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것/The Office!(수정전)'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4.09.21 The Office! 7.5
  2. 2014.09.21 The Office! 07
  3. 2014.09.21 The Office! 06
  4. 2014.09.21 The office! 05
  5. 2014.09.21 The Office! 04
  6. 2014.09.16 The Office! 02
  7. 2014.09.16 The Office! 01
  8. 2014.09.14 The office! 00

7.5는 또 뭔데...


The Office! 7.5

 

 

 

 

몸이 물먹은 솜마냥 무겁다. 손가락에 누군가가 추라도 달아놓은듯이 나에게만 우주의 중력장이 작용하는것 같다. 이느낌은 그래, 어렸을때 책에서 본 심해저에 산다는 물고기들이 겪는 일상의 수압일것이다. 그런데 나는 대기압의 세계의 사람이니까 지금의 이느낌은 너무하다. 귀에서는 왱왱하는 우주의 소리가 들렸다. 쿠궁쿠궁하는 기차소리가 심장에서 쿵쿵울리고 그 기차가 내 몸위로 지나가는것 같았다. 가위에 눌리는건 오랫만이였다. 어렸을때나 꾸던 악몽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불호령같은 낙인마냥 들리는 악마의 속삭임이 늪처럼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꺼지세요, 당신은 필요없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처럼 말의 무게가 콰당탕탕하고 나를 짓눌렀다. 내 삶의 의미, 이유, 그리고 그사람.

잔인한 말의 칼날이 무고한 죄인을 향했다.

 

 

 

 

*

 

 

 

 

" 과로시네요, 연말이라 일을 열심히 하셨나보네요. 같은회사 동료분이신것같은데 .. "

 

" 아... 과로외에는 다른 아픈점은 없습니까? "

 

" 영양실조가 조금 있으세요. 기러기아빠신가요? "

 

아뇨, 하고 쳐다보는 과장님의 손에 뼈마디가 허옅게 드러나보였다. 늘어진 과장님을 업고 헐레벌떡 들어간 응급실은 고맙게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드라마의 한장면마냥 콰당탕 문을 박차고 들어가 다가오는 간호사와 함께 그를 눕혔다. 코를 찌르는 술냄새에 으악하고 간호사는 질색을 했다. 취객을 데려오는곳이 아니에요 응급실은! 하고 따지는 말에 진찰만 한번 해봐달라고 사정을 했다. 평소답지 않게 조급하고 호들갑을 떠는것에 조금 창피했지만 지금상황에서 아무렴 그게 문젠가 싶었다. 잠에든건지 기절한건지 의식의 밑바닥을 헤메는 과장님은 보는사람도 불편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세상 그런표정을 짓는 사람이 아니였는데, 하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람이 너무 충격받으면 실어증에 걸린다던가, 기억을 잃는다던가 하는 TV프로를 얼마전에 본 참이라 말도안되는 불안은 더욱 커졌다. 안절부절하는 나와달리 침착함을 넘어 무기력해보이는 간호사는 능숙하게 체온,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호흡은 제대로 하시는거보니까 기절하신건 아니시구요, 하고 기절한건 아닙니까? 하는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분명히 예민하시니까 반응하실꺼라고 생각했는데 귀에다가 체온계를 넣는대도 꿈쩍하지도 않으셨다. 과장님의 소매를 걷던 간호사가 어머머-하고 안타까운 탄성을 질렀다.

 

" 엄청마르셨네요, 혈관이 잘 보여서 좋긴한데... 체온 조금 낮으시네요, 혈압도 조금 낮으시고. 근데 정상범위내에요. 영양제 놔 드릴테니까 받으시고, 그쪽분이 보호자신거죠? 이리와서 저기 차트칸좀 채워주세요. 나이랑 이름, 약먹으시는거 아시면 적어주시구요. "

 

- 37, KAITO...

약먹는건 아마 없으시겠지? 밥을 몇십번을 같이먹었는데 약을 숨어서 먹을리도 없을테니까. 성도 모르고 이런것도 모르고.

뭔가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라면 숨어서 약을 먹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서울테니까.

지금의 이 사단도 과장님이 나를 조금만 더 편하게 생각하고 말을 터놓을수 있었던 상사였다면 생기지 않았을것이다. 그거 하나 말한다고 내가 과장님을 잡아먹을것도 아니고 도데체 뭐가 그렇게 무서우셨을까? 아까 화를 참지못하고 소리쳤을때 표정이란... 그렇게 쉽게 소리치지말걸. 결국 믿는다 믿는다해도 나는 끝까지는 그를 믿지못한것이다.

간단히 생각해서 과장님이 이런 큰일을 벌일정도로 간이 크지가 않으신데, 뭘 의심하고 불신한건지 바보같이.

 

똑똑한방울씩 떨어지는 노란색 영양제가 관을 타고 들어갔다. 링거를 놓는다고 펼쳐놓은 팔소매로 흐트러진 옷을 말아 올렸다. 색색하는 숨소리가 조금씩 안정되는것같아서 내마음도 조금 놓였다. 표정은 여전히 찡그린채였다. 볼품없이 마른 카이토과장님은 영양실조가 오실때까지 뭘하셨길래. 같이 밥을 먹을때도 먹는것보다 남기는게 많은 그는 속병이 있다고 난감한 웃음을 지을때가 많았다. 이시대의 회사원이라면 한두개쯤 가지고 있을 속병일테지만 과장님은 남들보다 조금 더 애처롭게 속병을 데리고 사는것같았다. 커피를 마시지않는것도 매운음식을 잘 먹지않는것도 다 그때문일것이다. 속이 아프다며 점심을 거르는일도 자주있는 일이였으니까 약을 챙겨먹을만큼 자신을 챙기는 것도 아닌 멍청한 사람.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해지는 사람이다. 융통성이라고는 다 팔아먹으셨나.

시계는 열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간이의자에 앉아 계속 과장님에대한 생각을 했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진심으로 받아들이실까.

간호사는 간간히 와서 과장님이 정신을 차렸는지 확인하고, 나로선 알수없는 몇몇 주사를 놓았다.

차트를 정리하는등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그날의 일과를 다 마친듯한 간호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 계속 계실꺼에요? 이제 보호자분이 하실 일 없는데, 가셔도 괜찮아요. 그냥 피곤해서 잠든것같으니까요 "

 

" 아닙니다. 어짜피 늦었으니까요. 깨어나는것 보고 같이가겠습니다. "

 

" 네에... 그런데 실례지만 무슨관곈지 물어봐도 되나요? 아닌게 아니라 처음에 응급실 문 박차고 들어오실때 깜짝 놀랐다니까요,

전 처음에 등에 업히신분이 여자친구나 되는 분이신줄 알았는데 ... 후훗 "

 

" 제 부하직원입니다만... 술자리도중에 갑자기 쓰러져서..네. "

 

" 호오.. 친절한 보스를 둔 카이토씨는 좋으시겠네요, 그리고 회사에서 밥좀 잘 챙겨먹이세요. 어떻게 요즘세상에 단백질영양실조가 뭐에요! 사회생활하시는 분들이 말야. "

 

이래서 남자들은 안돼요, 고기만보면 다 단백질인줄 아시죠? 하고  단백질이 많이 들어간 식품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도 어려보이는 간호사에게 잔소리를 들을만큼 잘 못한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또한 과장님의 상태에 많이 놀란눈치로 보이고, 지금의 응급실에는 심심해보이는 그녀와 나 밖에 없으므로 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의 세마디를 계속 돌려가며 그녀의 말에 응대해 주었다. 환자가 없는 그날 밤의 영양학 강의는 영양제를 하나 더 끼워넣는 것으로 연장되었다. 아무래도 오늘밤엔 일어나기 그른것같아요, 만성피로도 있으신분같은데- 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링거를 바꿔끼워넣었다. 그리고 동틀새벽이 다 되어서야 파르르하고 희미하게 손이 움직이며 까랑까랑한 간호사의 목소리 사이로 신음소리가 배어나왔다. " 아... " 하는 고통에 찬, 너무도 힘없는 목소리였다.

기계적으로 응대하고 있던 나와 콩의 단백질에대해 한창 설명하고있던 간호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침상을 바라보았다.

 

" 과장님!! "

 

" 환자분 정신이 드시나요? "

 

술집에서의부터 기억이 없으실 과장님은 여기가 어디 ... 로 시작하고 나를보며 앗. 하고 끝맺었다. 상황파악이 느리신 분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간호사는 분주하게 다시 체온을 잴 준비를 하고 나를 잠시 내보냈다. 상의를 벗고 검사할게 있다는게 이유였다.

 

" 제가 말씀드린 식품들있죠? 그런것들이나 사오세요, 앞에 편의점 있어요. 그럼 커튼칩니다 " 하고 싱글싱글한 웃음을 띠며 옆의 커튼을 잡아당겼다. 뭔가 진 느낌이 들어 비싯한 표정으로 자켓을 챙겨들었다. 상의를 벗고하는 검사라니 그런게 뭐란말이야?

 

 

 

 

 

 

 

 

*

 

 

 

 

 

 

 

" 죄.. 죄송합니다 부장님 .... "

 

" 죄송합니다란 말좀 그만하세요. 그리고 "

 

죄송하시면 이걸 다 드시면 됩니다. 하고 병원앞 편의점을 쓸어온 봉지를 침대맡에 우르르 쏟아냈다. 편의점에서 돌아왔을때엔 링거액이 노랑색에서 하나더 추가된 투명한 것도 생겨있었다. 환자침대를 조금올려 반쯤 누워있던 과장님이 쏟아지는 두유, 김밥, 샌드위치, 빵, 데워서 손에 든 레트로트 전복죽등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싱싱코너라며 냉장고 안에있던 과일들도 다 쓸어담아왔고, 혹시 소화에 문제가 될까싶어 데워올수 있는건 모두 데워온 참이였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건 그 편의점에 전자렌지가 하나밖에 없었기에 한번에 데울수 있는양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걸어가 환자용침대에 달린 식탁을 올려놓고 봉지안에서 두유와 소화가 잘될법한 죽부터 꺼내올렸다.

 

" 잘사오셨네요, 몸에 별 문제는 없으세요. 잘먹고 잘쉬시면 금방 회복하실것같으세요. 저 투명한거 다 맞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시고

가시면 되요. 카이토씨 아시겠죠? 잘! 먹고 잘! 쉬셔야해요. 특히 수면부족이 심하신것같은데 저 보스님께 휴가라도 달라고 하세요. 안그러면 또 실려오실껄요? "

 

" 네에.. 저, 치료비는.. "

 

" 제가 계산했습니다. 간호사분 감사합니다. "

 

휴가라도 달라고하세요- 하며 나를 지긋이 쳐다보는 간호사는 반협박을 해왔다. 사실 과장님께는 유급휴가도 남은게 있으니까 그걸 써도 상관은 없겠지만, 이런 사고를 친 마당에 절대로 그 자신이 쓰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쓰면 사람들 말도 조금 이상하게 돌것같고, 중요한 거래 망쳐놓고 잠수탔다던가. 그런 악질의 말들이 잘 도는 세계니까 말이다. 안타깝지만 시말서 정도는 써주고 휴가를 가주는게 후폭풍을 위해서도 좋은것같지만-

 

" 우선 이거나 좀 드세요. 다 먹기전까지는 아무데도 못가십니다. "

 

" 어...너무많은데요 ..일단저... 내일 출근은, 아니 오늘인가. 아니 그전에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쿠포사장님은..."

 

" 아- 하세요. "

 

오옷, 하고 얼떨결에 죽을 받아먹은 과장님은 우물대면서 손짓을 해댔다. 삼키고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내가 다시 죽을 주었기때문에 말을 할수 없는 상태였다. 그냥 드시기나하세요. 꼭꼭씹으세요. 하고 엄마같은 잔소리를 하며 한입한입 먹이는데 오물오물먹는게 어렸을때 동물원에 가면 토끼에게 상추를 먹였을때의 향수가 느껴졌다. 속이 쓰리진 않으십니까? 하는 물음에 커다랗게 도리질하는게 어느정도 기운을 차린것 같았다. 죽을 다 먹이고 이제는 병 두유를 뜯어 빨대를 꽂아주었다.

 

" 쭉 빨아마시세요. 따뜻한거니까 속 뜨끈해지고 좋을겁니다. "

 

" 배부른데요 .. "

 

" 안됩니다. 마시세요."

 

으응..하고 늘 보여주는 난처한 표정을 지은 과장님 손에 병두유를 쥐어주었다. 계속 실내에 있었던 내손이 따뜻한게 미안할 정도로 여전히 손은 차가운 상태였다. 죽이 그렇게 많은양도 아니고 사실 나같으면 저거 세개도 먹고 남았을텐데 하나도 겨우겨우 다 먹고 배가부르다니 이건 자기가 이십대 다이어트하는 여자들도 아니면서 서른일곱의 중년기 몸에 실례되는 칼로리수치다. 이러니 영양실조가 오고도 남지 싶었다. 두유를 손에 만지작만지작하고만 있는 과장님께 손짓으로 마시라는 표시를 했다. 그제서야 빨대를 입으로 가져가 조금씩 빨아먹으시자 나는 서둘러 데워온 빵, 삼각김밥같은 탄수화물군을 꺼냈다. 끝없이 나오는 음식들에 질린표정의 카이토과장님이

 

" 아직도 이렇게 많습니까? 저는 이렇게 많이먹지 못하는데요.. 부장님도 좀 드시죠.. "

 

" 이건 전부다 과장님껍니다. 그리고 이건 제것 "

 

하고 아메리카노를 탄 커피컵을 흔들었다. 빵봉지세개를 보여주며 어느것부터 드실래요? 하고 선택권을 주자 두유를 먹는 과장님은 웃을따름이였다. 지나가는길에 힐끔힐끔 우리를 보는 간호사도 후훗하고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갔다. 선택하지 않으면 제맘대로 드리겠습니다. 하고 초코빵의 봉지를 주욱 뜯어 반쯤떼내어 과장님의 손에 쥐어다 드렸다. 안에 들은 초코크림이 녹아 손에 묻어나길래 혀로 빨아먹었다. 싸구려지만 달달한게 괜찮은 맛이였다.

 

" 감사합니다 .. 잘먹겠습니다. "

 

" 깨작깨작 드시지말고 좀 팍팍좀 씹어먹으세요, 아니 영양실조가 말이 되는소립니까? "

 

" 죄송합니다 .. "

 

" 죄송하자고 한말이아닙니다. 과장님이 왜 저한테 죄송해야합니까? 지금 죄송한건...  "

 

빵 녹습니다. 일단 드세요, 하고 말을 돌렸다. 과장님께 시도때도없이 듣는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하는말을 내가 하려니 왜이리 어려운지 귀가 빨개지고 입이 굳는 느낌이였다. 손에서 녹은 초코크림을 입에까지 묻힌것도 모른채 과장님은 아우 달다.. 하고 우물대며 말했다. 빵을 한입에 넣어 삼키고는

 

" 다 먹었습니다, 그럼 이제 한마디 하게 해주세요. 조금만 쉬고 먹어요.. 배터지겠습니다 진짜로요. "

 

" 고작 이정도먹었다고 배가 터지진않습니다. 그리고 아까 술집에서는 과장님이 쓰러지신뒤 제가 바로 업고 병원에 온것밖에 없습니다. 인터넷과의 거래는 파기된거구요. 이점은 제가 책임질테니 과장님께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시말서나 몇개 쓸 준비를 하시면 ... "

 

" 어째서요? 왜 부장님이 제가 망친일을 책임지십니까. 제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니 제가 책임... "

 

" 제가 아까 술집에서도 말했다시피 과장님은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부족한건 제 믿음이였죠. 죄송합니다. 과장님은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는데,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봅니다. "

 

고개를 숙인 내모습에 과장님은 퍽 놀란눈치로 어버버대며 아니에요, 아닙니다! 하고 자기도 고개를 얼른 숙였다. 내가 고개를 들자 따라들고서는 당황한 눈치로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이 참 예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입술에 묻어있던 초코크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순식간에 새빨개진 과장님의 얼굴이 잘 익은 체리같았다. 역시 다네요, 하고 크림을 먹으며 말했다. 내일 출근만 하지 않았더라면, 과장님이 링겔만 하고있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영양실조라는 사람을 빨아먹을순 없지.

 

 

" 자, 다음은 빵? 밥은 어떠십니까? "

 

" 그..그만먹으면 안될까요 .. 저진짜 배부른데요, 조금만 더먹으면 토할수도 있을정돕니다. "

 

" 토하시면 안되고, 그럼 밥을 먹어볼까요? "

 

 

 

 

 

 

*

 

 

 

 

마지막 바나나를 까서 먹인후에야 나는 남은 아메리카노를 후룩 마실 여유가 생겼다. 먹지않겠다. 더이상은 안들어간다는걸 어르고 달래가며 꾸역꾸역 먹이니 평평하다못해 쑥 들어가있던 과장님의 배가 조금 불룩해진게 보여서 흐뭇했다. 그렇게 먹고나니 잠이 쏟아지는건 당연지사로 음식을다 먹인지 삼십분도 안되어서 새근새근 곯아떨어지셨다. 평온한 표정으로 주무시는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여서 잠이 쏟아졌다. 환자침대에 얼굴을 늬이고 차가운 과장님의 손을잡아 내손밑으로 겹쳐넣었다. 내일 출근시간까지 일어날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미 내일 아침출근은 불투명해 보였다. 상황을 설명하려면 시말서가 몇십장은 필요할것 같았다. 입사이후 최대 사고가 이렇게 펼쳐지는구나. 오랫만에 한소리 듣겠구나 싶다.

 

그래도 과장님을 잃지않아서 다행이다.

