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눈길이 느껴졌다마스터나직하게 부르자 등 뒤는 조용했다가벼운 발걸음으로 소리 없이 바짝 붙어선 발꿈치돌아볼까돌아볼까카이토는 마음속으로 열을 셌다아름다운 마스터가 등 뒤엔 있을 터였다새까만 생머리흑단색 눈동자새하얀 피부웃으면 붉은 입술이 빛나는 열매 같은 사람.

 

마스터.”

어라카이토어디 갔었어찾았잖아.”

 

찾았어요흔들리며 끊어지는 말의 의미를 그녀는 무시한다좁은 시야 속에서 사라져지면 마음이 부서진다잡아주는 가득한 손이몸을 안아주던 넓은 팔이영영 떨어지는 나와 함께 하는 날개같은 카이토가가지마내 옆에만 있어넌 그러기 위해 나에게 있는 거잖아대답해줘어서어깨를 잡은 손이 무거워진다작고 깡마른 하얀 마스터의 손이 목덜미에 닿자 핏기없이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카이토대답해마스터는 어느새 또 목을 조르고 있었다버릇이었다.

 

어서!!!”

죄송해요십 분정도 다녀온다고 말했는데오늘저녁거리.”

필요 없어함께 가자고 했잖아!”

잠시니까 괜찮을 줄 알았어요죄송해요.”

 

자그만 손이 힘은 굉장해서카이토는 슬슬 숨이 막혀왔다그래도 죽진 않지만그것이 마스터에겐 위안이고 안심이었다다행이야점점 눈이 희미해졌다탁해지는 머리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는 바닥에 떨어져 저녁거리로 사 왔던 양배추가 굴러갔다소리는 그것과 마스터의 귀여운 실소뿐인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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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자 마스카이 : 빗소리


카이토는 빗소리를 좋아했다비가 오면 산책이든 심부름이든 구실삼아 나가고 싶어 한다습기는 기계에겐 천적이지 않아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종으로 여겨지곤 하지하물며 안드로이드라면나 역시 평범하게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 속했다유리창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구경하는 것도 식간의 일이지하루 종일은 재미 없잖아나의 말 또한 바닥에 눅눅하게 떨어졌다닿지 않은 걸까넓은 창에 손을 맞대고 앉은 카이토의 등은 시려보였다.

 

결국 옆에 앉게 만들지.”

헤헤……같이 들어요.”

 

소리와 리듬의 경계에선 물방울들은 규칙이 있는가 하면 빗방울은 불규칙적으로 산재하다가 서로 하나가 되고다시 흐름이 되어 떨어질 때 파란 눈동자도 위에서 아래로 굴러 내린다빗방울보다 커다랗고 의미 있는 움직임이었다한참을 움직이던 눈동자는 나를 향하다 정지했다빗소리에 묻힌미세하게 눈동자가 움직일 때 들리는 소리마저 고요한.나는 침을 삼키려다 오히려 숨을 멈추고 말았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꼭 기계 시동소리 같지 않아요? 커다란 기계가 우릴 안아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 뿐이야.”

마스터가 이해하게 된다면비오는 날을 좋아하게 될지도요.”

 

태엽을 감은 작은 인형처럼 카이토는 살짝 미소 지었다비는 그칠줄 모르고 거대한 생물처럼 거세게 소리를 잡아먹었다. 이 커다란 흐름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한다. 나는 웅장한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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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카유카(으)로 「액자 속 사진」(을/를) 주제로 한 420자의 글 or 1페이지의 그림을 연성합니다. http://kr.shindanmaker.com/444945 

 

 

가지런히 정리된 정물화를 보는 듯한 유정의 책상 위에 올려진 작은 액자에, 앳된 귀여운 옷을 입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청소를 하면서 보드라운 천으로 닦으면서 카이토는 사진 속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생각하며 홀로 미소짓곤 했다. 어릴적 모습이 그대로 스며들어 보기좋게 성장한 얼굴과 비교하는 것도 카이토만의 즐거운 비밀중의 하나로 자리잡는다. 
콧노래를 부르며 액자를 닦으며 허리를 흔드는 카이토를 휴대폰을 하는 눈길로 힐금바라보며 기억나지않는 단편적인 시간을 박제해놓은, 사실상 의미없는 사진을 책상위에 올려놓고야 마는 고집을 곱씹었다.어릴적의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압축되어 농도짙은 털검은 짐승의 눈빛으로 어머니의 옷가지를 놓칠새라 조그맣게 쥔 주먹이 영 귀여운맛이라고는 없는것이다. 곧잘 어른들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긴 했어도 그 뒤에 머리를 털어내고야 마는.

 

"마스터의 어머니는 자장가를 아주 잘부르셨을것 같아요."
"글쎄, 그렇진 않았어."

"넌 언제나 노래가 먼저구나."
"마스터에게 들려드릴 노래가 먼저인거죠."

