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는 물거품의 꿈을 꾸는가 





인어공주를 읽었다고 스미레는 저녁식사중에 말했다. 스미레가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드문일이었기에 유은은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었어? 스미레는 서재 방에 있는 책이라면 어떤 것이든 꺼내 읽었다. 딱딱한 전공서적에서 부터 인어공주와 같은 동화책까지. 텍스트만 있다면 글의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저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즐겁다고. 스미레는 인어공주의 내용을 세세하고 빠짐없이 이야기 했다. 자신이 구해준 왕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인어공주. 마녀와의 계약을 하고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게되는. 그리고 마지막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너무나 불공평한 내용이라고 유은은 생각했다. 하지만 스미레가 인어공주가 된다면 퍽 어울리지 않을까. 바다처럼 푸른빛의 머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양이 적은 식사를 유은은 길게 이어갔다. 자신과 마주보고 앉아 인어공주의 내용을 조잘대는 스미레를 좀더 길게 보고 싶었다. 인어가 된 스미레를 상상하며, 그렇다면 사랑에 빠진 왕자는 자신이 되는걸까. 어릴 적에도 좋아하지 않았던 동화였지만 잠시간 즐거운 상상에 웃어버리고 말았다.


"기분 좋아보이시네요, 마스터. 제 이야기가 즐거우신가요?"

"그럼. 실은 인어공주 이야기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거든."

"유명한 책이라고 하던데...유명하다고 해서 모두 읽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만요."

"아주 흔한 이야긴데도 참신하게 들렸어. 재밌게 읽은것 같네."

"응.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선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삽화도 예쁘고요."


스미레는 유은의 반응이 즐거운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종종거리며 뛰어갔다. 얼마전에 사준 하얀 원피스를 입고서. 방으로 사라지는 치맛자락이 여름에 피어나는 커다랗고 새하얀 이국의 꽃처럼 울렁였다. 집 안에서 입고 다니기엔 다소 화려한 느낌이었다. 유은은 한동안 일때문에 여기저기 외근을 다녔고, 쉬는 날이면 침대에서 잠을 자기에 바빴다. 한번의 투정도 없이 늘 자신이 돌아올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스미레에게 고맙다고 말하면 이건 당연한 일이라며 살짝 미소지어보였다. 


"이 그림이에요. 인어공주. 다리가 생기기 전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렇네. 내가 사놓은 책이면서도 몰랐어."

"바닷속을 들여다본다면 이런 풍경이겠죠?"

"바다에 가 본 적 없어?"

"마스터와 가본 적이 없으니까. 없는거죠."

"에엑. 양심에 찔리네...좋아. 가보자."

"마스터가 운전...하시는 거에요?"


몇번을 타도 서투른 유은의 운전에 익숙해 질 수 가 없었다. 사람이 아니니 멀미는 나지 않았지만,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경험을 하는건 썩 유쾌하지 않았고 유은의 체력소모도 심했다. 근교에서 가까운 바다를 검색하자 자가용으로는 30분, 지하철로는 40분 정도라는 검색결과가 나왔다. 스미레는 적극적으로 지하철을 권유할 셈이었다. 가끔은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것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좋을 것이라며 휴대폰을 들고 지도 어플을 켜보았다. 갈아타지 않아도 되었고, 지상으로 이어지는 전철이라 경치도 좋을것이다. 


"또..그리고.."

"알겠으니까, 전철 타고 가자. 내일 어때?"

"좋아요. 그리고..한가지 부탁 드려도 될까요?"

"뭔데?"

"저번에 사주신 이 원피스, 두개 샀으니까..함께 입고가면.."


두가지 다 스미레입으라고 사준건데. 유은은 스미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이어버렸다. 물론 유은도 원피스를 입는걸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무늬없이 새하얀 끈이 달린 원피스는 보자마자 스미레에게 어울릴거라 생각하고 산 것이었다. 사이즈도 한치수 작았지만 강아지같은 눈을 울렁이며 부탁하는 스미레의 말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유은은 옷장에 있는 다른 하얀색 원피스를 생각하며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스미레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지만.. 


"어쩔수 없지. 스미레가 원한다면."

"에헤헤. 커플룩이에요. 즐거워라."

