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심하다ㅋㅋㅋㅋㅋㅋㅋ왜이렇게 썼어
카이토 여장모듈 합작 - 카가미네 린 기본버전
<부끄러움은 당신 몫>
그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실수였다. 마우스의 버튼 하나의 몇 cm. 모니터로 보자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었다. 업데이트는 정기적으로 하는 거라 신경 쓸 것 없이 드문드문 흘겨보며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귀찮지만 업데이트해주지 않으면 입으로 알람처럼 기계음 울려대면 시끄러웠다. 자기 전에 usb에 연결해두고 일어나면 완료될 정도로 업데이트양은 많았지만, 항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뭐가 업데이트 된 거냐고 물어도 카이토는 글쎄요. 하고 고개를 갸웃일 정도로 미묘한 몇몇 개의 변화들.
“그럼 내일 봐-. 업데이트 예상시간 3시간이네. 길다.”
“안녕히 주무세요! 다 하면 새벽이겠다. 들어가면 깨시니까, 쇼파에서 잘게요.”
“알겠어. 컴퓨터 끄고 자.”
홀가분하게 바이바이-하고 손을 흔들고는 항상 둘이 자던 침대에 오랜만에 혼자 잠이 들었다. 허전한 옆자리에 카이토가 베고 자던 베개를 눕혀놓고 안자 카이토와는 다르게 차갑고 푹신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혼자여서 그런지. 침대가 무척이나 크게 느껴졌다.
이상하다고 느낀 건 새벽에 조용히 열린 문 때문이었다. 깨우기 싫은지 먼저 쇼파에서 자겠다고 말해놓고서, 이불까지 들썩이며 몸을 파고드는 바람에 나는 얼결에 선잠에서 깨고 말았다. 의아함과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로 카이토를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뭐야…. 쇼파에서 자겠다며.”
“여자를 쇼파에서 재우시다니, 마스터 너무해요오.”
“으응…? 여자?”
잠도 깨웠으면서 장난까지 치는 거야?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카이토는 새침대기 여자애가 잠들 법한 새우잠 모양으로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옆으로 누워서 팔베개를 해주거나 했던 어제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다. 나는 데면데면 넘겼던 업데이트 옵션을 떠올렸다.
“잠시만. 업데이트 옵션에 기본정보 넣는 거 말이야…. 성별…기본설정….”
“여자에요! 마스터, 새벽이에요. 어서 자요오.”
“에엑…. 징그러워…카이토는 남자기종이잖아. 왜 여자 성별에 체크가 되는 건데….”
내일 업데이트 다시 하면 되겠지, 비몽사몽으로 이불에 들어가자 카이토는 숨을 색색 조용하게 쉬며 이미 잠들어 있었다. 손을 모은 모양까지 귀엽다고 하기엔 남자의 손이고. 웃기네. 잠시 피식거린 뒤에 다시 눈을 감았다.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한번 한 업데이트는 취소한 다음에 다시 해야만 하는데, 취소는 서비스 센터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오류를 몇 번이고 먹고서야 나는 서비스 센터가 열지 않는 주말 동안 자기를 여자라고 철석같이 믿는 카이토와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걸 어떡하지. 정말 방법이 없는 거야? 정말 설정 하나 잘못 눌렀다고 여자가 되는 거냐고. 뭐가 이래…?”
“실수한 건 마스터잖아요. 몰라 몰라. 이런 못생긴 옷 입기 싫어요.”
좋아하던 트레이닝복이잖아! 태클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카이토는 옷장이 있는 침실로 사뿐사뿐 달려갔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어제와는 달랐다. 서둘러 따라 들어가자 카이토는 옷장의 옷을 뒤적이고 있었다. 내가 여자라고 해서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다니진 않는 탓에 시커먼 외투와 커다란 후드티 같은것들만 가득하자 마음에 들지 않는 지 카이토는 입술을 삐죽이며 옷걸이를 휙휙 넘겼다.
“계속 봐도 예쁜 옷은 없어…. 알잖아. 맨날 보던 거면서.”
“그거 어딨어요? 할로윈때 입었던. 린쨩옷.”
“그걸 입겠다고…. 미친 거야? 오류 났어?”
그렇지. 오류 났지 참. 당황스러웠다. 이게 다 마스터 옷들이 안 예뻐서 그렇잖아요. 멀쩡한 얼굴로 정색하고 옷장 깊숙이까지 손을 넣은 카이토는 옷장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몸까지 들어가 작은 상자를 찾아냈다. 그건 거의 벌칙의상이나 다름없는 짧은 천 조각으로 만들어진 카가미네 린 전용의 기본 의상인데, 할로윈파티랍시고 기분에 샀다가 정작 방 안에서 한 번 입어보고는 좌절에 좌절을 맛본, 하늘이 주신 몸매가 되면 다시 입어보자며 상자에 고이 넣어 둔 것이었다.
“찢어져…. 분명히 찢어질 거야. 너 그거 못 입어. 작을 거야.”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마스터는 여자분이 치마 한 장 없을 수가 있어요.”
“이게 정말…. 입든 말든 맘대로 해! 내가 사진 찍어서 평생 놀려줄 거니까!”
“흥, 뭘 하든 마스터보다는 이쁠걸요? 와아. 린쨩 머리띠도 있네에. 이쁘다.”
