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스미 발렌타인

원하는 선물을 줄 수 있다면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늦은 오전의 볕은 겨울의 추위를 녹이고 머리칼에 따스한 계절이 돌아오고 있음을 말 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매일 같은 하루를 똑같이 반복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같은 하루는 한 번도 없었다. 유은과 나눈 대화가 달랐고, 대답과, 돌아오는 표정도 늘 새롭고 다른 것이었다. 멈춰버린 시간으로 움직이며 흐르는 세상을 느꼈다. 사람들은 매번 돌아오는 날을 기념하고 즐겼다. 곧 맞이하는 아침도 알지 못했더라면 평범한 2월 14일, 스미레는 그 날이 발렌타인 데이라고 말하는 기념이란걸 알고 있었다. 아주 먼 과거에 연인들간의 사랑을 기리던 자를 위한 날. 뭐. 이젠 그런 의미 보다는 초콜릿을 주고 받는게 다지만. 유은의 단정적인 대답에 스미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유은에겐 분명 별 의미없는 날일 것이다. 초콜릿이나 케이크, 슈크림. 달콤한 음식을 선물받는 쪽은 늘 스미레였다.

"발렌타인 데이. 사랑을 나누세요."

자주 들리는 제과점엔 아기자기하게 분홍색과 진한 빨강색의 하트가 가득한 발렌타인용 포스터가 커다랗게 유리창에 붙어있었다. 문 밖까지 달콤한 향기가 흘러들어오는 기분 좋은 장소를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가게 안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냉장고 진열장 속에 장식된 초콜릿과 과자세트를 구경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그 즐거운 마음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선물상자는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와아. 보기만해도 마음에 담고있는 사람이 떠오를 만큼 멋진 포스터네요. 스미레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제과점의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행사준비로 바쁜지 가벼운 목례만 하고는 손에 든 쿠키판을 들고 서둘러 움직였다.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거는걸 포기한 스미레는 유리진열장에 고개를 파묻었다. 보기만 해도 입가에 침이 고였다. 달콤한 간식거리와 따뜻한 밀크티, 순간 느리게 흘러가는 듯 아늑한 대화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당신과-. 몇 번 유은에게 어울릴만한 꽃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유은은 향기를 맡으며 기쁘게 웃어주었다. 그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어떤 꽃에 비기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어느 날. 미소는 꽃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임을 스미레는 깨달았다. 어떤 선물을 가져와도, 혹은 선물을 가져오지 않아도 유은은 그렇게 웃어주었다.

"저, 혹시 달지 않은 초콜릿도 있나요?"
"네? 흐음. 초콜릿은 원래가 기본이 달콤해서.."
"그렇죠. 헤헤..제가 이상한 질문을 했네요. 미안해요."
"음..녹차가 들어가면 덜 달아지고, 레몬이나 오렌지가 든 것도. 색다른 맛이 나요. 도전해 보는건 어때요?"

좋아해 줄까요. 내가 아니라 선물 만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답니다. 그러면 더욱, 더욱 당신이 행복할 수 있을테니까. 내가 받은 모든 선물들보다 소중한 선물같은 사람이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이름을 떠올리며 스미레는 진열장의 한 켠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무 의미 없는 날도 유은과 함께라면 언제나 아름답게, 그리고 달콤하게 흐르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더 달콤한 저녁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그래서 오랑제트를 선물했다고 한다.
발렌타인의 유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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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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