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嚥鬼

짧은것/X KAITO 2015. 3. 1. 20:41

크로스 오버 배포전에서 배포한 거

충사 X KAITO


音嚥鬼

 

 

 

산 자락 사이에 있던 마을이 조용하다는 소문이 돈 것은 초하루가 얼마 지나지 않은 추운 겨울께였다. 마을이 시끄러울 때도 있나 그럼. 식당의 수더분한 자가 우스갯 소리를 했다. 그 마을은 원체 인적도 드물고, 교류도 적은데다 사람들이 괴팍하기가 짝이 없어. 먹던 음식을 튀기며 소리를 놓이던 그는 숟가락을 나무식탁에 집어던지며 예적에 말이야. 내가 짐지고 장사하러 다닐 때. 하며 아무도 듣고싶지 않아 하는 그의 소싯적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나가 그렇듯 하루 들른 마을에서의 처녀와의 수줍은 하룻밤은 빠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지루하고 틀에 박힌 듯 흘러가자 사람들은 귀를 닫고 자신의 일행에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술잔을 기울였다. 남자의 말은 식당의 기본 반찬처럼 씹혀갔다.

 

 

 

“그 이야기,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나 흥미가 좀 있는데.”

 

 

사람들에게 들려지기를 반 쯤 포기했던 남자는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언제 식당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남자가 어느순간 옆자리에 의자를 당겨 앉고는 바닥에 커다란 나무상자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상자에서는 요상한 냄새가 풍겼다.

 

 

 

“어떤 이야기? 내가 강 옆마을 처녀와..”

“아니. 조용해졌다는 산기슭 사이의 마을 이야기.”

 

 

은발이면서도 색이 죽은 잿빛 은발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술 두어잔을 더 시켜선 이야기 값이라며 잔을 내밀었다. 먼지가 가득한 식당에서 이야기하느라 칼칼했던 목을 씻어내고선 남자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이 있어서 간 참이었지. 그 마을에 내 옛적 지인이 살거든. 마을이 원래 조용하긴 했어. 사람들도 서로 평생을 살아도 서먹하게 지내는 이상한 곳이거든. 도깨비가 나온다는 소문도 있고.”

“도깨비? 어떤 종류인지 아는가?”

“도깨비가뭐 다 귀한 종류지...그건 잘 모르겠고. 그래서 마을에 갔는데, 개짖는 소리 하나도 없더란 말이야. 역병이 쓸고간 무덤가처럼.”

 

 

호오. 은발의 남자는 호기심 어린 청록빛 눈을 마주쳤다. 이시기에 그 지방에 나타날 귀한 존재라면, 하고 남자의 말을 되풀이 했다. 남은 술을 털어넣은 남자는 소름끼친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이에 역병이라도 돈 줄 알고 얼른 도망가려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야. 사람은 모두 살고있었어.”

 

 

다 벙어리가 되어버렸더라고.

 

 

 

숨죽인 남자의 말에 그나마 귀를 기울이던 식당의 사람들은 모두 선을 놓아버렸다. 허풍쟁이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었다.

 

 

 

“호오. 벙어리라면 어떤? 아예 우는 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그것도 귀하다면 귀하지. 목에 뭔가가 틀어 박힌 것처럼 욱욱대는 소리는 하더만, 간간히 의미없는 말은 하더란 말이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며 미연에 말을 붙였지만 이야기를 듣던 남자는 서둘러 동전 몇 개를 던져주고 자리를 나섰다. 좋은 이야기 고맙다고 어깨를 툭툭치자 남겨진 남자는 어안이 벙벙해 술 몇잔을 더 시켜 마셨다. 마을 사람 전부다 목에 복숭아 씨라도 낀건가. 참. 하고 헛생각을 하더니 그 지방에 나타난다는 도깨비의 짓이 분명하다고 이제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당분간 그 마을에 가지마! 저주가 든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아도 그 마을에 행하는 이는 없어.

뒷자리에서 누군가가 혼잣말을 했다.

 

 

 

 

*

 

 

 

산기슭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할 것도 없는 울창한 쪽빛 청색의 허릿께의 풀물이 소매에 들었다. 코에 가져가자 알싸하게 진한 풀향이 풍겼다. 반나절을 꼬박 올랐는데도 마을은 영 저 멀리에서 보였다. 이마에 땀이 젖어들었다.

