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당신과


외전?



똑, 똑. 가볍게 주먹을 쥐고 현관문을 두드린다. 카이토는 소리 없이 15초를 셈했다. 그럼에도 문 뒤는 조용했다. 눈 앞엔 종 모양의 현관 벨이 어째서 자신을 누르지 않냐고 의문스럽게 바라본다. 카이토는 들리지 않는 조소를 무시하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것만이 방법인 양으로. 마스터는 부쩍 모든 자극에 민감해졌다.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세상이 무너진듯 깜짝 놀라는건 마스터의 여러가지 귀여운 순간중 하나이며, 토끼처럼 동그라지는 눈을 보며 심장이 있을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야아, 놀랐잖아. 하고 길게 내쉬는 숨은 마치 휘파람 소리처럼 은은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때면 카이토는 미안해요.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며 눈을 접어 웃었다. 가끔씩 보는건 기뻤을지도 모른다. 마스터에게서 익숙함이 사라지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마스터에게 담요를 가져다주는 손길에도 휘득허니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카이토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 놀람이 어디에서 기원한것인지 더듬어본다. 내가 가진 사람보다 조금 낮은 체온. 정적인 관절 움직임. 기꺼이 이 집에 존재하는것 까지. 마스터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카이토는 작은 물음을 들었다. 너는 누구야? 그것보다 더 깊은 물음은 어두운 동굴을 통과하다 어둠에 잡아먹힌다. 아마 마스터 조차 들어가보지 않은 장소일 것이다.


"똑, 똑. 들여보내주세요."


목을 가다듬고 입으로 문을 두드린다. 다시. 문 뒤는 조용했다. 세 번의 체념 뒤에 카이토는 빠르게 주머니에서 파란 고양이 인형이 달린 열쇠를 꺼내 익숙하게 문을 열었다. 경첩이 열리는 소리에 저항이 느껴진다. 며칠 뒤의 할 일에 문에 기름칠 하기를 추가한다. 3일뒤에 이 사항은 카이토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 이상은 반드시 떠오를 것이다. 스니커즈를 벗고 조용히 거실로 걸어가자 1인용 탁자와 의자, 그리고 탁자에 엎드려 잠든 마스터는 고른 호흡을 느리게 쉬고 있었다. 카이토는 언젠가의 마스터 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무언가를 쓰던 중이었는지, 엎드린 팔의 아래에 노란색의 종이가 몇 장 놓여 있었다. 사이를 들여다보자, 나. 타니무라 카요. 29살. 생일. 기억안남. 고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 기억해야만 하는것들. 카이토와 올해 겨울은 호수로 여행. 별자리 외우기. 따뜻한 목도리 사기. 약은 하루에 세번. 점심약은 두 개만. 툭툭 끊어지는 문장들이 적혀있었다. 마스터는 가사를 썼다. 자신이 느낀 것을 글로 녹여내는 재주였다. 마스터의 가사에는 조합이 잘 된 홍차처럼 첫맛은 가벼우며, 삼키는것은 부드럽게. 끝은 약간의 달콤함과 외로움이 혀를 감싸고 흐른다. 삶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카이토에게도 마치 언젠가 경험했던 일처럼 입맛을 돋구어주는 멋진 글을 쓰곤 했다. 거실 벽에 붙은 행거에는 다양한 재질의 머플러가 깔끔하게 세탁되어 걸려 있었다. 이것 저것을 둘러주며, 매어주는 방법도 여러가지 였다. 멋을 부리는 일은 카이토의 흥미와는 달랐지만, 완성 되었다는 듯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활짝 웃는 마스터의 얼굴을 보는 것을 사랑했다. 방 안의 공기가 식어 있었다. 담요를 덮어줄까. 고민하다 장식장에 놓인 CD플레이어를 켰다. 곧 시작되는 음악은 숭어라는 이름이었다. 꼼꼼히 들어보면, 음율은 제법 커다란 숭어가 헤엄치듯 유연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스터가 다시 태어난다면 물고기가 되지 않을까 공상한 적이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지 않는 짧은 길이였지만 커다란 은색 물고기의 꼬리처럼 부드럽고 빛 아래에서 반짝였다. 카이토도 그런 생각을 해? 턱을 괴고 카이토의 상상을 듣던 카요는 쿡쿡 웃으며 비웃는건 아녔어. 하고 금방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난 종교 조차 없는데. 카이토가 실망한 목소리를 알아채고 바로 따라붙어 대답했다. 저도 종교는 없어요. 당연한 말이었죠. 


