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 5/23~24>

2019. 5. 2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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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색 후회  




 장례식장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가던 린은 문득 자신의 모습에 끔찍한 괴로움을 느꼈다. 잊을 만 하면 내면의 괴물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조롱에 섞인 웃음을 터뜨린다. 조문객이 드문 복도에는 선명한 죽음의 냄새가 풍겨왔다. 알고 있다. 죽음에는 냄새가 있었다. 형태는 없지만, 결과는 있으며, 그림자처럼 곁을 맴돈다. 인간이라면 평등하게 가지는 얼마 안 되는 속성 중 하나라고 린은 생각했다. 죽음을 처음 만난 것은 열 두살의 겨울이었다. 린은 어떤 면으로도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 할 순 없었다. 모양이 틀린 퍼즐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에 불과한 아이. 구석에서 앉아있으면 그와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이었을지 어렴풋이 상상으로 그렸다면, 아버지인 모습보다는 좋았으리라. 린 또한 그의 기대에 답하는 자식이 될 마음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덥고 습한 홍콩의 여름 날씨에 지쳐 거실에서 죽은 듯 잠이 들면 장식장에서 망가진 인형을 만지듯 후회가 가득한 손길로 식은땀이 맺힌 이마를 쓸어 넘기던 편린 만이 그와의 연결점이었다. 날 만든 걸 후회했을까. 지독하게 후회했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의 결실이 고작 그랬으니 말이다. 웃지 않는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장례식은 무척이나 쓸쓸한 풍경이었다. 몇 사람들이 죽어서야 그를 찾아왔고, 검은 옷을 입은 린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 주었다. 울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그랬던가. 울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다시금 가라앉는 기분을 상기하며 시선을 돌리자 복도를 장식한 커다랗고 흰 꽃들에서 작위적인 인사치레가 느껴진다. 급하게 챙겨입은 검은 바지주머니에 넣은 흰 봉투를 쥐었다 구겼다. 장소가 아니었다면 줄담배를 피우며 뱉는 숨에는 욕을 지껄였을 것이다. 밀려오는 자조감을 견디기엔 기댈 것이 부족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항상 이런 모양이었다. 온전한 나만의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삶이었다. 발을 붙이고 걸었던 홍콩의 거리도, 한번도 새로운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 없던 이국의 땅에서는 그늘진 곳 만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을까. 손에 한번 쥐었다 놓쳤던 가늘고 뼈대가 만져지는 서늘한 손을 한번 만 더 잡아볼 수 있을까. 지독한 죽음의 냄새가 너에게 스며들지 않기를 이곳에서 바라고 있었다.   


 바람이야 크나크고 꼽자면 전부가 비현실적이다. 겨우 정리한 말 하나를 쥐고. 바닥에 눈을 굴리다 얻어낸 답이었다. 지인이 있었다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말했을 것이다. 제정신이야? 관계를 정리한 건 너잖아! 대신 머릿속에서 가상의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견딜 수 없었다. 그땐 사실이었다. 갑자기 타인을 자신의 일상에 들인 모습은 상상해본 적 없는 형태였으며,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처하기 힘든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겠지만. 그럼에도 밀접한 관계란건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누가 음침한 인상으로 게임만 하는 인간을 좋아하겠는가. 인간이라면 호감을 불러일으킬 타인에게 관심이 쏠리기 마련인데. 꿈에서 깨어나듯 린은 어째서 원호가 자신을 선택하고야 말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술에 만취한 그 날로부터 석 달 뒤의 고해였다. 살아가며 종종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생겼다. 평소라면 가지 못 할 장소에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든지. 이 세계에 실제하는지, 실제 할 수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존재를 만나는 일보다 더 놀라움을 느끼는게 새삼 놀라웠다. 놀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지. 그런 상황에 그다지 놀랄 이유는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놀랄만큼 놀라기 전부터 린은 처음부터 세계를 의심하고 있었다. 지나온 삶은 괴로움만이 가득했고, 자신 이외의 사람들은 새삼 행복해 보이는건 누군가 꾸며낸 일이 아닐까 해서였다. 지독하게 자신만을 보고 있었지만, 정작 거울 앞에 선 모습에는 아무도 없었다.



***



 첫 문장을 쓰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두어 줄의 문장을 이어 쓰는 건 쉬웠다. 원호는 중국어를 아마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한자를 써도 획이 조금씩 달랐던가. 그렇게 말하니 그렇겠거니. 린은 손쉽게 납득했고 오히려 다행이었다. 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러 흘려쓴 문장을 두 번 접어 상자에 넣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원호의 눈에 상당한 크기의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건 불편하지 않을까.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지만. 완전히 다른 생물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우리는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도 성적인 관계에서 시작한 무언가는 어떻게든 결실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리숙하게나마 잡은 손을 꽉 쥐여 주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처음 지어본 표정은 혼란스러웠다. 웃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 해서든. 어설픈 미소라도.