"바다...그러고보니, 그 근처에 아쿠아리움이 있으니까. 거기도 같이 가볼까."

"아쿠아리움! 수족관..헤에..물고기들이 헤엄치는걸 볼 수 있겠네요!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도..인어공주가 된 기분일거에요."

"그런 관점은 처음이네. 역시 스미레는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한단말이지."

"너무 공상에 빠진거겠죠, 으음.."

"아냐. 지금이 딱 좋아."


유은은 마침 식기를 치우고 식탁으로 돌아와 의자를 밀어넣으려 의자끄트머리를 잡고 선 참이었다. 식탁을 물티슈로 닦은 스미레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뒤에 섰다. 왜그래? 하고 말을 붙이려다 등을 파고들며 안기는 스미레를 느끼고 손을 뒤로 가져갔다. 에어컨이 켜진 집에서 하루종일 있었던 스미레는 얇게 뻗은 새하얀 팔이며 원피스 밑에 있던 다리가 차갑게 가라앉아 시원하다. 그대로 침실까지 안긴채로 걸음을 맞춰 걸어갔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걸 겨우 참아내며 한 덩어리가 된 채로 침대에 다이빙하듯 파묻히고서 얇은 담요 한 장을 발로 끌어와 덮었다.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들이 겹쳐 만드는 화음이 어찌나 즐거운지, 답지않게 흥이나버리고 만다.




***



6월의 하늘은 그림처럼 맑았고 하늘엔 금방 짜낸듯한 물감처럼 하얀 구름 몇개가 높이 떠있었다. 햇볕이 쬐는 날을 대비하여 사주었던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스미레는 예전 어느 영화에 나오던 신파영화의 주인공 처럼 청초한 모습이었다. 선글라스와 작은 클러치백을 든 유은이 집을 나서며 스미레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고 손을 잡았다. 가뜩이나 눈에 띄는 파랗고 기다란 머리카락때문에 스미레는 바깥에서의 행동에 더욱 조심하는 편이었다. 아무도 우릴 쳐다 보지 않는다고 유은이 슬쩍 속삭이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선글라스가 없었다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햇살이 따가웠다. 땀이 나는건 질색이라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스미레는 아쿠아리움에 간다는것이 그리도 신나는지 인어공주의 결말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늘여놓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어공주에겐 불공평한 결말이였다고. 그건 유은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라며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와의 거래 자체가 불리한 것이였다는, 과연 논리적인 시각이었다. 한 사람분의 전철표를 끊으며 역무원에게 안드로이드 등록카드를 함께 보여주었다. 역무원은 스미레를 슬쩍 쳐다보더니 탐탁찮다는 얼굴로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고마워요. 가자, 스미레."

"아..네..!"

"일일히 신경쓰지마. 응. 손잡고."


이래서 전철을 타지 않으려 했는데. 유은은 더욱 스미레의 손을 굳세게 잡았다. 시원한 전철안에서 나란히 앉아 느리게 흘러가는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자 교외로 벗어나며 사람들이 점점 줄어갔다. 손을 잡은 채로 고개를 돌려 창밖의 변해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스미레가 점점 초록이 늘어난다며,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멀리서 해안이 보이기 시작하자 유은은 끼고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시야를 틔웠다. 바닷가와 커다랗고 지붕이 둥그런 아쿠아리움 건물이 빼꼼히 전철 끝에 나타났다. 날씨가 생각보다 더우니, 바닷가를 산책하는건 오후가 되어 열이 좀 식고나면 하자고 유은은 말했다. 아쿠아리움은 시원할테니까. 스미레도 아쿠아리움을 더 기대하는 눈치였다.


"커다란 수족관이 있대요. 펭귄도. 고래상어랑 열대어...만타가오리.."

"검색한거야?"

"아쿠아리움 약도까지 다운받았어요. 어떤걸 먼저 보고 싶으세요?"

"뭐어. 난 해파리같은것도 좋아."

"해파리는 심해관에 있어요. D구역이에요."


종착역에 내리자 전철역사에는 스미레와 유은 외에 피크닉을 온 듯한 가족 두어사람을 빼면 적막했다. 뜨거워진 공기를 마시며 아직은 차가운 서로의 손을 흔들며 역을 벗어났다.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아쿠아리움은 해변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차를 가져올걸. 유은은 햇빛에 쏘여 타들어가는것 같은 어깨를 들썩였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걸어가던 스미레가 고개를 돌렸다. 