 

" 속좀 그만 썩이세요. 못살겠네 정말 "

 

틱틱하고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자 아까와는 다르게 찡그리는 과장님이 귀여워서 몇번이고 볼을 꼬집고 찔러댔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이 사태를 해결할때가 되면 더 괴롭히고 싶어지겠지. 앞으로 프로젝트맡길때는 내가 하나하나 다 검사해야겠다, 곧 올 인턴들도 맡으셔야할텐데.. 휴가는 꿈도 못꾸도록 열심히 일을 시켜야겠다. 밥먹는것도 이제 신경좀 써야지- 하며 차가운 손을 배게삼아 잠에 들었다.

시즌을 맞은 겨울의 첫눈이 주변의 소리를 다 잡아먹는 조용한 새벽이였다.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07  (0) 2014.09.21
The Office! 06  (0) 2014.09.21
The office! 05  (0) 2014.09.21
The Office! 04  (0) 2014.09.21
The Office! 02  (0) 2014.09.16
Posted by michu615
,

The Office! 07 

 

 

 

띵하고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깨달음의 종이 아닌 충격의 종이였다. 흐릿한 의식을 선명하게 깨우는 그 충격발언은 그동안의 가쿠포팀장, 아니 사장님의 거만한 모습을 어느정도 설명해주었다. 잠시, 잠시만.. 잠시만. 하고 생각을 해보려해도 술기운은 계속 뇌를 잠재우고 어지럽혔다. 허우적대는 내 모습이 웃기게 보였을 것이다. 회를 집어먹는 가쿠포사장님은 매우 즐거운 목소리를 냈다.

 

" 아무리 30도짜리 술이라지만, 한잔은 버틸수 있을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하하하.. 요즘은 영업부가 술을 잘 안마시나 봅니다? "

 

" 제...가 몬마시..는겁니다. 그리구 방법... 제가 크립토...늘 떠나지 아늘 방법, 알려주세요오 .. "

 

" 아후, 여기 물좀 마시세요. 정신을 못차리시네... 카이토 과장님이 크립톤을 떠나지 않을방법이라. 그런거 없습니다. "

 

" 네에? 아까는... "

 

그거야, 술한잔 먹일려고 장난으로 한말이죠. 그걸 믿으십니까... 순수하시네요. 하는 악당들이나 할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냥 마시기 싫으셔서 못마신다고 하시는줄 알고 그랬는데 정말 못마시는거네요, 하면서 혀를 끌끌찼다. 나쁜새끼.

아...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제정신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가 최종무기까지 들고 나섰는데 나는 체력도 모자란 상태였다. 솔직히 지금의 상태로는 이십분도 채 안되어 쓰러질것이고, 그사이에 사직서 대필을 하든 어쩌든 무서운일이 충분히 일어날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부장님이 같이 온다고할때 그냥 같이 올껄, 술 마시지 말라고했는데 술까지 마시고. 부장님이 하라는것 무엇하나 똑바로 한게 없었다. 못난 자신도 밉고, 이렇게 못된짓을 서슴치 않게 하는 인터넷의 사장님도 미웠다. 이대로라면 정말 인터넷으로 팔려가겠어.

가기싫어, 이렇게 가는건 진짜 싫어.

 

" -장님...카이토과장님! "

 

" 흑...네에 .... 흐어어어엉..."

 

" 왜... 왜 우십니까, 뚝 그쳐요.. 이것,참.. "

 

남앞에서 소리내고 우는게 부끄럽단건 아직 알 정도라서 생리적으로 흐르는 눈물만 뚝뚝 받아냈다. 입술을 잘근씹어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흡, 하고 딸꾹질이 나오는것도 참았다. 술기운과 울음으로 윙윙대는 귀가 가쿠포사장이 하는말들을 모두 음소거시켰다. 얼른 이자리를 벗어나서 화장실이든 가서 울음좀 토해내고, 술도 토해내고 싶었는데 지금상태론 일어나면 걸을수 없을것 같았기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내가 우는것에 당황한듯한 가쿠포사장은 화장실을 가자고 나에게 권유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손을 타고싶진 않았다. 더이상 내 몸에, 내 영역에 그가 들어오는게 구역질날것 같았다. 이순간 생각나는 단 한사람.

옆에있는 자켓에서 핸드폰을 꺼내 단축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하아, 하고 숨을 내쉬었다. " 전화좀 쓰겠습니다.. " 하고 핸드폰을 들고 기다시피 해서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내 술취한 걸음걸이보다 가쿠포사장의 문을 잡는 타이밍이 더 빨랐다. 그는 아이를 혼내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 나가시는건 금지입니다. 여기서 통화하세요 " 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짜피 지금의 나는 몸싸움으로든 입으로든 이길수 없을걸 알기에 문에 기댄체 신호음이 가는걸 기다렸다.

 

받으세요, 받아주세요 제발.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며 초조하게 기본신호음의 간헐적인 뚜둑하는 음을 넘겼다.

내가 전화거는 사람을 예상한듯한 가쿠포사장도 오신다면 좋겠네요 .. 하고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 여보세요, 과장님? 미팅중 아니십니까? "

 

아무렇지않게 받는 부장님의 목소리에 막아뒀던 둑이 무너졌다. 절대로 우는 목소리 안내리라 다짐했건만,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엄청난 눈물과 함께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수화기 건너편의 부장님도, 옆에있던 가쿠포사장도 놀란 눈치였다.

부장님은 계속 나를 진정시키려고 " 과장님, 왜그러십니까? 울지말고 이야기를 해보세요. 과장님, 카이토과장님! " 하고 소리쳤고 가쿠포사장은 " 우와 ..... 성깔있으시네요. " 하고 혀를 찼다. 나는 미아가 된 아이가 엄마를 만난듯이 수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은채 엉엉댔다. 십분정도를 그러고 있으니까 가쿠포사장이 내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

 

" 허어어엉.. 에? "

 

" 여보세요, 과장님? "

 

" 안녕하십니까. 인터넷컴퍼니의 카무이 가쿠포팀장라고 합니다. 전화상으로 먼저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후지오카 부장님. 제가 잘 못해서 과장님께 술을 한잔 먹이게 되었는데 지금 통제가 안되고 있습니다. 삼심분째 울고만 계세요. 이거 ... "

 

" 네, 안녕하세요. 아하... 술을 드셨구나. 어쩐지, 거기가 어디십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못마친 미팅은 제가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갈테니 죄송하지만 장소를 이 번호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폰을 잡기위해 버둥대는 카이토과장은 아무리봐도 제 나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줘요오, 내포온...부장니임...하는 혀꼬인말투와 푹젖은듯한 푸른빛 눈이 색기를 뿜어냈다. 데려와서 잘 구슬리면 한번 따먹어 볼수도 있을것 같았다. 술한잔에 이렇게 혼수상태라니, 누군진 몰라도 바깥에서 술먹는날엔 전전긍긍할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폰을 쥐어주니 헤에, 하고 헤벌쭉 웃음을 지었다. 흔들거리는 몸을 벽에다가 기대놓고 양 어깨를 잡았다. 깡마른 두 어깨와 쇄골뼈가 큼직하게 만져졌다. 반쯤 벌린 입술은 자기가 깨물어서 빨개져 있었고, 언젠진 모르겠지만 난리통에 스스로 풀어헤친 와이셔츠단추까지 해서 엉망이였다. 너무 무방비 상태인걸 보니 못된 장난기가 또 발동했다.

와이셔츠 목에있는 단추를 하나 더 풀어서 쇄골이 보이도록 걷은후 자국이 남도록 쇄골에 키스를 했다. 가만히 죽어있던 과장님이 " 음...." 하고 부드러운 신음을 냈다. 그 키스마크를 찍어 후지오카부장의 폰에 보냈다. 아, 어떤반응을 보일지 너무 기대된다. 얼마나 놀랄까? 그러는 와중에도 입술에 손가락을 갔다대니 잘근잘근 깨무는게 무척 귀여워서 손가락으로 입천장을 살살 긁어주었다. 술기운에 예민해진 몸이 움찔움찔하며 민감해진 자극을 받아들였다. 실낱같이 남은 그의 이성이 팔을 들어올려 내손을 저지하려 했지만 느려진 그 손길을 탁 쳐내 내 무릎사이로 끼워넣었다. 고개를 돌리려고 도리질 하는것을 손으로 잡았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핥으니 하도 많이 울어서 그런지 소금기가 없는 맹물맛이였다. 그는 조금 떠는것 같았다.

이것봐라- 점점 재밌어 지는데? 조금 극적인 연출을 해볼까.

 

 

 

 

***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데 가게 이름만 덜렁 적힌 문자와 함께 멀티메일이 왔다. 어느가에 있는 가게인지를 알려줘야 찾아갈것 아닌가. 덜렁 '하루카'라는 가게이름만 적으면 그 가게가 한두개도 아니고. 다시 전화를 해봐야겠군, 

과장님정말.. 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드렸는데.. 회의끝나기엔 조금 이른시각. 회의하는 중에 술을 마시진 않았을꺼고. 무엇보다 아까 ' 못다한 회의는 제가 이어서 하겠습니다 ' 란 말에 그는 회의는 다 끝났다던가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과장님의 표정이라던지 행동들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긴장을 한것같긴 한데 미팅때문에 긴장을 한 모습이 아니였다. 오히려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는듯한게, 내게 잘못이라도 한듯이 아까 보고서를 가져왔을때 눈도 마주치질 못했다. 게다가 보고서 잘 써왔다고 좋은말까지 해줬는데.. 그러면 활짝 웃을줄 알았는데 그런 세상다죽은 표정이라니. 어쩌피 안좋은일 있냐고 물어봐도 절대 대답안하실걸 알기에 더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따라간다는 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게 제일 수상했다. 반말에다가 소리까지 지르는건- 무지 급하셨던거겠지.

다운이 다 되어 같이온 멀티메일을 열었다.

 

" 이게뭐야 "

 

내 눈을 의심했다.

사진속에는 새하얀 과장님의 쇄골에 새겨진 선명한 키스마크가 보였다. 저번에도 보았던 술마시면 탈의하는 과장님의 버릇이 이번엔 목단추에서 멈춘것 같았지만 반쯤찍힌 얼굴과 축처진 어깨가 이미 술로 벌개져서 그가 인사불성이 아니란사실을 알려주었다. 게다가 이 앞의 브이를 하고있는 손은 과장님이 아닌 다른남자의 손..인데 즐거워 보였다. 술취한 친구에게 짖궂은 장난을 치는 듯한 이거. 대체 뭐지? 가쿠포팀장이란 자와 원래 알던사이라고 해도 이건 희의중에 나올게 절대 아닌데.

택시기사에게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하루카'라는 일식집으로 가달라고 했다. 과장님이 사무실을 나선게 여섯시이십분, 일곱시에 약속이라고 한걸 보면 넉넉잡아 나간것이므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일것이고, 지도로 검색을 해보니 가장 가까운 '하루카'가 택시로 이십분거리였다. 과장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갈뿐 전화를 받으시지 않았다. 하긴.. 술까지 마시고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셨다면 넉다운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쿠포팀장이란자는 카이토과장님이 죽어있는틈에 키스마크를 만들고 브이까지 한 사진을 나한테 보냈다는건데,

 

그건 명백한 도발이였다.

 

 

내가 열받아서 얼른 찾아오길 원하는 것이겠지? 왜 내가 빨리 당신을 보러가야할까. 그리고 왜 과장님이 자신의 소유인것마냥 변태같이 키스마크나... 그건 섹스한 나도 마찬가지인가. 확실히 술을 마신 과장님은 평소와 분위기가 좀 많이 다르긴 하지... 그래도 나는 그의 상사고, 좀더 오래본 관계이기도하고. 아무튼 가쿠포팀장이 크립톤과의 협력 말고도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단건 확실했다. 분명히 술을 마시기전에 못 마신다고 한번쯤은 말했을것이다. 자신이 먹지말라고 그렇게 일렀기도 했고, 오늘의 몸 상태가 좋아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마시면 어떻게될지는 과장님도 알것이였다. 그런데도 마셨단것은 그 리스크를 짊어지면서도 얻을게 있었단거고, 그 이익을 얻기도 전에 쓰러진게 문제지만. 리스크라. 지금으로썬 생각나는건 협력문제밖에 없었다. 과장님이 어떤것을 해주면 인터넷과의 협력을 해주겠다는것. 낮은 조건이아니라 과장님이 무언갈 해주지 않으면 아예 협력을 안하겠다고 한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좀더 낮은조건에서 협력할수 있을것 같다는 과장님의 말은 거짓말이 되는것이였다. 아니겠지, 거짓말을 왜하시겠어? 싶었지만 그 선택지가 오늘 과장님의 이상한 모습, 따라간다니까 소리지른것. 지금의 상황 모든것을 설명해줄수 있었다.

 

카이토과장님이 그럴분이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겠지. 하고 자신을 달랬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수가 없었다. 과장님이 거짓말을 한것이면 정말 그자리에서 폭발할것 같았고, 거짓말을 안하신거라면 가쿠포팀장이란놈이 무언갈 꾸민거니까 그자식을 어떻게 하던지..내가 모르는 데에서 나를 농락하고, 회사일가지고 거래를 한다던가. 와, 그럴 담력까지 있으신 분이 이때까지 어떻게 내밑에서 짓눌려 사셨을까. 실실웃기만 잘 하는줄 알았더니 그런면도 다 있으시고.. 그런일이 있다면 상사인 내게 먼저 알려야 하는것 아닌가? 내가 그정도로 신뢰를 못주는 부장이였던가? 신뢰를 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를 생각한다면 이런식은 아니지.

 

 

" 도착했습니다. "

 

" 감사합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습니다. "

 

서둘러 가방을 챙겨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일식당으로 들어섰다.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들이 구십도로 인사를 하는것을 무시하고 마루를 성큼성큼걸어 룸쪽으로 걸어갔다. 제발 내 예상이 빗나갓기를. 그냥 가쿠포라는 건방진놈이 과장님께 말도안되는 말로 구워 삶아 바보같은 그사람이 속아 넘어간것이길. 내가 열심히 일구어놓은 영역을 거부하지마세요, 당신은 이미 내 영역의 사람입니다.

 

 

 

 

 

***

 

 

 

 

" 히야, 일찍 오십니다. 차가 안밀리던가 보죠? 중심가라서 밀릴줄 알았는데요. "

 

미닫이 문을 열자 펼쳐진 광경은 상상 그 이상이였다. 잘 차려진 식탁은 거의 손대지 않은채였고, 이미 맛이가서 푹 죽은 과장님은 보라색머리의 능글맞게 생긴놈의 무릎을 베고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덮어둔 자켓은 크기로 봐서 과장님의 것이 아니였다. 과장님이 무슨 인형이라도 되는듯 머리를 쓰다듬는게 이거 보통 미친놈이 아닌것 같았다. 아주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듯한 말투로 앉으세요, 술잔을 하나 더 내오라고 하겠습니다. 하고 생긋 웃으며 자신의 앞을 손으로 가리켰다.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도데체 뭘 어떻게 하면 이런게 미팅자리에서 생길수 있는걸까. 그리고 과장님... 정말 미칠것같았다. 도데체 저사람에겐 방어라던지 자신을 지킨다는것 따윈 존재하질 않는건가? 나이가 몇살이신데 술한잔먹고 다른남자 무릎을 베고 뭘하시는.. 혈액이 거꾸로 흐르는듯한 빡침이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들었다.  나는 엄청나게 불쾌한 표정으로 과장님쪽으로 다가가 그놈의 무릎에 누워있는 카이토과장님을 툭툭 때려 깨웠다.

 

" 과장님, 카이토과장님... 저 왔습니다. 정신좀 차려보세요! "

 

" 으음... 부...장.. "

 

" 예, 왔으니까 당장 일어나시라구요."

 

과장님은 잠시 고개를 드는듯하다가 다시 가쿠포팀장의 무릎에 풀썩 쓰러졌다. " 이런, 과장님이 정말 많이 취하신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 하고 누가 들어도 빈정대는 듯한 말투로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우리 이야기 할것 있지 않습니까? 하고 쿠쿡 웃었다.

나는 과장님의 허리를 안아들고 쾅쾅걸어가 반대편에 앉았다. 도저히 당분간은 일어나시질 못할것 같았다. 내 가슴팍에 안긴 과장님이 불편하신지 우웅..하고 잠시 몸을 뒤척이다가 팔을 바깥으로 내민자세로 만족스럽게 잠이 들었다. 엄마코알라가 아기를 안은듯한 포즈가 웃겼지만 상황이 거지같은지라 웃음도 나지 않았다.

 

" 과장님이 참 귀엽습니다. 어디서 그런걸 찾으셨습니까? "

 

" 제가 회사에 입사할때부터 계셨습니다만. "

 

" 그렇겠지요, 이렇게 뵈니 영광입니다. 후지오카 부장님. 궁금한거 많으실것같은데..성심성의껏 대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과장님께 무슨 빌어먹을 제안을 했습니까? "

 

" 이야! 역시 똑똑하시네요. 빌어먹을이라뇨, 무슨 그런 말씀을.. 전 알려드린것 뿐입니다.

  과장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크립톤에 있을바에야 더 낮은조건으로 체결해줄테니 인터넷으로 오시라구요, 오시지 않으셔도 채결은 하되, 그건 원래의 조건으로 하는것. 그게 전부였습니다. 과장님이 보고서에 더 낮은조건을 쓰시지 않으셨습니까? "

 

" 인정...? 크립톤이 과장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구요? 낮은조건.. "

 

" 인터넷으로 오시겠단것이지요, 과장님이 선택하신겁니다. "

 

나에게 상의 하나도없이 이런걸 선택했단 말인가? 이건 엄연한 부당거래였다. 크립톤이 과장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도데체 그건 누구생각이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어드바이스하고, 잘 하지도 않는 짓 해가며 내사람으로 만들어 놨더니 이제와서 인터넷으로 가겠다고?