 

 

 

“허리 좀 펼까.”

 

풀가를 발로 대충 밟아 쭈그려 앉아서 초를 하나 피웠다. 술에 취한 남자의 말 하나만 믿고 찾아 가보는 거라 큰 기대는 없었다. 큰 일을 해치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의뢰없이 소일거리나 하려다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예상이 맞다면 녀석은 기록 속에서나 보던 희귀한 귀였다. 깅코는 나무서랍을 뒤져 낡은 종이두루마기를 꺼냈다. 초서체로 적힌 글 옆에는 기괴한 충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연기를 두루마기가 흐려지게 내뱉으며 긴 두루마기의 한 귀퉁이로 향했다.

 

 

 

[音嚥]

 

 

 

사람의 말을 배워 말을 취하는 존재. 본디 귀의 영역이 아니었으나 그 형상이 인간의 것을 본따 귀라 일컫는다. 말을 빼앗긴 자는 돌려받지 않는 이상 평생 빼앗긴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서쪽 지방의 산기슭에 나타난 적이 있다.

 

 

 

그림은 없었다. 기록한 자 또한 모습을 보지 못했을 터.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은 찾아보기 어려운 종류였다. 깅코는 두루마기를 돌려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 속을 들어 갈수록 새 소리가 고요히 머언 발치에서 들려갔다. 마을은 짙은 산안개 속에 있었다. 산이 깊어갈수록 충은 늘어간다. 땀에 젖은 겉옷을 어깨에 둘러매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은 흔한 이정표나 돌무덤따위 없이 산기슭 사이의 평평한 땅에 생긴 자연적인 부락이었다. 약초나 작은 화전 따위를 해서 겨우 먹고 살고, 생선은 평생 입에 대 본적 없는 자들의 폐쇄적인 땅.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을의 입구에는 들짐승의 뼛가지가 걸려있었다. 산적을 피하기 위한 알량한 방법이었다. 해가 중천에 오를 쯤에야 흐르는 땀을 손으로 대충 훔치며 마을 어귀로 들어갔다. 마을은 남자의 말처럼 무덤가 만큼 조용했다.

 

 

 

“개 짖는 소리 조차 없군..”

 

 

외부인을 느낀 발걸음이 땅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깅코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어. 사람이 있네. 저기..”

 

 

눈 앞에는 들어봐야 열 다섯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산에서 나는 열매로 염색한 투박한 옷을 입은 소녀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칭얼거리는 소리는 없었다.

 

 

 

“이상한 사람 아니야. 나는 깅코라고 해. 충사라는 일을 하고있는데...너무 경계하지말라고 해도 별 수 없겠지. 외부인을 본건 처음인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넓은 소매를 만지작 거리는 눈이 젖어있었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입에 문 연초를 만져 끄고 소녀에게로 눈높이를 낮췄다. 소녀는 소리없이 입을 벙긋이기만 했다.

 

 

 

“혹시 말을 할 줄 몰라? 아무 말이나 해 봐.”

“서방님..”

“어..아. 할 수 있는 게 그 말이라 이거지. 그렇군..”

 

 

정말 볼 수 있을지도. 열댓살 짜리 소녀는 서방님이라는 말을 빼앗길 리는 없을 것이다. 어른들은 외부인의 출입에 문을 걸어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지 오래였다. 마을엔 인기척 이랄게 사라지고 없었다. 쉬운 단서인 소녀를 좀 더 일러보기로 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어디선가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건넷다. 잔뜩 힘 주어 편 손은 흙투성이였다.

 

 

 

“도깨비를 본 적 있어?”

 

 

흠칫. 입을 오물거리던 소녀는 어깨를 흔들었다. 그것은 대답보다 큰 의미를 가졌다. 기록에 있는게 존재하긴 한가 보군. 어느쪽이라고 물으면 산 속이겠지. 깅코는 소녀의 머리를 헤집어 쓰다듬고는 마을 끝 산자락으로 향했다.

 

 

 

“네 말 찾아다 주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야.”

 

 

 

*

 

 

마을 뒤 한적한 숲으로 나온 깅코는 눈을 감았다. 본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반푼짜리 눈은 감을 때 더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숲 안쪽에서 가느다란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최대한 조용한 발걸음으로 풀을 헤쳤다. 수풀 속에 새파란 인기척이 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머리의 한쪽에 상아색 뿔이 선명하게 솟아있었다. 기록 안된 사항 치고는 꽤 중요한 것이었다. 충의 색과 비슷한 샛파란 머리칼과 똑같은 색의 눈을 가졌다.