"다시 태어나면, 카이토도 나랑 같았으면 좋겠어."

"제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나도 마찬가지거든. 왜, 요즘엔 애완용 펫 안드로이드가 죽으면 장례도 치워준다잖아. 성불하렴. 하고."

"성불. 신에게로 돌아가는 건가요. 믿지 않는 신에게."

"남아있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자고 하는거야. 죽음 뒤엔 아무것도 없어."


저는, 카이토는 말을 멈추었다. 마스터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움츠러든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음 뒤엔 아무것도 없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칼날이 되어 몸 이곳 저곳을 베어내듯,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약을 먹은 이후부터 모든것에 둔감해졌다. 손끝의 감각. 인식. 생각도 무뎌지고 그것들의 결과로 뇌의 변화가 조금이나마 느려질것이라고. 하나코는 설명했다. 아직 공상이 남아있을 즈음이었다. 카요는 운전사의 손길을 무시하고 영원히 앞으로만 달려가는 기차를 떠올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거운 만큼 소중한 기억같은건 전부 던져 버리고 어딘지도 모르는 끝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열차에서 당황한 채, 마지막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깨달은 채로 멍하니 어느 속도만을 느끼게 된 운전사의 무력감을 느꼈다. 


"카이토, 내가 먼저 죽게되면. 네가 남아서 내가 다시 태어날때까지 기다려 줘. 돌아왔을때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할까봐 무서워."

"그렇지 않아요. 하나코씨도 있고. 빵집의 사카이씨도 있어요. 악기점의 모리사와씨도."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쉽게 잊어버리지. 나..하나코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그럼 하나코씨를 만나요. 연구소 근처에 좋아하시던 카페에요. 커다란 피아노가 놓여진 곳."


말보다 행동하는게 더 빨랐다. 손가락으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하던 카이토는 금방 카요의 휴대전화에서 가까운 단축번호를 찾아 눌렀다. 귀여운 분홍색 하트가 붙은 하나코쨩. 이라는 이름이 깜빡이더니 화상화면으로 바뀌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짧은 커트머리가 부스스한 하나코가 커다랗게 손을 뻗어 흔들고 있었다. 목덜미엔 반짝이는 큐빅이 장식된 안경줄 끄트머리에 동그란 안경이 함께 달그락 거렸다. 하나코가 가진 소리는 높고 지저귀는 종달새처럼 기쁨을 담아냈다.


"야호, 카요쨩, 카이토. 안녕? 마침 쉬는시간이야!"

"와아. 다행이에요. 갑자기 전화해서 죄송해요. 마스터가 하나코씨 목소리를 듣고싶어 하셔서."

"헤에. 별일이네. 오늘 기분은 어때, 카요쨩?"

"별로야. 하나코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서."

"카요쨩. 괜찮다고 했잖아-. 우린 보고싶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마치고 집에 갈께!"


하나코가 활짝 이를 보이며 웃었다. 카요는 건조한 모래가 사그러드는 손 안에서 반짝이는 조각 하나를 남겼다. 교복을 입은 하나코의 똑같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머리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자신이 가진 어떤 웃음보다 높은 소리는 휴대전화의 화면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같았다. 카요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 귀여운 외모의 아이가 하나코.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카요는 말을 씹어 넘기듯 꼭꼭 씹어 음미했다. 카이토의 표정을 고르지 못하는 얼굴을 볼때마다, 자신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망가져 더 이상 원래의 모습으론 돌아갈 수 없다는걸 확신한다. 매일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타니무라 카요라는 사람은 해체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유령처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탁해서 만들어지고 있을 뿐. 모두가 기억하는 타니무라 카요로서 살아가는 나날들.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망설이는 눈빛들 속에서 멀어지는 현실감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만큼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모든것을 버리고 나는 어디에 가고 있을까. 도착지가 어둠이 드문드문 빛나는 겨울의 호수였으면 좋을텐데. 




***




카이토가 행거에서 두꺼운 머플러를 골라주었다. 밝은 베이지색은 갈색 코트와 어울렸다. 머플러의 끝을 목 뒤로 다듬어 매어주고는 머리카락을 밖으로 빼내었다. 완성이에요. 산뜻하게 손을 뗀 카이토가 머플러 옆에 걸려 있던 짙은색의 코트를 꺼내 입었다. 습관처럼 손가락을 뻗어 머플러가 걸린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조금 기울여 고민하던 티를 내더니, 오늘은 춥지 않으니 머플러는 하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하고 고민을 매듭지어 말했다. 머플러를 매지 않은 카이토는 어색했다. 카요는 망설임 없이 울이 많이 들어간 소재의 회색 머플러를 가져갔다.


