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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21 [300] 편지 위의 안개꽃
  2. 2019.09.14 [원호생일] present
  3. 2019.08.14 [200일] Hello. A
  4. 2019.05.03 [100] 노을색 후회

편지 위의 안개꽃 



안녕, 원호야. 내 옆에 잠든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무척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글을 써서 남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기로 했어. 알고 있잖아. 

머리에 있는 것을 말로 표현한다는 일은 엄청나게 어려워. 나는. 

넌 별로 어려워 하지 않지만. 보고 있어도 항상 끊임없이 네가 생각이 난다던지. 

그런 말을 하기엔. 무거운 사랑은 독이라고 그러잖아. 그래서 어떻게 온전히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난 아직 모르겠어. 시간이 필요한 일이겠지. 그만큼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 

너는 어때? 

날 사랑하는 걸로 너의 시간을 보내는 게. 



널 만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어. 

나라는 인간을 전부 뜯어고쳤다고 말하면 과분하겠지만. 어디까지 나라는 인간을 드러내도 네가 받아줄 것이란 확신을 하기까지 널 힘들게 했잖아. 그건 항상 말하지만 내 실수고, 무지고..또..이런 생각을 해선 안되지만, 네가 날 만나서 이상한 일을 더 겪는 건 아닐까. 널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너와 죽음 중에 선택할 일이 생긴다면, 난 언제나 망설임 없이 죽음을 선택할 거야. 그렇게 되면 넌 날 온연히 잊고 살아줬으면 좋겠는데. 내 이기심만 가득한거겠지. 괴로워 하지 마. 그러면 머리아프잖아. 

이마를 만져줄 나도 없는데 머리아프면 쓸쓸하니까. 



편지가 길어지고 있어. 하고 싶은 말은 정작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넌 이미 여기서 질려서 편지를 접어버릴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괜찮아. 보조적인 수단으로 여겼던 거니까. 그렇지만 약속할 수 있어. 이 편지는 무엇보다 진심이고. 그렇기에 헤메인다고. 이럴거면 왜 쓰는건지 나 조차도 의문이지만. 너에게 말을 전하기 전에 정리해볼 셈으로 쓰다가,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편지지가 하나 있길래. 펜으로 글을 쓰는게 오랫만이라 글씨가 엉망이야. 다시 써야할지도.



안개꽃 한 다발을 샀어. 내 돈으로 사는 꽃은 두 번째네. 첫 번째는 네가 중간고사를 마친 날이었잖아. 학교에 가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일이 많더라도, 네가 그 길을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걸 배워서 뭘 하고 싶을지는 천천히 정해도 나쁘지 않으니까. 네가 재밌는 일을 한다면 그걸로 그만이야. 이곳에서의 생활 또한. 마음에 들어? 전혀 고향이 그립지 않다던가..그립지 않은것 같지만. 이번엔 안개꽃을 샀어. 화려한 꽃도 눈을 흔들지만 나는 왠지 이걸 든 네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울거야. 물론 장미나 작약처럼 꽃잎이 많고 색이 다양한것도..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꽃은 없어. 그 모든 꽃보다 네가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보석일테니.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 네 눈에 온전히 나를 담고 그 세계에 빠져든다면, 그런 이상향과 이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천천히 좋아하자고, 너를 천천히 사랑하고 싶어. 끝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너를 천천히 여기는건 불가능하단걸 받아들였을 뿐이야. 이 계절도, 다시 돌아올 계절도. 네가 있는 풍경만이 빛을 잃지 않고 제 몫을 다 하고 있어. 찬란히 흔들리는 위험 속에서도, 가끔씩 다가오는 이상한 공포 속에서도. 너만은 잃지 않겠다고 늘 다짐해. 너를 잃지 않게 해줘. 

눈을 뜨면 네 앞에 있을 안개꽃다발을 좋아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오후 세 시에. 


P.S. 리본도 내가 만든거야. 물론 끈을 묶은것 뿐이지만.



퀼을 해봤어요~ 14점받아서 높은 점수 받았답니다.

