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언제라도.
마스카이
모니터 속의 카이토는 행복해 보였다. 카이토의 노래는 곧 잘 올라오지 않는 노래사이트에서는 오랜만의 카이토의 태그를 단 노래들이 쏟아졌다. 오늘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 아이도 오랜만에 노래를 불렀구나. 카이토는 모니터 속을 들여다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모니터 속의 아이와 똑같은 얼굴이 도드라지게 비춰 보였다. 카이토는 몇 번 들어 익숙해진 후렴구를 조그맣게 따라부르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착각이었다. 소리는 먼 곳에서 달그락거렸다. 방의 문을 따라 나가면 나오는 자그마한 주방. 카이토는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노래하는 작업실이자 컴퓨터가 놓인, 약간의 방음 시설이 되어있는 이 방에서보다 주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마스터와 차를 마시거나, 어느 날은 호기롭게 혼자서 맥주를 마시는 마스터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간단한 아침거리나, 차나 커피는 만들 정도는 기본적인 안드로이드의 기능이었지만, 마스터는 카이토의 음식을 퍽 좋아했다. 남이 해준 음식은 뭐든지 맛있는 법이죠. 언제나 고마워요. 카이토는 고맙다는 말의 울림을 들으면 어깨와 볼이 간지러웠다. 가장 큰 상을 받은 것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언제나 껴안고 싶은 커다란 인형의 울림이었다. ‘고마워’는 마스터와 닮아있다.
오늘은 내가 요리할게.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카이토는 오늘치의 인형을 빼앗겨 실망했다. 하지만 마스터에겐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랑스러운 연인이 있었고, 곧 연인들이 초콜릿을 교환하는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카이토는 알고 있었다. 요리를 해주고 싶어요. 잘하지 못하지만 말이에요. 사랑스러운 노력가의 말은 언젠가 카이토가 처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과 같았다. 누구라도 그의 말을 듣는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하찮은 아쉬움을 숨기고 카이토는 쪼르르 방에 들어와 앉은 것이다.부엌에서는 마스터가 달그락거리다가, 이것저것 실수를 하다가 그릇을 엎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깨진 않으셨을까. 노래를 들어도 엉덩이가 달싹거렸다. 나가서 초콜릿 하나 제대로 녹일 줄 모르는 마스터를 나무라며 토끼가 그려진 자신의 앞치마를 두르며 마스터는 앉아 계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하고 의기양양하게 으쓱이고 싶었다. 레시피를 검색하는 건 눈 깜빡임처럼 쉬운 일이었고, 기계처럼 따라 하는 것은 자신 있었다. 그러면 마스터는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겠지. 초콜릿보다 훨씬 달콤한 칭찬을 귀에다가 속삭여 주면…. 그러나 곧 입술을 깨물고 듣던 노래를 마저 재생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끼어들어선 안 돼.
마스터가 단정히 옷을 갖춰 입고 밖을 나가는 날이 늘어갈 때마다, 카이토가 마스터와 연습하던 음악은 멈춰서 똑같은 음정을 계속했다. 생일 전엔 꼭 완성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카이토는 파일을 열기가 두려웠다. 여전히 몇 주 전의 날짜를 가리키는 파일에서 떨어질 무관심의 장맛비를 맨몸으로, 우산도 없이 맞기 싫었다. 다른 카이토가 부른 노래를 들으니 더욱 시무룩해졌다. 끊이지 않고 노래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언제나 첫 번째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할 텐데도, 마스터는 늘 첫 번째로 여겨 주었으니까. 내 노래가 가장 멋지고 아름답다고 말해 주었다. 카이토는 계속 선물을 주고 싶었다. 고맙다는 감사를 계속 듣고, 마스터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저기, 카이토! 잠시 와주세요.”
“네에-. 무슨 일이세요?”
카이토는 반사적으로 방을 종종 뛰어나갔다. 기다렸던 바였다. 기운차게 뛰어가자 마스터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토끼가 그려진 앞치마를 하고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손에 든 냄비에서 검은 연기와 탄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작은 주방은 엉망진창으로 타서 굳어버린 초콜릿이 바닥이며 싱크대며 달라붙어 굳어있었다. 생각보다 더 처참한 상황에 카이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초콜릿을 밟지 않으려 발꿈치를 들고 가스레인지가 놓인 쪽으로 걸어갔다. 마스터는 부딪히지 않으려 몸을 세로로 돌리다가 머리 위에 달린 찬장에 정수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우와, 작은 한숨이자 감탄을 내뱉고 셔츠의 팔을 걷자 마스터는 까맣게 탄 냄비를 들고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나와서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주방을 치우고 다시 초콜릿을 만드시겠어요?”
“음…. 아니요. 나한텐 요리가 안 맞는 걸지도. 다시 해도 똑같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일단 주방을 치워 드릴게요.”
아이처럼 투정부릴 때가 아니었다. 마스터는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보컬로이드를 사용할 때에도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여대는 예의바른 사람이었고, 카이토는 이 정도의 상황이 되기 전에 와서 도와주는 것이 진정 사용자를 생각하는 안드로이드라고 판단했다. 나는 바보야.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마스터의 손에서 냄비를 가져다가 싱크대에 넣고 뜨거운 물을 틀었다. 마스터에게서는 메케하게 달콤한 검은 빛의 향기가 났다. 카이토는 뜨거운 물에 적신 행주를 쥐여주고 싱크대를 닦아주세요, 하고 내밀었다. 주방의 모든 그릇을 다 꺼내쓰신 참인지 싱크대는 엉망이 된 그릇과 냄비가 가득 쌓여있었다. 카이토는 뜨거운 물을 틀어 그릇을 하나씩 닦기 시작했다.