"줘. 내가 해줄게."

"...마스터."

"아직 이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고. 나 너무 무시하는거 아냐?"


실없는 웃음을 지어내는 카이토를 바라보고, 카요는 곧 행거로 눈을 돌렸다. 사사로운 호기를 부렸다. 머릿속의 엉킨 실타래는 풀어보려고 손을 대면 더욱 엉킨다. 안정적인 절망에 카요는 어설프게 웃었다. 이 병에 걸린 이후로 자신의 생은 모든게 결정된 모양이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 죽음으로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미안. 사실 기억 나지 않아. 하지만 오늘은 군청색이 어울리는걸."

"이정도 길이라면..손 놓지 말아요."


카이토가 허전한 목에 머플러를 걸쳐 놓은채 멈춰선 카요의 손을 겹쳐 잡았다. 이렇게, 한번 빙글 둘러서. 전 추위를 잘 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목이 허전한건 왠지 싫어요. 마스터가 아침먹는걸 싫어하는것 처럼. 그리고 두 끝이 중앙에 돌아오면, 원을 만들어서 하나를 다른 하나의 사이에 넣어요. 이제 한쪽을 뒤로 넘기면 완성이에요. 


"마음에 드세요? 전 이 모양이 좋아요."

"응. 멋지다. 익숙한 모양..기억나지 않지만."

"마스터가 가르쳐 준건 제가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길게 늘여뜨리면 거추장스럽잖아. 하고 말씀하셨잖아요."


처음 만들어진 카이토는 몸의 일부처럼 머플러를 떼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머플러는 목에 고작 한번 둘러져 남은 길이는 키만큼 길었다.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애착쿠션이라기엔 절박함의 정도는 탯줄을 자르려는 모양이라 바닥에 끌려 끝이 더러워진 머플러를 세탁기에 넣을 수 없었다. 자고 있는 틈을 타 머플러에 슬쩍 손을 가져가면 그곳에도 꼬리처럼 감각이 있는 모양인지 금방 도끼눈으로 카요를 바라보았다. 그 만큼의 믿음이었다. 이후에야 알았지만, 누구도 카이토의 머플러를 세탁해줄 만큼 카이토에게 애정을 가지지 않는다는것.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기능에는 그런건 포함되지 않았다. 카요는 당연하게 여겼다. 더 많은것을 카이토에게 받았다고 확신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채워주는 조금 낮은 온기. 생을 살며 잃어버린줄도 몰랐던 결핍을 채워준 마지막 조각을.


한쪽으로 늘어뜨린 머플러가 마음에 드는지 카이토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팔을 둥글게 접어 그 사이에 익숙하게 카요의 팔이 들어오게 했다. 감기는 모양은 원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만큼 기만이 느껴졌다. 둘은 같은 디자인의 색만 다른 신발을 신고 걸었다. 하나코가 알게된다면 언젠가처럼 하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따스한 빛줄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하나가 된 발소리로 걸었다. 카이토는 몇번이고 걸었을 이 거리를, 미지의 세계에 여행을 온 듯 생경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카요에게 이것 저것을 안내했다. 마스터가 좋아하는 크로와상을 파는 가게. 건포도가 든 스콘도 추천메뉴에요. 카요는 건포도가 든 스콘을 크게 한입 넣고 우물거리는 자신을 생각했다. 카이토가 옆에서 따뜻한 티백 홍차를 건네주는 있을 법한 풍경이 그려졌다.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딘가엔. 터진 풍선처럼 하염없이 쪼그라드는 세계는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지 못하는 망국의 폐허였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너만이, 언젠가 찾아올 영광을 기다리듯. 과거의 영광을 기리며 떠나지 못하는 푸른 기사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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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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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히마 300일
첫눈을 보자

이 곳에 샘이 있어. 여긴 소중한 것을 담아두는 샘이야. 그 속은 투명하고 영롱하게 비추는 눈이랑 이어져서, 이따금 소중한게 떠오르면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는 거지. 지금 유쨩의 눈 처럼. 드넓은 바다가 아냐. 그것보다는 멋진 외국의 하늘. 가본 적은 없지만, 밤이 되기 전에 어설프게 뜨는 눈치빠른 별이 가끔씩 빛나는 넓은 장소. 빠져들거든. 황홀하게 맑은 물을 보면 손을 뻗고 느껴보고 싶으니까. 손가락을 가져가자 유이치가 눈을 접어 웃어버렸다. 그러면 눈을 찌르게 된다구여.