린원호 300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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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생일] present

린 로그 2019. 9. 14. 09:11

Present

 

오늘도 비가 내렸다. 이 도시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올해 여름은 비가 자주 왔다. 린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낙하하다 부딪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진다. 밖은 잔디가 촉촉하게 젖어 잔디의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싱그럽게 보였다. 주기적으로 살려놓으려고 스프링클러로 뿌리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는 듯 했다. 며칠의 휴가가 생겨서 어딘가 놀러 갈까. 라고 서두를 꺼내 보았지만 사실 딱히 생각해둔 곳은 없었다. 왠지 원호가 가고 싶다고 말할 어딘가를 낙관하고 있었다. 3일 냈어. 오늘은 종일 비가 올 모양이야. 커피머신에서 자주 먹는 브랜드의 커피를 내리고 원호 몫의 코코아에 뜨거운 우유를 저어 내밀자 겨우 얇고 헐렁한 니트에 뻗은 손으로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아침에 퍽 약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더욱 잠에서 깨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늘게 뜬 눈에는 작게나마 싫증이라든지 실망이 담겼다 닫혔다.  


"비 오는 날에 나가는 거 싫어. 신발도 더러워지잖아."

"그렇겠지...그치진 않겠는데. 일기 예보를 보니까."

"됐어-. 그냥 집에서 린이랑 있을래."

"그걸로 괜찮아? 그.."


응? 하고 되묻는 원호의 얼굴에 졸리운 기색은 사라지고 은근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곧 린의 팔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가져갔다. 원호는 정말로 스킨쉽을 좋아해서. 손을 잡는 건 당연한 수순이며 눈을 떼고 있으면 그 만큼의 답을 해줘야 한다. 린은 원호의 머리카락을 만지면 즐거워서 곧잘 그렇게 했는데, 아마 오늘도 그걸 원한 게 아닐까.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당연하게도 당연해지기 힘든 특별한 감정이 계속해서 이어지니까. 수긍한 지 오래된 문장을 곱씹으며 잠결에 뻗은 머리카락 몇개를 손가락으로 훑어내린다. 양 팔을 뻗어 린의 몸을 가깝게 안고선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흐음. 알겠다. 생일이라서 그러는 거지? 왜 휴가를 갑자기 냈다고."

"선물 말이야. 그게..생각이 안났어. 물어보면 재미없잖아. 그러다 오늘이 되버렸네.."

"내가 뭘 갖고싶은지 궁금해? 진짜 쉬운데!"


예전부터 생각했다. 선물이란 것의 특성은 굉장히 이상하다. 상대에게 고려한 물건을 사줘야 한다. 시험에 든 것 처럼 고뇌할수록 상대를 생각한 거라고 치부한다. 인간은 서로가 다른 우주라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완전히 받고 싶은 이상적인 선물은 없으면서도 받으면 기뻐해야 한다. 새로운 구두. 초커. 그리고 최신기종의 스마트폰. 원호에게 그런 물건은 대수롭지 않았다. 비슷한걸 사면서도 손에 맞는 취향이 있는지 신지 않는 구두나 몇번 목에 걸리지 못하고 장식장에서 밀려나는 초커를 보며 너는 선택받지 못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 순간의 린은 얼마 안되는 직감으로 이 문제의 대답을 맞추지 못한다면 이후의 루트가 힘들어진다는 걸 느꼈다. 세개 다 사두었다는 대답은 아냐. 그렇다면, 원호가 정말로 원하는건-. 게임의 선택지를 고를때 처럼. 가장 신뢰성 있는 루트가 어딜까. 하지만 실전에는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게임이 더욱더 쉽게 느껴진건 이 때문이다. 


"음..혹시..나..인가? 그런거면..이미 가졌잖아. 그거 말고.."

"와...린이 그런말도 하네?"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너무 일찍 일어났지. 좀 더 잘까."


침대 위에 선물상자 세 개를 이미 올려두고 왔어. 랜덤 박스를 고르는 기분으로-..그런건 나만 좋아하겠지. 온종일 집에서 놀자. 오늘은 게임도 하지말고. 매일 그랬지만 오늘도 너에게 온전한 하루를 선물할게. 너의 공략법을 평생 알지 못한채로. 그런걸 재미로 살게 될거야.




이랬는데..

원호가 사실 비오는날 나가는걸 좋아한다던가 하면 어떡하지.