외로우시다면서, 나한테 그렇게 말해놓고. 칭찬한번해주면 그렇게 웃어줄...칭찬한적이 없구나, 그렇게 앞에서는 실실웃으면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게해놓고. 속으로는 인터넷으로 가겠단 꿍꿍이를 숨기고 지금도 안겨서 세상편한 표정으로 자는게 화가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나를 무시해도 정도껏 무시해야지 지금 사람 가지고 논것아닌가. 이럴수가.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최악의 시나리오다.

 

" 화가나십니까? "

 

견딜수 없는 배신감이 밀려왔다. 회사를 그만두면 그만두는거고, 옮기면 옮기는거지 이렇게 더러운 형태로 끝내는건 과장님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단다. 나는 과장님의 이야기가 듣고싶어졌다. 사실이라면 진짜 입으로 들어야지. 정말로 크립톤이, 제가 과장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 과장님!! 아... 미치겠네 "

 

"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시려구요? 지금상태에서? 몸도 못가누시는데.. 소용없습니다. "하고 고개를 젓는 가쿠포팀장은 여유로운 모습이였다. 그는 과장님이 인터넷에 올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말고는 더 궁금한거 없습니까? 좀더 생각하고 오신줄 알았는데요.

하는 건방진 말을 하며 회를 한점 집어 먹었다. 이미 사직서는 써놓으셨는데 내질 않으셨다고 하고, 저희쪽에서도 카이토과장님 아니, 인터넷으로 오신다면 바로 팀장으로 모실 계획입니다. 새로운 부서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원래 카이토 과장님의 전공은 영업관리쪽이라고 하시던데, 지금의 하는일과는 조금 다르시지 않습니까? 부의 총괄이시란분이 사원들의 적성조차 모르시고 마구 밀어붙이기만 하시니까 이렇게 되시는 겁니다. 쯧쯔

 

나는 더이상 참지못하고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릇들이 들썩이며 서로가 부듸쳐 흩어지는 소리를 냈다. 소리에 놀란 과장님이 화들짝 놀래 고개를 들고 앉았다. 내 넥타이를 쥔 과장님의 손은 창백하게 차가워 보였다.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가쿠포팀장을 번갈아 바라보는걸 보니 어느정도 상황파악을 하신것 같았다.

가쿠포팀장도 이외라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 도데체 당신이 뭔데 우리를 평가합니까? 팀장정도면 저와 같은지위밖에 안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무슨 권리로 우리 부서를 평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과장님의 전공이 영업관리쪽이란거 알고있습니다. 그쪽으로는 저보다 더 뛰어난것도 알고있구요. 당연히 입사때부터 그쪽 담당일을 해오셨으니까요, 하지만 영업관리만 잘해서는 더이상 승진이 되지 않습니다. 과장님은 다른쪽일을 하셔서 충분히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 있는 자격, 노력도 할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제밑에서만 삼년차신데 매번 과장님의 능력에 놀라는게 많습니다. 조금만 더 요령이 있으셨다면 옛날에 부장하시고도 남으셨을겁니다. 영업직에서 술을 못하는데도 이정도로 있을수 있다는게 어떤일인지 잘 아실텐데요, 그런 소중한 인력을 상사인 저에게 묻지도 않으시고 빼가시겠다? 웃겨서 말이 안나옵니다. 사장님이 와서 데려간데도 멱살잡을판국에 어디서 팀장따위가 와서 그따위 더러운 제안이나 하십니까? 인터넷쪽의 사장님께 정식으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참나, 건방진건 인터넷의 컨셉입니까? 과장님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셨습니까? "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내 말에 끄덕끄덕하고 일리있단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나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기분나쁜 웃음을 크게 푸하하하하핫하고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잡고 끅끅넘어갔다. 나는 과장님이 잠에 들지않도록 허리를 일으켜 옆에다 앉혔다. 허리를 툭툭쳐 세우니 곧게 피는걸 보고 지금 엄청나게 버티고 계시는구나-하고 감탄했다. 그래도 몸이 흔들리는건 어쩔수 없는지 계속 앞뒤로 까딱까딱 흔들렸다.

 

" 아하하하하.. 아 진짜 웃겨 죽겠네요. 크립톤분들은 어찌 이리 하시는 말이 다 똑같으신지. 푸하하핫, 누가 상사아니실까봐. 아, 그럼 지체 하지않고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바로 인터넷의 사장 카무이 가쿠포입니다. 사실 후지오카부장님은 제가 이름을 말하는 순간 아실줄 알았는데, 들어보시지 않으셨나요? 제가 이름을 숨기고 다니는 편이긴 합니다만.. 유명한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이건 또 무슨소리야? 하는순간 옛날에 인터넷의 사장-이라고 들은 이름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유명한 가수의 이름과 비슷하다고 흘려들었는데! 옆을 돌아보니 과장님은 이미 알고 계셨단듯 슬픈눈으로 끄덕였다.

 

 

 

 

 

 

 

***

 

 

 

 

 

 

그리하야 내막을 알게된 나와 과장님, 그리고 가쿠포사장은 삼자 대면식의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유만만하게 싱글싱글 기분나쁜웃음을 시종일관 잃지않는 가쿠포사장. 언젠가 과장님이 중요한 서류를 날려먹은 그날보다 더 화난표정의 나, 분명히 여기엔 내가 모르는 내막이 있을것이다. 그러니까 내 옆의 과장님이 불안해 죽을것만 같은 얼굴로 울먹거리고 있는것이리라. 앗, 저어...하고 옴짝이는 입술이 벌건걸 보니 또 입술을 깨무신것 같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발을 꼼지락꼼지락 대는것도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이셨다. 항상 혼날때마다 입술을 깨물고 발가락을 꼼지락대는게 귀여워서 푸훗하고 웃음이 나온적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싶으셨는지 풀어진 와이셔츠의 단추를 여매보려 하셨지만 역시나 술에 취한 과장님의 손가락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낑낑대며 부시럭대는걸 에휴,하고 한숨을 쉬며 잠가 주었다.

 

" 엄마같네요, 보기좋습니다. 실제로는 과장님이 더 나이가 많으시다죠? 귀여우셔라.. "

 

" 나이 많으신 분께 귀엽다고 하시는건 예의부족 아니십니까? 사장씩이나 되시는 분이시라면 그정돈 상식입니다. "

 

하고 가쿠포사장은 워워-하고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나와 가쿠포사장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에 눌린 과장님은 무언가를 말하고싶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 부..부장...니..." 하다가 돌아본 나의눈빛에 히익 하고 숨을 들이키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셨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그럴만한건 가쿠포사장의 제안이야기였으니까. 그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지금 당장 과장님을 집어 던져도 속이 풀릴것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믿었다. 모든것이 저 재수없는 장발사장의 농간이란것을. 남자가 징그럽게 장발에 포니테일은 뭔가 싶다. 게다가 과장님에게 하는짓을 보면 변태가 분명했다. 저런변태가 사장인 회사에 보낼바에야 차라리 농촌에 일을 하러 보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때에 먼저 말을 꺼내면 얻을게 없다. 자기가 먼저 재밌어하며 이야기를 하기를 기다렸다. 그래, 한번 재밌게 놀아봐라.

 

" 믿지 않으시나 봅니다, 제 제안을 과장님이 수락하셨단것을? "

 

" 그거야 본인입에서 들어야 할 이야기죠. 그렇지 않습니까 과장님? "

 

" 네? 네에... "

 

과장님에 임팩트를 넣어서 말했더니 또 흠칫하면서 놀라는 모습이 신빙성은 떨어져보이지만, 남의 식구보단 자기식구를 믿어야 하니까. 그리고 과장님은 정말 그러실분이 아니다. 아니셨으면 좋겠다. 제발 용기좀 내서 저 변태사장을 바라보며 거짓말하지마!! 라고 저한테 했던것처럼 소리좀 쳐주세요. 답답해서 뒷목잡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니까요.

그럼 본인입으로 들어보죠- 하고 가쿠포사장은 과장님을 쳐다보았다. 저 느끼한 눈빛에 왜 놀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술이 좀 깨셨는지 초롱하게 슬픈눈이 살아난 과장님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아까 대성통곡을 하던걸 생각하면 담담한 목소리였다.

 

" 그...이..일단은, 술...안마신댓는데 마셔,서 죄송...합니다 부장님...또 귀찮게 하네요. 신경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 그리고 숨겨서 죄송합니다..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 읏.. "

 

과장님은 울음을 참기위해 엄청나게 말을 끊어서 하셨다. 처량하고 처참하기까지한 그 말보다 더 내게 충격인것은 그게 사실이란 점이였다. 최후까지, 모든 상황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나는 과장님을 믿었는데 숨겨서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합니다로 해결될 문제인가? 피가 거꾸로 솟다못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배신이란말이 내머릿속을 지배했다. 정말 말 그대로 믿음을 등졌다. 한마디만 하고 일어서리라, 내 마지막 이성을 달래며 과장님의 멱살을 잡고 이야기 했다.

 

" 그럼 가쿠포사장님의 말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정말로 크립톤그만두시고 인터넷가신다구요? 누구마음대로 그런걸 결정하셨죠? 저한텐 한마디도 없으시다가 뒷통수치시는게 특기십니까? 지금 이때까지 저한테 엿먹으신거 다 해소하고 가시려고 이런거 꾸미신거에요? 하! 그러면 아주 잘 이루어 지신것 같네요, 아까 사진도 둘이 짠겁니까? 그렇게 마구 굴리는 싼몸이신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자존심도 뭣도 없으시네요. 저속해서 말이 안나옵니다. 당신같은 사람은 우리 회사에 필요없습니다. 꺼지세요! " 

 

버럭버럭소리를 지르고 던지듯 멱살을 놓았다. 모든게 화가났다. 호오,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저 빌어먹을 인터넷의 사장도, 아무말 못하고 떨고만있는 어리숙한 배신자도.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할건 난데 왜 자기가 피해자인 척을 하는지... 저것도 다 연기일꺼라 생각에 역겨웠다. 몸을 섞었던것도 다 연기였고, 방긋방긋 웃던것도 연기였고.

이젠 다 필요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이상 이 더러운 곳에 한시도 숨쉬고 싶지 않았다. 공기조차 더럽고 역겨웠다.

" 알아서 잘들 해보십시오, 크립톤을 얕보다간 큰일날겁니다. 과장님... 아, 이제 과장님도 아니시지. 사직서는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제선에서 처리할테니까요. "

 

그때였다. 바들바들떠는 차갑다못해 시체같은 손이 나가려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은것은.

정말 끝까지 사람 기분 더럽게하는-

 

" 떠날마음 없어요 ... "

 

돌아본 과장님의 눈에서는 어느때보다 큰 눈물방울이 뚝뚝떨어지고 있었다. 마룻바닥으로 떨어진 눈물들이 마루의 색을 짙게 만들었다. 감정의 끝에서 터지는 울음을 막으려는 노력이 떨림으로 이어졌다. 흑, 하고숨쉬는게 아니라 우는것처럼 들리는 소리가 말소리와 함께 나왔다. 진실로 말에 무게가 있다면,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는 엄청난 감정이 실려있었다. 마치 오래된 성당의 오르간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듯, 내마음속을 진동시켰다. 그건 내가 과장님에게서 본 가장 최후의 진실이였으며, 나는 무언가 크게 오해를 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 전 ...크립톤이 좋습니다.. 버리지 말아주세요 .. "

 

" 그럼 아까는 - "

 

하고 질문하는데 바짓가랑이잡은 손이 스르르 풀리더니 털썩하고 처량한소리로 과장님이 옆으로 쓰러지셨다.

 

" 이거아주...드라마가 따로없네요, 과장님이 오늘 많이 힘드셨나봅니다. 이제야 눈치 채셨습니까? 과장님이 얼마나 헌신적인 분이신지.

제가 제안한 순간부터 그럴일은 없을거라고 잡아떼는데.. 아주 길을 잘 들이셨습니다. 억지로 데려와도 말라 죽을것같네요. 오늘은 후지오카부장님에게 한방 먹인걸로 만족하겠습니다. 정식 사과문 보내지요! "

 

" 너 ... "

 

나는 과장님을 들처 업고 일어서며 테이블을 살짝 걷어찼다. 마음같아서는 뒤엎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업힌 과장님이 또 깰것만 같았다. 사람 체온이 맞나 싶을정도로 차가운 몸뚱아리는 살짝살짝 간헐적으로 경기를 일으켰다. 얼른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곧 얼음이 될것같았다. 어찌 이렇게 미련스러우신지 모르겠다. 말허리 자르고 들어와서 오해라고 말하면 되는것가지고, 그 수치스러운말을 다 듣고 있는건 뭔가도데체. 정말 못말릴 사람이다.

조금 강도가 센지 물컵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났다. 가쿠포사장은 여전히 빙그레 웃는 얼굴이였다.

 

" 너 다음에 걸리면 죽는다. 내꺼에 손 한번만 더 대면 진짜 회사 다 때려치는 수가 있어도 죽여버릴줄알아. "

 

" 얼마든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미친새끼, 하고 조그맣게 욕을하며 미닫이문을 벌컥열었다. 이미 큰소리가 나고 그릇깨지는 소리를 종업원들이 들었는지 문가에서 몇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사람을 업고나오자 세상에-하고 놀라길래 " 술에 취하셨습니다. 계산은 안쪽분이 하실겁니다. " 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과장님의 끊이지않는 눈물샘이 내 등을 촉촉히 적셨다. 세상에 이렇게 눈물이 많은 서른일곱은 없을것이라 생각하며 가장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7.5  (0) 2014.09.21
The Office! 06  (0) 2014.09.21
The office! 05  (0) 2014.09.21
The Office! 04  (0) 2014.09.21
The Office! 02  (0) 2014.09.16
Posted by michu615
,

부제는 왜붙인거지..? 진심 벨소설이네요 이거 


The Office! 06

- 카이토 과장님의 우울 -

 

 

멍한 공백의 시간이 지났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았을때는 회의가 끝난지 삼십분이 지나있었다. 가쿠포팀장이 한 말들이 회의실에 메아리쳐 귓가에 윙윙댓다. 그의 당당하고 거만한 명령조의 음성은 뭔가 위압감이 느껴져 한순간 그것에 홀렸는지 ' 가야하나? '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즘엔 어린나이에 승진을 빨리하는게 유행인가, 가쿠포팀장또한 자신보다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직책은 크립톤의 부장과 같은위치였다. 분명히 나를 자신보다 아래로 보고있었다. 겸손한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자신의 전성기와는 다르게 자신감과 자기 어필이 중요한 세대라던가, 꼬장해질나이는 아닌데 요즘 젊은 세대란 참... 정도로 생각하기엔 너무도 엄청난 일이라 냉정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래, 가쿠포팀장이 말한데로 나는 크립톤에서 꽤 괜찮은 위치에 있어. 비록 후지오카부장님이 맨날 내 보고서를 빽시키시긴 해도, 집어 던지시진 않잖아? 아, 한번 인가 있었나.. 두번이구나, 아니 세번.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애시당초에 말이 안되는 제안이잖아?누가 구둣발로 남의집에 성큼성큼들어와서 멀쩡한 대들보..까진 아니더라도 멀쩡한 집안살림 떼다간다는게 어느나라 논리야 도데체. 도둑도 이런도둑이 없고 납치가 없지. 정식요청을 해온다고 해도 지금 갈까말까...아니 안갈꺼지만.

고작 이정도 제안에 왜이렇게 자신있어 하는거지.. 뒤에 빽이라도있나? 인터넷이랑 계약안하고 시말서 서른장정도 쓰지뭐... 서른장과 부장님의 잔소리 세시간. 이번엔 진짜 유능한 과장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했는데 정말 운도 더럽게 없는건 내인생의 컨셉인가보다.

아까 덜컹하고 떨어진 심장에 비하면 그다지 큰일도 아니였다. 괜히 쫄아가지고서는.

 

다음번에 만나면 똑똑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그럴생각 없다고! 내가 크립톤에서만 몇년을 있었는데, 영업1부를 얼마나 열심히 키워왔는데 말이지- 하고 스스로를 짐짓 돈독히 여기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것이였다.

가쿠포 팀장에게 들었던 모든말에 반박할수 있을것 같았다. 이 한마디를 제외하고는.

 

" 인정받을수 있습니다. "

 

인정, 인정이라.. 지금 내가 인정받고 있었나?

서류를 챙겨 회의실을 나오면서 그런 의문에 사로잡혔다. 사무실 사람들은 날 인정하고 있었나? 부장님은 나를 자신의 직속으로 인정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대답을 위한 모든 요소들이 ' 아니다 ' 를 가리켰다. 돌아보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랬다.

대리보다 못한 보고서를 써오는 과장따위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것이다. 자신이 연차제인 크립톤이 아닌 능력제인 인터넷으로 간다면 절대로 과장자리에 있을수 없을것 같았다. 능력이 없는건 아니였다. 머리가 좋은편이 아닌걸 알았기에 학창시절에도, 대학교때도, 크립톤의 입사시험때도 열심히 공부했고, 요즘도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자신의 노력으로 끌어올린 능력에 비해 주윗사람들이 너무 뛰어나다던가. 능력에 비해 요령과 사회활동이 너무 낙제점이였다. 입사 3년차까진 그럭저럭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젠 잘 기억도 안나는 사람만 좋던 옛날 부장님은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 카이토대리, 잘했어요 " 라고 말했던가 ..

