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2주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두번째 꽃다발 




며칠동안 가슴이 답답하다. 며칠간 유은의 기분은 눈에 띄게 나빠보였고, 양상은 좋아지지 않고 계속 되고 있었다. 감정의 물결은 스미레에게 까지 파도쳐왔다. 유은은 며칠동안 밥을 먹지않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침대에 파묻혔다. 따라 들어가 말을 걸어보기도 전에 유은의 숨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스미레는 노곤한 얼굴로 잠에 든 유은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손으로 뺨이나 머리카락을 만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준다면 좋겠지만, 어떤 일이든 스미레와 관련없는, 해결 할 수 없는 일들이 그녀에게 닥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해도 슬퍼진다. 복잡한 감정이 맴돌고 있는 미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유은의 자는 얼굴은 평안해 보였다.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 꿈에 스미레는 존재하고 있을까. 꿈을 꾸지 않는 스미레는 알 수 없다. 이마에 무심코 손을 가져갔다. 이마는 일종의 열기가 남아있었다. 차가운 스미레의 손이 닿자 유은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으음..스미레?"

"아. 아아. 깨워버렸네...죄송해요. 무심코.."

"아냐. 악몽을 꾸고있던 중이였어. 깨워줘서 고마운걸."

"악몽...좋지 않은 꿈.."

"좋지 않은 정도가 아냐. 으응. 체력이 좋지않으니..조금만 피곤해도 악몽을 꿔버려."

"어떤 꿈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누워있던 유은이 몸을 돌리며 침대 가에 걸터앉은 스미레가 누울수 있도록 자리를 터주었다. 아직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고. 갈아입고 오겠다며 침대곁에서 일어나다 유은의 손에 잡혀버리고 말았다. 가지마. 곁에 있어줘. 마치 멀리 떠나는 사람을 잡는 듯한 말투였다. 잠투정하는 아이 처럼 칭얼대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들떠버리고 만다. 아무도 유은이 그런 모습을 보일거라고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유은이었다. 마스터이기 이전에도 그녀는 멋진 여자였다. 숲의 색을 가진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숲은 어둠이 내리는 밤이 올때도 있었고 차가운 비가 내릴 때도 있었다. 스미레는 며칠전 부터 만지고 싶었던 유은의 손과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전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갈 곳도 없는걸요."

"헤에. 갈 곳이 생기면 떠날거야?"

"마스터..오늘..짖굳으시네요. 어떤 악몽을 꾸신걸까요."

"스미레가 떠나는 꿈을 꿨어. 영영.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꿈은 꿈일 뿐이에요. 저는 여기에 있는걸요."

"널 잃을까봐 두려워. 스미레. 


평소라면 그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넘길 말이었다. 연인과 결혼. 상투적인 질문에는 상투적인 대답이 알맞다. 그러나 답지않게 그는 정확히 빈 부분을 집어냈다. 가족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한 보상심리는 없는건가요-. 하는 말이었고, 유은은 완벽하게 망친 기분으로 자리를 피하듯 일찍 돌아왔다. 아니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은게 분했다. 스미레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손을 먼저 잡은것은 유은이었다. 잡은 손은 스미레의 선택지가 존재 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어느새 커지고 있었다. 스미레는 이제 혼자서 산책을 하고, 화분을 기르고 사진을 찍어 모은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가만히 인형처럼 앉아있던 스미레가 아니다. 언젠가 날개를 펴고 영 먼곳으로 날아갈지도 모른다.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어두운 마음을 잡아먹어 미아가 된 어린아이처럼 주저 앉아버린다. 잊고있었던 어느날의 풍경이다. 들을 이 없는 혼자의 울음은 참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울지말아요.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마스터?"

"그렇지않아. 정말, 그렇지 않아. 네가 너무 소중해서, 소중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쉿. 그만."


정적인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스미레는 언젠가 유은이 말했던, 보고 있어도 그리워 진다는 말을 기억해냈다. 지금의 감정에 맞는 말을 찾기 위해 머릿속을 마구 뒤진 결과였다. 입술을 떼고 그 말을 전해야 할까-. 똑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유은의 눈동자는 어둡게 젖어있었다. 스미레는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말로는 몇 번을 전해도 닿지 않는 것이 있었다. 대신 볼에 닿아 있던 손을 떼고 이마에 이마를 마주댔다. 누워있는 유은의 얼굴사이로 파란색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떨어진다. 연못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유은의 얼굴에는 눈물이 아직 남아있었다. 눈꼬리 끝에 


"이렇게 하면 같은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제가 찾아갈 수 있도록 이어져 있으니까요."