 

 

 

“너구나. 요녀석.”

“다른, 사람.”

“말을 제법 하네. 얼마나 많이 먹은 거야.”

 

 

응, 이 욕심쟁이야. 깅코는 도깨비의 옆자리에 주저앉아 연초를 꺼내 물었다. 도깨비의 손에는 녹색 풀이 잔뜩 묻어있었다. 가지런한 바닥에 나무열매 몇 개가 모여있었다. 식사시간 이었던 모양이다.

 

 

“너한텐 좀 독할거다. 그런데 여긴 충의 기운이 많아서 이걸 켜지 않을 수가 없어.”

“당신. 누구?”

“나는 충사. 너희같은 것들을 기록하고 다니는 사람이야. 넌 음연. 소리먹는 귀신이지?”

“나는..”

 

 

손가락을 흙에 몇 번 휘젓더니 도깨비는 카이토라는 이름을 써내려 갔다.

 

 

 

“이름이 있어? 카이토?”

 

 

순간 파란눈은 붉은 안광을 내고 도깨비는 깅코의 입에서 투명의 무언가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시늉을 했다. 곧 그것은 삼켜졌다. 깅코는 다시 카이토라는 말을 입에 떼어보았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도깨비는 기쁜 듯 헤실거렸다.

 

 

“고마워. 이름. 카이토..카이토..”

“앗. 젠장. 이런 식이야? 이런...이건 벌이다.”

 

 

깅코는 들이켰던 연초를 가득 카이토의 얼굴에 뱉었다. 곧 표정이 일그러져 카이토는 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 콜록거렸다.

 

 

 

“하지마. 아파.”

“예의없는 녀석..남의 말을 함부로 빼앗아 가놓고.”

 

뾰족한 귀와 머리에 달린 하나의 뿔을 빼고는 영락없는 사람의 꼴이었다. 옷과 신발까지 주워 신은 꼴이 사람의 마을에 꽤 오래 머문 듯 했다. 깅코는 내려놓은 서랍 속 두루마기를 꺼내 기록을 시작했다.

 

 

“이름은 스스로 지은거야? 넌 원래 이렇게 욕심 많은 귀가 아니잖아.”

“응...미안.

“마을 사람들이 싹 다 벙어리가 된거 알아? 왜 그랬어. 필요한 말이라도 있었어? 마을 사람들이 널 좋아하진 않았을텐데.”

“싫어. 괴물. 꺼져.”

 

 

카이토는 입고있던 헐렁한 유카타의 자락을 들어보였다. 다리에 새파랗다 못해 시꺼매진 멍이 다리에 얼룩져 있었다. 머리를 맞은 적도 있는 듯 소매로 머리도 만지작 거렸다.

 

 

 

“원해. 나는 원해..”

“그렇지. 이렇게 사람 사는 마을 까지 나와서 말을 잡아 먹을 땐 이유가 있었겠지. 덕분에 나는 요깃거리했어. 이 세대에 볼 수 있을 줄이야.”

 

 

인간에게 희귀하고 말고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카이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떠올려보면 무서운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선한 성품탓에 평생 입 한마디 못떼보고 자연에 스러지는 적이 많다는 설명이 있었다. 확실 하진 않지만 한 세대에 하나의 개체만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노래는 어디서 받아온거야. 신기한 녀석이네.. 이번대는.”

“원했어. 원해..”

“뭘 원하는데? 마을 사람들 건 돌려줘. 중복되게 가져오는 건 반칙이지.”

“음....”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바라고 원하는 말은 오랜 시간 동안 들을 수 없었다. 카이토는 아주 깊은 숲에서 생겨났다. 태어났다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눈을 뜨자 숨을 쉬고 있었을 뿐이다. 숲에는 동물의 인적이 드물었다. 단어의 형태를 가지지 않은 것은 가질수 없었다. 카이토는 사람을 찾아 오랫동안 깊은 숲을 걷고 걸어 나왔다.