아무리 아무리 열심히 써가고 노력을 해도 후지오카부장님은 최소 세번은 다시, 다시를 반복했다. 기획안도, 결산보고서도 심지어 회의록까지 검사맡고 다시 써가야 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안받는다면 거짓말이였다. 도데체 왜이렇게 까다롭고 완벽주의자이신건지.

 

사무실로 들어가니 먼저 일이 있다고 나갔던 대리님이 책상에서 고개를 쏙 내밀고  " 과장님, 왜이렇게 늦으셨어요? " 하고 회의록 쓰게 서류주세요. 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 서류를 주고 타이핑 한 후 보내달라고 이야기했다. 

자리에 돌아가려는데 부장님이 고개를 까딱까딱 하고 와보라는 시늉을 했다. 인터넷과의 협력이 많이 신경이 쓰이셨는지 보고서를 기다리기엔 너무 조급했나보다. 역시 협력 안될거라고 하면 화내시려나. 불같이 화를 내는 부장님을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엄청나게 화내시는 부장님을 볼바에야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편이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 네, 부르셨습니까? " 하고 옆에 서서 말을 해도 부장님은 지금 보는 서류에서 눈을 떼시지 않았다. 슬쩍 보니 인터넷컴퍼니 관련 서류였다. 옆에 쌓여있는 서류더미들도 협력관련 문서들이였다. 아무래도 윗선들에게서 이 협력을 꼭 성사시키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은것 같았다. 그러니까 방석도 사주고 회의 열심히 하라고 화이팅도 해주셨겠지. 이런상태에서 죄송하지만 협력은 파기된것같습니다 라고 죽어도 말못해.

 

" 오늘 회의 괜찮으셨습니까 ? "

 

서류를 보시느라 바쁜 눈빛이지만 잠시 마주친 눈에는 기대감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 안 괜찮았으면 죽습니다 ' 하는 무언의 압박이 스멀스멀 피어나왔다.

가쿠포팀장의 제안은 생각보다 단순한게 아니였다. 그는 이것까지 모두 예상하고 그런 패를 내놓은것일까.

진실을 말하기엔 그 눈이 너무 밟혀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 네? 네에... 괜찮았습니다 ... 다음미팅도 잡았습니다, 또 .. "

 

또? 하고 되돌아보는 부장님은 엷은 미소를 띠고있었다. 나를 향한 웃음은 아니더라도 일단 보는건 나니까.

나는 그 웃음을 계속 보고싶은 욕심에, 더 짙어지게 할 욕심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 인터넷컴퍼니에서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안했던 조건들을 조금 낮춰서도 협력이 가능할것 같습니다. "

 

" 흠, 그래요?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정도 낮출수 있는지 보고서에 적어주세요. 다음미팅은 언제로 잡으셨습니까? "

 

" 아...목요일 저녁약속입니다. "

 

더이상 눈을 마주칠수가 없었다. 고작 사흘정도밖에 갈수 없는 임시방편을 만들어낸것이다. 말을 뱉어내자마자 후회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려야해. 그래야 하는데.

갈등에 빠진 내게 부장님은 다가왔다. 손을 가리고 귓속말을 하려시길래 흠칫 놀라며 눈을 감았다. '다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이 나오는 날엔 놀래서 다리에 힘은 풀리겠지만 한편으론 눈치 채 줬으면 좋을것 같았다. 찰나의 시간에 여러가지 선택지가 지나가더니, 궁금함과 두려움이 뒤섞여서 긴장을 만들어냈다.

 

' 허리쪽은 괜찮으십니까? 회의에 지장을 줄 정도였습니까? '

 

주변을 살피며 누가 듣는사람이 없나 체크하는 그 세심함은 내 거짓말을 밝히기엔 조금 부족했다. 나는 다시 부장님의 귀에 손을 가져다대고 ' 아닙니다. 주신 방석덕에 편안하게 회의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하고 고개를 숙인뒤 괜찮다는 의미로 살짝 웃었다. 그제야 부장님은 끄덕끄덕하며 자리에 돌아가보세요. 하고 다시 서류에 눈을 돌리셨다.

자리에 돌아온 나는 회의실에 있던때보다 더 큰 갈등에 휩싸였다.

 

 

 

 

 

 

***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가장 최우선인 회의보고서부터 허위로 써내야 할 판이였다. 대리님이 넘겨준 자료를 받아 모두 낮은선으로 고쳤다. 깜빡이는 워드의 커서가 나를 경멸하는것 같았다.이건아닌데.. 당장 더 힘들어지기전에 사실대로 말하자, 그래야하는데. 이걸받으면 부장님 웃어줄까? 이정도면 큰 공로인것같은데, 전의 부장님이 그랬던것처럼 칭찬해주시지 않을까-하고 못된생각이 계속 들었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것에 집착하는게 정말 바보같았고 어떤 감정에서 그것을 원하는지도 잘 분간이 되지도 않았다. 가쿠포팀장이 말한 인정인지, 내가 그렇게 무력한 사람이 아니란걸 보여주기 위한 자기만족인지, 부장님의 관심을 가지고싶은건지 아무튼 이름모를 그 감정은 나를 지배하여 회의보고서를 엄청난 것으로 만들어낸것이다. 이정도로 적고 나니 이젠 뒷일은 에라 모르겠다 막나가보자는 식이다. 칭찬한번 받고 인터넷으로 팔려가서 진짜 거래나 성사시킬까. 칭찬한번 듣겠다고 회사생활 접는 회사원은 처음일것이다. 그러다보니 이틀새에 불안한게 늘어났다. 저 보고서를 사실로 만들려면 진짜로 인터넷으로 가야할 판국이였다. 보고서를 완성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도저히 부장님께 낼수가 없었다. 가져다 드리는 순간 사실이 되는거니까. 그렇게 되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인터넷이냐, 허위보고서를쓴 멍청이가 되어 회사를 나가느냐였다. 어느쪽도 달갑진 않았지만 회사를 버리고 인터넷으로 가는쪽이 더 -

 

[ 카이토 과장님, 회의보고서 오늘오전12시까지 내주세요. 오늘 저녁이 미팅인걸로 압니다. ]

 

회사내에서 쓰는 메신저로 부장님께 이런 쪽지가 날아왔다. 답장을 하려고 켰지만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어서 또 부장님께 쪽지가 왔다.

 

[ 아니, 잘쓰든 못쓰든 상관치 않을테니 들고오세요. 지금당장 ]

 

분명히 칸막이 너머의 부장님은 나를 노려보고 있을것 같았다. 보통이라면 어제정도에 제출하고 오더를 받았어야 한다. 어제부터 부장님의 눈길을 슬슬피해만 다니다가 도망치듯 퇴근했고, 오늘도 계속 나를 주시하는 눈빛을 아닌척 하다가 결국 이렇게 된것이다.

나는 이틀전에 완성해놓은 보고서를 들고 슬금슬금 부장님책상으로 걸어갔다.

 

" 무슨 보고서를 손으로 쓰십니까? 독수리타자로 치십니까? "

 

" 죄송합니다 .. "

 

빼앗아가듯이 휙 보고서를 가져가서 매의 눈으로 훑어보는 부장님의 미간이 펴졌다. 내가 거짓으로 작성한 보고서에는 인터넷은 식은죽 먹기로 넘어올것 같습니다. 그것도 낮은조건에서요! 하는 희망적인 메세지가 담겨 있었을테니까.

마음속이 차가워졌다.

먹먹해진 내 표정과 다르게 부장님의 얼굴은 오랫만에 활짝 피어 나를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런건 처음이였다.

 

" 과장님,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보고서도 흠잡을데가 없네요. 오늘 회의 잘 하시길 바랍니다. "

 

이제까지의 반응중에 최고로 긍정적이였다. 이전에 저런 말을 들었다면 정말 기뻐서 하늘로 날아갈듯한 기분이였을텐데.

속임수로 듣는 칭찬은 가슴만 쿡쿡쑤시는 아픈것이였다.

 

" 네 ... 감사합니다 "

 

힘없는 내 말투에 부장님은 내 손을 덥썩 잡으셨다. 긴장을 하거나 하면 손이 차가워지는 내 몸의 특성을 알고있는 부장님은 내가 오늘저녁의 미팅때문에 긴장하고있다고 생각하신것 같다. 이건 죄의식이였는데.

 

" 또 긴장하신겁니까? 표정이 안좋으신데요. 아직도 몸이 안좋으십니까 ? "

 

" 아, 아닙니다. 그냥, 좀 .. 어 ... 아닙니다. "

 

" 오늘 미팅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녁약속이면 술도 드시지 않습니까? "

 

" 술...은 안마시고 싶지만 분위기상 마실것 같습니다만.. "

 

"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과장님이 술 드시고 어떤짓을 할지... 중요한 미팅인데. "

 

" 안돼! "

 

부장님의 말을 듣자마자 소스라치게 소리쳤다. 부장님이 오셔서 가쿠포팀장님을 만나고, 만나는것부터가 큰 문제고 두사람이 대화하다가 핀트가 달라졌단걸 느끼는 순간 나는 씻을수없는 배신감을 부장님께 안기게 되는것이다.

그런건 인터넷으로 팔려가든 어쩌든 회사를 그만두는것 이상으로 싫었다. 그동안 노력하고 혼나고 여러일을 겪으며 얻어온 신뢰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사직서를 쓰더라도 건강문제정도로 사유를 적으려 했다.

소리치는 내모습에 부장님은 어벙벙하게 눈만 껌뻑이셨다. 너무 놀라다보니 반말까지 한 터라 사무실 사람들 모두 우리책상을 주시했다.

 

" ...요.... 아니.... 저, 부장님, 그게 ..반말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건 제가 맡은 안건이니까... 제가 스스로 하고싶습니다.. 술 안마실테니까요. 한잔도 안마실께요. 그리..고 부장님이 오시면 인터넷쪽에서도 어....부..부담감 느낄수도 있고.. "

무슨소릴 했는지 모르겠다. 이리저리 둘러대며 그냥 헤헷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줄였다.

그건 그렇네요, 하고 미묘한 표정의 부장님이 간단히 대답했다. 나도 미묘한 표정으로 그렇죠 하고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 그럼 .. 믿겠습니다. 미팅 잘하고 오세요, 절대 술 마시면 안됩니다 "

 

" 네에 "

 

마음이 무겁다 못해 그걸 꺼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쿵하는 둔탁한 소리를 낼것만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부장님이 들어줬으면하고 말도안돼는 생각을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

 

 

 

 

 

 

" 사직서는 내고 오셨습니까? "

 

" 아직 쓰지 않았습니다. "

 

호오, 하고 일식집에서 다시만난 가쿠포팀장은 더욱더 예의라곤 찾아볼수 없는 거만을 넘어선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저번 회의에 함께왔던 구미양을 데려오지 않은 상태라 자신의 마음을 더 노골적으로 나타내는것 같았다. 함께 오겠다는 대리님을 떼다놓고 온 나도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약속장소도 통보하듯이 문자하나 날리는 바람에 찾는데 애를 먹었고, 헐레벌떡 일식집을 들어서니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이미 룸안에 앉아있었다. 밑반찬도 나와있는걸 보면 미리 주문을 해놓은 모양이였다. 바깥에서 만나는 것이라 양복을 입지도 않은 검은 바지에 셔츠를 입은 모습이 혼자서만 편한 느낌이라 분했다. 내가 고개를 숙이는데도 인사를 받는답시고 손을 흔드는데 이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싶었다. 따라주는 물을 마시고 예의 불쾌한 표정으로 계속 가쿠포 팀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 기분나빠지게 웃는 얼굴이여서 불쾌하다못해 짜증이 났다.

 

" 어떻게,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

 

" ........ "

 

" 사직서를 쓰지 않으셨다니, 계속 크립톤에서 다닐 생각이십니까? "

 

" ...... "

 

" 묵비권을 행사하신다고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

 

" ........ "

 

아무말없이 노려보는 내 얼굴에도 연연치 않고 어깨를 으쓱하던 가쿠포팀장은 때마침 미닫이 문이 열리고 시켜놓았던 회접시를 종업원이 가지고 오자 " 사케한병주십시오 " 하고 주문을 했다. 내 간장종지에 간장을 부어주며 친절한듯 " 맛있는걸로 시켰습니다. 드셔보세요" 하고 생글생글 웃었다. 내가 미동도 않자 안드십니까? 먼저 들겠습니다.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 드실땐 별 말 안할테니 드세요. 저혼자 이거 다 못먹습니다. 남기면 아깝잖아요? "

 

" 정말로 .. "

 

" 음? "

 

"정말로 제가 인터넷으로 가야만 협력 할겁니까? 인터넷의 사장님은 이 거래 알고계십니까? 이건 엄연한 부당거래입니다. 인력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지요. 저같은 중요인력을 마음대로 빼서 인터넷에 넣는다고 칩시다. 인터넷내부에서는 그걸 어떻게 생각할까요?"

 

나는 매우 이성적으로 말했으나, 가쿠포팀장의 표정이 조소로 가득찼다. 먹고있던 젓가락을 탁 내려놓은후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여전히 가만히 앉아서 가쿠포팀장을 바라만 보았다.

 

" 하하... 인터넷의 사장님이라, 네 알고계십니다. 이 거래내용. 사실 먼저 제안한것도 사장님이신걸요 "

 

" 네? 알고 계시는데 하라고 하셨다구요? "

 

인터넷의 사장님은 혹시 비양심도둑이신가? 이런 말도안돼는 계획을 제안하고 시키다니, 소문으로는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전략, 라이벌을 무너뜨리는 전략으로 인정받고 있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이걸 알고도 시켰단것은 말이 안된다. 인터넷컴퍼니의 위신을 깎아먹는 이런 짓을 하다니.. 머릿속에 혼선이 일어나 혼란스러웠다. 어....? 그럴리가 없는데 ... 하는 내 중얼거림을 들은 가쿠포팀장은

 

" 아하하핫, 아.. 과장님 정말 웃기고 귀여우신 분이십니다. 정말 인터넷에 데려가고싶네요. " 하고 능글맞게 웃었다.

 

" 되도록이면 가지 않는편을 택할겁니다만, 사실 제가 간다고 해서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겁니다. 저는 회사기밀을 많이 알고있지도 않고, 아시다시피 영업1부의 총괄은 부장님이십니다. 저는 중간과정만 알고있을 뿐이지요. "

 

기모노를 입은 여자직원이 나무쟁반에 사케한병과 두개의 잔을 들고 들어왔다. 이곳에 놔주세요, 하고 가쿠포팀장은 밑반찬 그릇 몇개를 들어내 옆으로 치웠다. 잔을 채워 나에게 주는 그에게 " 죄송합니다, 술을 하지 못합니다. "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도데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기분나쁜웃음만 짓는 그는 " 그럴것 같았습니다. 아- 정말 보기드물게 귀여우시네요. " 하고 귀엽다, 귀엽다를 연달아 말했다. 나이 많은 분께 귀엽다고 하는건 예의가 아니지만요. 를 덧붙이는게 더 얄미웠다. 한참을 자기풀에 웃던 그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왠지 긴장이 되어 무릎을 꿇은 발에 쥐가 날것만 같았다.

 

" 저한테 과장님이 좋아하실만한 정보가 있는데, 과장님이 크립톤을 떠나지 않고도 계약해드릴 방법이 있습니다. "

 

그런정보가! 있었으면 옛날에 말하시지.

 

" 뭡니까? "

 

" 술 한잔만 드시면 말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나는 얼른 사케병을 들어 가쿠포팀장의 술잔에다 술을 부은뒤 살짝 부듸치고는 홀짝 들이켰다. 사케는 약한술이니까 한잔정돈 괜찮을꺼야, 정신차려서 크립톤을 떠나지않고 계약하는방법을 쓰자. 정신차리자. 정신...

눈을 깜빡여서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케가 아니라 중국술이라고 해도 믿을정도의 취기가 올라왔다. 이건 내가 아무리 술을 못마신다고 해도 이상했다. 후끈 달아오른 얼굴이 얼얼하게 느껴졌다.

 

" 건배도 안끝났는데 드십니까, 이렇게 빨리 취하시면 곤란한데 ... 너무 센걸 부탁했나요 "

 

" 방...법 알려주세요 ... "

 

취하지 않으려고 물컵을 찾았으나 이미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눈이 감기고 팔이 의지할곳을 찾아 테이블위로 올라갔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가쿠포팀장은 여전히 웃는얼굴 이였다. 지금의 취기라면 한대 때려줄수도 있을텐데.

 

" 아까 인터넷의 사장님 찾으셨죠? "

 

" 아..안차잣는데 .. " 쓰읍하고 숨을 삼키고 말해도 발음이 줄줄 샜다. 정말 이래선 안된다고, 위급하다는 신호를 몸이 보냈다. 이건 소주정도의 도수도 아니였다. 난생 처음마시는 높은도수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다음말을 듣고 한순간 술이 깬듯한 착각이 들었다.

