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ame switch
마스카이카이
V3군에 대해서 말인데. 조금 물어봐도 될까? 어느 날 저녁 마스터가 V1 혼자만 불러내 꺼내는 목소리는 신중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마스터는 손가락으로 베란다를 가리켰다. V3몰래 혼자 와. 소리 없는 입 모양은 그렇게 말했다. 중요한 일이겠지. 카이토는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들여다본 V3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작업실에서 악보 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래 선반에서 악보를 꺼내 알파벳순으로, 번호순으로. 살랑거리는 투명하고 빛나는 머플러가 헤엄치는 물고기의 유연한 꼬리처럼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콧노래를 불러가며 정리에 빠진 틈을 타 조용히 베란다 문을 열었다. 마스터는 담배 몇 개비를 피워 놓고선 어두운 시가지에 나타난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 심각한 표정. 카이토는 옆에 다가서 난간에 팔을 기댔다.
“마스터, 부르셨어요?”
“어. 응.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어떤 것을요? V3군에 대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겨울이 지나가는 밤은 아직 바람이 차게 불었다. 반바지를 입은 마스터는 한쪽 발로 다리를 벅벅 긁어대더니 고민하는 듯 머리를 헝클었다. V3군이 뭔가 잘못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V3는 V1에게도 꼬박꼬박 선배님, 선배. 하면서 잘 따랐고 마스터가 가르쳐 주는 거라면 몇 번이고 연습해서 다음 날엔 자기 것으로 만들어 올만큼 열심이었다. 문제라면 아직 사람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 정도. 카이토는 기시감을 느낄 때면 V3에게 알려주고선 주의시켰다. 사람과 비슷해지는 것이 노래에도 중요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사람의 것이었으므로.
“V3…. 옷 말이야. 너희 그 이상한 디폴트 옷.”
“이상한?! 얼마나 예쁜데요. 파란색과 흰색코트는 최고의 조합이에요!”
“…네 미적 감각이 어떻게 된 건 이제 알았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무리 설명서를 뒤지고 찾아봐도 적혀 있질 않아서, 혹시 같은 기종이면 알까 싶어서 물어보려고.”
“설명서가 그렇게 두꺼운 데 없는 내용이 있어요? 조교에 관한 것인가요? 기능?”
“아니. 신경을 끄려고 해도 궁금해서 못 참겠어. V3군 가슴에 달린 스위치는 뭐야?”
“엣….”
그렇게 물으셔도, 고작 코트에 달려 있을 뿐인 스위치에 중요한 기능이 있을까요? V1은 맥빠진 목소리였다. 저녁 시간 테이블 아래로 발짓을 해 비밀 작전처럼 눈짓으로 불러낸 것치곤 장난스럽지 않은가. 마스터가 뱉어낸 담배 연기가 얼굴을 향한 바람에 실려 온다.연기를 직격으로 맞으면 반사적으로 기침이 났다. 연기를 피하려 고개를 저어대자 마스터는 베란다의 난간에 담배를 짓눌러 꺼버렸다. 실망한 얼굴도 그제서야 마주쳤을 것이다.
“장난이 아니라니까. V3군은 디폴트 옷을 벗으려고 들지도 않잖아. 불편할 텐데.”
“실용성 면이라면 그리 봬도 전혀 문제없는 디자인이고, 특히 V3군은 코트가 넓은 편이라 괜찮을 텐데요. 불편한 건 마스터의 시선 아닌가요….”
“야아, 매정하게 말하지 마. 너희들 스위치는 전부다 목 뒤에 있잖아? 가슴에 있는 건 아무래도 이상해. 지금은 OFF상태로 되어있지.”
가끔 이상한 것에 꽂힌다니까. 그럭저럭 말을 받아주고 나올 생각이었다. 분명 관련 없는 곳에 만들어진 스위치긴 해도 설명서에 적혀있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 주어진 기능을 착실히 쓰는 것이 약속이다. 개발팀도 장난 정돈 칠 수 있겠지. 그러고 보니 V1의 디폴트 옷은 그런 이야기도 자주 들은 편이었다. 옷에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디폴트 옷은 깨끗하게 다림질해서 입으면 선이 괜찮고, 색도 멋있었다. 하지만 여자 사용자들의 반발이 대단했다고 하더라. 그걸 감안해서 나온 게 V3였고, V1눈엔 V3의 옷은 충분히 세련되고 멋졌다. 머플러도 시원하게 기다랗고. 바람에 펄럭이는 코트자락이 마음에 들었다.
“선배? 마스터? 두 분 저만 빼놓고 무슨 이야기 하세요?”
“오! V3군, 아니. 그냥, 담배 피우다가. 이야…. 악보 정리 벌써 다 한 거야? 고마워.”
“아니에요! 선배가 불렀던 노래 이것저것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행이네. 뭔가 불러 보고 싶었던 것 있었어? 함께 연습 하면 좋을지도.”
