대앉은 내 품에 쿠션과 카이토가 파고들었다. 이것 이상의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그러니까 카이토는 마지노선에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한다. 새집은 넓어서 카이토와 등을 붙이고 잘 필요가 없다. A는 아직도 내가 카이토를 처음 만났을 때 고민했던 것을 고민 중인 모양이다. 다음에 그를 만나면 형이라 불린 도리로 인생 상담을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A의 CD를 한 번 더 돌려 들으며 나는 A의 카이토가 곧 해줄 것이라 예상되는 어떤 사건에 대해 추리를 해본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는 담담한 카이토의 목소리를 배경음으로 카이토는 품 안에서 잠들었다. 귀에 쓴 헤드셋에서 대기모드에 들어갔다는 푸른 빛이 반짝인다. 노래는 애달픈 짝사랑을 회한하는 가사였다. 주제를 나타내는 카이토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에 D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이 정도 까지 표현할 수 있으면, 지금은 A와 카이토의 노래는 어느 정도 일지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A의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다.

*

[D형.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곧 생각을 정리해서 찾아뵐게요. 오늘 시간 되시면 카이토가 먼저 찾아 가보겠다고 합니다.]

[응.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예정. 언제든지 놀러와.]

A는 울었을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표정이 잘 드러나는 녀석이니 울고난 뒤에 퉁퉁 부은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카이토를 보내는 걸지도.

다시 찾아온 카이토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맨 윗단추를 풀어 목선이 시원하게 드러나 보이는 카이토로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아이스크림을 권하자 고개를 저은 카이토는 단정하게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이렇게 예의 바른 카이토라니. 나는 매일 눈 맞은 강아지처럼 집안을 헤치고 다니는 우리 집의 녀석을 A의 집에 며칠 맡겨 놓고 싶어졌다. 그러면 좀 바지런해지려나. 의자에 앉자 카이토는 테이블에 박을 듯 고개를 숙였다.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기분 나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갑자기 사람보고 게이라느니. 안드로이드 성애자라느니. 나도 다른 사람의 성 취향은 존중하는 편이지만. 확실하게 말해서 둘 다 아니거든.”

“혹시 마스터의 졸업CD는 들어보셨나요?”

아아. 고개를 끄덕이자 그러면 말이 쉬워지겠네요. 하고 카이토는 어젯밤 머리를 굴렸던 이야기의 실제를 들려주었다. 공용이라는 단어가 불순물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정확했다. 충격적인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책 읽듯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카이토는 모은 손을 조그맣게 떨고 있었다. A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되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카이토는 잠시 숨을 골랐다. 잠잠해진 바다를 뒤엎은 셈이었으니 감정이 흐트러질 법도 했다.

“이 이야기를 들어 줄 만큼 괜찮은 분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요. 모두 마스터와 싸움을 벌이고 관계를 끝내버리는데 여하의 설명은 필요 없죠.”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그만큼 괜찮은 사람인지 어떻게 알고.”

“그래서입니다. 안드로이드와의 정확한 예의를 지켜주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요. 사람과의 예의와는 미묘하게 다르잖아요?”

카이토는 어른의 미소를 지었다. 눈과 입이 다른 서비스업계의 사람이 찍어내는 양산형의 미소.

D의 옆에 앉아 지금의 대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D의 카이토는 마주 본 카이토의 여유로운 미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카이토라는 존재로서는 겪을 수 없는 ‘다수’ ‘사회’에 의한 경험이었다.

“과거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에요. 저는 A가. 아, 마스터가 절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 널 도와주었겠지. 나도 너와 A를 본 적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렇게 보여.”

인정 하지 않는 건 A뿐만 인 것 아냐?

