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존대를 하는 마스카이 



날씨가 좋아요. 커튼을 걷자 봄녘이 다가와 유리창에 물결로 떨어진다. 카이토는 기분 좋게 부쩍 따스해진 거실의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맞았다.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가 내쉬고선 방의 한 쪽에 놓인 청소기를 손에 잡았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아침청소, 그 뒤엔 아침 준비, 주중엔 도시락까지. 오늘은 주말이었으니 두 가지만 하면 가장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터-”

우선 주방에서 부르기. 하지만 이 참에 일어나는 일은 드물었다. 알람시계처럼 지정된 일곱 시가 되면 자동으로 눈을 뜨게 되는 카이토로서는 잠을 자도 잠이 온다는 마스터의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아침 준비를 끝내고 커피를 내릴 때 마지막으로 마스터를 나직이 부르던 카이토는 앞치마를 벗어 식탁 의자 위에 걸어놓고 방으로 향했다.

“마스터, 들어갈게요.”

대답이 없어도 카이토는 문을 열어 익숙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침대에 이불과 베개로 뒤얽혀 기다란 팔이나 발이 빠끔히 나와 있었다. 어젯밤에 던져 놓은게 분명한 옷가지를 챙겨들고 카이토는 이불을 살짝 들어올렸다. 무거운 눈꺼풀이 굳게 닫힌 마스터는 잠에 취해 미동조차 없었다. 

“마스터, 부탁하신 아홉시에요. 일어나세요.”
“어엉….”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잠꼬대인지 우물거리던 마스터가 다시 깊은 숨을 들이쉬자 카이토는 침댓가에 앉아 본격적으로 이불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루쯤은 일찍 일어 날 법도 한데. 아니면 차라리 깨우지 말라고 지정을 해두시면 될 텐데. 

“마스터-마스터. 아홉시 십오 분이에요. 이제 십육 분…”
“어어….”
“일어나세요. 아침 식어요. 네? 아니면, 알람 설정을 미루시겠어요?”
“일어났어어….”

거짓말. 일어났다는 의미로 팔을 들어 휘적거리더니 다시 이불더미로 풀썩 떨어뜨려 숨만 색색거렸다. 지정된 시간에 깨우지 못하는 건 사소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할 일 리스트에서 마스터 깨우지를 아직도 지우지 못한 카이토는 이불을 들어 젖혀 몸을 웅크리고 있던 모양 그대로의 어깨를 흔들다가 귀에 대고 커다랗게 외치기 시작했다.

“마스터!!! 곧 이십분이에요!! 알람설정 그냥 미루세요!”
“시끄러…….”
“정말 맨날 이러 실거에요? 그러니까 일찍 주무시라고 했잖아요!! 일어나보세요!”
“시…끄러워….”
“아악!! 미실행 목록에 계속 뜨잖아요!!! 일어나 봐요!!!”

이십분이 넘어가자 시스템에서는 미실행 목록에 대한 알람이 나타났다. 하고 있어. 있다고. 시스템이 알 리가 없었다. 여전히 늘어진 몸으로 더듬더듬 이불을 찾아 꼼지락대는 마스터가 괘씸했다. 누구 덕에 지정된 일도 제대로 못하는 한심한 안드로이드가 되어 가고 있는데. 한참 동안 어깨를 흔들던 카이토는 잡고 있던 어깨를 던져버렸다. 눈앞에서 미실행 창이 붉은 색으로 깜빡였다. 다른 일에도 굼뜬 마스터였지만 아침에 약한 건 도를 지나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내일은 9시에 꼭 일어나고 말겠다고 부질없는 알람을 지정했다. 시야를 막는 알람으로 고생하는 건 정작 카이토였다. 

“아. 정말, 말 좀 들으라고 몇 번을 말해요. 일어나!!! 일어나라고!!! 일어나서 내가 차려놓은 커피랑 토스트나 먹으라고!!”
“뭐…뭐야….”
“알람을 끄던지, 일어나든지. 하나를 고르란 말이에요! 나도 알람 계속 울리면 머리 아프다구요. 너만 편하면 답니까?”
“응…너…. 너??”
“그래요. 지금 알람에 맞춰 못 일어난 지가 연속 한달은 넘었어요. 마스터 너는 내 말이 같잖습니까? 내가 알람 시간을 늘리자고 몇 번을 이야기해요?”

생각보다 효과는 굉장했다. 까치집이 된 머리로 눈을 커다랗게 뜬 마스터가 충격 받은 얼굴로 끔뻑였다. 헐렁한 후드티 소매로 입을 닦더니 벌떡 앉아서 믿기 어렵다는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손가락만 바들거렸다. 카이토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싱긋 웃었다.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너 지금 나한테 반 말 한 거야?”
“반말이라뇨. 요-라고 했잖아요.”
“너…너라니. 나한테 너라고 했잖아….”
“너는 너죠. 마스터. 오옷. 알람 꺼졌다. 아침 드시러 나오세요.”

후련하게 실행 창을 내린 카이토가 가볍게 종종거리며 걸어 나갔다. 커피는 차갑게 식은 지 오래 된 뒤였다. 싱크대에 차가운 커피를 버리고 서랍을 열어 커피봉투를 다시 꺼내 컵에 담았다. 고소하면서도 쓴 향기가 머그컵에서 퍼졌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토스트를 다시 데우자 마스터는 비척대며 다가와 등 뒤에 눌어붙었다.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로 칭얼거리는 소리를 웅얼거렸다. 

“알람 미루자…. 그러니까 너라고 하지 마….”
“네에. 알겠어요. 이제 다 했어요. 의자에 앉으세요.”

반쯤 뜬 눈으로 아침을 먹고 나면 나른하다고 낮잠을 자러 들어갈게 분명했지만, 열시 이전에 아침을 차릴 수 있다는 건 큰 수확이었다. 카이토는 자랑스럽게 우유가 든 컵을 홀짝였다. 우유보다 새하얀 낮잠을 자고 나면, 비로소 마스터의 하루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낮잠 같이 잘까요?”
“그럴래? 그럼 이거 마시고…. 커피를 마셔도 졸리네.”

마스터 방에 있는 커튼을 걷으면 오전의 햇살이 침대로 곧장 떨어져 눈을 감아도 밝은 빛이 보였다. 거기에 마스터의 고른 숨소리가 가득하면 카이토는 평화롭게 오전을 구름처럼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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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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