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거부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삐-소리가 들리면-]

미련하게도, 27번이나 이어진 수화기음을 내려놓았다. 받아주세요, 받으세요. 전해지지 않는 말을 되풀이하며, 카이토는 옆을 흘겨보았다. 
우체통에 담겨있던 보낸곳, 받은곳이 비어있는 정갈한 서류봉투 속에는 며칠전의 자신이 찍혀있었다. 집밖으로, 창문가로 조차 나간 적이 없는 날. 낮잠을 자고있는 모습.
가까이에서 찍었다고 밖에 볼수없는 선명한 사진에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더러운 점액이 덕지덕지 한몸이 되어있어, 봉투를 열자마자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커다랗게 현상된 사진 뒤에는 NEXT. 하고 의미모를 단어가 휘갈겨져있었다. 피가 묻은 칼, 죽은 토끼.다음엔? 

'이번달에만 벌써 세번째니까.'


온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역겹고 더럽고 징그러웠다. 벌레같은 그림자는 꽁지하나 보이지않은채로 이 집에 이미 들어와 있어서, 휴대폰을 잡고있는 지금도 어디서 살펴보며 더러운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정신이상자의 무작위적인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마스터와 함께 웃어 넘긴 처음을 후회했다. 
시계 초침넘어가는 소리에도 심장이 덜컥내려 앉는다. 입술을 꾹깨물고 다시 휴대폰의 단축번호를 갖다 댔다가 밀려오는 거짓에 내려버린다. 아침에 분명히 전화하면 바로 받겠다고 약속 해놓고서는, 언제 오시는지 바깥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창문가를 쳐다보면, 눈을 마주칠수도 있을것 같았다. 상상만해도 바닥으로 무너지는 오싹한 기운에 질끈 눈을 감아버린다. 

"빨리 돌아오세요.."

참 좋아할만한 장면이겠다. 바보같이 삐질삐질 우는 모습이라니. 
뒤를 비워두면 뒤에서 쳐다볼것만 같아서, 벽에 기대서 주저앉는다. 크지 않은 방에 무거운 공기가 목을 구속한다. 카이토는 느껴지는 무형의 압박에 손을 목으로 가져갔다. 가장 소중한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이몸과 모든것이 자신 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메세지의 1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 받지않을 전화를 다시 떨리는 손으로 눌려 걸었다. 보고싶어요, 어서, 빨리. 목소리라도.
소리내지 않으려 입을 막은 울음이 수화기에 섞여나왔다. 세운 무릎에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 보고있는거 다 아니까. 얼굴 보여주지 않을꺼야."


오롯이 떠오르는 얼굴과 목소리가, 더러운 사진의 환상과 머릿속에서 싸워대는 시간안에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향기가 드는건 자신의 착각일 뿐이라고, 떨어지는 눈물 안에서 몇 번이고 생각을 지워냈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는건.

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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