 

 

" 여기있네요, 제가 바로 인터넷의 사장. 카무이 가쿠포입니다. "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7.5  (0) 2014.09.21
The Office! 07  (0) 2014.09.21
The office! 05  (0) 2014.09.21
The Office! 04  (0) 2014.09.21
The Office! 02  (0) 2014.09.16
Posted by michu615
,

The office! 05

 

 

 

복도를 걸어오는 뚜벅뚜벅하는 구둣소리에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덩치만 컸지 겁은 자기만큼이나 많은 대리님은 ' 왔습니다 ' 하고 입모양으로 말하고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하며 갈곳잃은 불안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괜찮아요, 하고 다부진 표정을 지은후 침착하게 서류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곧 들어올 손님들께 인사를 하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긴장을 했는지 하반신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백번의 회의를 해왔지만 여전히 첫 회의는 떨리는 것이였다. 사무실을 나올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후지오카부장님의 믿습니다, 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많이 도와주셨으니까. 후우, 하고 긴 호흡을 한후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삐뚤어진 넥타이를 다시 몸의 중간으로 맞추며 옆을 슬쩍 훔쳐보니 반투명의 유리통로로 두명의 인영이 비치고 곧 선명한 형상이 되어 들어왔다. 예상할만한 조합인 남자인 상사와 비서격으로 데려온듯한 밝은 분위기를 띄는 젊은 아가씨가 들어왔다. 클립톤 상사만큼은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인터넷또한 이 세계에서는 클립톤다음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써, 고전적이고 관습적인 '회사'의 모양을 띠고있는 크립톤과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를 중시하는 인터넷사는 혁신과 상상력을 가진인재라면 누구나 높은자리로 올라갈수 있게하는 능력위주의 경쟁을 중시했다. 그러한 회사분위기에 맞추어 복장또한 정장을 입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오늘은 두사람 다 격식에 맞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클립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옆의 대리님 또한 그러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우와-하고 조그맣게 탄성을 질렀다.

 

" 안녕하십니까? " 하고 남자는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가느다랗고 길쭉한 팔 다리를 가진 그는 날렵한 턱선과 큰키, 그리고 진 보라색의 장발을 한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위쪽으로 묶은 포니테일머리가 인상적이였다. 머리색과 세트로 맞춘듯한 자청색의 가느다란 눈매가 휘어지며 웃는 모습이 중성적 으로 느껴졌다. 전화약속을 잡을때보다 선명한 목소리 또한 반음이 섞인 약간 높은 톤으로 맑았다.단단하게 잡은 손으로 악수를 한뒤 살짝 허리를 굽혀 카이토과장에게 명함을 내밀며

"인터넷컴퍼니의 영업팀에서 나온 카무이 가쿠포라고 합니다. "  하고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 영업팀의 나카시마 구미 라고 합니다. " 하고 뒤를 이어 고개를 숙인 아가씨는 발랄한 밝은 연두빛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많아봐야 스물서너살밖에 안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이 귀여웠다. 헤헷. 하고 싱긋 웃는 모습에 옆에 서있는 대리님이 발갛게 된 얼굴로 호감을 표시했다.

 

 

예의바른 인사에 자신도 고개를 숙이며

" 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크립톤상사 영업1부의 카이토과장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이쪽에 앉으세요. " 하고 앞의 의자를 뒤로빼 권유했다. 행동빠른 대리가 먼저 뜨거운 녹차를 내왔다. 감사합니다, 하고 눈인사를 한 가쿠포팀장은 구미양에게 눈짓을 한번 하고는 한모금 마셨다. 그사이 구미양은 자신의 가방에서 관련 서류들을 꺼내어 준비했다. 서류가방속에서 안경을 꺼내 쓴 카이토과장이 훨씬 더 밝고 선명하게 보이는 서류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최근의 과로된 생활로 시력이 떨어지는것 같아 평소때에는 외관상 쓰지 않지만 필요할때 간간히 쓰기위해 맞춘 안경이였다.  

 

녹차맛이 좋네요, 티백이라도. 한숨 돌린듯한 가쿠포팀장이 입을 열였다. 오는데 차는 밀리지 않았느냐, 날씨는 어떻느냐 하는 가벼운 주제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서로의 쟁점이 달린 협력제안서로 넘어갔다. 쉽지 않았다. 인터넷 컴퍼니 측은 카이토과장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낮은 것을 제시했다. 예상했던 정도가 있었는데 그것보다 아랫선이였다.

가쿠포팀장은 말솜씨 좋게 설득을 시작했다. 절대 상한선은 지키리, 하고 다짐을 한 카이토과장이 그 말에 조용히 반박하며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제시했다. 평소답지않게 똑바른 말투와 자신감을 실은 목소리로 크립톤측은 더 좋은 혜택을 줄테니 손해를 보더라도 협력을 하자 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들로써는 더 잃을것이 있다기보다는 인터넷컴퍼니의 새로운 전략을 얻고싶은 것이 더 강하기때문에 더 센조건을 제시해도 얼마든지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함께 하시죠. 하며 설득했다. 이에 가쿠포팀장은 인터넷이 협력을 하고있는 3등격 업체와의 협력조건을 제시하며 업계표준이 이렇습니다-하는식이였다. 가쿠포팀장 또한 일목요연하고 정확하게 인터넷사의 의견을 제시했고, 한시간이 지나도록 팽팽한 줄다리기는 계속 이어졌다. 뜨거웠던 녹차가 차갑게 식은지 오래가 되고 나서야 그들은 1차회의를 정리했다. 약간이지만 클립톤이 우위로 왔다는것을 느낀 카이토과장은 2차회의때 반드시 말뚝을 박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치열한 회의가 오고가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하며 이런저런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회의할때와는 다른 풀어진 느낌이였다.

 

"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쿠포팀장님, 다음 미팅땐 제가 점심대접을 하겠습니다. "

 

" 그동안 전화상으로 많이 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매우 기쁩니다. 과장님이시라길래 전 좀더 늙으신 분을 생각했는데요, 클립톤사는 연차제도 아니였습니까? "

 

" 맞습니다. 저도 나이로는 과장을 할 정도의 나이인데 .. 덩치가 작다보니 사람들이 어리게 보는 경향이 조금 있습니다. "

 

게다가 안경까지 꼈으니까요. 하고 안경을 벗어 안경집에다가 접어넣었다.

 

" 아하, 동안이셨군요. 부럽습니다. 클립톤사 영업1부시라면 뭐 이 바닥에서 어디내놔도 서럽진 않은자리죠, 듣자하니 팀의 부장님께서도 전무후무하게 연차제도를 무시한 케이스라고 하던데.. 몇년전에 떠들썩 했습니다. 그 고집있는 크립톤에서 초고속승진을 할정도로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라면서요? "

 

역시 회사안팎으로 떠들썩한 사건이였다. 연차위주의 등용을 하던 클립톤상사의 핵심부서중 하나인 경영팀에서 사십다섯먹은 무능력하지만 꼬장꼬장한 부장님을 대신해서 온게 입사 3년차인 대리급직원이란 소식을 알고 회장님 아들이다, 숨겨진 비밀이 있을것이다- 하며 여러 소문거리가 나돌았다. 직속 부하직원이 될 카이토과장 또한 낙하신인물은 더 대하기 어려울텐데, 아첨이나 술접대는 이제 힘들어서 더이상 못하고, 회사생활 더 어려워 지는구나. 하며 끙끙 앓았다.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짜여졌던 몇몇의 권력암투 드라마는 후지오카부장이 첫 프로젝트를 마쳤을때 모두 수면안으로 가라앉았다. ' 저정도 추진력이면  ' 하고 모두 인정했던 것이다. 첫 입부당시 회사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할일을 할 뿐인 강직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땐 지금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날이 선 분위기여서 과장님은 서류결제를 받으러갈때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기분이였다. 물론 그건 지금도지만.

 

" 후지오카부장님 말씀이십니까? 그분은 부장직을 할 정도의 능력과 배포가 있으신 분이세요. 나이는 어려도 참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랍니다. "

" 카이토부장님도 만만찮은데요, 회의하실때의 눈빛이랑 지금이랑 아주 천사와 악마를 넘나드십니다. 역시 클립톤이 잘 나가는데는 이유가 있네요. " 

" 아유 ... 저는 그냥 일개 과장일 뿐이죠. "

 

긴장이 풀어졌는지 온몸이 근질하고 뻐근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흐흣하고 웃는 자신과 달리 아까까진 싱글싱글하던 가쿠포팀장은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엄숙한 표정에 아 .. 하고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카이토과장또한 손을 멈추었다.

 

" 외람되지만 아깝습니다 .. "

" 네? "

 

 

" 제가 들은바론 과장님도 T대학 경영학부 나오신걸로 봐선 보통인물이 아니신데, 어찌 더 높은물에 가시지 않고 계속 과장자리에 머물러 있으신지..  "

 

" 그건.. 제 능력이 아직 부족한 탓이겠죠. 저도 제맘같아선 부장자리를 확! " 하고 분위기를 풀어보려 확! 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가쿠포부장의 심각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먼저 일이 있어서 자리를 뜬 대리님을 불러오고 싶었다. 부서의 분위기 메이커인 그라면 이 분위기를 풀어줄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T대학 경영학부를 나온건 어떻게 아는것이며, 또 그것이 왜 가쿠포팀장에게 아깝단것인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던 가쿠포팀장이 앞으로 허리를 기울였다.

 

 

 

 

 

 

 

*

 

 

 

 

 

 

끝이 아득할정도로 높은 서른층짜리의 클립톤 본사건물을 걸어나오니 아직까지 뜨거운 햇살이 눈을 따갑게 했다. 회사 앞에는 회사의 상징물인 C모양의 기하학적 도형이 청동으로 커다랗게 만들어져 있었다. 가쿠포 팀장은 그 청동상이 무너지는 상상을 했다. 밖에서 부터 무너뜨릴수 없다면 안을 파고들어야 한다. 아무리 거대한 성벽도 키포인트가 되는 벽돌 한장을 빼는순간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어느 건축가의 말이 사실이기를 빌었다. 업계 2위라지만 크립톤과 인터넷사의 갭은 엄청났다. 단단하고 거대하게 장악한 크립톤의 영향력 사이사이를 파고들고자 노력했지만 최근 오년간은 같이 성장하는것도 모자라 더욱 상한세를 보이는 크립톤에 진절머리가 났다. 기분나쁜 회사로군. 회사라기 보다 하나의 거대한 봉건제도의 성같은 느낌이였다. 인터넷컴퍼니와 다른 수직적 분위기에 숨쉬기도 역겨웠다. 저런식을 인터넷에게 요구하다니, 건방진. 게다가- 그런 표정.

종이만큼 구겨진 표정이 내면의 불쾌함을 드러냈다. 운전하는 자신의 옆에 앉은 구미가 정장자켓의 단추를 풀고 기지개를 폈다.

 

" 팀장님, 수고하셨어요. 후아- 아까는 숨도 제대로 안쉬어지드라구요, 우에엑.. 빨리 정장벗고 편안한 걸로 갈아입고 싶어요, 그쵸? "

" 네, 오랫만에 정장을 입으니 이거 ..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줄 알았습니다. "

" 푸힛, 전 오랫만에 정장입은 팀장님 보니까 멋있던걸요! 그나저나.. 제안 받아들이실까요? 아까 카이토과장님 눈 커진거 보셨어요? "

기운을 차린 구미가 이렇게- 하고 눈을 크게뜨며 놀란 시늉을 했다. 과장님 무지 귀엽게 생기셨든데- 꼭 오셨으면 좋겠다. 게다가 전 오늘 처음들었어요, T대 경영학부라니. 진짜로 인재셨잖아요? 하고 참았던말을 재잘재잘 속삭였다.

 

" 할껍니다. 하게 해야죠 .. 어떤것이 가장 이익이 되는지 정도는 알만한 사람입니다. 회사에 오래 근무했으니까 그 사정도 뻔히 잘 알꺼고요. 이번제안은 우리가 우위입니다. "

 

" 그런가요? 다음미팅은 언제로 잡으셨어요? 아, 그건 제가 알아야 하는건데.. 헤헷 "

 

" 이번주 목요일 저녁입니다. 확실하게 한번 더 구슬려야죠. "

 

덫에 걸린건 확인했으니 서서히 조여서 잡는겁니다. 라고 말하면 너무 사악한가요?

 

 

 

*

 

 

 

" 인터넷 컴퍼니로 오시지않겠습니까? 인터넷 컴퍼니는 경험많은 현자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

 

" 네? 지금 무슨 말씀을 .. "  하는 카이토과장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로썬 상상도 못할 소리였겠지만 자신은 애시당초 이 말을 하기위해 직접 온것이였다. 얼마나 뒷조사를 하고 분석을 했는지. 만난적도 없는 사람인데 처음 봤을때 익숙할 정도였다.

 

" 정식요청을 한다면 분명히 큰 사태가 생기겠죠. 클립톤과 싸울만큼 손해를 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안하러 온겁니다. 저희는 - "

 

" 더이상 듣지 않겠습니다. "

 

" 아뇨, 들으십시오. 저희는 절대로 크립톤과 협력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저희입장에서는 협력이 아닙니다, 식민이죠. 크립톤입장에서는 지금 인터넷과의 협력을 학수고대 하고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크립톤같은 고인물에 새로운 혁신이 필요한 시기이긴 하죠 이제. 그래서 외국인력도 투입하고, 여러 연수도 권장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그런마당에 인터넷과의 협력! 한층 더 상승할 좋은 기회아닙니까? 회사차원에서 주목하고 있는것으로 압니다만. 그러니 현장직에 잘 나서지 않고 위에서 총괄하는 영업1부가, 그것도 과장씩이나 되는 분이 나선것 아닙니까? "

 

" ..... "

 

" 제안하는 겁니다. 과장님이 직접 사표를 쓰시고 인터넷으로 오신다면, 저희는 바로 팀장으로 직접 부서를 운영할수 있게 해드릴것입니다. 물론 봉급또한 지금의 150%까지 약속드릴수 있습니다. 현재 열평짜리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시는걸로 알고있는데 인터넷컴퍼니 소유의 최고급 오피스텔에 무상입주, 유급휴가와 병가도 크립톤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크립톤과 협력관계를 지금보다 더 낮은 조건으로 체결하겠습니다. 앞의 제안보다 이게 더 마음이 동하실것 같습니다. "

 

" 그리고 그 조건 외에는 인터넷컴퍼니는 절대로 크립톤과 협력할 생각이 없습니다. "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말에 푹 잠겨 홀딱 젖은 카이토과장의 눈이 일렁였다. 남국의 바다처럼 깊은 심해색의 눈이였다. 안경을 벗는순간 오-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가느다랗고 하얀 선이 청초한 흰색의 꽃의 선과 닮아있었다. 하필이면 저런사람이라니, 하지만 저런 사람이라 더 데려오기 쉬워졌다. 똑똑하지만 괜한 발악이라던지 꼼수같은건 부릴줄 모르는 사람이다. 속이 거무튀튀한 시꺼먼 아저씨였다면 좀더 물밑작업을 하고 고생을 할 뻔 했지만 오늘 그를 만나자 마자 계획을 확정했다. 직구로 승부하자고.

지금만 봐도 그는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는 충분히 이해한것 같았다. 아무런 말없이 일그러진 표정이 왠지 처량하게 물에 젖은 강아지를 연상시켰다. 주인을 거역하란 말은 그에게 잔인해 보였다. 그리고 이정도로 복종감을 만들어낸 크립톤에 혐오감이 생겼다. 실리주의자라면 바로 수락했을 조건인데. 충실한 크립톤의 개는 금방이라도 화를 내던지, 울음을 터뜨릴듯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성격상 그러지 못하고 입술을 깨무는 그에게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 오신다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이름과 회사생활을 걸고 말씀 드립니다. 인터넷은 크립톤과 다릅니다, 분명히 지금처럼 스트레스 없이 일하실수 있을겁니다. 크립톤과 과장님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다음미팅은 다음주 목요일에 제가 식당을 예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확답을 받는걸로 하죠. 궁금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주시길. "

 

입술 깨무지 마십시오, 피납니다- 구십도로 인사를 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인사도 않은채 앉아있었다. 할 말도, 하고싶은 말 모두가 가슴과 머리에 엉켜서 암덩어리처럼 증식했다. 회사를 이런식으로 떠나는건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니야, 이런식으론 아니야.

배신자가 되라는 건가.

다시금 하반신이 욱신욱신 하며 다리가 쪼개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떠한 감정이 넘치는것을 막지못한 손이 덜덜 떨렸다. 안돼, 아니야. 하고 속삭였다.

 

 

' 부장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07  (0) 2014.09.21
The Office! 06  (0) 2014.09.21
The Office! 04  (0) 2014.09.21
The Office! 02  (0) 2014.09.16
The Office! 01  (0) 2014.09.16
Posted by michu615
,

03이 R-19라 티스토리에 올릴 수가 없습니다...


The office! 04

 

 

 

따스하게 창문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온 허리로 받으며 카이토과장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엄청난 허리통증과 함께 참을수없는 안쪽의 뜨거운 열. 서른인생을 살면서 한번도 느껴보지못했던 새로운고통이였다. 심장박동과 함께 욱신거림이 두근두근하며 어제의 격렬한 정사를 떠올리게했다. 부끄럽다못해 참담하기까지한 어제의 미친짓이 모두 머리에 스쳤다.

외롭지않아요..라니, 미쳤다, 나 정말 미친걸까? 뇌속의 어딘가 병이생겼나? 하고싶으면 평소같이 AV나 하나 챙겨보고 자위나 할것이지, 도데체 누구한테 매달린거야 ... 아무리 몇년간 금욕으로 욕구불만 상태였다고 해도. 이건아냐. 그리고 아파. 후지오카부장님 .. 건강한 남자였구나.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제로 돌아가고 싶은마음이 절실했다. 부끄럽고 남사스러워서 배게에서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허벅지 안쪽에는 붉은 흔적이 이곳저곳에 남아있었다. 이불에 닿은 쇄골부분엔 이빨로 깨문흔적이 있었다. 이건 기억이 나질 않는걸 보니 마지막엔 쓰러지듯 잠에 든것같았다. 평소에 쌓아놓은 스트레스가 이런식으로 폭발할줄은 몰랐다. 어제의 자신은 뭔가 조절하는 나사가 풀린 고장난 구식 로봇이거나 고삐가 풀린 망아지와 같았다. 자신답지 않은 어제의 모습이 똑똑히 뇌속에 새겨졌다. 차라리 술기운에 기억이라도 안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리고 부장님은 어째서 나랑 섹스해준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한거라곤 이름 한번 부른것, 외롭다고 슬픈표정 한번지은것 밖에 없었다.