 

잘 부른 자장가는 어떠세요, 유정의 옆자리에 푹 앉아 표정을 살피는 얼굴을 손으로 밀어버린다. 
옷 안에서 간지러움이 밀려와 팔을 들썩이자, 기회를 놓친듯 입술을 삐죽 내미는 카이토에게, 내 어머니가 불러주었던 아주 느리고 평안한 숨소리가 자장가였을거라 말해주면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줄곧. 일부러 전원을 내리지 않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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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소중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이어폰에서는 카이토의 노래가 흘러나왔다방금 전에도 통화 했던 다정한 목소리지만 노래를 부르는 카이토는 사뭇 진지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온다전화선을 타고 밀려오는 보고 싶다고 칭얼대는 카이토는 노래를 부르는 카이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연락 없는 휴대폰을 붙잡고 방안에서 뒹굴 거리고 있을 모습부터 가만히잔잔하게 흘러갈 내가 없는 카이토는 소리 없이 자국을 남긴다내가 알지 못하는 카이토는 알지 못하는 채로.

 

귀를 타고 카이토가 흘러들어온다소리만의 카이토로 나는 소중한 얼굴을 기억한다입이 간지러웠다집에서는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카이토를 칭찬하기에 바빴다어쩔줄 몰라하면서도 빨개지는 얼굴이 너무 귀여웠으니까커다랗게 함박웃음을 지으면그것이 나의 가장 커다란 선물.

 

카이토가 너무 보고 싶어노래를 들으면 나아 질 줄 알았는데..’

 

노래를 들으면 마음의 물결이 더욱 거세졌다아직 집에 돌아가려면 사흘은 남았다그 동안 노래의 파동에 이 물결은 소용돌이가 되어 귓가에 맴돌다가 파란 조각을 남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짧은 순간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리움은 내 주위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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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마스카이>>
키워드 : 자물쇠

사람의 마음에 대한 수 많은 비유중에서, 그녀는 자물쇠로 마음을 잠구었다는 표현을 좋아했다. 실제로 머릿속에서 형상화 되는 생각도 그러하였다. 여러카테고리는 감정이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상자와도 같아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생각들은 마음의 자물쇠를 걸어놓고 나오지 않는다고 암시를 하곤 해. 
꽤나 깊은 속 이야기를 말하는 데도 불구하고, 카이토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네가 이해하긴 좀 힘들겠다. 컵에 남은 술을 마셔버렸다. 밀려 오르는 술기운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상자에서 덜그덕 거린다.

“술을 마시면 그 자물쇠가 헐거워 지나봐요.”
“음, 아무래도 그렇지. 사람이 너무 풀어주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으니까?”

그럼 더 마셨으면 좋겠어요. 세 개째의 아이스바를 냉동실에서 꺼낸 카이토는 입안에 아이스크림을 우물대며 빈 술잔을 채웠다.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흘러내리는 단내를 핥았다. 오늘이 아주 긴 밤이 되기를 카이토는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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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호유정카이>> 

키워드 : 좋아했던 너

그렇게 생각한 때도 있었어. 저놈이 날 좋아하나. 하는 생각 말이야. 남은 주스를 입안에 털어 넣은 백인호는 킬킬대며 유정을 손가락질 했다. 가운데에 앉은 카이토는 굳어가는 유정의 얼굴을 느껴가며 어설프게 그렇구나, 하고 난처하게 웃었다. 유정이 들고 있던 캔은 곧 찌그러지기 일보직전으로 얼그러지고 있었다. 

“워낙에 질투를 해서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마.”
“말이니까 지껄이지. 그치 카이토?”

절 끌어들이지 말아주세요, 두 분의 과거 이야기는 같은 시간을 보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르게 말씀하시니까. 카이토는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면서도 유정이 손에 든 캔을 인호의 얼굴에 던져버리진 않을까 두근거렸다. 오늘 저녁에 함께 들어갈 유정의 눈치와, 내일 레슨으로 만날 인호의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기운이 쏟겨졌다. 여전히 교살스럽게 킥킥대며 다 먹은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웃음을 뚝 그쳤다.

“다 옛날일이지. 좋아하기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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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이>>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다. 한 번 놓치면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기 십상이었는데,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어 보게 되었던 것의 하일라이트 장면이었다. 주인공 커플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하며 키스신을 하는것을 함께보고 있자니 등 뒤가 서늘하다. 소름돋네요. 막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팔꿈치로 어깨를 툭, 쳤다. 

"...날 사랑하게 만들거야..."
"네에???"
"응?"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드라마에 집중하느라 그는 카이토가 옆에서 눈이 튀어나올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왜, 무슨말 했어? 여전히 눈은 TV에서 헤어나올줄을 몰랐다. 그렇지만 옆에서 아, 저. 그, 그게 아니라. 하며 벌게진 얼굴을 숙이고 있는 카이토를 보자 그는 어떤 추측을 했다.

"너한테 한 얘긴 줄 알았어?"
"지금 둘 밖에 없는데, 그럼..그걸.."