카이토는 잘 이해 하고 계시네요. 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A는 철없는 고등학교 때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사건 이후 이렇다 할 인간관계를 만들거나 발전시키지 못했다. 본인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싫은지 곱씹었다. 그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랄 것도 없이 지나 단 물 빠진 껌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친구들로부터의 사과와 대학진학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한 A는 신용대출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본사 귀환된 카이토를 다짜고짜 사겠다고 나타났다. 폐기처분을 기다리던 기간의 끝이었다. 2주만 늦었어도 A가 준비해온 법적 서류는 효력을 나타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만난 A는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카이토는 그가 왜 자신을 다시 데려왔는지도 의문을 가졌지만, 데려와서 단지 음악을 할 것이라면. 아니다. A는 본래가 피아노 연주자고, 자신이 잘 하는게 피아노 연주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갑자기 작곡가로 돌아선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과는 다른 이유가 있어야 했다. 카이토는 관계나 집착. 혹은 애정이라고 규정되는 어떠한 감정의 집합체를 연산했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 이외의 과분한 친절과 배려를 보게 되면, 그렇게 착각 할 수 있었다. 카이토는 자신이 회수된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주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상대하기도 벅찬 안드로이드의 두뇌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아무튼, 다시 A를 만났으니 이번에야 말로 괜찮은 관계를 만들어 보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하지만, A의 생각과 행동은 카이토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자기중심적인 해석이 다분했다. 결정했으면 그대로 일관적인 행동을 보이면 되는데, 확실히 숨기지 못하는 건 A의 솔직한 성격도 한 몫 했다. A답지 않았다.

분명 남자라면 이유 없이 성욕이 끓어오르는 날이 있다. A는 끝까지 카이토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열없이 이름을 부르다가 제풀에 고개를 젓고 오늘은 혼자 자겠다고 방문을 잠그고 들어간다. 방문을 귀에 대고 A가 이불 속에서 조용히 자위하는 것을 들으려 애쓰며 자위하는 나날들. 고인 물처럼 썩어 발전하지 않는 관계에 카이토는 답답하다고 했다. 근래에 보았던 어떤 드라마보다 재밌는 상황이었다.

“이야….대단한 인내심이네. 그것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집불통이라서.”

커피를 끓여도 될까. 생각보다 길어지는 이야기에 나는 맞은 편 싱크대에 놓인 커피포트에 물을 부었다. 슬슬 이해 못 할 이야기가 지겨운지 카이토는 의자에서 앉은 몸을 베베 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카이토를 바라보는 A의 카이토는 어린아이를 보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을 하고 있다. 커피를 내리는 뒤에서 카이토끼리의 대화가 소소하게 이어졌다. 그들의 주제는 단연 음악.

“카이토는 어떤 음악 좋아하는 편이야?”

“클래식이려나. 마스터는 그렇게 보여도 꽤 정통파거든.”

“그렇구나. 멋있다! 제대로 노래 부르면 어떤 느낌이야? CD 정말 좋았어. 뭐. 상황은 안 좋았던 것 같지만.”

“많은 사람 앞에서 부르는 것이어서 실수 많이 했는데, 좋게 들어줬다니 기쁘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

머그잔에 든 커피를 마시며 나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신과 A와의 지독하게도 반복되는 상황을 풀어놓은 카이토는 실례지만. 하고 잠시 숨을 돌려 다른 화두를 던졌다.

“카이토랑 어디까지 해보셨나요? 저는 많은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눈치가 빠른 편 이랍니다.”

“실례면 묻지 않는 게….하. 이리 된 거 숨겨 뭐하겠어. 했어. 잤다고. 그런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더라.”

“역시 그랬군요. 이제 800일이었던가요. 아마 100일도 되지 않아서 였겠죠? D님도 카이토도 힘들었겠어요.”

“하고 나니 마음이 잡히더라. 혹시 A한테 이런 걸 말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아, 이건 단순히 제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제가 이때까지 이야기해 드린 것은 어제의 무례에 대한 이유가 조금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고. 저는 D님이 마스터와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요. 안드로이드의 진심이라니까 별로 와 닿으시지 않으신가요? 아니면, 화가 풀릴 때까지 정말로 때려도 되고. 마스터라면 괜찮으니까. 마스터의 사과를 받아 주셨으면 해요.”

때려봤자 내가 더 아플 것 같은데.