그정도에 폭발할정도로 섹스한지가 오래되셨구나.. 잘생겼다고 다 그런건 아니네.

사실은 부장님같은 미남에 유능한 사람은 주일마다 여자들을 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줄 알았다.

결국 후지오카부장님도 솔로니까 욕구불만였을꺼고, 나도 스트레스때문에 그랬던거니까. 어제는 장난기 많은 악마의 장난, 무언가의 이상한 키워드가 들어맞은것 일뿐이야.

사고였어. 혈기왕성한 서른살의 사고. 뭐 살다보면 이런 본의아닌 사고도 있고 그런거지.

앞으로 회사생활 제대로 할려면 사과하자, 평소엔 이성적인 분이니까 받아주실꺼야.

 

그만의 논리체계를 통과한 어제의 사건은 ' 실수 ' 로 규정지어졌다. 카이토과장은 침대 옆 바닥에 널부러진 자신의 속옷을 주워입었다. 속옷은 무언가 축축한게 묻어있어 설마..?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살짝 만져 냄새를 맡아보니 그저 땀일뿐이라 안심하고 바로 옆에 뒤집어진채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어제 입었던 와이셔츠를 주워입었다. 그정도의 움직임에도 허리와 안쪽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흐으,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잡고 침대옆에 있었던 자국이 보이는 부장님을 찾아 거실로 나갔다.

아니, 나가기 위해 살짝 한 다리를 내딛는순간 후들하고 허벅지에 힘이 풀렸다. 헉 하고 털썩 주저앉자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맨바닥에 그대로 부듸친 안쪽에 찌르르하고 고통이 밀려왔다. 서둘러 손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어떠한 접촉도 화끈거림만 부추길뿐이였다.

 

" 앗... 으 .. 흐으 이거 어쩌지 .. "

 

그대로 바닥에 앉아 이미 월요일이 되버린 시계를 원망했다. 회사에 갈 몸상태가 아닌걸 누구한테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제가 어제 심하게 정사를 했더니 뒤쪽이 아파서..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자.

하룻밤의 일탈이라기엔 너무 큰 일을 저질러버린것 같았다. 어떻게 수습해야하는지 머리가 지끈지끈아파왔다.

 

" 일어나셨습니까? "

 

아무렇지않게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머그컵에 모닝커피를 마시고있는 후지오카부장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깔끔한 모양새라지만 어디서 찾았는지 옷장에 들어있었을 자신의 티셔츠와 츄리닝바지를 입고있었다. 물론 사이즈는 그의 것보다 훨씬 작은것이였으므로 딱 달라붙은게 우스운 모양새였다. 어제의 머리와 다른걸 보니 샤워를 한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자신도 샤워를 한것 같았다. 어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렸는데도 몸엔 뽀송뽀송한 단내가 났다.

도데체 어디서 부터 물어봐야 하는걸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후지오카부장은 바닥에 주저앉은 과장님을 앞으로 안아 다시 침대에 앉혀주었다. 예민하고 연해진 몸은 남의 손길이 닿자 질끈 하고 눈을 감아 그 더러운 느낌을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풀썩 주저앉아 마저남은 블랙커피를 마신후 한잔 드릴까요? 하고 잔을 흔들어보았다. 쓰진 않지만 들여놓았던 커피포트에서 원두커피를 우려낸 모양이였다.

바지를 입지못해 드러난 허벅지를 대충 배게로 가리고 부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 저, 부장님, 어제는 .. 제가 실수를 많이했습니다. 사고였으니 염치불구하지만 용서하고 잊어주시길 바랍니다 .. " 

 

보고서를 결제하러 갈때보다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개를 떨군채 배게끝을 만지작거렸다. 자신때문에 아직도 출근 못하신 부장님은 평소의 얼굴이지만 분명히 화가 많이 났을꺼라 생각했다.

 

" 실수는 많이 하셨고, 용서도 할수있지만 잊지는 못하겠네요. "

 

" 여..역시 그렇죠? 하핫 죄송합니다 .. "

 

수치스러웠다. 어디까지 떨어지는것인지 모를 내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유리컵과 같이. 또 눈치없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쉴수 밖에 없었다. 상사와의 이런 트러블을 만든 자신에게 남은일이라곤 권고사직을 해달라고 부탁한후에 건강사정으로 회사를 나간다고 주위에 말한뒤에 재취업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경솔한 자신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탓하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자신을 보지않는 고개숙인 카이토과장의 얼굴을 쳐다보며

" 어떻게 잊습니까, 그렇게 멋진 밤을 " 하는 후지오카부장은 처음보는 따뜻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과장님다운 반응이라 웃음이 났다. 많이 놀라신것 같은데 어떻게 달래드려야할까, 하고 좀처럼 하지 않는 속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네? "

 

" 최근 삼년동안 일 외의 것을 첫번째로 둔적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 일에서의 성취감 말고는 절 완전히 만족시킬수 있었던게 없었습니다 .. 물론 여자와의 일도 포함해서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나가떨어지는건 여자쪽이였으니까요. 제가 말하는 만족감이란건 체력적인 소모에서 오는게 아니란건 아시겠죠? 성적인 만족감을 말하는겁니다..

 

 어제가 처음입니다. 완전한 만족감을 가진게 .. 정말 감사합니다 카이토과장님. "

 

상상도 하지 못한말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부장님의 눈이 무지하게 따스했다. 저런 눈빛또한 처음이고 과분해서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밝은 얼굴을보니 어제의 관계가 퍽이나 만족스러우셨던것 같다.

 

" 아이고 .. 무..무슨말씀을, 아니 이런게 아닌가 .... 음... "

 

" 회사가실 몸상태가 아니시죠? 죄송합니다, 저도 처음인지라 힘 조절이 어려웠던것 같습니다. 저도 일어나니 ... "

 

피곤하네요, 하고 귀엽게 어깨를 톡톡두르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서른살이였다. 이런 푸릇푸릇함을 평소에 어떻게 숨기고 있었을까 싶을정도로 긴장감이 풀린 모습이였다.

헤에, 어제 정말 재미좀 보셨나봅니다. 후지오카부장님. 하고 생긋 웃었다. 자신의 웃음에 " 한숨 놨습니다, 과장님이 충격받으실까봐 아침에 혼자 일어나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 하고 주절주절 자신의 시나리오를 이야기 해주었다. 충격에 회사를 그만두시면 어떡하나, 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나저나 어떻게 .. 걸으시지도 못하시는데 제가 밥을 좀 해드리겠습니다. 약은 이미 주무실때 발라놓았으니 걱정하지마시고 오늘은 그냥 침대에 있으세요. 제가 과장님 재택근무 하신다고 회사에 이미 말 해 두었습니다. 아, 물론 저도요.

 

" 감사합니다 .. "

 

모르겠다 이젠 나도, '관계' 든 '성별'이든 '상사와 부하직원' 전부다 모르겠다.

두려움을 치워버리고 그저 하얀 이불속에서 체온을 가진 누군가와 있다는게 너무 벅차게 행복했다.

 

 

 

 

 

*

 

 

 

 

 

그러나 첫 경험의 고통은 하루만에 사라지는게 아니였다. 하루종일 침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카이토과장은 딱딱한 의자에 앉으면 고통을 호소했다. 하루는 재택근무를 했다고 쳐도 다음날엔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참아보겠습니다! " 하고 다짐하는 과장님께 후지오카부장은 푹신한 방석을 안겨주고는 " 이거밖엔 방법이 없네요, 제가 내일아침 일곱시에 차로 데리러 올테니까 그냥 준비만 하시고 집에 있으세요. 양복은 다림질해서 걸어두었습니다. " 하고 옷걸이에 걸린 빳빳한 회색양복을 침대옆의 귀퉁이에다가 걸어주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멜빵또한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그의 손이 닿은 오피스텔은 기적이라도 일어난듯이 깨끗해지고 깔끔해졌다. 집앞의 마트에 다녀와 먹을것도 채워놓고, 간단한 국과 반찬을 들여놓은 후에야 부장님은 안심하고 집을 나설수 있었다. 냉장고에 들여놓은 반찬을 설명하며 꺼내드시고, 국은 데워드시면 되실겁니다. 드시고 꼭 뚜껑닫은뒤에 데워놓으세요. 하고 주의를 주었다.

 

" 감사합니다, 오늘 간호해주시고 .. 집안더러운데 청소도해주시고, 아유.. 민폐가 많습니다. "

" 저때문에 이렇게 되신걸요. 아침에 전화 한번 하겠습니다. "

" 네 .. 내일은 인터넷상사와의 미팅이 있는 중요한날인데, 아파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야죠. 항상 말씀하셨잖습니까.. 헤헷 "

 

아시면 앞으론 일좀 잘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하고 머리를 헝클였다. 기분좋은 간지러움에 으헤헷하는 바보같은 웃음이 나왔다.

정말 미안하지만 정말 귀엽네요 과장님, 하는말이 목구멍까지 기어나왔다.

 

"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 하고 양복자켓을 손에 든 부장님이 정중하게 인사를 한후 오피스텔을 나섰다.

 

 

 

 

*

 

 

 

행복한 기분으로 다음날의 아침을 시작한 카이토과장은 더이상 부장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극성맞을 정도로 지극적인 간호로 어제보단 한결 나은 몸상태로 스스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아 옷을 입었다. 깔끔하게 다림질된 옷을 입으니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여섯시 사십분부터 준비를 모두 끝내고 가방과 어제 받은 쿠션을 넣은 쇼핑백을 들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거실바닥을 살짝살짝 발꿈치로 걸었다. 왠지 인터넷 상사와의 미팅이 잘 끝나고 거래가 성사할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 거래만 성공한다면, 이전까지의 실수를 만회할수 있는 좋은기회가 될게 분명했다. 다음달에 들어오는 인턴들과 함께 진행할 프로젝트를 인터넷 상사와의 거래로 할 계획을 세워두었던지라, 오늘의 미팅은 카이토과장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사무실에 들어가 먼저 푹신한 방석을 의자에 놓자 동료직원들이 " 과장님, 혹시 치질걸리셨어요? 푸핫, " 하고 농담을 했다. 평소처럼 흐흣 하고 그 말을 받은후에 열한시로 계획된 미팅준비를 했다. 방석이 정말 푹신해서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보고서와 제안서를 다시한번 꼼꼼히 훑어보자 잠시후에 도착하겠다는 인터넷상사로부터의 문자가 왔다.

비장한 얼굴로 문서를 챙겨들고 자신의 방석을 그 위에 올린후 회의실로 향했다. 눈을 마주친 부장님은 잘 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카이토과장은 작은목소리로 화이팅! 한후 부하직원 하나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장난기 많은 부하직원은 " 과장님 어제 치질수술 하셨죠? " 하고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농담을 던지며 과장님을 졸졸 따라갔다.

나름대로 영업부중의 핵심축에 속하는 영업1부에겐 회의실이 따로있었다. [5층에 엘리베이터를 타고오시면 바로 보이는 영업1부 회의실로 오시길 바랍니다.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하는 문자를 보낸후에 통유리로 된 깔끔한 회의실에 자신의 자리에 방석을 깔고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했다. 인터넷 상사와의 거래는 이번이 처음이였기에 더욱 중요했다. 이번에 안면을 터놓은 상대와 쭉 거래를 할꺼니까, 최대한 좋은인상을 보여야할것이였다. 물론 그건 인터넷상사도 마찬가지 일테니 가장 유능하고 거래에 능한 영업팀을 보냈을것이다.

과장님은 마음을 가다듬고 시계가 열한시가 되는것을 쳐다보았다.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06  (0) 2014.09.21
The office! 05  (0) 2014.09.21
The Office! 02  (0) 2014.09.16
The Office! 01  (0) 2014.09.16
The office! 00  (0) 2014.09.14
Posted by michu615
,

아...정말....올릴때마다 심장백번씩 후벼파는 강력한 흑역사의 기운



The Office! 02


따사로운 아침의 가을햇볕이 오피스텔의 큰 창문으로 쏟아졌다. 겨울에는 춥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아침에 시끄럽고 인위적인 알람소리로 일어나는것이 아니라 눈으로 쏟아지고 몸에 따스한 느낌이 들며 서서히 일어나게 되는것을 포기할수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주워입은 커다란 티셔츠를 걸친 과장님은 이불속에서 배게 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얼마전에 길거리 호객꾼한테 잡혀 거의 반 강제로 바꾼 스마트폰이란것은 그에게 퍽 어려운것이였다. 버튼을 누르는데 익숙했던것이 터치로 바뀌면서 문자 하나 보내는것도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했다. 폰을 산 다음날 회사로 들고가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대리한테 부탁하여 이것저것 다운받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확인 할 수 있단것을 배운후엔 다른것엔 일절 손대지 않았다. 익숙하게 잠금해제를 하고 달력을 폈다.

 

오늘의 일정 : 메이코 과장님 결혼식 오후 3시, MerryMarry결혼식장.

 

하루종일 이불속에서 뒹굴거릴려던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자 과장님은 머리를 북북흐트렸다. 이미 일어난 시간도 오전 열한시로, 이른시간이 아니였기에 당장 일어나 준비해야지-하고 생각했지만 푹신한 이불과 따뜻한 햇살은 하나의 헤어날수 없는 늪을 만들었다. 잠으로는 풀리지 않는 피로를 안은 과장님은 노곤노곤하게 삼십분 정도 더 이불에 파묻혀 있었다.
마음속으로 일분만더, 일분만더 하던것을 시계를 보니 열두시 사십분이였다. 이젠 어쩔수 없는 한계시간에 도달한것을 인정하고 휘적휘적 화장실로 향했다.


평소엔 회사의 경조사라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참여하지 않았지만, 메이코 과장님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후배로 들어온 메이코는 다른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그와 마주쳤고, 싹싹하고 시원시원한 말투로 처음만난 사람에게 어수룩한 카이토과장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오랫만에 회사에 친근하게 지낼 사람이 생겨 기뻤던 과장님도 메이코과장이 싫지 않았고, 사랑은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좋음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회사를 마치고 밥을 먹는 일도 생기고, 술을 마시는 일도 생겼다.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같이 공유하는것이 카이토 과장은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 메이코과장님과 사귀게 된다면 .. 하고 남모르게 망상을 해보곤 했다. 좀더 친해지면 고백을 해볼까- 밥 한번 더 먹으면 고백해볼까, 하고 한달 두달을 미약한 가슴두근거림으로 보내던 과장님께 일이 바빠 만나지 못할것같아요, 라는 연락을 남기고 메이코과장은 결혼소식을 알려왔다.

 

아,사랑은 아니였으니까. 괜찮아.

 

축하드립니다..하고 문자를 하던 날 카이토 과장은 오피스텔에서 홀로 술을 마셨다. 
회사에서 가장 먼저 결혼소식을 알게된건 메이코과장님의 배려였음을 생각하니, 그녀는 참 좋은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뒤 그녀는 결혼할사람과 자신의 사진을 넣은 청첩장을 회사에 돌렸고, 카이토과장을 찾아와

 

" 과장님, 꼭 오셔야해요! 저 기다릴꺼니까요. 알겠죠? " 
" 네에, 알겠습니다. 누구결혼식인데요.. 꼭 가야죠. " 하고 구두약속을 받아내갔다.

 

샤워를 마친 카이토 과장은 옷장속에서 제일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빨간 넥타이를 했다. 메이코과장의 이미지는 항상 붉은색이였으니까, 따뜻한 불같은 그 느낌까진 아니더라도 샛빨간 색이아닌 약간 밝그스러운 색이라 마음에 들어 사두었던 것이다. 
항상 부시시하게 나가던 머리도 깔끔하게 빗질을 하고, 평소엔 절대로 뿌리지 않는 언젠가 선물받은 남성용 향수를 뿌렸다. 시원한 향이 몸 전체로 스며들어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았을때 꽤나 깔끔한 모습이라 그는 마음에 들어 생긋 웃었다. 작은 검정색 크로스백에 지갑과 청첩장을 넣고 아무도 들을사람 없는 "다녀오겠습니다" 를 중얼거린후 문을 나섰다.

 

 

 

 

*

 

 

 

 

과장님이 예식장에 도착한건 예상보다 조금 늦은 두시반이였다. 청첩장의 지도는 무심하게도 주변의 건물을 모두 삭제한 상태로 자신의 건물 위치만 떡하니 적혀있어, 비슷한곳에 도착하면 대충 찾아들어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론 찾을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헤메는 사이 자가용을 단체로 오는 회사사람들을 만나 같이 들어 올수 있게 되었다. 얼굴과 이름정도만 아는 사람들이 어색하기 짝이없었지만 그래도 과장님은 어색한 웃음이라도 지어 예의를 지켰다. 그들은 과장님이 모를 이야기를 했고, 과장님또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은채 신부대기실을 눈으로 찾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한복을 입은 친지들로 가득한 예식장홀은 시장통급 데시벨을 냈다. 회사사람들이 모여있는 신부측 자리로 자리를 옮기니 부서 사람들이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과장님을 보곤 반가운듯이 손을 흔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대리님을 보고 그는 왠지 마음이 놓여 쪼르르 달려갔다.