그냥 캐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원호야 생일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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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일] Hello. A

린 로그 2019. 8. 14. 20:46

Hello. A


몇 년전,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A가 말했던 충고이자 저주가 떠올랐다. 꽤 오랫동안 근무했을 테지만, 데스크 주변에 붙여둔 포스트잇 색이 노란색이었다는것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회사였다. 회사경영진 중에서도 꽤 알려진 자가 연 파티에 기어이 가지 않겠다고 세번째로 거절 했을 때였다. 가서 멍청한 웨이터처럼 서 있다가 오자는 농담을 섞어 린을 설득하던 팀원들은 슬슬 짜증이 오른 얼굴을 하다가 린의 어깨를 마우스를 집어들듯 꽉 붙잡았다. 손아귀 힘에 따라 시선은 움직였지만, 목줄이라도 매어 가지 않는 이상은 난 가지 않을거야. 


“정말 안갈거야? 우리도 가기 싫어. 그냥 인사만 하고 오라고.”

“그럴거면 왜 가야하지?”

“젠장. 넌 평생 애인은 커녕 친구도 하나 못사귈거다. 괴짜자식.”

“맞아. 상대방한테 실례잖아.”

“말이나 못하면.”


그에게 네가 틀렸어. 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건 얼마전 다 풀지 못한 이삿짐을 정리하며 나온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A는 보란듯이 린의 자리에 어제의 즐거운 파티. 라고 낙서를 해둔 폴라로이드 사진을 여기저기 붙여두었다. 루저. 평생 혼자 살아라. 혀를 내미는 이모티콘을 그려둔게 제법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버리기 아까워 모니터 옆에 붙여두었고,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농담거리고 써먹었다. 사실은 가고싶었으면서, 사진도 붙여뒀더라고 펍에서 낄낄거렸다는 이야기를 굳이 전해들었을때, 린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틀린말이라고 지적하면 설명을 해야했고, 이해란 린에게 꼬여버린 코딩코드보다 풀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너는 틀렸어. 나는 지금..]


손가락을 뻗어 써내려가던 문자를 지워버렸다. 헐렁한 게임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웅크린 자세로 얌전히 자고있는 원호를 보여주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또한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고 다닐테니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며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겨우 찾아낸 메일주소를 한 손으로 밀어냈다. 한 손 밖에 쓰지 못하는 것은 원호가 다른 팔을 배게삼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절이 지나 얆은 담요를 덮고 얌전히 누워 자유로운 한 손으로 뉴스를 확인하거나 간단한 터치로 할 만한 출석보상을 받고 있었다. 중요도가 낮은 게임 몇개는 이제 출석만 간간이 챙기는 정도로 순서가 미뤄졌다. 한 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변했다고 린은 생각했다. 본래 연애란 그런 상호작용이란걸 여러 매체에서 들어왔지만, 실제가 그렇다니 제법 우스운일이 아닐까. 조용한 오후였다. 열어둔 창문에서는 뜨겁지만 기분나쁘지 않은 바람이 불어왔고, 언젠가 선물받은 사과나무에 걸어둔 그네가 천천히 호선을 그리는 집 밖 정원이 그려졌다. 왜 사과나무를 선물했냐는 말에 클로렌스는 두 사람을 지켜봐 줄 테니까요. 하고 그 다운 대답을 했다. 그네를 설치한건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지만 두 사람이 근처 바에서 맥주와 깔루아를 한 잔 씩 마시고 와서 타면 부양된 기분을 그네로 표현해내는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원호가 딱 달라붙어 입술을 달싹였다. 팔을 목덜미와 어깨에 붙이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잦아드는 옅은 숨소리와 부드러운 검정색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몇 가닥 달라붙었다. 이대로 침대 아래 속 푹신한 깃털이 가득한 세계로 떨어지면 어떨까. 그 날 하지 못한 말을 떠올렸다.


‘넌 틀렸어. 나는 연인이 생겼거든. 그것도..’



***



“..그래서 그 사람한테 우리 사진을 보내보려고. 너무 유치한가”

“좋아. 완전 짜증나는 사람이네~ 뽀뽀하고 있는걸로 보낼까?”

“아니. 그렇게 까진..”

“자, 지금 찍는거야!”