“이상하네요. 레시피 대로했는데….”
“악보대로 노래한다고 해서 반드시 멋진 노래가 나오진 않는 것처럼. 요리 또한….”
“카이토는 항상 노래 이야기네요. 그런 점이 성실하고 귀여워요. 주말에 힘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청소 끝나면 환기도 할 겸 산책하러 나갈까요?”
“네! 청소가 다 끝나면요.”
설거지 하던 카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운 물에 녹여도 꽉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타버린 초콜릿을 수세미로 꽉꽉 문지르며 어서. 어서 마스터의 손을 잡고 산책가고 싶었다. 연인에게 줄 초콜릿은 잊어버리고, 온전히 서로만의 대화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거리에 사람이 없다면 작은 노래를 불러드리고 칭찬을 받을지도 몰랐다. 카이토는 달콤한 향이 가득한 주방에서 그것보다 더 달콤한 상상을 한다. 생일 축하해요. 약속했던 노래와 아이스크림을 사 왔어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한 아름 품에 받아들고 마음껏 노래의 날개를 펼친다. 소리의 날개는 한순간의 공기를 타고 사라지지만,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웠다. 날개를 달아준 마스터는 아래에서 손을 흔들었다. 날개가 사라지면 마스터에게 안기고, 쏟아지는 따뜻한 칭찬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몸을 씻고 올 테니 카이토는 산책 나갈 준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수건을 준비해드릴게요.”
말려놓은 수건은 거실에 있었다. 초콜릿 범벅이 된 앞치마를 받아들고 수건을 가져오자 마스터는 수고했다며 손을 내밀다 문득, 손을 코에 가져갔다. 탄 냄새는 물에 지워지고 어렴풋한 초콜릿의 단내만 느껴졌다. 카이토는 손이 커다란 초콜릿이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잡았다.
“손에서 초콜릿 향이 나네요. 맡아봐요.”
“헤에. 그렇네요. 마스터랑 어울려요.”
“전 남잔데. 그런가요? 오히려 카이토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일단은….”
“후후. 장난이에요. 창문은 씻고 나서 열어주시겠어요? 씻고 오겠습니다.”
욕실의 문이 닫히자 카이토는 방으로 들어가 코트와 머플러를 꺼내입었다. 마스터도. 오늘은 추운 편이니 머플러를 해야겠지. 마스터 몫의 옷을 꺼내놓자 줄곧 켜져 있던 컴퓨터가 떠올랐다. 멈춘 노래페이지를 끄고 모니터의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 속의 네가 부럽진 않아. 나도 멋진 마스터가 있으니까. 혼자 생각하고서 미소 지었다. 마스터를 기다리는 것은 선물을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그동안 불러왔던 몇 개의 노래를 차례대로 부르자 곧 따뜻한 김이 피어나는 마스터가 수건을 털어냈다. 외출준비를 모두 마친 카이토와 대비되어 보였다.
“노래 부르고 있었어요? 옛날 거네. 예전보다 잘 부르네요.”
“헤헷…. 감사합니다. 얼른 준비해주세요! 머리를 말려 드릴까요?”
“알겠어요. 곧 준비하고 나올게요. 기다리세요. 노래는 계속 불러주면 준비하는데 기운이 날지도.”
“어떤 것을 불러드릴까요? 다음 트랙은-.”
“카이토가 부르는 노래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까. 마음에 드는 거로 불러주세요.”
카이토는 날개가 돋는 듯 어깨가 간지러웠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는 동안 작년의 어느 날을 생각하고, 노래를 불렀던 계절을 생각했다. 창문을 열어도 따뜻했던 봄, 창문을 열면 후덥지근했던 여름. 여름엔 마스터의 휴가가 있어서 카이토는 잔뜩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마스터와 산책을 하면 시원했던 가을. 두꺼운 머플러를 맬 수 있는 겨울. 몇 번의 겨울을 함께 하는지 카이토는 노래를 부르면 셀 수 있었다. 노래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마스터는 손을 내밀었다. 산책할까요?
“노래의 답례라면…. 겨울이라 아이스크림은 별로인가요?”
“아뇨, 마스터가 사주시는 거라면 언제든지. 그리고 저는, 마스터에게 노래를 불러 드릴 수 있는 걸로 이미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가요. 카이토는 상냥하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저, 저도요! 매일…. 노래부르게 해주셔서, 노래를 조…좋아해주셔서..”
첫 번째가 아니라고 판단 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숫자는 의미 없는 것이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손이 따뜻했다.
“아이스크림이 별로 인 것 같아서 초콜릿을 주려고 했는데 말이죠. 보기 좋게 실패하고 청소까지 맡겼으니…. 오늘은 두 개나 세 개를 사도 괜찮아요.”
“어?…그건, 마스터의…발렌타인 데이니까….”
“발렌타인데이? 아하. 그건 여자가 주는 날이에요. 발상은 따온 게 맞지만, 노래도 완성 못한 데다가. 대신이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피아노 반주로 바꿔본 건 있어요. 산책 다녀와서 불러볼래요?”
나는 정말 바보처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읏…마스터어….”
“생일 축하해요, 올해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이것 참…. 또 울려버렸네.”
“아니에요, 안 울어요. 올해도 잘 부탁드려요, 올해도 노래 많이 불러드릴게요!”
물기 젖은 눈을 닦자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손을 잡고 산책을 다녀오면, 더 멋진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언제나. 언제라도. 나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당신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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