"더우세요? 햇빛이 강해서.."

"으응. 바닷가 근처라 습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야..으으. 어쩜 그늘이라곤 하나도 없네."

"제 모자 드릴까요? 전 덥지 않은데.."

"괜찮아. 그건 스미레에게 어울리니까. 조금만 더 걸으면 되고..음..조금은 아니지만."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눈에는 가까워 보이는 아쿠아리움 건물과 바닷가는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까보다는 시무룩해진 표정의 스미레와 기어코 손을 잡은 유은은 역시 스미레의 손은 차가워서 기분이 좋다며 화제를 돌렸다. 어떤 물고기를 가장 보고싶냐고 물었다. 기호나 취향의 선택사항을 물었을때 스미레가 제대로 대답한 적은 없었다. 마스터가 가장 보고싶은 것이요. 이번에도 그랬다. 답을 가지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해파리를 보러 아쿠아리움에 가는 사람도 있을까. 입장료가 꽤 비싼 편인데도 말이다. 따가운 햇볕에 닿는 어깨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성인 한사람분의 입장표를 끊은 유은이 먼저 커다란 고래장식이 되어있는 아쿠아리움의 입구에 선 스미레에게 빠르게 걸어갔다. 고래장식을 올려다보며 서있는 스미레 주변에는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남녀로 된 커플도 많았다. 한사람 분의 표를 끊은 우리들은 어떤 것일까. 인어공주는 왕자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하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자신에게 밝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유은을 눈동자에 담으며, 물거품처럼 머릿속을 떠다니는 잡념을 터뜨린다. 먼저 유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파리 먼저 보러 갈까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중앙에 있다는 커다란 관부터 보러가자."


손에 든 아쿠아리움 안내 약도를 펴든 유은이 중앙을 가리켰다. 커다란 원통형 관이 높게 만들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아쿠아리움 안으로 들어갈 수록 수온을 유지하기 위해 켜놓은 에어컨이 건물 안의 공기를 전체적으로 시원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느릿하게 걸으며 옆으로 나란히 이어진 수조안에 든 작고 이름모를 색색깔의 열대어들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푸른빛의 수조에 둘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보였다. 일정한 궤적없이 물 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물고기들. 스미레는 첫 아쿠아리움 감상을 그렇게 말했다. 거기서 감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자유로이. 라는 것 밖에 없었다. 딱히 높은 텐션으로 기뻐하는 타입도 아니였으므로, 이따금 살짝 웃거나 물고기의 이름과 설명이 적힌 팻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이어갔다. 글로 친다면 클라이막스일까. 통로를 지나자 넓고 높은 원통형 수조가 나타났다. 더 커다란 물고기와 가오리와 아쿠아리움의 마스코트격인 고래상어가 유리면에 맞닿아 있었다. 걸음을 멈춘 스미레가 푸른색의 빛을 받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와아...멋져요."

"그러게. 수조가 높이 있으니까 신기해. 물인데도..하늘처럼."

"물인데도 하늘처럼. 좋은 표현이에요. 인어공주의 세계는 이것보다 더 아름다웠겠죠? 그런데도 그걸 포기하고 육지로..그런게 사랑이겠죠?"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후후. 키스할까요?"

"아이참...여기까지 와선. 여기까지 와서.."


주변엔 몇몇의 커플이 분위기에 취한 듯 허리를 감싸안으며 키스하고 있었다. 스미레는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듯 눈을 감고 입술을 가볍게 내밀었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는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키스는 자기전에도, 출근하기 전에도, 집에 돌아왔을때도 매번 하는 것이었지만 바닷속에서는 처음이었다. 한번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지 스미레는 유은의 양 볼에도 립스틱자국이 남을 만큼 힘을 주어 입을 맞추었다. 풀리고 싶지 않은 마법에 걸린 인어공주처럼. 키스를 해도 풀리지 않는 마법에 즐거워하며. 



아일님 생일 축하드려요! 오랫만에 유은스미 글 써드리게 되어서 기쁩니다^-^

앞으론 좀 더 신경쓰는 제가 되도록 할게요. 오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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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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