네번째로 쓴 메일을 지우다 결국 원호는 린이 쓰던 메일이 업무에 관련된 것이 아니란걸 알아차리고 물어왔다. 뭔데 계속 지웠다 썼다 해? 별로 숨길 일도 아니지. 그래. 이건. 잠시 턱을 긁적이다 몇 년전에 있었던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왠지, 정말로 가고싶지 않은 파티였다. 파트너와 함께 오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방인의 눈빛을 받고 싶지않았다고 고해하듯 중얼거렸지만 원호는 그런 이유따윈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A가 린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만을 잠이 덜깬 눈으로 두 어번 곱씹더니 으으, 하고 싫은 소리를 냈다. 찍은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을때 내는 소리였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게 옆 모습만 나오게 고개를 돌려 몇 장을 더 찍었다. 턱선이 나와서 괜찮은것 같아. 하고 손가락으로 사진을 휙휙 넘겨보던 원호가 턱을 바짝 아래로 가져갔다. 또 찍으려고. 린이 무어라고 말을 하기 전에 볼을 가까이 가져갔다.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키며 배어나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가볍게 귓가에 들려왔다.  


“이제 반대로, 린이 뽀뽀해~”

“두개 다..보내는거야?”

“한쪽만 그러면 돈 주고 찍은거라고 생각할수도 있잖아!”

“아하. 그렇네. 그 새끼. 안 읽을지도 모르지만. 읽으면 엄청 짜증나겠다.”



그러면 좋겠다.



의미 없는 글이네요..하지만 200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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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색 후회  




 장례식장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어가던 린은 문득 자신의 모습에 끔찍한 괴로움을 느꼈다. 잊을 만 하면 내면의 괴물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조롱에 섞인 웃음을 터뜨린다. 조문객이 드문 복도에는 선명한 죽음의 냄새가 풍겨왔다. 알고 있다. 죽음에는 냄새가 있었다. 형태는 없지만, 결과는 있으며, 그림자처럼 곁을 맴돈다. 인간이라면 평등하게 가지는 얼마 안 되는 속성 중 하나라고 린은 생각했다. 죽음을 처음 만난 것은 열 두살의 겨울이었다. 린은 어떤 면으로도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 할 순 없었다. 모양이 틀린 퍼즐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에 불과한 아이. 구석에서 앉아있으면 그와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이었을지 어렴풋이 상상으로 그렸다면, 아버지인 모습보다는 좋았으리라. 린 또한 그의 기대에 답하는 자식이 될 마음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덥고 습한 홍콩의 여름 날씨에 지쳐 거실에서 죽은 듯 잠이 들면 장식장에서 망가진 인형을 만지듯 후회가 가득한 손길로 식은땀이 맺힌 이마를 쓸어 넘기던 편린 만이 그와의 연결점이었다. 날 만든 걸 후회했을까. 지독하게 후회했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의 결실이 고작 그랬으니 말이다. 웃지 않는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의 장례식은 무척이나 쓸쓸한 풍경이었다. 몇 사람들이 죽어서야 그를 찾아왔고, 검은 옷을 입은 린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안아 주었다. 울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그랬던가. 울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다시금 가라앉는 기분을 상기하며 시선을 돌리자 복도를 장식한 커다랗고 흰 꽃들에서 작위적인 인사치레가 느껴진다. 급하게 챙겨입은 검은 바지주머니에 넣은 흰 봉투를 쥐었다 구겼다. 장소가 아니었다면 줄담배를 피우며 뱉는 숨에는 욕을 지껄였을 것이다. 밀려오는 자조감을 견디기엔 기댈 것이 부족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항상 이런 모양이었다. 온전한 나만의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삶이었다. 발을 붙이고 걸었던 홍콩의 거리도, 한번도 새로운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 없던 이국의 땅에서는 그늘진 곳 만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해서 무엇을 얻을까. 손에 한번 쥐었다 놓쳤던 가늘고 뼈대가 만져지는 서늘한 손을 한번 만 더 잡아볼 수 있을까. 지독한 죽음의 냄새가 너에게 스며들지 않기를 이곳에서 바라고 있었다.   