"그렇네. 꿈은 꾸지 않는게 나을거야. 꿈에 스미레가 있다면..깨고 싶지 않을거야."

"내일도 만나요. 여기서."


유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숨결에 따라 가슴위에 놓인 스미레의 손이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올라갔다 내려가는 울렁임과 작은 무게를 느꼈다. 이번엔 다른 꿈이었다. 계절을 잊은 온갖 꽃이 가득한 이 세상이 아닌 화단에서 손을 잡았던 어느날이었다. 보라색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화려한 다른 꽃들 사이에서 조용히 



**


다음날 유은은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표정도 한결 밝았다. 스미레 밖에 없다며, 외출 하기전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스미레는 부끄러운 듯 이마를 가리고는 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다. 따가운 더위가

 지나간 평온하게 맑은 날씨는 저절로 산책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스미레는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주차장까지 따라나섰다. 


"걱정해주는거야? 고마워."

"조심히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저녁에 만나자."


차에 탄 유은의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손을 흔든 스미레는 그 자리에 잠시 서있다 발걸음을 뗐다. 자주 들리는 꽃집에 갈 생각이었다. 그 곳에는 흔하지 않은 꽃까지 들여놓는 친절한 주인이 있었다. 가게 앞에 놓은 꽃을 구경하고 있던 스미레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꽃다발을 만드는 것을 기꺼이 구경하게 해주었다. 스미레가 산책하는 짧은 거리 중 가장 큰 행복이었다. 보통은 이른 오후에 들렀기에, 아침 일찍 나타나면 그녀도 깜짝 놀라할것이다. 그리고 웃어주리라. 부시시한 머리를 손으로 가다듬으며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 사이를 반대로 걸어갔다. 꽃집은 모퉁이 사이의 공간을 이용해 작은 공간을 넓게 쓰고 있었다. 밤 사이 가게 안에 두었던 커다란 화분을 바깥으로 옮기는 간편한 차림의 여자에게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아야씨. 좋은 아침이에요."

"어라, 스미레쨩. 좋은 아침-. 이 시간엔 처음이네."

"마스터가 나가는걸 배웅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렇구나. 착한아이네. 

"착한 아이...그렇지 않아요. 마스터를 슬프게 했어요."


낑낑거리는 아야의 양 손에 들린 화분을 본 스미레는 돕겠다며 가디건의 소매를 걷었다. 괜찮다고 단발마를 외치던 아야는 간단하게 화분을 건네받아 들고나가는 스미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많아보아야 열여섯이 채 안되어 보이는 작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뒤뚱거리는 몸에 따라 파란색의 긴 머리가 물결처럼 빛을 내며 흔들렸다. 세번째 화분을 바닥에 내려놓은 스미레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은 채로 잎에 달린 물방울을 손으로 건드려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힘이 센걸..스미레쨩."

"그거야 안드로이드니까요. 고탄소강 바디에요."

"으으. 그런 말 하지마. 스미레쨩은 예쁜 아이로 충분하니까. 덕분에 빨리 끝났어. 고마워."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종종 와서 도와드릴게요."


아야는 참지 못하고 


"아앙-. 어쩜 이렇게 착하고 예쁜거야. 나도 스미레같은 안드로이드 가지고싶어-."

"아야씨도 안드로이드를 사면..음, 아마 저의 모델은 한정판이라 품절일거에요."

"그게아냐. 난 스미레를 가지고 싶은거야. 스미레쨩이 너무 귀여우니까."

"그건 안돼요. 전 이미 마스터가 있어서.."

"미안미안. 곤란하게 만들었네. 맞아. 쿠키 남은게 있을거야. 차도 끓여줄게."


바닥에 놓인 낮은 화분을 줄세우던 스미레가 아야의 손짓에 가게로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은 커다란 화훼용 냉장고와 벽에 장식된 드라이 플라워와 오늘 새벽 막 들어온 싱그러운 백합향이 가득 풍기고 있었다. 계산대에 꽃무늬 손수건을 깔고 접시에 쿠키와 먹다 남은 파운드케이크를 담고 홍차를 끓였다. 아야는 종종 스미레에게 차를 대접했다. 낮에는 꽃집에 오는 손님도 드물었고, 매번 다른 모습으로 꾸미고 나오는 스미레를 보는 것 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주인은 스미레를 굉장히 아끼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주인이 사주었다는 옷들은 모두 스미레에게 맞춘듯 어울렸고, 비싸보이기 까지 했다. 여름 나절동안 여러 다른 디자인의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온 스미레는 누가봐도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오늘은 목 뒤에 리본이 달린 홀터넥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따뜻한 홍차가 담긴 머그컵 두개를 들고와 스미레 앞에 둔 아야는 조용히 냉장고 속에 있는 장미꽃다발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림같다고 생각했다. 정물화에 담긴 소녀처럼 허리를 똑바로 펴고 무릎에 가지런히 손을 모은 자세가 화병에 담긴 파란색 제비꽃같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네, 무슨 일 있었어?"