밍밍하고 허탈한 내 대답에 빠진 숨을 피식, 내뱉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토는 저녁이나, 내일쯤 사과하러 함께 올게요. 하고 다음 방문을 예고했다. 당당한 모습의 A가 쩔쩔매며 사과하러 올 모습을 떠올리니 벌써 부담감이 느껴졌다. A의 카이토는 마지막으로 작업하는 곡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떠올린 것이 없어서 대답할 만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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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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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lace 01

긴것/My Place 2014. 8. 18. 17:45

MY PLACE

1.

이사를 했다.

그동안의 생활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증거가 이 공간에 있다.

햇빛 겨우 들던 반지하를 벗어나 번듯한 오피스텔로 값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일과 병행 하려니 신경 쓰이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자신을 증명하는 것만 같아 즐거웠다.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겠느냐고 묻던 고향의 지인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나 자신에게도.

취미의 연장선을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 나는 이 선택이 절벽으로 줄 없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주위의 반응도 그러했다. 나는 고향에서 꽤 괜찮은 학교의 실용적인 과를 다니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음악’이란 멀고도 한참은 실용성에서 벗어난 개념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일과 작업, 지독하게 막히는 출퇴근 시간의 짜증을 참지 못하고. 처음 이 도시로 왔을 때의 향취가 가득 담긴 짐은 소각장에 모두 태워버렸다.

이제 생계수단과 같은 모양을 한 음악의 귀퉁이를 베어 물고 작업실과 가까운 오피스텔로 옮겨왔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오피스텔은 깔끔하고 아직 새것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박스 열 개가 넘어가는 이삿짐을 올려놓자마자 가장 커다랗고 하얀 상자에 매어져 있던 끈을 풀었다.

상자에 들어가면서 튀어나온 입으로 자긴 짐이 아니라느니, 제 발로 걸어가겠다느니 쫑알거리던 카이토는 편안히 돌아누운 모습이 마치 덩치만 큰 어린애 같아 나는 한동안 카이토를 지켜보고 있었다. 2년의 시간 동안 나는 카이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설명서 너머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안드로이드 기술의 기이함을 느끼곤 한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조용한 정적만이 카이토를 감싸고 있다. 얼굴을 덮고 있는 파란 머리칼을 살짝 넘겼다가 이내 혼자 후다닥 일어서버리고 말았다. 취미로 들였다가, 조금이나마 생계수단이 되어주고 있는 손에 딱 맞게 길이 든 카이토와 나는 이제 물이 올랐다고 해도 좋을 만큼 노래에서는 궁합이 잘 맞는다. 싸우는 일도 줄었고. 일방적인 강요나 억지도 가라앉아 평화로운 우리 사이만큼이나 깨끗한 새 벽지가 발라져 있는 큰 거실은 조용하게 내 눈에 익숙해지려 존재감을 알려온다. 새벽부터 움직였던 긴장이 이제야 풀린다.

이제 깨워볼까.

혼자서 짐 정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어제저녁까지 새로 이사 올 집을 가보지 못했던 카이토는 마지막으로 상자를 정리하며 도착하자마자 깨워달라고 부탁했었다. 이삿짐을 옮겨갈 차의 정원이 겨우 2명인 트럭이여서, 어쩔 수가 없다는 말에

“오랜만의 물건취급이네요.” 하고 토라져 고개를 돌려버린다. 호강에 겨운 투정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꽤 카이토에게 잘 해주는 편이니까.

한동안은 게이가 아닐까, 하는 고민에 휩싸이게 할 정도로 처음 만난 뒤에 나는 카이토에게 빠져있었다. 누군가에게 느끼는 감정은 말로는 표현하기 미묘한 법이지만 이번의 것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감정을 해부하고 분석하는 동안 나는 카이토와 일정 간격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몇 달간, 그 거리를 유지하는데 익숙해졌던 카이토에게서 표정이 사라지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람다움’이 사라지면 부르는 노래에서도 기계음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된다. 까다로운 녀석. 목 뒤의 스위치를 꾹 누르자 사람이 잠에서 깨듯 무거운 눈꺼풀이 파스스 떨렸다.