 바람이야 크나크고 꼽자면 전부가 비현실적이다. 겨우 정리한 말 하나를 쥐고. 바닥에 눈을 굴리다 얻어낸 답이었다. 지인이 있었다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말했을 것이다. 제정신이야? 관계를 정리한 건 너잖아! 대신 머릿속에서 가상의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견딜 수 없었다. 그땐 사실이었다. 갑자기 타인을 자신의 일상에 들인 모습은 상상해본 적 없는 형태였으며,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처하기 힘든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겠지만. 그럼에도 밀접한 관계란건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누가 음침한 인상으로 게임만 하는 인간을 좋아하겠는가. 인간이라면 호감을 불러일으킬 타인에게 관심이 쏠리기 마련인데. 꿈에서 깨어나듯 린은 어째서 원호가 자신을 선택하고야 말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술에 만취한 그 날로부터 석 달 뒤의 고해였다. 살아가며 종종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생겼다. 평소라면 가지 못 할 장소에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든지. 이 세계에 실제하는지, 실제 할 수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존재를 만나는 일보다 더 놀라움을 느끼는게 새삼 놀라웠다. 놀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지. 그런 상황에 그다지 놀랄 이유는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놀랄만큼 놀라기 전부터 린은 처음부터 세계를 의심하고 있었다. 지나온 삶은 괴로움만이 가득했고, 자신 이외의 사람들은 새삼 행복해 보이는건 누군가 꾸며낸 일이 아닐까 해서였다. 지독하게 자신만을 보고 있었지만, 정작 거울 앞에 선 모습에는 아무도 없었다.



***



 첫 문장을 쓰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두어 줄의 문장을 이어 쓰는 건 쉬웠다. 원호는 중국어를 아마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한자를 써도 획이 조금씩 달랐던가. 그렇게 말하니 그렇겠거니. 린은 손쉽게 납득했고 오히려 다행이었다. 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러 흘려쓴 문장을 두 번 접어 상자에 넣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원호의 눈에 상당한 크기의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건 불편하지 않을까.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지만. 완전히 다른 생물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우리는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도 성적인 관계에서 시작한 무언가는 어떻게든 결실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리숙하게나마 잡은 손을 꽉 쥐여 주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처음 지어본 표정은 혼란스러웠다. 웃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 해서든. 어설픈 미소라도.


 굳은 얼굴이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이질적으로 덮쳐오는 온몸의 근육통과 갑작스레 느껴진 체온의 크기만큼의 책임감에 잠을 설쳤다. 린의 옆에서 조용히 밀려오는 새벽의 빛에 비치는 잠든 얼굴은 평온해 보였고, 린은 같은 크기의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푸른 물색이 가득한 수족관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안타깝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흘러온다.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이곳은 작은 세계가 되어 차갑지만 부드럽게 두 사람을 감싸는 상상을 한다. 작은 스노우볼을 보듯 안을 들여다보자 오래된 이불의 감촉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 무렵의 린은 누군가에게 쫓기듯 감정을 재단하고 들여다보며 사전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결국 이 감정의 이름은 죄책감일지도 모른다고. 섣부른 글자에 줄을 그어두었다. 익숙하고도 찾기 쉬운 답이었다. 수족관에서의 경험은 놀라웠고, 그렇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늘 찾아오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 채로 애매한 감동을 뒷맛으로 남겼다. 놓아야지. 놓고, 놓고 나서. 곱씹었던 말을 하고. 그러면 몇 달간의 번민은 끝나게 될것이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누구와도 인사치레를 하지 않던 나날로. 아름다운 시간과 풍경이 누군가의 꿈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견고히 하며 하얀 뺨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로 수족관 밖의 더위에 풀 죽은 땀을 닦으며 가만히 흐르는 눈물조차 닦지 않았다. 가치 없는 눈물은 속죄가 되지 못한다.