어두운 곳에서는 V3의 목덜미나 머플러가 더욱 돋보였다. 은은하게 빛나니까. 본체의 전력을 끌어오는 간단한 원리였다. 가슴의 스위치도 기능이 있다면 대충 그런 종류. 마스터는 눈짓으로 저거 봐. 보라고. 하며 가슴을 쿡쿡 가리켰다. 스위치는 OFF 상태에서도 아랑곳없이, 확실히 빛나고 있었다.
“들어가요. 슬슬 추워요.”
“먼저 들어가 카이토들. 난 담배 한 대만 더 하고 들어갈게.”
“십분 더 있다가 들어오세요. 냄새나니까.”
“어휴…. 잔소리. 문 열었으면 들어가, 담배 연기 방 안에 들어가기 전에.”
***
잠자리에 들기 전 V3는 코트를 벗어 손으로 탁탁 털고선 침대 옆 옷걸이에 걸었다. 전력원에서 떨어지면 머플러며 코트의 빛은 사라진다. 안에 입은 민소매 티셔츠에 세트로 받은 잠옷을 입었다. V모양으로 파인 잠옷 안에 목의 부분만 드러난 이상한 모양이었지만, V3는 디폴트 옷을 벗는 것만큼 민소매를 벗는 걸 싫어했다. 이유나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싫다면 굳이 벗지 않아도 자는 데엔 문제없었다. 카이토는 슬쩍 눈을 돌려 벽에 걸린 디폴트 옷을 바라보다 마지막 단추를 잠그던 V3에게 말을 건넸다.
“V3군은 있잖아. 아직도 민소매 벗는 거 싫어? 우리 끼린 데도?”
“네…. 선배. 음…. 음. 뭐랄까. 맨살은 아직. 잠옷 안에 입어도요, 이건 달라붙는 소재라서….”
“목 부분만 잠옷 위로 올라오는 건 괜찮아?”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렇다면 벗겠습니다.”
“그런 말 이상하니까 그만둬. 사실대로 말하면, 마스터가 궁금해해서.”
마스터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베개를 껴안고 편하게 앉아있던 V3는 벌떡 일어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말리기도 전에 헐렁한 잠옷은 어깨 위에서 떨어지고 말끔한 민소매만 남았다. 이게 문제라니까. 키워드 하나에 반응하는 매크로.
“마스터는…어떤 것을…궁금해…하시나요? 제 맨살이…? 팔도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마스터에겐 이것만 입은 모습은 잘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아냐…봤어…너 처음 온 날에. 그걸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어. 마스터가 궁금해 하는건 가슴….”
“네에? 제 가슴이요?”
“위치상으로는. 마스터가 좀 이상한 면이 있지이…. 앗. 어디가!”
이미 V3의 인식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듯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벗었던 잠옷을 걸친 채로 V3는 침대를 나와 빠르게 뛰쳐나갔다. 마스터가 궁금해 하는 게 가슴이라니. 줄곧 스킨쉽으로 볼을 만지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건 언제 하셔도 좋았다. 혼란스러웠지만, 마스터가. V3는 숨을 고르고 닫힌 문 앞을 바라보다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마스터. 주무세요?”
“어? 아니. 왜 그래? 들어와.”
“감사합니다. 잠시 침대에 들어가도 될까요?”
“어. 그럼 당연하지.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쭈뼛쭈뼛 옆자리를 파고든 V3는 걸치고 있던 잠옷을 꼼지락대며 벗었다.안에 입던 민소매 티셔츠를 벗고 있었다. 끼고 있던 안경을 벗고 눈을 비벼도 그랬다. 카이토가 또 장난쳤구나. 그는 속으로 V3를 보내놓고 방에서 웃으며 뒹굴고 있을 카이토를 떠올렸다. 실망에 대한 보복이란 거지. 읽고 있던 책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어느새 V3는 벗었던 잠옷을 가슴에 쥐고 있었다.
“마스터….”
“V3군, 카이토가 뭐라고 했어? 왜 갑자기 옷을 벗어.”
“제 가슴이 보고 싶으셨나요? 아무것도 없는 가슴이지만, 원하신다면.”
“아하……. 그거구만. 완전히 나를 변태로 만들었네.”
쇄골을 따라 각인된 고유번호가 독서 등에 비쳐 반짝였다. 처음으로 맨살을 인식이 있는 상태에서 드러낸 V3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로서는 처음에 배송돼 오고 난 뒤에 세척한다고 꺼내봤으니, 처음은 아닌 셈이었다. 남자라기엔 허여멀건 하고 근육 없이 얕은 굴곡만 그려진 판판한 가슴엔 연분홍색 유두가 어린 티를 물씬 드러냈다. 하긴 여자한테도 팔리는 제품이 시커먼 유두면 꺼림칙 하다고 반품당할지도. 남자 입장에서는 분홍색인 쪽이 더 소름 돋았다. 저 선명한 입술 같은 색이라니. 울먹이는 물색 눈동자와 합쳐지니 그는 강간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는 V3가 손에 들고 있던 잠옷을 빼앗아 얼른 어깨에 걸쳐주었다.