“카이토, 일어나. 새집이다.”

“오면서 상자 막 옮기신 거 아니에요? 부딪힌것 처럼 온몸이 아픈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됐고, 집 구경이나 한 뒤에 짐 같이 풀자.”

상자에서 몸을 일으킨 카이토는 그토록 자랑하던 새집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눈에 담았다. 인간의 정착 하고자 하는 욕구는 이하의 욕구를 감내하고 움직일 정도로 대단한 의지를 불러일으켜서, ‘귀찮은 건 싫어. 하기 싫은 것은 하기 싫어.’ 마이웨이식 입버릇을 삶의 모토로 하는 마스터가 두 개, 세 개 외주 일을 받아가며 작곡을 하며 자신의 노래를 만들 때보다 더 열심히 밤을 새우는 것을 보니 이전의 집에 여간 신물이 난 게 아니었나 보다. 사실은 그럴 만했다. 악기와 잡동사니가 이리저리 쌓여 몸 누일 공간 만들기가 힘들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비가 오면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방음은 하나도 되지 않아 옆 방의 혈기왕성한 커플의 은밀한 대화가 귀에 박혀왔다.

이를 으득갈며 이사 갈 꺼야. 이사. 하고 베게로 귀를 막으면, 남은 한쪽의 귀는 손을 내밀어 막아주었다.

“신경 안 써도 돼, 네 귀나 막아.”

“전 그냥 뮤트 해놓으면 되는데요.”

아. 그렇지 참.

민망한 남녀의 신음이 여과 없이 흘러 얼굴을 붉혀온다. 자리가 없어 옆에 딱 달라붙은 카이토의 일정한 체온이 등에 맞붙어 있었다. 혼자였다면 저질스러운 음성에 맞춰 자위라도 했을 것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성욕을 가라앉히고 귀에 닿은 손을 슬쩍 밀어 내린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깊은 늪에 빠져드는 듯 아래쪽이 울려온다. 상상하는 것은 옆 방의 천박한 남녀가 아니다.

조금 거리를 둬야겠다고 다짐한 건 그때부터였다.

*

오. 저번 집보다 훨씬 깔끔하고. 넓고.

“작업실도 집에서 쓰실 거 에요?”

“누구 덕에.”

한쪽 방에 풀리지 않은 채로 놓인 새로운 믹싱장비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좁은 장소와 빌어먹게 비싼 장비들 탓에 나는 작업실을 여기저기 빌려 다녀야만 했고, 작업을 위해 며칠 집을 비우게 되면 그야말로 카이토와의 전쟁이 따로 없었다. 시위하듯 그렇지 않아도 좁은 집안을 들쑤셔놓거나, 전화에서 불이 난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메시지가 줄줄이. 여러 번 혼을 내도 ‘보고 싶어서.’ 하는 진심 어린 눈빛에 지고 만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인 내 탓이려니.

“그러면 이제 작업한다고 밖에 나가실 일은 별로 없겠네요?”

“네네. 신 난다-겠네.”

“좋아요. 이번에 돈 많이 쓰셨네요. 이것들 다 신상품이죠?”

당연하지. 너보다 더 좋은 스펙의 기계들이라고. 기기가 든 커다란 상자를 자랑스럽게 툭툭 쓰다듬었다. 음악상에서 고뇌하던 나날이 스친다.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것인가. 길가를 지나가며 그림의 떡 보듯 침 삼켰던 물건을 직접 결제 할 때의 기쁨이란. 어른이다. 나도 이 정도 물건을 만질 수 있는 초보 티 벗은 작곡가이다.

“이제 이걸로 열심히 벌어야 해. 다 빚내서 산 거고.”

“의욕이 가득하시네요. 이 기세를 쭉 유지하시는 거에요.”

“너도, 이제 제대로 된 노래를 불러야지.”

그동안은 습작 정도로 대충 얹혀진 노래나 과제곡 정도만을 조교연습으로 했었다. 남의 노래를 부르는 데에 익숙해진 카이토에게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자아실현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네!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파란 머리칼이 가볍게 흔들린다.