 감정은 씻어보고 닦아보아야 그 이름을 제대로 말해주었다. 항상 그런 식이지. 귀를 간지럽히던 목소리를 듣지 않자 손이 닿을 때 마다 느껴지던 두근거림은 잦아들어서, 온기가 식은 이불의 감각도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집에 들를 때 마다 입었던 사이즈가 조금 작은 옷이나 코코아 가루. 사진. 거울 조차 잘 보지 않던 터라 사진은 더욱 어색했다. 제대로 웃으며 찍었던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상자에 넣으면서 깨달았다. 함께 찍은 사진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손을 잡은 것도, 깍지낀 손의 간절함도 사실은 린이 먼저였다는 것을. 그리고 후회는 익숙하다. 어떤 의식을 치르듯 남은 흔적을 정리하고 나자 가슴 한 구석이 따끔거렸다. 마지막에 보았던 일그러진 얼굴에서 까지 어렴풋한 희망을 느끼는 자신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찔러 죽였다. 헤어짐에 눈물 흘릴만큼. 그만큼, 그만큼이나 내가 소중했던 걸까. 이 꿈은 입술에 붙으며 달콤하지만 끝은 잔인하다. 그렇지 않겠지만, 혼자서 새벽을 맞이할 얼굴을 떠올릴때 마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단지 그러고 싶었다. 조용히 숨을 이어가는 순간을 함께. 젖어가는 절망에서 밝아오는 새벽의 빛에 드리운 너의 얼굴을 한번만 더. 그렇게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



 노을이 떨어져 이루는 색으로 물들어가는 호숫가는 하루의 끝을 알리는 주황색의 커튼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원호의 불행한 소식을 들으며, 그걸 기회라고 생각한 경멸스러운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서라도 잡은 기회였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무슨 낯짝으로. 무슨 이유로. 무너지는 인식을 겨우 붙들어 놓았던건 다시 만났을때 실낱처럼 지나가던 희망을 보아서 였을까.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나만큼 괴로웠길. 나만큼은 아니었길. 노을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호수 위를 일렁이고 있었다. 행인들은 대부분 둘이서 하나였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 또한 그랬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하루. 그러나 이 하루를 얼마큼 갈망했는지,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예전의 나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조금 발걸음을 빠르게 걸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두 세배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곧 터져버린다 해도 괜찮았다. 차라리 그걸로 속죄된다면 오히려 바랄 정도로. 


"오늘..즐거웠어? 생각만큼..잘 따라주진 않았었던가. 항상 그렇지만."


 마음에서 부르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었다. 사실. 세상은 너무나도 지독하고 고독했다. 바라지 않는건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만큼 그림자를 만드는 절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돌리고 언젠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하나를 기다리기엔 나는 너무나 약하고, 비겁하고, 검쟁이였던 것이다. 벽을 보고 지내는 생활에 위안을 느끼며 만족하고 있었다. 아니, 만족하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도 이 생에서 무언가를 얻어가고 싶었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손에 어떤 것을 쥐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느끼며 발을 붙이고 싶었다. 


"난..아무래도 예전부터...사랑하고 있었을거야.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


 기억 속의 장면이 겹쳐온다. 뒷 배경은 다르지만 그 속의 너는 항상 즐거워보였다. 가끔은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잠시간의 침묵동안 얇은 필름속의 너는 겹쳐져 눈 앞에서 밝아졌다. 내 물음과 느린 움직임이 이마에 닿자 귓가에서 커다란 물음과 심장소리가 요동쳐 그 세계는 다시금 어느때로 돌아갔다. 물이 가득했던 차갑지 않은 수족관. 아스라히 지나가는 서늘한 행복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 많은 문장을 말하고 싶었다. 얼만큼, 얼마만큼이나 당신이 아름답고, 어두운 세계를 밝히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나에게 구원이 되었는지. 네가 없던 방이 너무나 어둡고 슬프기까지 했는지. 고작 몇 달 만에 네가 얼마나 나를 바꿔 놓았는지. 그건 좋은 방향이든 좋지 않은 방향이든 이제 아무 상관 없었다.


 "포기할 용기도 없었어. 애매한 후회는 하지 않을거야. 네가 나의 용기야."


떨리는 손을 내밀자 품에 안겨오는 무게에 린은 비로소 생의 무게감을 찾은듯 천천히 미소 지으며, 아주 깊은 곳에서 부터 솟아오르는 뭉근한 따스함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비로소 사랑이란것을. 






아니..이걸 이제야 쓰다니 죄송합니다..

고록 비슷한 그런건데 너무 늦었네요..하핫...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원호야 린이랑 행복해라~

지내시면서 하시고 싶으신거나 불편한 점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상의해주세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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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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