 굳은 얼굴이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이질적으로 덮쳐오는 온몸의 근육통과 갑작스레 느껴진 체온의 크기만큼의 책임감에 잠을 설쳤다. 린의 옆에서 조용히 밀려오는 새벽의 빛에 비치는 잠든 얼굴은 평온해 보였고, 린은 같은 크기의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푸른 물색이 가득한 수족관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안타깝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흘러온다.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이곳은 작은 세계가 되어 차갑지만 부드럽게 두 사람을 감싸는 상상을 한다. 작은 스노우볼을 보듯 안을 들여다보자 오래된 이불의 감촉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 무렵의 린은 누군가에게 쫓기듯 감정을 재단하고 들여다보며 사전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결국 이 감정의 이름은 죄책감일지도 모른다고. 섣부른 글자에 줄을 그어두었다. 익숙하고도 찾기 쉬운 답이었다. 수족관에서의 경험은 놀라웠고, 그렇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늘 찾아오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 채로 애매한 감동을 뒷맛으로 남겼다. 놓아야지. 놓고, 놓고 나서. 곱씹었던 말을 하고. 그러면 몇 달간의 번민은 끝나게 될것이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누구와도 인사치레를 하지 않던 나날로. 아름다운 시간과 풍경이 누군가의 꿈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견고히 하며 하얀 뺨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로 수족관 밖의 더위에 풀 죽은 땀을 닦으며 가만히 흐르는 눈물조차 닦지 않았다. 가치 없는 눈물은 속죄가 되지 못한다.


 감정은 씻어보고 닦아보아야 그 이름을 제대로 말해주었다. 항상 그런 식이지. 귀를 간지럽히던 목소리를 듣지 않자 손이 닿을 때 마다 느껴지던 두근거림은 잦아들어서, 온기가 식은 이불의 감각도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집에 들를 때 마다 입었던 사이즈가 조금 작은 옷이나 코코아 가루. 사진. 거울 조차 잘 보지 않던 터라 사진은 더욱 어색했다. 제대로 웃으며 찍었던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상자에 넣으면서 깨달았다. 함께 찍은 사진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손을 잡은 것도, 깍지낀 손의 간절함도 사실은 린이 먼저였다는 것을. 그리고 후회는 익숙하다. 어떤 의식을 치르듯 남은 흔적을 정리하고 나자 가슴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마지막에 보았던 일그러진 얼굴에서 까지 어렴풋한 희망을 느끼는 자신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찔러 죽였다. 헤어짐에 눈물 흘릴만큼. 그만큼, 그만큼이나 내가 소중했던 걸까. 이 꿈은 입술에 붙으며 달콤하지만 끝은 잔인하다. 그렇지 않겠지만, 혼자서 새벽을 맞이할 얼굴을 떠올릴때 마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단지 그러고 싶었다. 조용히 숨을 이어가는 순간을 함께. 젖어가는 절망에서 밝아오는 새벽의 빛에 드리운 너의 얼굴을 한번만 더. 그렇게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



 노을이 떨어져 이루는 색으로 물들어가는 호숫가는 하루의 끝을 알리는 주황색의 커튼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원호의 불행한 소식을 들으며, 그걸 기회라고 생각한 경멸스러운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서라도 잡은 기회였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무슨 낯짝으로. 무슨 이유로. 무너지는 인식을 겨우 붙들어 놓았던건 다시 만났을때 실낱처럼 지나가던 희망을 보아서 였을까.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나만큼 괴로웠길. 나만큼은 아니었길. 노을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호수 위를 일렁이고 있었다. 행인들은 대부분 둘이서 하나였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 또한 그랬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하루. 그러나 이 하루를 얼마큼 갈망했는지,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예전의 나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조금 발걸음을 빠르게 걸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두 세배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곧 터져버린다 해도 괜찮았다. 차라리 그걸로 속죄된다면 오히려 바랄 정도로. 


"오늘..즐거웠어? 생각만큼..잘 따라주진 않았었던가. 항상 그렇지만."


 마음에서 부르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었다. 사실. 세상은 너무나도 지독하고 고독했다. 바라지 않는건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만큼 그림자를 만드는 절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돌리고 언젠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하나를 기다리기엔 나는 너무나 약하고, 비겁하고, 검쟁이였던 것이다. 벽을 보고 지내는 생활에 위안을 느끼며 만족하고 있었다. 아니, 만족하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도 이 생에서 무언가를 얻어가고 싶었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손에 어떤 것을 쥐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느끼며 발을 붙이고 싶었다. 


"난..아무래도 예전부터...사랑하고 있었을거야.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


 기억 속의 장면이 겹쳐온다. 뒷 배경은 다르지만 그 속의 너는 항상 즐거워보였다. 가끔은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잠시간의 침묵동안 얇은 필름속의 너는 겹쳐져 눈 앞에서 밝아졌다. 내 물음과 느린 움직임이 이마에 닿자 귓가에서 커다란 물음과 심장소리가 요동쳐 그 세계는 다시금 어느때로 돌아갔다. 물이 가득했던 차갑지 않은 수족관. 아스라히 지나가는 서늘한 행복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 많은 문장을 말하고 싶었다. 얼만큼, 얼마만큼이나 당신이 아름답고, 어두운 세계를 밝히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나에게 구원이 되었는지. 네가 없던 방이 너무나 어둡고 슬프기까지 했는지. 고작 몇 달 만에 네가 얼마나 나를 바꿔 놓았는지. 그건 좋은 방향이든 좋지 않은 방향이든 이제 아무 상관 없었다.


 "포기할 용기도 없었어. 애매한 후회는 하지 않을거야. 네가 나의 용기야."


떨리는 손을 내밀자 품에 안겨오는 무게에 린은 비로소 생의 무게감을 찾은듯 천천히 미소 지으며, 아주 깊은 곳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뭉근한 따스함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비로소 사랑이란것을. 






아니..이걸 이제야 쓰다니 죄송합니다..

고록 비슷한 그런건데 너무 늦었네요..하핫...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호야 린이랑 행복해라~

지내시면서 하시고 싶으신거나 불편한 점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상의해주세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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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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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용사들! 전문

2019. 4. 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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