무리하게 든 돈을 이제라도 줄이느라 이삿짐서비스는 짐을 옮겨주는 것까지만 신청했다. 제대로 짐을 정리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들뜬 마음에 며칠이 걸려도 좋으니 천천히 새것의 기분을 음미하고 싶었다.

이것저것 옮기고 나니 해는 져 버린 지 오래 되었고, 나는 이것만 옮기고 그만하자. 고 바닥에 늘어진 카이토를 설득한다. 발길에 걸리는 몸덩이를 툭툭 발로 건드리자 칭얼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방전이에요. 더 못 움직이겠어요.”

“장난치지 마. 나 이거 혼자서 못 옮긴단 말이야.”

“오 분만요. 아니 십분만 있다가.”

등 돌아누운 카이토를 놔두고 혼자서라도 들어보려고 커다란 상자의 모서리를 잡았다. 뭐가 들었는지 내 허리를 넘어오는 크기의 상자는 발끝을 걸어 밀어보려 해도 꼼짝을 않는다.

“아오….여기 뭐가 든 거야? 카이토, 이 상자 옆에 글씨 뭐라고 쓰여 있어?”

“제가 보이는 쪽에 안 적혀 있어요. 어어, 발 조심하세요!”

온몸에 힘을 줘 억지로 들어 올렸다가 엄청난 무게에 손을 놓치고 말았다. 커다란 상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커다란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청각이 예민한 카이토는 헤드셋이 끼워진 귀 파츠를 손으로 막았다. 놓친 손에 소리의 진동이 찌릿하게 흘렀다. 바닥과 천장을 울리는 소리에 혼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손으로 귀를 막은채로 카이토는 눈을 꾹 감았다.

“으아….아랫집 사람들 천장 다 부서지는 소리 났겠다.”

“귀가 찡찡 울려요. 아래층에 나중에 같이 사과하러 가야겠어요.”

“그러니까 이것 좀 잡아달라고 했잖아!”

“성질도 급하셔라. 오 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요. 정말로 방전될 것 같았다고요.”

“너 정말….한 대만 때려도 되냐.”

주먹을 쥐는 내 모습에 안드로이드 학대. 하고 팔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한다.

얄미워 죽을 것 같다. 어차피 아랫집에 사과하러 가서도 고개 숙이는 건 나고.

“망할 보컬로이드. 일어나. 더 늦어지기 전에 사과하러 갈 거야.”

“이사 와서 첫 인사가 사과라니. 아랫집에 무서운 사람이 살면 어떡하시게요.”

조폭이라든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조잘대는 저놈의 입을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대로 요즘 세상은 무서우니까. 유하게 넘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다지 큰 체구가 아니고, 싸움은 커녕 말싸움도 이길 자신이 없다. 침을 꿀꺽 삼키고 바로 아랫집의 초인종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놀랍게도 문가로 다가오는 목소리는 내 옆에 있는 녀석과 비슷한 음성이었다. 중간 잠금을 건 채 고개를 빼꼼 내민 얼굴은 카이토였다. 편하게 기성 반팔과 홈웨어를 입었어도, 절대 풀지 않는 머플러와 특이한 파란색 머리칼, 눈동자.

“어라.”

“무슨 일이세요?”

“음, 저기. 저는 윗집에 오늘 이사 온 사람인데요. 아까 짐을 옮기다가 큰 소리가 나서. 혹시 못 들으셨어요?”

“아하! 그게 그 소리였구나. 마스터를 불러 드릴게요.”

조그맣게 꾸벅이고 총총 뛰어가는 아랫집의 카이토는 마스터-하고 거실 옆의 방에 들어갔다.

“우와. 아랫집에도 카이토가 있어요.”

“그러게….신기하다. 카이토는 잘 안 쓰는-”

잠금쇠가 열리고 문이 커다랗게 열렸다. 마스터라고 나온 사람은 키가 180은 훨씬 넘어 보이는, 건장하고 멀쩡한 남자였기에 나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별로 착해 보이지 않는 인상에 짜증이 가득한 얼굴. 그은 피부와 반팔 사이로 느껴지는 단단한 몸이 카이토를 사용하는 작곡가라기보다는 운동선수 쪽이 어울려 보였다. 그는 예상 했던 퉁명스러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아까 천장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 낸 사람?”