"좋은 말이긴 합니다만, 히마씨.."
"응? 왜 알아주지 않는거야-. 유쨩 눈이 예뻐서-. 이번엔 귀엽다고 하지 않았잖아!"
"아니, 오늘 저희가 만난건 그것 때문이 아니니까여."
"유쨩을 만나는데 이유도 필요한거야? 그냥 보고싶은걸. 그렇지?"

하하. 가벼운 웃음소리에 긍정의 의미가 반정도 담긴 대답이 돌아왔다. 따라서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눈 안의 샘이 일렁이며 수면에 작은 물결이 일었다. 덕분에 커다란 테이블에 놓인 참고서들도 조금은 귀엽게 보였다. 즐겁고 재밌는 시간만을 보내고 싶지만, 노래 연습도, 춤연습도, 리허설도, 라이브도, 전부 신나는 순간들은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시간을 빛나는 장면으로 바꾸는 마법은 혼자서 만드는게 아니란걸 이젠 알고 있다. 입을 삐쭉 내밀고 참고서가 흐트러지는 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고개를 파묻었다. 내일 시험을 제대로 치지 못하면 다음주에 꼼짝없이 오후 시간을 반납해야 한다. 그것도 재미 없는 수학 공부에. 숫자들은 보기만 해도 힘이 빠져버린다.

"우웃..히마쨩은..틀렸어. 추가시험을 치면 같이 놀러가기로 한건 어떡하지? 시간 맞추기 어려웠는데."
"어쩔수 없는거져. 설마 또 낙제할 줄은 몰랐슴다..'
"후후..유쨩은 아직 히마쨩을 잘 모르는구나. 히마쨩은 바보야. 실기말고 아무것도 모른다구."
"으아..바보라녀..조금만 더 하면 낙제는 하지 않을거에여. 힘내는검다!"

고등학교 가지말껄. 파묻은 고개 사이로 중얼거렸다. 그치만 플룻 부는건 아직도 좋았다. 깊은 숨에 맞추어 예쁜 음색은 새처럼 지저귀는 악기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플룻은 혼자서도 노래가 된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더욱 유려하게 흐르는 강 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 고개를 들지 않고 중얼거렸다. 유쨩이랑 별 보러가야 하는데. 달력에 별모양을 몇개나 그려뒀는지 몰라. 친구들한테도 며칠 전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듯 히마쨩 남자친구랑 별 보러 갈거야. 누군진 비밀이거든. 마지막 말에 모두들 에에- 하고 아쉬운 감탄사를 터뜨렸다. 사진 찍어올게. 별을 찍을 수 있을까? 눈으로 보는 별도 가끔은 가늘고 옅게 어두워진다. 밤에도 실은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그걸 보며 아름다움을 담는 하늘과 닮은 눈을 보는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일이었다.

"기대했는데. 유쨩도 그랬지? 미안해."
"아직 시험도 안쳤는데 벌써 사과하는검까.."
"알고있어. 유쨩한테는 아직..그러니까.."

아직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날 볼 수 있을 하늘이 검은색으로 펼쳐지는것 같았다. 어쩌면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내가 빛을 잃어버리면 그때도 네가 날 찾아 어디까지 걸어갈수 있을까. 정말 드물지만, 귀엽지 않은 나도 얼마든지, 다시 어떻게든 웃어보일테니까. 그런 말을 빚어보려 머릿속의 손을 열심히 조물거렸다. 둥그런 말이 되지 못하고 손자국이 남아버리고 말았다. 이런 말을 유쨩에게 할 순 없지. 어깨를 만지는 손길에 으응. 하고 칭얼거렸다.

"..히마씨, 히마씨. 눈 떠봐여."
"우웃. 히마쨩은 지금 그럴 기분 아니야."
"됐으니까 저기."

눈꺼풀을 천천히 올렸다. 몇번 빛에 적응하듯 깜빡이자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보고 있었다. 새하얀 솜사탕 조각이 액자 속 창 밖에서 천천히 바람에 따라 봄날의 꽃잎처럼 가볍게 흐드러진다. 와아.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같은걸 생각하고 있구나. 다시금 그 순간이 돌아온다. 반짝반짝 빛나는 앨범에 담아 둘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우리가 함께 웃는 때도 지금은 지금 뿐이었다. 그 파란 하늘은 영원히 반짝이겠지만.

"나갈까여?"
"응! 오늘 만나서 다행이야. 유쨩이랑 보고싶었다구!"