“하….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말고, 옷 입어.”
“에엣?! 선배가, 마스터가 제 가슴을 궁금해하신다고….”
“남자 가슴이 궁금할게 뭐가 있어. 거울 보면 되는데. 내가 궁금했던 건 네 옷의 가슴에 달린 스위치라고. 뜬금없는 스위치.”
“으아…. 아아. 그것 말씀이시군요..제가 착각했네요. 이런…일단 옷….”
“그리고 말이야. 잠옷 입을 때는 민소매는 입지 마. 이상하니까.”
주섬주섬 옷을 다시 입은 V3는 민망한지 달아오른 볼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이마에 올렸던 안경을 내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카이토한테 괜히 말했네. 이런 장난이나 치게 하고.”
“아뇨. 선배가 말씀하시는 중에 제가 먼저 방을 나와버렸어요. 놀랐지만 마스터가 원하신다고 하니까 저절로 몸이 움직여져서….”
“너희들의 이 맹목적인 충성심…. 가끔은 무섭다.”
“헤헤…. 아, 스위치 말이죠. 스위치는….”
“오오. 그래. 나 사실 상자 열 때부터 궁금했어.”
“죄송하지만, 저도 몰라요. 확실한 건 옷이나 저와 연결된 스위치는 아니에요. 제가 간섭해서 조작할 수 없는걸요.”
장식일까요? 눌려본 적은 없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에 원래 지니고 있던 흉터보다 궁금하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듯이. 오히려 V3는 설명서에 적혀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궁금하지 않아? 옷에 그런 스위치가 있는데. 연결되지도 않은, 너로서는 설명서에도 없는 스위친데. 이상한 거면 어쩌려고.”
“중요한가요? 호기심…은 자기 스스로에게도 적용 되는 관념…. 이런. 또 떠올리는 데로 말해버렸다. 선배가 주의시켰는데 말이죠. 마스터가 곤란하신다고. 이런…. 이것도.”
“미안, 혼란스럽게 했나봐. 오늘은 그만 자고 내일 같이 눌려보자.”
옆에서 자도 되나요? 어느새 벗어놓은 티셔츠를 접어 배게 아래에 넣은 V3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웃는 얼굴이었지만, 기시감이 느껴졌다. 한 번도 몸에 떡하니 존재하던 것에 궁금해 본 적 없다는 건 무언가에 대한 깊은 믿음일까. 혹은 무지라던가. 석연찮게 독서 등을 끄고 안경을 벗어 머리맡에 두자 어두운 방문이 얇은 빛을 새어 냈다. 빼꼼히 열린 문 사이로 파란색 그림자가 비쳤다. V3와 똑같은 하늘색 잠옷을 입은 카이토였다. 방을 나선 지 한참인데 돌아오지 않길래요. 문가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풀이 죽어있었다.
“카이토? V3군은 오늘 나랑 자려구. 그리고 넌 인마….”
“설명하려고 했는데, 튀어 나갔다구요. 별일 없었던 것 같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마스터. V3군도.”
“좋은 꿈 꾸세요. 선배, 마스터.”
선배는 꿈을 꾸진 않지만. V3가 낮게 속삭였다. 그는 무시하고 몸을 뒤척였다. 곧 옆에서 들리던 숨소리가 사라진다. 카이토는 일부러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연하면서도 당황스러운 사실이었다. 그는 카이토에게 다른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오늘처럼 종종 옆구리를 파고들어 오지만. 인형과 같이 잔다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다음날 우리가 알게 된 것은 V3의 옷에 달린 스위치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다는 것이었다.이리저리 누르고 눌러봐도 간지럽다는 V3의 소리 높은 웃음소리만 달라졌다. 제일 의심이었던 머플러를 뚫어지라 살펴도 스위치와는 다른 패턴으로 반짝였다. 이게 뭐야. 맥 빠지게 ON으로 바뀌어 있던 스위치를 꾹 누르자 V3가 다시 가슴을 껴안고 꺄르륵 웃었다.
“마스터어, 이제 그만해요. 에헤헤. 간지러워요.”
“어이없네. 아무 기능도 없는 걸 왜 만들어 놓은 거야? 너희 회사 이상하다.”
“의외…네요. 실용성의 미학이 안드로이드의 기본 인줄 알았는데.”
“네가 할 소린 아니고. 보컬로이드 중에 제일 실용성 제로에 이상한 옷 껴입은 카이토V1."
"제 옷을 모욕하지 마시죠. 초기모델은 그게 최선이었어요. 방향성을 잡지 않은 시기였다구요.“
어떤 방향성. 그는 되물으려다 알아차린다. 귀를 가져가면 쏘삭이는 웃음 사이로 공기가 움직이며 숨소리가 이어지는 V3와 언제나 고요한 V1의 가슴 사이에서 느껴지는 차이는 쌓이고 쌓여 인형과 인간의 경계선이 되어간다. 바라본 카이토는 다시 소리 없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와 다른 기시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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