“앗. 네. 죄송합니다. 오늘 이사 왔어요. 짐 옮기다가 실수했네요. 많이 놀라셨나요?”

“귀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뭐야, 당신도 보컬로이드 쓰고 있네. 게다가 카이토.”

흐음. 나와 카이토의 아래위를 시선으로 훑던 그는 벽에 기대 팔짱을 꼈다.

“노래는 만들어?”

“아직 서툴지만요. 그보다….몇 살이신데 저한테 반말이신 거죠?”

“아. 미안 미안. 앞으로 얼굴 마주칠지도 모르는데.”

들어와요. 어색한 존댓말로 안내한 그는 자신을 A. 25 프리랜서로 카페나 바에서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해서 겨우 빌어먹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군요. 첫 인사가 사과라서 이상하지만. 저는 D라고 하고. 나이는 28….저도 대충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식탁에 마주앉아 고개를 숙였다. 맞은편엔 A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와 그의 카이토가 대칭으로 앉아있으려니 왠지 웃긴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남자의 방의 분위기가 풀풀 나는 A의 거실에는 전자피아노와 기타가 떡하니 중앙에 놓여있어 그가 카이토를 쓰는 작곡가라는 사실을 형형이 나타내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한 캔 들고 마실래요? 하고 묻더니,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의 것까지 두 캔. 그리고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두 개 꺼내왔다.

“자. 카이토들은 아이스크림 먹고.”

“앗.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아직 짐 정리를 덜 해서 편의점에서 대충 사올 생각이었어요.”

“아아. 뭐, 존댓말이 잘 안 나오네요.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리고 말 놓아도 돼요.”

D형. D형. 혼자서 읊조리는 그는 이미 그러기로 마음먹은 듯 스스로 호칭을 정리했다. 나는 외동이고 그동안 노래에 집중하느라, 기보단 솔직히 별로 교류적인 성격이 아니어서 내가 형이라고 불릴 일은 많이 없었다. 나보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형이라고 부르는 건 더욱 없었던 일이고.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D형. 같은 카이토 쓰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아요. 그것도 남자사용자는.”

“헤에. 그렇지. 나도 처음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

“그것도 진짜 작곡하는 사람은 더욱더.”

목이 따가울 때까지 꿀꺽꿀꺽 맥주를 삼킨다.

진짜 작곡하는 사람. 이상하게 무게가 담긴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이토들은 이미 조잘대며 자기소개 시간을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한입에 배어 나오는 행복한 미소에 나는 무심코 흐뭇하게 아이를 보는 엄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A는 다시 평소의 진한 인상의 얼굴로 돌아와 나와 카이토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흠. 하고 풀어지는 소리를 하더니 어디서 이사를 왔는지, 작곡은 어떤 쪽을 하는지. 어디서 배웠는가. 카이토를 사용한 지는. 질문을 쏟아냈다. 나를 시험하려는 질문의 목적을 숨기지 않아 듣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A는 아마 카이토를 사용한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카이토는 보컬로이드로 유명한 C사의 제품 중 거의 유일한 남성 성인형.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기종이고, 온갖 편견과 루머가 끊이질 않았다. 카이토의 사용자들은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자기 새끼를 보호하듯 카이토를 감싸고 들었다. 곱게 보지 않는 눈은 그들의 울타리를 욕하기도 했다.

그의 카이토는 투박한 모양새의 초기기종에 사용 감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동작이 부분마다 끊기고 어색하다. 드러난 양팔에는 수차례 수리한 흔적이 남아있어서 그다지 곱게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궁금한 게 많나 봐?”

“정말로 카이토 쓰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어서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초면인데.”

“아냐….뭐. 말해주지 않을 것도 없지. 작곡은 단기학교에서 잠깐 배웠어. 원래 전공은 다른 쪽. 카이토는 음….카이토, 기동시간?”