 

" 와, 과장님 오늘 힘좀 주셨네요? "

" 아이고 무슨 .. 대리님이야 말로 오늘 새 양복 입으셨나요? "

" 새 양복살 돈이 어딨습니까 .. 오늘 축의금도 겨우 마련해 왔다구요 "

 

신부측 명단에 이름을 적고, 축의금 봉투를 테이블앞의 남자에게 주었다. 그는 자신이 메이코 과장의 동생인 메이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갈색빛의 머리와 시원시원한 웃음이 누나와 닮은 준수한 청년이였다.
그리고 악수를 하며 카이토과장을 뚫어지게 쳐다본후 예의 웃음을 지으며 질문했다.

 

" 혹시 카이토 과장님되십니까? "

" 어? 네 .. 어떻게 아십니까? "

" 누나가 과장님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보기드문 파란빛머리와 파란눈을 가진 멋진분이시라고 "

 

네에, 그렇군요 .. 하는 뒷맛이 씁쓸했다. 메이토씨는 신부대기실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구석진데에 숨겨져 있었다. 식이 곧 시작하니까 잠시만 뵙고 식장으로 들어가시는게 좋을것 같네요, 하고 메이토씨는 문을 열어주었다. 신부 대기실 안은 화장대 위의 엄청난 화장품들과 옷, 장식품, 소품들로 엉망이였다.
그러나 그 사이의 새하얀 드레스와 면사포를 쓴 메이코과장님은 이때까지의 모습중에 가장 아름다운얼굴을 하고있었다.
가슴에 달린 새빨간 코사주가 그녀와 잘 어울렸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였다.
카이토과장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다시 반하고, 다시 가슴이 욱신거림을 느꼈다.

 

사랑은 아니였어, 그저 호감일뿐.

정말정말 사랑은 아니였는데.

 

멍하니 서있던 과장님을 메이코과장은 반갑게 깨웠다.드레스가 길어 앉아있는것을 양해해달라며 생긋웃는 메이코과장은
와줘서 고맙다며 카이토과장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엔 흰색의 레이스로된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 멋지게 하고 오셨네요, 과장님 " 하고 메이코과장은 카이토과장을 올려다 보았다. 왠지모르게 카이토과장은 그 눈빛을 쳐다볼수 없었다.

칭찬으로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위해 그는 서둘러 식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 정말 축하드립니다. 오늘 정말 아름다우세요 .. 회사를 그만 두진 않으시죠? "

" 아유, 어떻게 회사를 그만두나요. 신혼여행 다녀와서 바로 복귀하겠습니다! "

"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식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결혼 축하드립니다."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꾸벅 인사를 한후 식장을 향했다.

식장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었다.과장님은 붉어진 얼굴을 차가운 손으로 식히며 빈자리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신부측 자리의 맨 뒷줄, 가장자리에 부장님이 옆자리를 남겨놓은채 앉아있었다. 과장님은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갔다. 부장님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채 시끄러운 식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 하고 그의 귀에 대고 말하니, 부장님은 깜짝 놀라 과장님을 쳐다보곤
" 사람을 놀래키십니까 " 하고 고개를 숙여보였다.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은 과장님은 멍하니 앞의 화촉을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을 시작한다는 사회의 말이 들려왔고, 군중들은 조용해 졌다.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06  (0) 2014.09.21
The office! 05  (0) 2014.09.21
The Office! 04  (0) 2014.09.21
The Office! 01  (0) 2014.09.16
The office! 00  (0) 2014.09.14
Posted by michu615
,


누가누가 흑역사를 잘하는지 대회하면 제가 1등


The Office! 01

서늘한 가을바람이 사무실의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바람소리를타고 키보드치는 소리, 간간히 들리는 마우스 누르는소리만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가슴에 '보고서 제대로 써오세요'를 깊이 새긴 카이토 과장은 음울음울한 부끄러움의 바다속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이 구겨지는 소리를 들었다. 부하직원들도 다 보는곳에서 그런일이라니.. 너무해요, 라고 말해야할까. 남자답게 화를 낼수도 없는 처지인게, 부장님이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오죽 답답했으면 그러셨을까. 하고,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게 우선으로 작용하는 과장님의 생각구조는 다른 평범한 사람이였다면 화를 백번은 내고 부장의 멱살을 잡을 상황을 그럴수도 있는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으므로 풀이 죽은얼굴로 퇴짜맞은 보고서를 이리저리 작업했다.

 

' 얼른 집에가서 이 매직낙서 지우고싶다 .... 집에가서 잔업 해온다고 하면 화내실까? ' 하는 과장님의 타자치는 손길이 빨라졌다.

집중하기위해 입술을 깨문 그의 표정은 미묘하게 귀여운것이였다.

이윽고 사원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들리고, 시간에 맞춰 "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하고 흥겨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몇몇의 직원이 생겨났다. 십분, 이십분이 지나면서 다른 직원들도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고, 시계가 일곱시를 가리켜 해가져서 어둑어둑 해질무렵엔 여전히 보고서를 고치는 과장님과 무심한 눈길로 자리에서 서류를 살피는 부장님 단 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장님은 흐음- 하고 무언가 고민하는듯한 소리를 냈다. 이정도면 통과시켜 주시려나, 얼른 집에가서 이 가슴팍에 쓰인 매직 지우고싶은데..

그나저나 이거 뭘로 지워야 하는거지? 몸에 아세톤을 끼얹을수도없고, 뜨거운 물에 푹 불려서 이태리타올로 빡빡 밀면 지워질까.

보여드릴까? 또 화내시면 어떡하지, 지금보고있는 서류 다보시면 말을 꺼내자- 한게 벌써 다섯서류째다.

힐끔힐끔 자기쪽을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을 모를리가 없는 부장이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부장은 둔한 과장님이 눈치채지 못할정도로만 그의 배부분을 쳐다보고있었다. 혹시나 아까 썼던 낙서가 셔츠사이로 보일까 싶어 힐끗거렸지만 커다란 셔츠만 입고있었다면 충분히 비쳐보이거나 했을텐데, 멜빵이라는 방해물이 그것을 방해했다. 에잇,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과장님께 말을 걸었다.

 

" 할말 있으십니까 과장님 "

" 아, 저기. 아까 오더하신 문서 고쳤습니다. "

" 그것 참 다행이네요, 보내시고 가시죠. "

 

그말에 휴우하고 자그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과장님이 양복자켓을 챙겨들고 휘리릭 주워입었다. 삼사년쯤 입은 낡은 양복자켓은 보풀제거기가 절실했다. 결벽증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깔끔한 것에대해 집착이 있는 부장님눈엔 ' 저 옷을 도데체 왜 입고다니실까, 월급을 안받는것도 아니고..'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양복자켓과 함께 늙은 가죽으로된 서류가방을 들고 과장님은 하루중 가장 명랑한 웃음을 보였다.

 

" 감사합니다. 부장님은 안가시나요? "

" 저는 조금 할일이 남아있어서, 먼저 들어가세요. 수고 많았습니다." 하고 부장은  책상에 앉은채로 고개를 예의상 까딱 숙였다.

 

" 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크게 구십도로 부장에게 인사를 하고 생긋 웃으며 문을 나섰다. 퇴근은 회사생활의 꽃이라 했던가, 신이 나는지 흥겨운 선율의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지나서, 회사를 칠년째 다니다보니 이젠 친구할 정도가 된 로비의 경비원께 인사를 드리고 정문을 나왔다.

아직 운전면허도 없고 차도 없는 과장은 통근지하철의 사람이 많지 않기를 빌며 집으로 향했다.

 

 

 

 

*

 

 

 

 

 

그는 낡은 서류가방에서 열쇠를 뒤적거려 문을 열었다. 금속의 찰칵하는 쇠음이 울리며 냉랭한 그의 오피스텔이 반나절만에 돌아온 주인을 맞았다. 아무도 없지만 씩씩하게 " 다녀왔습니다 " 라고 경쾌하게 말하고  그리고 평소처럼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뒤집은채로 두고 서류가방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의 집에 정리된곳이라고는 음악 CD를 모아놓은 유리장식장 단 한곳이였는데, 이곳마저 장식장의 가동범위 외에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보풀제거기란 그의 집과같은 환경에서는 거의 사치에 해당했다. 혼자산지가 여러해가 넘어가고, 취직 이후에는 누가 집에 찾아올 필요도 없었다. 매일을 고단하게 보내는 그는 지금의 오피스텔에 만족하며 살고있다. 회사일 외의 다른것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여유가 없었다. 어쩔수 없지. 피곤하니 샤워나 하자- 샤워를 하기위해 홀딱 벗고 욕실에 들어간 카이토 과장이 소리쳤다.

 

" 아악!! 이거 와이셔츠에 묻어서 번졌잖아?! "

 

살에 적힌 매직은 잘 마르지 않았었나보다.몸 은 몸대로 더럽혀지고 와이셔츠는 와이셔츠대로 더렵혀졌다.  아.. 부장님은 1타2피를 성공하셨군요 .. 샤워기에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추적추적 맞으면서 배에 새겨진 부끄러운 글자를 어떻게 지워볼까 고민했다. 도장처럼 찍혀나온 와이셔츠의 매직도 지워야하니 이중일이 생겨버렸다. 카이토과장은 하루의 피곤함을 집약한 한숨을 크게 내쉬고, 욕조에 있던 커다란 대야를 꺼내 뜨거운물을 받기 시작했다. 락스를 조금풀고 와이셔츠를 넣어 일단 일차방도를 구해놓고, 느릿느릿하게 몸을 씻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는것은 노래부르는것 다음으로 그가 좋아하는 일이였다. 그러니까 그가 가장 좋아하는일은 뜨거운물에서 목욕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였다. 화장실의 음향효과까지 더하여 더욱 노래가 잘되는 느낌이 들기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목에 검은 글자라도 박힌듯이 노래가 나오지않아 간간히 슬픈음의 허밍만을 넣을뿐 별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 까지 끝냈지만 가슴팍 아래의 선명한 글자들은 오히려 더 색이 짙어진것같았다.

그는 머리에 수건을 얹은채로 욕실바닥에 주저앉아 대야와 그 옆에있는 빨래판을 가져왔다. 빨래판에 와이셔츠의 검게 염색된부분을 박박 문질러 보았지만 껌딱지 처럼 달라붙은것도 아니고 아예 스며들어 전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와이셔츠를 문지르고, 락스물에 담그고, 문지르고를 반복했다. 여러번 반복하니 조금씩 색이 옅어지긴 했지만, 셔츠를 들어 확인하니 글자가 뒤집어진채로 비쳐보였다. 으으- 하고 싫은소리를 내며 와이셔츠를 다라이에 던져버렸다.

 

" 아, 정말 ... 이 와이셔츠는 집에서나 입어야겠다. 이렇게 되면 몸에있는건 더 안지워질것같은데 ... 하아 "

 

으쌰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옆에 걸린 이태리 타올을 꺼냈다. 몸에 있는것부터라도 지우겠다는 생각으로 비누칠을 해 뱃가죽을 마구 문질렀다.

마찰감이 심해져 점점 피부가 빨갛게 되고 통증이 밀려왔지만 유성매직은 하얀 피부에 깃들어 꼼짝을 하질 않았다. 결국 이태리타올의 흔적이 더해진체 빨갛게 부어오른 배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에서 통증이 아려왔다. 따끔따끔해서 더이상은 이태리타올은 못쓰겠다.

그럼 내일도 이 글자를 배에다 적은채 회사를 가야한단 말인데, 그건 정말 싫었다.

 

과장님은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하였다.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자기는 영업1부의 최고 연장자이고, 직책도 위에서 두번째인 과장인데. 어째서 매일 부장님께는 혼이나 나고, 부하직원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는걸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오늘 한 그 어플인지 뭔지도 사실은 직원들이 짜고 한것은 아닐까... 일을 못해서 다들 화가났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장님의 눈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혔다.

 

" 흑...내가 뭘잘못했다고 .... 흐엉... 따가워어, 이거 왜 안지는거야... 부장님 미워...흑.....내일 회사 어떻게 가.... 흐잉"

 

울먹울먹 하던것이 배의 따가움과 합쳐져 울음으로 변했다. 최근이년동안의 회사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힘든것이였다.

새로온 부장이 자신의 모든일에 태클을 걸때부터였다. 부장님과 함께있을때에 과장님은 항상 자신이 부장님의 손바닥 위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렇게 내가 싫으셨으면 그냥 불러서 말을하시지.

어째서 이렇게 못살게 구는걸까 ...

 

흑흑하고 나오는 콧물을 들이마시면서 물소리와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욕실에 쪼그려앉아 우는 자신이 더 처량해서 과장님은 더욱 눈물이 났다.

한번 나오기 시작한눈물은 육개월전의 서러운 일까지 땔깜으로 하여 끝없이 차올라 흘러내렸다.

혼자 살아서 다행이야, 이런 추한 꼴 남한테 보일필요가 없으니까..

 

 

 

 

*

 

 

 

 

" 조..좋은아침 입니다.. "

아무리봐도 좋은아침같지 않은 잠긴 목소리를 한 과장님이 부서의 문을 열었다. 어제의 서러운 통곡의 눈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퉁퉁부은 얼굴을 한 그는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으나 누가보기에도 ' 나 어제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 하는 표시가 나타났다.

사원들은 채팅창을 열어 " 과장님 우셨다... 심하게 우셨는데? " " 어제 부장님일때문에 그런가? 아니면 우리가 가고난뒤에 또 혼나셨나? " 하는 추측성 발언을 내놓았다.

과장님은 축 처진 어깨에 위태롭게 매달린 서류가방을 책상 밑으로 내리고 컴퓨터를 켰다.

퉁퉁부은 눈에 빛이 들어오면서 눈이 시려 다시 눈물이 맺혔다. 군대에 다닐때도 눈물이 하도 많아서 하품한번 했는데 울었다고 얻어맞은 일이 있는 그의 화수분같은 눈물샘이 아침부터 따갑도록 마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태리타올로 빡빡밀어버린 배쪽은 낙서가 지워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빨간 발진이 생겨 아침에 옷을 갈아입을때 따가워서 죽는줄 알았다. 뭔가 심장박동에 맞춰서 두근두근하게 따가움을 전해오는게 며칠은 갈 기세였다.

 

왼손잡이인 과장님은 왼손은 마우스에, 오른손은 욱신거리는 배를 잡고 회의 건안을 살폈다.

이안건 .. 이건 부장님께 말씀을 드려야하는건데 ...

하고 앞앞자리의 부장의 책상을 살폈지만 부장님은 자리에 없었다. 아까 내가 출근할땐 계셨는데, 잠시 일이있어서 나갔나 보다.

잠시후 돌아온 부장이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있었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 부장님께

 

" 아, 부장님 오셨습니까.. 저번의 인터넷무역과의 회의안건에 대해서 말씀드릴께 있는데요. " 하고 쪽지를 보냈다.

" 저도 과장님께 할 말이 있습니다. 잠시 그 말씀은 뒤로 밀어두시고 나가시죠. " 하고 문쪽으로 손짓을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기에 바깥에 까지가서 ... 하는 의문으로 따라나섰다. 부장님은 검은봉지를 들고 사원휴게실로 향했다.

 

출근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사원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장님은 중간의 동그란 테이블에 검은 봉지에서 꺼낸 연고를 꺼냈다.

앉으시죠- 하고 의자에 손을 내밀어 과장을 앉힌 부장님은 연고가 든 통에서 새살이 솔솔돋게 해준다는 광고문구로 유명한 작은 연고를 꺼냈다.

 

" 왜 부르신거죠? 전 아픈데 없는데요.. 연고는 왜 .. " 

 

의자에 정자세로 앉은 과장님이 의아한 눈으로 연고의 뚜껑을 돌리는 부장님께 말했다. 혹시 부장님이 오다가 다치셔서 나한테 연고를 발라달라고 하는걸까? 그런거면 미쿠씨가 있는데, 역시 내가 제일 만만해서 그런거겠지.

 

" 약 발라줄테니까 옷좀 들어보세요. "

" 네? "

" 배에 상처난거 다 알아요, 약발라 줄테니까 옷들어 보시라구요. "

" 안...안다쳤습니다. 배에 상처라뇨, "

" 그렇습니까? "

 

하고 부장은 큰손을 내밀어 과장님의 배를 스윽하고 만졌다. 남의 손길이 닿아 예민해진 발진이 통증을 보내왔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 흐익 , 아얏 .. "

" 이래놓고 안다치셨습니까, 며칠 지나면 물에 저절로 씻길거라 생각했는데 .. 과장님이 그렇게 싫어하셨는지는 몰랐습니다. 더이상 실랑이 하기 싫으니 제가 제손으로 벗겨서 약 바르기전에 어서 단추좀 풀어보세요. "

 

단호하고 단정하게 자신을 쳐다보며 벗기기전에 벗어보라는 협박을 받은 과장님은 이 실랑이에서 자신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바지안에 넣은 와이셔츠 자락을 빼내고 아랫단추를 네개정도 풀었다. 어제와는 다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제는 보는눈이 많아 부끄러웠다면, 오늘은 한사람의 눈빛이 짙은 농도로 다가왔으니 정도는 어제와 비슷했다.

 

양복 소매를 걷은 부장님은 연고에서 흰색투명한 연고를 듬뿍 짜서 과장님의 붉은 발진에 발랐다. 부장님의 손은 그의 차가운 성격만큼이나 차가울것 같았지만 반대로 무지 따뜻해서 과장님은 따가움에 움찔움찔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말없이 한참이나 꼼꼼하게 과장님의 상처에 약을 바르던 부장님이 연고를 끝에서부터 밀어 마지막 남은것을 짜냈다.

감사인사를 드릴 타이밍을 기다리던 과장님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 아유.. 감사합니다 이거, 주책맞게 이태리타올로 마구 문질렀더니 ... 덕분에 빨리 나을것 같습니다. " 헤헷하고 수더분하게 웃었다.

