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스미 4주년


행복의 수를 세어보면


친애하는 당신에게.


언젠가 당신이 나의 손을 잡으며 푸념처럼 했던 말이 떠오른 건 사소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올여름은 진득하게 더웠으니까요. 에어컨은 고마우면서도 폭력적인 기계에요. 머리가 아프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차가운 바람을 포기하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얼음처럼 차가운 손과 열띤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선. 죽겠다. 죽겠어. 사람 살려. 중얼거리는 당신의 장난이 섞인 말이 들으며 가져간 손이 내 볼에 닿자 한껏 누르거든 목소리로 스미레 손은 시원해서 좋아. 당신이 좋다면 나도 좋아요. 소파 옆에 기대서 앉아 깜빡깜빡 졸리운 눈이 감겼다가-. 천천히 눈을 뜨는 간격이 느려지고 편한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도 모르게 같이 얼굴을 맞대고 늘어지고 싶은 시간이에요. 그리고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과 이마를 맞대고 고요하고 시원한 물에 잠겨들어서 겉으로는 따스한 햇볕. 그리고 머리카락을 흔드는 바람.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이상향을 떠올려요.



"스미레, 넌 내가 죽으면 어떡할래?"


그 물음만큼 내게 두려운 질문이 없었어요. 그래서 당신의 손을 더욱 굳게 잡고 그럴 리가 없다-. 고 대답했죠. 당신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지 말았어야 했지만, 감정을 숨기는건 아직도 어려운 일이에요. 언젠가 우리의 시간도 끝나겠죠. 대부분은 확신할 수 없는 일들만 가득해요. 당신은 가끔씩 병원에 다녀가고, 피곤하면 침대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요. 그때마다 나는 혼자 집을 지키며 당신이 돌아오면. 우습게도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 떠올리면 눈물이 난답니다. 우습지요. 매번 돌아와 주었는데. 우리의 시간은 다른 절댓값을 가지고 있지만 겹쳐서 흐르고 있어요. 


"그럴리가 없다니. 사람은 일단 언젠간 죽는다고..?"

"..그렇지만. 그럼 마스터랑 같이..죽는게 좋을까요?"

"진지하게 말하지 마. 무서워."


그래요. 무서우니까. 미래를 알지 못하는건 무서운 일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같은 아침을 시작하고 작은 화분을 기르고-당신은 물을 몇번 주는게 끝이지만, 그 아이들은 그걸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답니다.- 저녁에 함께 흘러가요. 매번 좋은 꿈 꿔. 내일 또 보자. 내 귀에 소근거리는 목소리는 소원을 비는 것처럼 경건하고 평화로워서 이루어질것만 같아요. 당신의 팔에 내 체온을 이어서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해요. 모든 게 미지수로 가득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 만은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사건으로 내 세계를 만들어가요. 


"응. 내일 또 만나요."

"노래 불러줄래? 저번에 들었던 것도 좋았고."

"좋지만..듣느라고 안 주무시잖아요."

"낮에 좀 잤더니. 오히려 이렇게 돼버리네."


때로는 말을 표현하는 것 보다 모양이 확실한 음에 담긴 노래가 이 순간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까 낮에 한 이야기 말인데. 별 뜻 없이 한거였어. 놀랐다면 미안해. 노래하는 동안엔 말을 할 수 없으니. 그저 눈으로. 그건 내가 당신을 너무나 아끼고 있기에 그랬어요. 당신이 준 행복만큼 내가 돌려줄 시간이 필요해요. 당신이 이걸 보면 웃어줄까요. 항상 함께 있는데. 편지의 효용이 있을까요. 그렇지만 당신의 얼굴을 보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피어오르는 꽃들처럼 자라나는 머릿속의 기쁨은 오직 당신을 향하고, 수를 세어보면 영원이 지나가요. 

그러니까, 이 모든 슬픔은 당신과 행복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 슬퍼말아요. 

나는 아직도 당신의 빛나는 눈을 보고 있어요. 언제라도 당신의 손을 잡고, 가만히 울리는 노래를 불러줄게요. 



p.s 넣어둔 꽃은 가을이 되면 책갈피가 될 거예요.





이게 뭐라고 쓰는데 오래걸렸을까요..새로운 형식으로 써보려다가..