“2-0-X-X. 7월 28일. 총 826일입니다.”

“그렇대. 보통 작곡은 바로 컴퓨터로 하는 편이야. 아직 실제로 악기를 잘 못 다루거든. 한다면 기타 쪽이려나.”

“그렇군요. 저는 T예고를 나왔어요. 전공은 피아노. 대학은 진학 포기.”

생긴 것과는 다르게 A는 상당히 표준적인 음악전공자의 길을 걸어온 녀석이었다. T예고면 나라에서 손꼽히는 예고 중 하나였다. 외국의 유명 음대로 진학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보컬로이드 사용은 시시한 유희로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A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남은 맥주캔을 비운다.

“카이토 사용한 지는 올해로 8년.”

“우와….상당한 초기 사용자네. 그럼 고등학교 때 부터?”

“음. 그렇죠. 카이토는 저희 피아노반의 공용 보컬로이드였으니까요.”

공용.

미묘한 어감이다.

카이토는 ‘나’의 전용물이라는 인식 탓인지, 공용이라는 단어는 더러운 불순물이 낀 듯 불쾌감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D의 미묘한 표정변화에 A는 설명을 덧붙였다.

“공용. 예고는 그런 것도 있구나. 신기한데.”

“시범운행. 실패했지만. 저는 졸업 작품도 카이토로 했고.”

“피아노 전공이?”

“반주를 제가 했어요. 작곡은 다른 친구와 함께. 콜라보도 가능하니까.”

헤에, 들어보고 싶다. 진심 반 겉치레 반으로 뱉은 말에 A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결된 거실의 유리로 된 장식장의 문을 열었다. 꺼내온 CD를 넘겨주며 들어봐요. 건조하게 말했지만, CD속 음악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T예고의 졸업CD는 상업적으로 팔릴 정도로 퀄리티가 있다고 들었다.

“잘 들어볼게. 그럼 오늘은 이만 갈까. 시끄럽게 해서 미안했어.”

“앗. 네. 전화번호 드릴게요. 명함은 아직 없어서.”

“아아. 어. 종이 주면 나도 적어줄게. 짐정리만 하면 집에서 작업할거니까.”

정리 다 하면 초대할게.

얼떨결에 작업실 사람들 외엔 부모님 전화번호밖에 없는 단출한 전화번호를 넘겨주었다. 도시로 올라오면서 연락이 끊긴 지인들의 번호는 없는 셈 치고. A의 팔에 매달린 카이토는 친구가 생겨서 기쁘시겠어요. 하고 A를 올려다본다. 분명 카이토와 같은 기종인데도 낡고 수수한 분위기. 조용조용한 어조가 어른스러운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형이야. D형. 너도 다른 카이토는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친구 하면 되겠네.”

“친구-”

“카이토로는 A쪽이 형이야. 8년이나 움직였대.”

“와아. 그럼 노래 많이 부르셨겠어요. 부럽다.”

그렇지도 않아요.

현관에서 배웅하는 A의 등 뒤에 반쯤 가려진 카이토는 작게 손을 휘저었다.

일부러 시선을 내려 카이토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그의 카이토는 조그맣게 감탄사를 남기고 등 뒤로 사라져버렸다. 낯을 가린다는 A의 말은 지긋지긋하다는 어투를 담고 있었다.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생길 수가 있나. 의문을 품었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고 A의 집을 나섰다. 시간상으로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고개를 들자 해가 완전히 진 밤이 되어 있었다.

다음에 놀러와. CD도 잘 들을게.

“형. 문자 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야. 인사 안 해?”

“아….안녕히 가세요. 카이토도, 안녕.”

“응! 다음에도 마스터랑 놀러올게요!”

오늘은 놀러 온 게 아니라는 나의 말을 시답잖게 넘기는 카이토는 처음 만난 다른 카이토가 신기했는지 며칠 동안 아랫집의 카이토 말이죠. 하고 자신과의 차이점을 짚었다. 나와 카이토가 느낀 바는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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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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