“드라마에 집중해, 나 말고.”
눈을 떼지 않은채로 볼을 가져가자 카이토는 불만스럽다는 얼굴로 입을 맞추었다. 화면을 가리고서 그들처럼 키스하고픈 충동을 참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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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카이유정>>

문득 유정은 카이토가 남자의 성격을 기반으로 만든 안드로이드 인 것을 생각하면, 과도하게 상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모든 카이토들은 자신의 오피스텔의 저것 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모양으로 마스터들에게 헌신하는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마찬가지로 저도 다른 카이토를 본 적이 없어서요. 유정이 내일 입을 셔츠를 다리던 카이토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그렇게 상냥한 편인가요. 퉁명스럽게 뱉었지만 내심 숨어있는 칭찬을 눈치 챈 카이토는 슬슬 웃으며 남은 다림질을 했다. 

“저라도 상냥하지 않으면 힘들겠죠.”
“마냥 칭찬은 아닌데.”

그렇게 헌신적으로 해주다 보면 자신이 없어지기 마련이야. 무릎 꿇은 발가락을 꼼지락대는 것을 쳐다보던 유정은 받은 셔츠를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뜨끈한 스팀에서 은은한 유연제의 향이 난다. 생각해보니 이미 카이토에게 자신이란건 없는거나 마찬가지 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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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거부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삐-소리가 들리면-]

미련하게도, 27번이나 이어진 수화기음을 내려놓았다. 받아주세요, 받으세요. 전해지지 않는 말을 되풀이하며, 카이토는 옆을 흘겨보았다. 
우체통에 담겨있던 보낸곳, 받은곳이 비어있는 정갈한 서류봉투 속에는 며칠전의 자신이 찍혀있었다. 집밖으로, 창문가로 조차 나간 적이 없는 날. 낮잠을 자고있는 모습.
가까이에서 찍었다고 밖에 볼수없는 선명한 사진에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더러운 점액이 덕지덕지 한몸이 되어있어, 봉투를 열자마자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커다랗게 현상된 사진 뒤에는 NEXT. 하고 의미모를 단어가 휘갈겨져있었다. 피가 묻은 칼, 죽은 토끼.다음엔? 

'이번달에만 벌써 세번째니까.'


온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역겹고 더럽고 징그러웠다. 벌레같은 그림자는 꽁지하나 보이지않은채로 이 집에 이미 들어와 있어서, 휴대폰을 잡고있는 지금도 어디서 살펴보며 더러운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정신이상자의 무작위적인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마스터와 함께 웃어 넘긴 처음을 후회했다. 
시계 초침넘어가는 소리에도 심장이 덜컥내려 앉는다. 입술을 꾹깨물고 다시 휴대폰의 단축번호를 갖다 댔다가 밀려오는 거짓에 내려버린다. 아침에 분명히 전화하면 바로 받겠다고 약속 해놓고서는, 언제 오시는지 바깥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창문가를 쳐다보면, 눈을 마주칠수도 있을것 같았다. 상상만해도 바닥으로 무너지는 오싹한 기운에 질끈 눈을 감아버린다. 

"빨리 돌아오세요.."

참 좋아할만한 장면이겠다. 바보같이 삐질삐질 우는 모습이라니. 
뒤를 비워두면 뒤에서 쳐다볼것만 같아서, 벽에 기대서 주저앉는다. 크지 않은 방에 무거운 공기가 목을 구속한다. 카이토는 느껴지는 무형의 압박에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가장 소중한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몸과 모든것이 자신 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메세지의 1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 받지않을 전화를 다시 떨리는 손으로 눌려 걸었다. 보고싶어요, 어서, 빨리. 목소리라도.
소리내지 않으려 입을 막은 울음이 수화기에 섞여나왔다. 세운 무릎에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 보고있는거 다 아니까. 얼굴 보여주지 않을꺼야."


오롯이 떠오르는 얼굴과 목소리가, 더러운 사진의 환상과 머릿속에서 싸워대는 시간안에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향기가 드는건 자신의 착각일 뿐이라고, 떨어지는 눈물 안에서 몇 번이고 생각을 지워냈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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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자 키워드 일상속의 행복


창문을 열자 서늘한 여름바람이 스쳤다. 해가 길어지고 있었다.
길어지는 해 만큼이나 느릿한 저녁시간과 이어지는 디저트시간은 끝날듯 끝나지 않는다. 밥을 먹고나면 맥주 한잔 할까, 하고 간편한 반바지를 입은 마스터는 편안한 얼굴로 냉장고를 뒤적인다. 그것마저 섹시하게 느껴진다고 하면 프로그램상 오류인걸까. 

"짠, 네것도 들고왔지."
"에헤헤..감사합니다."

손에는 맥주한캔, 아이스크림 하나. 볼에 가져다대며 살짝 웃는다. 천천히 눈속에 담기는 미소를 놓치고 싶지않아 카이토는 눈을 크게 떴다. 순간의 바람,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따뜻한 웃음의 찰나를 기록했다. 이 순간이 내일도 다가 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카이토의 손을 툭, 쳐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배터리가 다 된건 아닐텐데. 

"뭘 그렇게봐, 너무 예뻐서 그래?"
"그럴리가요.."
"그런데 왜 얼굴은 빨개지고 그래. 술은 내가 마셨는데!"

응, 응? 하고 보채듯 묻자 대답대신 돌아오는건 바닐라맛의 입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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