유은이랑 오래오래 행복하자~ 4주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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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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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생일] present

린 로그 2019. 9. 14. 09:11

Present

 

오늘도 비가 내렸다. 이 도시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올해 여름은 비가 자주 왔다. 린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낙하하다 부딪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진다. 밖은 잔디가 촉촉하게 젖어 잔디의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싱그럽게 보였다. 주기적으로 살려놓으려고 스프링클러로 뿌리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는 듯 했다. 며칠의 휴가가 생겨서 어딘가 놀러 갈까. 라고 서두를 꺼내 보았지만 사실 딱히 생각해둔 곳은 없었다. 왠지 원호가 가고 싶다고 말할 어딘가를 낙관하고 있었다. 3일 냈어. 오늘은 종일 비가 올 모양이야. 커피머신에서 자주 먹는 브랜드의 커피를 내리고 원호 몫의 코코아에 뜨거운 우유를 저어 내밀자 겨우 얇고 헐렁한 니트에 뻗은 손으로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아침에 퍽 약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더욱 잠에서 깨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늘게 뜬 눈에는 작게나마 싫증이라든지 실망이 담겼다 닫혔다.  


"비 오는 날에 나가는 거 싫어. 신발도 더러워지잖아."

"그렇겠지...그치진 않겠는데. 일기 예보를 보니까."

"됐어-. 그냥 집에서 린이랑 있을래."

"그걸로 괜찮아? 그.."


응? 하고 되묻는 원호의 얼굴에 졸리운 기색은 사라지고 은근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곧 린의 팔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가져갔다. 원호는 정말로 스킨쉽을 좋아해서. 손을 잡는 건 당연한 수순이며 눈을 떼고 있으면 그 만큼의 답을 해줘야 한다. 린은 원호의 머리카락을 만지면 즐거워서 곧잘 그렇게 했는데, 아마 오늘도 그걸 원한 게 아닐까.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당연하게도 당연해지기 힘든 특별한 감정이 계속해서 이어지니까. 수긍한 지 오래된 문장을 곱씹으며 잠결에 뻗은 머리카락 몇개를 손가락으로 훑어내린다. 양 팔을 뻗어 린의 몸을 가깝게 안고선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흐음. 알겠다. 생일이라서 그러는 거지? 왜 휴가를 갑자기 냈다고."

"선물 말이야. 그게..생각이 안났어. 물어보면 재미없잖아. 그러다 오늘이 되버렸네.."

"내가 뭘 갖고싶은지 궁금해? 진짜 쉬운데!"


예전부터 생각했다. 선물이란 것의 특성은 굉장히 이상하다. 상대에게 고려한 물건을 사줘야 한다. 시험에 든 것 처럼 고뇌할수록 상대를 생각한 거라고 치부한다. 인간은 서로가 다른 우주라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완전히 받고 싶은 이상적인 선물은 없으면서도 받으면 기뻐해야 한다. 새로운 구두. 초커. 그리고 최신기종의 스마트폰. 원호에게 그런 물건은 대수롭지 않았다. 비슷한걸 사면서도 손에 맞는 취향이 있는지 신지 않는 구두나 몇번 목에 걸리지 못하고 장식장에서 밀려나는 초커를 보며 너는 선택받지 못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 순간의 린은 얼마 안되는 직감으로 이 문제의 대답을 맞추지 못한다면 이후의 루트가 힘들어진다는 걸 느꼈다. 세개 다 사두었다는 대답은 아냐. 그렇다면, 원호가 정말로 원하는건-. 게임의 선택지를 고를때 처럼. 가장 신뢰성 있는 루트가 어딜까. 하지만 실전에는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게임이 더욱더 쉽게 느껴진건 이 때문이다. 


"음..혹시..나..인가? 그런거면..이미 가졌잖아. 그거 말고.."

"와...린이 그런말도 하네?"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너무 일찍 일어났지. 좀 더 잘까."


침대 위에 선물상자 세 개를 이미 올려두고 왔어. 랜덤 박스를 고르는 기분으로-..그런건 나만 좋아하겠지. 온종일 집에서 놀자. 오늘은 게임도 하지말고. 매일 그랬지만 오늘도 너에게 온전한 하루를 선물할게. 너의 공략법을 평생 알지 못한채로. 그런걸 재미로 살게 될거야.




이랬는데..

원호가 사실 비오는날 나가는걸 좋아한다던가 하면 어떡하지.

그냥 캐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원호야 생일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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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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