 약을 다 발랐는지 손가락에 남은 약을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휴지에다 슥슥닦은 부장님이 옷을 내리려던 부장님의 손을 톡쳐서 막았다.

"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잠시만 그러고 계세요 "

한통 전부다 쏟아붓다시피 했으니 떡처럼 찐득하게 붙어있었다. 부장님은 아무말없이 연고의 층에 뭐라도 달라붙어있는듯이 뚫어져라 상처를 쳐다보았다. 그것이 미안해 하고 있는것이라고 카이토 과장님은 생각했다. 역시 일에 까다로울 뿐이지 나쁜사람은 아냐. 저렇게 따뜻한 손길을 주는사람이 날 미워할리도 없을꺼야. 하고 어제의 오해를 불태웠다.

 

" 부장님 나중에 결혼하시면 아내분한테 사랑받겠어요, 손길이 아주 부드러우시네요. "

" 아, 저는 결혼할 생각이 아직 없습니다. "

" 그러신가요... 하긴 아직 어리시니까. 몇년만 지나 저처럼 되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흐흣 .. 이나이쯤 되면 결혼식도 많고,

아, 그러고보니 이번주 주말에 영업3부 메이코과장님 결혼식이군요. 청첩장돌린거 보셨습니까? "

" 네, 청첩장안에 든 메이코과장님 사진정말 예쁘시더군요 .. "

 

하는 회사안의 소소한 이야기를 몇분쯤 하다가 " 이제 옷 내리셔도 될것 같습니다. 돌아가죠. " 하는 부장님의 말에 총총거리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삼십분 정도 지났을꺼라 생각했던 시간은 한시간이 훌쩍 넘어있었고, 그날의 일이 많단것을 기억해낸 과장님이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배에 발라진 약때문에 찹찹하고 찐득해 유쾌하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전날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과장님이여서 부하직원들은 '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부장님이 과장님을 기쁘게 했다 ' 란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약이 효과가 좋은것인지, 몸이 자가치유를 빨리 한것인지 몰라도 삼일은 갈것같았던 발진은 감쪽같이 사라져 다시금 하이얀 상태로 돌아왔다.

저녁에 샤워를 하며 기분좋아진 과장님은 뜨거운 욕탕 안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을 부르며 혼자만의 콘서트를 했다.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06  (0) 2014.09.21
The office! 05  (0) 2014.09.21
The Office! 04  (0) 2014.09.21
The Office! 02  (0) 2014.09.16
The office! 00  (0) 2014.09.14
Posted by michu615
,

2010년도 글입니다.........할말이없슴...

고치려다가 읽을수가 없어서 걍올립니다 보고싶으셨다니 놀라워라

진짜 막장 오피스물....



 

 

 

 

나른한 오후의 사무실에 젊은 회사원들의 장난기가 가득찼다. 보카로상사라는 약간은 우스운 이름의 그 회사는 삼십년 전쯤에 작은 무역 상회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영업팀만 3개가 생긴 중견회사로, 업무능력이 가장 좋은 순서라고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영업1부에는 장난기 가득한 사원들의 표적이 되고야 마는 만년과장. 햇수로는 입사 칠년차로 꽤나 잔뼈 굵을 듯한 년수지만 업무능력은 삼년차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카이토 과장님이 있다.

그는 높은곳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도, 그 욕망을 받춰줄만한 능력도 부족한 그저 그런 사원이였지만 오후 네시의 나른한 사무실에서는 항상 그가 주목되곤 했다.

그시간 쯤에는 항상

 

" 카이토 과장님 "

 

하고 나즈막하니 앞앞 자리에 앉은 과장을 부르는 얼굴에 '화가 나지만 참고있습니다' 라고 써둔듯한 표정을 지은 영업1부의 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원들의 뒷담화에서 빠지지 않는 영업1팀의 부장님은 외모, 키, 몸매, 능력까지 하나도 빠지지않는 엘리트로, 입사 3년만에 과장, 그리고 5년차인 현재는 한 부서를 이끄는 부장자리를 떡하니 꿰차고 앉았다. 낙하산으로 앉은것도 아니고 순전히 그의 노력과 능력으로 올라간 자리므로 사원들은 부러움이 섞인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어떤 프로젝트도 완벽하게 성공시키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두통유발자는 책상에 처박고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 그를 쳐다보고, 벌떡 일어나 그의 자리로 다가왔다.

 

 " 네? 네에 부장님 부르셨나요... 올려둔 보고서는 받으셨습니까? "

 

사무톤에 어울리지않는 아름다운 중저음이 가늘게 떨렸다. 항상 있던 일이지만 역시 혼나는건 익숙해 지지 않았다. 게다가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부장이라니! 게다가 왜이렇게 비쩍마르고 힘없는 자신과달리 자신감넘치고, 또 몸매도 남자답고.. 분명히 저 살짝 달라붙은 와이셔츠 안에는 식스팩들이 으쌰으쌰하고 있겠지? 하고 자신의 가는 손목에 힘겹게 매달린 큰 시계를 시간이 보이도록 돌렸다. 몇분 혼나는지 재야겠다 이번엔.

 

" 받았으니까 부르는거겠죠? 하 ..뭡니까 도데체? 제가 과장님께 어려운거 부탁드렸습니까? 3분기 결산한거 정리해서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회사 일이년다니시는것도 아니신분이 매번 왜이러십니까 도데체 어째서 이런걸 주시는겁니까 ... 저는 결재를 하고싶은거지 서류를 다시쓰고싶지 않습니다. 과장님도 부하직원들 시키신거 아닌가요? 제가 대리분들 바로 시켰을때는 좋은결과물 받은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과장님 손만 거치면 이런게 나옵니까? 뭘 손대셨어요? "

 

 

" 아니 조금 편하게 보시라고 프로그램으로 손봤을 뿐입니다만 ... 보시기 어려우신가요? " 하고 호소하는 말투의 과장의 눈에는 초롱초롱하게 물기가 젖어있었다. 서른 두살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동안의 그는 스스로를 아저씨처럼 보이기 위해 멜빵을 하고 다니는 과거패션을 주로 했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귀여워라고 멜빵을 하셨나-하는 생각을 일으킬 뿐이였다.

 

" 어! 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모르겠습니다! 제가 퇴근하기전에 당장 다시 만들어주세요. 제발! "

 

더 혼내고 말하고 정말 아주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까요, 당장 자리에 돌아가서 이거 제가 이해할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주세요. 아시겠어요? 로 끝. 평소라면 이십분은 잡아먹었을텐데 오늘은 정말 시간이 없으니까 속전속결로 짧게 끝났다. 과장님이 혼나는 시간동안 나머지 직원들은 고개를 모니터에 처박고 사원채팅을 열어 야 오늘은 몇분이나 하려나? 를 시작으로 약간의 비웃음을 담은 대화를 했다. 그러나 나머지 사원들 모두 과장님의 능력이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오늘 엄청나게 퇴짜를 받은 그 문서도 자신들이 먼저 확인했을때는 보통의 문서였다. 문제는 부장님의 눈에는 쓰레기로 보인다는 것이지, 너무 완벽주의자니까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것이겠지, 또

부장님의 업무에 대한 완벽성 추구는 항상 과장님을 야근으로 몰아넣는 주범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회사원들이 공감하듯이 야근을 한다고 해서 문서가 갑자기 황금빛 찬란한 문서로 탈바꿈해 주는건 아니였다. 야근에 찌들어 안그래도 작은 체구가 쪼그라들것같은 과장님을 부장은 또 후라이팬에 볶듯 들들들볶아댔고, 결국엔 자신이 손을 대고나서야 만족을 할수있었다.

 

' 나같으면 부장이랑 한판 싸우고 회사 때려친다 ' 가 부하직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였다.

그렇지만 '카이토과장님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꺼야' 란것도 공통된 의견이다. 착하다 못해 순해 빠진인상의 그는 인상 그대로의 사람이니까,

이렇게 혼나고나면 풀이 죽어 울듯한 얼굴로 모니터를 십분쯤 그냥 쳐다보다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고쳐지지 않는 보고서를 이리저리 구색맞춰 낑낑대며 고쳤다.

왠지 과장님이 계속 풀이 죽어있으면 다른 사원들은 그것을 풀어주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그것은 모성본능과 비슷한 성질의 것 같았다. 파란빛의 머리가 덥수룩하게 부시시한 과장님은 혼자사는 티를 팍팍내고 다니는 불쌍한 사람인데다가 풀이 죽으면 초롱초롱하던 물빛색 눈이 그렁그렁하게 빛을 잃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서의 분위기 메이커를 하는 비서겸 잡무를 해주는 미쿠가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과장님께 코코아를 가져다주며

 

" 에이이 과장님! 힘내요 힘! 우리 맛있는거 사먹을까요? " 하고 생글생글 간식타임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항상의 영업1부 였으나, 오늘은 이 시나리오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미쿠가 과장님께 코코아를 갖다주기 전, 신문물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의 한 사원이 핸드폰에 재밌는 어플을 받았다며 모두를 불러모은 것이다.

처음엔 주위의 몇명만 관심을 보일 뿐이였지만 넉살 좋은 그중 하나가 " 과장님! 거기서 잉잉대지 마시고 이거 한번 해봐요 우리 " 하고 손짓했고, 부장또한 이러한것에 관심이 없는것은 아니였으므로 은근슬쩍 그들 뒤에 서서 곁눈질로 어떤 어플인지 살폈다.

 

" 이게 뭐에요? "

 

한 여직원이 스마트폰 화면속 동그란 다트판을 보고 물었다. 다트판을 터치하니 빈칸이 뜨면서 [벌칙입력] 란과 [사용자명]을 적는곳이 나타났다.

사원은 자랑스럽게 요즘엔 복불복도 다 스마트 하게 할수있는것이라며 신이나서 마구 입력하기 시작했다. ' 간식사기 ' ' 야근 하루 대신권 ' ' 회식쏘기 ' 등의 귀여운 것에서 부터 '남자일경우 상의탈의 여자는 섹시한 포즈" 와 같이 정말 저것만은 걸리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것들또한 선택지에 있었다. 

 

" 이거 진짜 넣을꺼야? 대리님 몸 자신있나봐? " 하고 깔깔웃는 여직원들은 은근히 저 선택지가 몸좋은 부장님이 걸렸으면- 하고 생각했다.

무뚝뚝하고 여사원들에게 친근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부장이였지만 그런것또한 잘생긴 그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기회에 눈호강이나 하자싶은 그녀들의 마음이 두근두근뛰었다.

그리고 뒷편에서 스마트폰이 뭔지, 어플이 뭔지도 헷갈리는 과장은 신기한 눈빛으로 까치발을 서서 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앞줄의 직원들이 마음대로 벌칙을 적고, 부서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흔들어 다트가 돌아가게 했을때 모두는 조용히 그 다트판이 멈추는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그제서야 과장님은 폰화면을 제대로 볼수있었고, 때 마침  '남자일경우 상의탈의 여자는 섹시한 포즈"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 .. 과장님.. "

 

" 네? 누가걸렸나요? 헉..."

 

 

 

 

 

 

*

 

 

 

 

" 옷벗고 오겠습니다 ... "

 

 

회사 다닌지 칠년, 옷을 벗기기 전엔 절대 옷벗을 생각은 없다며 다짐했는데 문자 그대로의 상황이 펼쳐진것이다.

과장님은 화장실에서 와이셔츠를 벗으며 온갖 생각에 휩싸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이나 좀 해둘껄, 그럴 시간도 없지만. 일부러 와이셔츠 큰 사이즈로 입고다니는거 이제 끝이구나.. 그나저나 젖꼭지는 어떻게 해야하지? 방송같은데선 반창고로 가리던데. 그건 개그프로였나,

이걸 여직원들한테 보여줄수도 없고, 내나이가 서른둘인데 ... 이젠 결혼은 정말 물건너 갔겠다. 그냥 화장실로 달려오지말고 그자리에서 남자답게 휙 벗는게 좋았을까? 하지만 멜빵이 있으니까 그렇게도 못했을꺼야. 정말 .... 못났다, 나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쪽이라서 천만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며 과장님은 벗어든 와이셔츠로 몸을 가려들고 쭈뼛쭈뼛 문을 열었다.

과장님이 없었던 십분동안 다른 룰렛을 돌려정해 놀이는 끝난상태였다. 모두 제자리에앉아 과장님이 들어오기만을 눈치껏, 업무를 하는 척 하며 문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원들의 카페채팅은 웃는이모티콘의 행진이였다. 부서에서 가장 나이많고, 가장 벗어서는 안되는분이 상의탈의라니!

부장님 조차도 일하는 중간중간 자신의 옆통로에서 언제 과장이 들어올까 내심 기다리는 눈치였다.

 

" 저 ... 이거 몇분동안 하고 있어야 하는거에요? "

 

하고 벌개진 얼굴의 카이토과장이 들어온순간 모두는 과장님의 허여멀건한 피부색에 놀라고, 커다란 와이셔츠안에 숨겨져있던 유실한 몸매가 너무나 여러보여서 쳐다보질 못했다. 차라리 배불뚝이 아저씨라면 하하하웃으며 놀려먹을텐데,  그리고 나름의 방책이라고 생각해간것이

 

" 과..과장님, 그 포스트잇은 뭡니까? "

 

어째서 이렇게 예의가 바른겁니까..하고 묻고싶을 정도로 예의바른 포스트잇 두장이 판판한 가슴 두곳에 붙여져있었다. 게다가 죽어도 빼먹지 않는 멜빵도 하고있는데다가 넥타이는 왜 하고 계신건지. 정말 과장님다운 상의탈의세요 .. 라고 게임을 주도한 사원은 생각했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와이셔츠로 가린 과장님이 자기자리에 앉아서 경직된 자세로 눈을 굴렸다. 어느타이밍에 옷을 입어야할지 맞추지 못한것이다.

여직원들이 " 어머 과장님! 살좀 찌우셔야겠어요, 허리가 나보다 얇아, 부럽네요~ " 하고 칭찬아닌 칭찬을 했다.

남자 사원들은 모두 난생 처음느끼는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였다. 어째서 저런데에 침이 넘어가는거지, 상대는 나이도 많으신 아저씨인데. 그런데 ....

 

' 하의벗기도 추가할껄 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아 '

분명히 저 마른다리와 허벅지라면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한걸까-하고 발기하기 일보직전의 누군가가 딴생각을 하기위해 노력했다.

얼른 집에가서 자위해줄테니까 잠시만 참으렴, 하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자위대상으로 나이많은 상사를 삼는다는건 흔하지 않은 일이였으나, 지금의것을 본이상 영 무리도 아니다. 여자보다 더 야한몸에 틀림없다.비쩍마른 어깨에는 여자보다 깊고 넓은 쇄골이 키스한번 해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남성성의 상징이라는 치골조차 과장님에게서는 여성의 유선함이 들어있었다.

 

자리에서 고개숙인채로 있던 과장님이 발그레한 얼굴을 살짝 들여올려 휙휙하고 주위를 살폈다.

나름대로 이제 옷을 입겠다는 신호를 보낸것이다. 그리고 접어두었던 와이셔츠를 활짝 펴기위해 팔을 들었다.

 

" 과장님 " 하고 부장님이 나즈막히 과장을 불렀다. 그의 얼굴에 미세한 미소와 홍조가 있었다. 그에게도 이장면은 남기고싶은 명장면임에 틀림없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네? 아유, 보기 민망하네요. 어서 옷입겠습니다. " 하며 과장은 슬슬 웃어보였다.

 

" 이리 와보세요 옷입으시지 마시고 " 하고 부장은 손짓했고, 과장님은 와이셔츠로 가슴팍을 가린후 쭈뼛쭈뼛하게 부장의 책상옆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카이토과장의 얼굴은 사과같이 빨개져있었고, 여자만큼 하얀몸은 흰 도화지 같이 창백했다.

영문모르는 과장님이 음? 하는 찰나 부장은 싱긋웃으며 유성매직으로 도화지같은 배에다가

 

[ 다음부터 보고서 제대로 써오세요 ] 하고 낙서를 했다.

 

유성매직이 차가웠는지 과장님은 " 흐익, 뭐.. 뭐하십니까 부장님 .. " 하고 반항 축에도 끼지못할 반항을 했고

이상황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앉아있던 다른 부하직원들이 모두 충격받은 얼굴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부장님의 책상쪽을 쳐다보았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색깔의 낙서는 형광등 빛에 비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한순간에 낙서장이 되버린 과장은 충격에 울먹거리며 와이셔츠를 서둘러 입으며

 

" 부..부장님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 " 하고 손을 낙서자국에다 얹고 고개숙였다. 사원들은 드디어 과장님이 우는 날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반면에 아무렇지 않은듯한 부장은 기분좋은듯 싱글싱글웃으며 낙서도구였던 매직을 한손으로 빙그르르 돌렸다.

 

" 과장님이 하~도 제말을 못 알아들으시는것 같길래요, 몸에다가 써드리면 기억하실까 싶어 한번 적어봤습니다. 이제 보고서 잘 써오실것같네요

그리고 와이셔츠 한치수 줄이셔야겠어요, 옷에 파묻히실라- 다른분들 뭐하세요? 얼른 일하시지 않고, 오늘 집에 안가고싶습니까? "

 

과장님은 어짜피 못갈것 같지만요. 그죠?

옷좀 줄이세요, 이만큼이나 남다니-하고 과장님의 어깨쪽의 남은 천 부분을 손으로 흔들어 보았다

 

 

 

 

 

 

 

 

 


'긴것 > The Office!(수정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Office! 06  (0) 2014.09.21
The office! 05  (0) 2014.09.21
The Office! 04  (0) 2014.09.21
The Office! 02  (0) 2014.09.16
The Office! 01  (0) 2014.09.16
Posted by michu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