"마스터가 어제 울었어요. 아마 저 때문일거에요."

"어머. 어째서일까. 스미레쨩은 이렇게나 천사같은 아이인데."

"저 때문인데..제 잘못은 아니라고 해서. 더 모르겠어요. 전 마스터가 항상 웃었으면 하는데.." 

"그럴땐 꽃을 선물해보는게 어때? 스미레쨩이 원하는 꽃으로 만들어서 선물해보는거야."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만큼 돈이 많지 않아요."

"헤에. 오늘 화분을 옮겨주었잖아? 그걸로 괜찮아. 앞으로 세번 더 도와준다고 약속하면."

"약속할게요. 이번달 내로 세 번. 문서를 작성할까요?"

"우리사이에 그런건 필요없어. 자, 손가락 걸고 약속이야. 친구사이는 이렇게 하는거야."


아야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을 거는 스미레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어 무심코 안아주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예전부터 스미레의 이름과 똑같은 제비꽃으로 된 꽃다발을 들고있는 스미레를 머릿속으로 상상해보곤 했다. 옅은 미색의 포장지를 고른 스미레는 짙은 분홍색을 띄는 리시안셔스와 안개꽃을 골랐다. 대담한 선택이라고 칭찬한 아야는 꽃의 가지를 가위로 다듬었다. 취미로 두고 있던 제비꽃 몇개를 안개꽃 사이에 장식했다. 연보라색 리본으로 다발을 묶어 마무리했다. 플로리스트로서 만족할 만한 작품이었다. 아야는 휴대전화를 꺼내 꽃다발의 사진을 남기고는 스미레에게 안겨주었다. 꽃은 사랑의 결실이자 시작의 상징이다. 보석같은 친구에게 줄 수 있는 멋진 선물이였다.


"스미레에게 좋은 의미가 되길바래. 주인님께 안부 전해줘."

"정말 예뻐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 오래 보관하고 싶다면 꽃병에 두는게 좋을거야."


아야는 꽃집을 나서는 스미레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유은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어제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스미레쨩이 걱정하더라. 스미레쨩을 울리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거야. 입술모양 이모티콘을 마지막으로 눌렀다. 정서불안에 시달리던 유은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바로잡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딘가에서 선물처럼 나타난 스미레가 그녀를 바로 잡았다. 깨진 유리잔처럼 쏟아부어도 고이질 않던 애정과 따뜻함이 천천히 담기고 있었다. 벌써 2년전의 일이었다. 텅빈 눈동자를 하고있던 스미레는 스스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스미레는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코를 가져가 향기를 흠뻑 맡아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에 불과한 자신에게 꽃 이름은 과분하다고 여겼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화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도 향기는 나지 않았다. 존재자체가 모순에 불과하지만, 곁에 있어달라고 소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소중한 스미레만의 향기가 되어주었다. 유은과 함께 있으면 세상은 빛나고, 향기롭고, 여러가지 색으로 빛난다. 어두운 밤도 별이 가득한 은하수가 있다는 것을 유은이 알려주었다. 스미레는 꽃다발을 안고 문 앞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나왔어. 스미레-."

"마스터, 어서오세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와아. 이게 뭐야? 꽃..예쁘다. 어디서 났어. 아야쨩네에 갔었어?"

"전 항상 받기만 한것같아서..선물이에요."

"고마워, 항상 받는건 내 쪽인데. 스미레는 모르고 있구나."


스미레가 내민 꽃다발을 받아들고 그 안에 보물처럼 숨어있는 제비꽃을 발견한 유은은 기쁜 미소를 지었다. 맑은 향기가 얼굴 사이에 가득하게 퍼지고 있었다. 어제처럼 손을 뺨에 가져간 스미레가 그대로 어깨에 안기며 입을 맞추었다. 꽃다발이 가슴팍에서 하나로 안겨들었다. 정말 좋아한다고, 이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소중하다고 노래가사에서 들은 듯한 말을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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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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