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생일] present

린 로그 2019. 9. 14. 09:11

Present

 

오늘도 비가 내렸다. 이 도시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올해 여름은 비가 자주 왔다. 린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거실의 커다란 유리창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낙하하다 부딪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진다. 밖은 잔디가 촉촉하게 젖어 잔디의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싱그럽게 보였다. 주기적으로 살려놓으려고 스프링클러로 뿌리는 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는 듯 했다. 며칠의 휴가가 생겨서 어딘가 놀러 갈까. 라고 서두를 꺼내 보았지만 사실 딱히 생각해둔 곳은 없었다. 왠지 원호가 가고 싶다고 말할 어딘가를 낙관하고 있었다. 3일 냈어. 오늘은 종일 비가 올 모양이야. 커피머신에서 자주 먹는 브랜드의 커피를 내리고 원호 몫의 코코아에 뜨거운 우유를 저어 내밀자 겨우 얇고 헐렁한 니트에 뻗은 손으로 눈가를 비비적거렸다. 아침에 퍽 약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더욱 잠에서 깨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늘게 뜬 눈에는 작게나마 싫증이라든지 실망이 담겼다 닫혔다.  


"비 오는 날에 나가는 거 싫어. 신발도 더러워지잖아."

"그렇겠지...그치진 않겠는데. 일기 예보를 보니까."

"됐어-. 그냥 집에서 린이랑 있을래."

"그걸로 괜찮아? 그.."


응? 하고 되묻는 원호의 얼굴에 졸리운 기색은 사라지고 은근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곧 린의 팔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가져갔다. 원호는 정말로 스킨쉽을 좋아해서. 손을 잡는 건 당연한 수순이며 눈을 떼고 있으면 그 만큼의 답을 해줘야 한다. 린은 원호의 머리카락을 만지면 즐거워서 곧잘 그렇게 했는데, 아마 오늘도 그걸 원한 게 아닐까.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당연하게도 당연해지기 힘든 특별한 감정이 계속해서 이어지니까. 수긍한 지 오래된 문장을 곱씹으며 잠결에 뻗은 머리카락 몇개를 손가락으로 훑어내린다. 양 팔을 뻗어 린의 몸을 가깝게 안고선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흐음. 알겠다. 생일이라서 그러는 거지? 왜 휴가를 갑자기 냈다고."

"선물 말이야. 그게..생각이 안났어. 물어보면 재미없잖아. 그러다 오늘이 되버렸네.."

"내가 뭘 갖고싶은지 궁금해? 진짜 쉬운데!"


예전부터 생각했다. 선물이란 것의 특성은 굉장히 이상하다. 상대에게 고려한 물건을 사줘야 한다. 시험에 든 것 처럼 고뇌할수록 상대를 생각한 거라고 치부한다. 인간은 서로가 다른 우주라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완전히 받고 싶은 이상적인 선물은 없으면서도 받으면 기뻐해야 한다. 새로운 구두. 초커. 그리고 최신기종의 스마트폰. 원호에게 그런 물건은 대수롭지 않았다. 비슷한걸 사면서도 손에 맞는 취향이 있는지 신지 않는 구두나 몇번 목에 걸리지 못하고 장식장에서 밀려나는 초커를 보며 너는 선택받지 못했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 순간의 린은 얼마 안되는 직감으로 이 문제의 대답을 맞추지 못한다면 이후의 루트가 힘들어진다는 걸 느꼈다. 세개 다 사두었다는 대답은 아냐. 그렇다면, 원호가 정말로 원하는건-. 게임의 선택지를 고를때 처럼. 가장 신뢰성 있는 루트가 어딜까. 하지만 실전에는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게임이 더욱더 쉽게 느껴진건 이 때문이다. 


"음..혹시..나..인가? 그런거면..이미 가졌잖아. 그거 말고.."

"와...린이 그런말도 하네?"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너무 일찍 일어났지. 좀 더 잘까."


침대 위에 선물상자 세 개를 이미 올려두고 왔어. 랜덤 박스를 고르는 기분으로-..그런건 나만 좋아하겠지. 온종일 집에서 놀자. 오늘은 게임도 하지말고. 매일 그랬지만 오늘도 너에게 온전한 하루를 선물할게. 너의 공략법을 평생 알지 못한채로. 그런걸 재미로 살게 될거야.




이랬는데..

원호가 사실 비오는날 나가는걸 좋아한다던가 하면 어떡하지.

그냥 캐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원호야 생일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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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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