고민하는건 어울리지 않아. 입김을 후후 불어 따스해진 손을 잡고 가방따윈 버리고 뛰어나가 버리자.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뛰고나면 눈처럼 하얀 숨이 피어나는 계절에 포옥 안겨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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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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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일 첫눈 
 
공기가 차가웠다. 습기가 남아있던 호흡이 건조하게 변해가는 1년의 짦은 찰나는 대부분 상념없는 후회를 가져온다. 시간은 지나고 공기마저 결을 바꾸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늘 같은 담배연기를 뱉으며 한숨과 같은 숨을 내쉬었다. 연한 회색빛이던 연기의 색이 짙어졌다. 그 또한 계절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렇다 해도 추위는 별로 타지 않았고.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내 안에는 추운 나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아버지의 자랑. 혹은 회상이 섞인 조금은 쓸쓸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가을부터 애용하던 적당히 두꺼운 쟈켓을 아직 며칠은 입어 두자는 생각을 한다. 소재가 비싼 옷은 반드시 세탁소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나는 그런 사실을 얼마전 까지 알 지 못했다. 담뱃재가 옷에 묻지 않도록 항상 쟈켓을 벗고 담배를 피우게 되는 버릇도 최근에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가 되면 매년 외로워 졌다. 차라리 겨울이 빨리 왔으면 바라며 혼자 거리를 걸으며 피우는 담배 갯수가 늘어나는 때였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릴때 마다 고개가 . 같은 회사를 다니고, 같은 집을 공유하는 것으로도 무언가 부족함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한번도 코타로가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없다는걸 떠올렸다.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이기도 했지만. 애정하는 이가 꿈에 나온다면 그거야 말로 머릿속에 각인 되어있다는 증명이 될테고, 몇 번 이야기 하며 자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너는 언제나 처럼 그럼 내 머릿속에도 들어와.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겠지. 아침에 일어나 이불 옆에 무거운 존재감을 확인 하면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아직도 내 옆에 있구나. 그리고 영원히 옆에 있어 줄거란 배부른 예상까지 닿는다. 일어난 기색에 손가락을 뻗는다. 닫힌 눈꺼풀 아래에 너는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 그런 생각과 나른한 잠이 밀려오는 아침은 빠르게 지나간다. 가끔 우리는 잠에서 덜 깬 채로 이불과 한 몸처럼 서로를 안기도 했다. 적당히 느껴지는 무게와 따스한 숨결이 얼마나 심장을 느리게 흐르게 하는지 나는 속삭인 적이 없었다. 느리게 뛰는 심장은 오히려 귓가에 묵직한 두근거림을 들려준다. 소리만은 아닌 감각이었다. 짧아진 담배끄트머리를 비벼끄고 카페의 문을 밀자 작은 종소리가 땡그랑 울렸다. 가까운 테이블에는 접시가 몇개 쌓여 있다. 아니, 몇개 보다는 더 많았다.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접시 주변에 남은 시럽을 손가락으로 긁어 입에 넣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설탕의 직설적인 맛이 혀를 찔렀다. 살짝 눈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미안. 그래서,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지?"
"아무것도..?"
"하하. 아니거든. 크리스마스에 뭘 할지 물어봤잖아."
"노조무랑 있을거야."
"그건 지금도 그런데. 특별하게 하고 싶은건 없어?"
 
. 그렇게 물었지만 떠오르는게 없는건 마찬가지다. 부드러운 체취가 남은 침대에서 하루종일 체온을 데우고 있어도 괜찮았다. 기분이 들뜨면 몸을 섞다가 피곤하면 바로 잠이드는 짐승같은 하루도 좋지. 그런걸 먼저 제안 할 순 없지만 말이다. 꾸다만 꿈을 회상하듯 입맛을 다셨다. 문득 코타로는 창가를 보고 있었고, 시선을 따라가자 하얀 거품이 피어오르며 떨어지는 풍경이 담긴다. 올해 첫 눈이네. 감탄사처럼 조그맣게 터졌다. 코타로가 손을 내밀었다. 비가 얼은 것에 불과한 그것이 어째서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바닥에 닿으면 바로 물이 되어버리는 미성숙한 눈이라 하더라도 손을 잡고 뛰어나가 이마에, 손에 받아내고 싶었다. 몸이 차가워 지더라도 네가 안아줄테니 괜찮아. 그렇게 과신하면서.
 
주제 : 첫눈을 같이보는 두 사람..
오랫만에 글써서 제대로 안됨...
 
 
 


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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