카이토는 커다란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머리에 쓰고서 옷장 옆에 놓인 거울로 다가갔다. 눈을 어디다가 둬야 하는 거지. 리본의 끝을 가다듬은 카이토는 한결 맘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끼처럼 귀여운 리본이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휘척인다.말리기엔 여자에 이입한 표정이 소녀들의 티파티에 초대된 깜찍한 레이스가 가득한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처럼 생기발랄했다. 남은 건 짧은 세일러 민소매와 평소에 입는 팬티 정도 길이의 자기 손바닥만 한 반바지였다. 뭐라고 말리기도 전에 머플러부터 휘적휘적 벗어 던지고서 맨살을 드러낸 채로 세일러의 리본을 어깨에 주섬주섬 메고, 버클에 손을 가져가자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바지 벗을거냐는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올려다보는 눈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해! 티셔츠도 안 맞는데 바지는 어떻게 입을 거야! 옷 내놔! 찢어진다고!”
“아아앙- 싫어 싫어! 이거 입을거에요오!”
“말투 봐, 징그러워 정말-!!! 네 옷이나 입으라고! 바보 카이토!!”
“입을 거야, 입을 거야, 입을 거에욧!! 놓으세요!”
이걸 그냥. 머리끝까지 화가 솟아서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으려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옷을 돌려주었다. 대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아니지, 동영상이 더 낫겠다. 월요일이면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얼마나 부끄러워 할지. 두고두고 놀려 먹을 거야.
“흠…. 알겠어. 입어봐. 이쁘게 사진 찍어줄게.”
“와아. 정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머리도 다듬어야 하는 데에….”
“후후. 천천히 해. 화장품 쓸래? 립스틱이나. 아니다. 내가 화장해줄게.”
신 난다! 볼품없는 맨몸으로 만세. 하고서 카이토는 발그레한 얼굴로 볼을 만지작거렸다. 화장대에서 제일 새빨간 립스틱이랑 아이라이너를 챙기자 졸졸 따라와선 평소에 궁금했다며 연분홍색 블러셔까지 챙겨 들었다. 기다란 화장대 거울에 앉혀놓고서, 카메라를 앞으로 돌렸다. 자기 얼굴이 보이자 카이토는 생긋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카메라 들고 있어. 머리 빗겨줄게? 여기봐봐.”
“헤헤헤. 예쁘게 해주세요.”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머리띠를 다시 씌워주고 반짝반짝한 아이쉐도우는 눈두덩에 펴 발라주고. 볼에는 연분홍색. 살짝 눈을 감은 데다 아이라인을 얇게 그리고 입술까지 바르니까 허여멀건한 얼굴에 낙서한 것처럼 울긋불긋하다. 앵두처럼 샛빨간 입술을 바르니 촌스러움은 정점을 다다랐다. 너무 웃겨. 정말 뭐 하는 거야. 웃겨 죽으려는 나와 반대로 카이토는 셀프촬영중인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미소 지었다.
“와 정말……. 큭….”
“감사합니다! 이쁘다아. 이제 옷 입어야지….”
기어코 입어보겠다고 아슬아슬하게 넣은 소매는 한쪽만 넣고 실패. 팬티는 딱 달라붙어 벗은 거나 다름없었다. 언제봐도 볼품없이 마른 몸으로 앙상한 다리를 뻗어 광택 나는 반바지를 주워 넣었다. 바지는 무릎을 채 넘지 못하고 멈췄다. 억지로 잡아당기며 낑낑대던 카이토는 시무룩하게 아래를 바라봤다. 들어갈 턱이 없지.
“에엣…. 작다.”
“내가 뭐랬어…. 큭…크흑…. 카이토, 사진 한 장만 찍자. 여기 봐. 같이 브이하자.”
“앗. 브이-!!”
그랬단 말이야. 그저께. 사진첩을 넘기며 마지막엔 차마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눈을 뜨지 못하는 카이토를 보자 웃겨서 숨이 넘어 갈 듯 웃음이 나왔다. 해맑게 동영상에서 브이-하면서 싱글싱글 웃는 모습을 여러 장 캡쳐하자 카이토는 폰을 뺏으려 이리저리 발악했다. 서비스센터에 데려갈 때마저 없는 치마나 원피스를 입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겨우겨우 달래고 달래서 평범한 옷을 입혀 갔단 것도 믿지 않았다.
“카이토 린쨩-”
“으아악!! 그만해요!! 지워요 지워!”
“린린 하게 해줄게~”
“오류가지고 그러기에요? 마스터가 실수해놓고…으윽….”
많이도 찍어뒀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다가 흥에 취해서 린의 머리띠에 맞춘 토끼 모양 손동작을 하고 찍기도 하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서 볼에다 뽀뽀하면서 찍은 것도 있었다. 업데이트가 지워지면서 메모리까지 함께 지워지는 바람에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렇게 친절하게 찍어두시고, 미쳤구나 싶다. 옷장엔 늘어난 린의 옷이 불쌍하게 구겨져 있었다. 마스터는 한동안 내가 린 옷을 걸치고-이건 입은 게 아니라 걸친 것에 불과하다-곱게 화장하고 찍은 사진을 배경화면에 해두고 잠금화면을 풀 때마다 피식거렸다. 어디다가 올리지만 말아 달라는 부탁에 음흉한 웃음을 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