 

처음 가진 단어는 약초를 캐던 소녀의 노래였다. 노래를 빼앗긴 소녀는 다가온 카이토를 보자 뒷걸음질을 쳤다. 소녀가 부르던 노래는 산과 밤의 신에 대한 기도였다. 그것의 가락은 아름다웠지만 남은 자리에는 풀로 엮은 바구니 뿐이었다. 카이토는 바구니를 손에 들고 마을로 향했다.

 

 

“놀래켰어.”

“어...무슨말인진 모르겠지만. 그래.”

“맞았어.”

“그 얘긴 했어. 그래서 내 말을 들어보겠냐고.”

 

 

말을 알아 듣긴 하는건가? 깅코는 슬슬 무슨 말을 꺼내도 결국 돌고 돌아 맞았어. 로 돌아오는 카이토와의 대화가 지친 참이었다. 혹 알아듣지 못하나 싶어 손에 들고 긁던 나뭇가지를 빼앗았다. 파란 동공 속에 깊은 다른 세계의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짧지만 뾰족한 손가락을 뻗자 나뭇가지가 지나간 손에는 작은 생채기가 남았다.

 

 

“뭐야..”

“내 말 들어봐. 네 말만 하지 말고. 여기 숲 앞의 마을 알지. 네가 말이란 말은 모조리 뺏어온 곳 말이야.”

“싫어.”

“왜? 맞아서? 그럼 마을쪽으로 안 가면 되잖아.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뭔데?”

 

 

카이토는 바닥을 긁던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알수 없는 미소를 흘렸다. 눈이 휘어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였다.

 

 

 

“네가 원하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으면 좋을텐데. 답답하네. 어떤 상황에서 누가 그 말을 하는거나..이렇게 까지는 어려운가.”

“내 아가. 소중한 아가..그리고...으음..나는 몰라. 몰라...”

 

 

연초를 옆으로 길게 뱉어냈다. 그 희귀하다는 귀의 눈물이 흙바닥에 허투루 떨어졌다. 혹여나 한을 품을 다른 물질로 변할성 싶어 떨어지는 모양을 바라보았지만 메마른 땅에 스며든 투명한 액체일 뿐이었다. 투명한 구슬같은 것이 볼을 타고 굴러갔다. 정말 특이한 녀석.

 

 

 

“알고 싶어. 원해. 나는...소중한...”

“소중한 것...뭐지. 그런걸 알아? 피안의 영역일텐데. 써봐. 쓸줄은 몰라? 그러고 보니 글은 또 어디서 배웠어?”

“이거, 이거. 줘.”

 

 

 

 

비뚤게 적은 글자가 곧 떨어진 눈물에 지워졌다. 것 참. 남은 연초를 다 태우고도 깅코는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서선 뒷머리만 벅벅 긁어댔다. 충은 바라는 것이 없다. 태어나서 자연계의 일부로 살아가다 다음 세대와 바뀌는 자연과 함께 사라진다. 서로가 간섭 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법칙. 사랑을 말하는 충을 본 일은 없었다. 기록하던 세필을 멈추고 뚜껑을 닫았다.

 

 

 

“나도 잘 모르는데. 그런데 나한테 필요 없긴 하다.”

“줘. 줘!”

“그럼 그 마을 사람들 건 돌려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한테 괜히 해코지 당하지 말고.”

“응. 내놔.”

“잘 먹어. 딱 한번만 말할거니까.”

 

응응! 땅 긁던 나뭇가지를 꼭 쥐고

 

“이 말을 해본지가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겠네.”

사랑해.

 

 

 

의미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입에 떼는 순간 털이 쭈뼛 타올라 소름돋았다. 팔짱을 껴 오소소 오른 팔을 쓰다듬었다. 구슬처럼 파란 안구가 붉은 빛으로 변하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기다란 손가락으로 휘휘 잡아올려 샘물 마시듯 삼켰다. 언어의 산물. 소리가 형체를 띠어서 언어를 탐하게 된 것이 음연이다. 깅코는 그렇게 기록할 참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야. 말이나 돌려줘.”

“아쉬워. 노래..”

“노래 정도는 하나 남겨둬도 되고. 잘하던데.”

 

 

그래? 카이토는 눈을 반짝였다. 사랑해! 한번 더 외치고는 즐거운 듯 가느다란 소년의 목소리로 소녀에게서 삼킨 노래를 뽑아낸다. 곱고 아름다운 말이 쏟아졌다. 충의 노래는 아름답다. 어떤 샘물보다 맑고 유리보다 투명하며, 무지로 이어진 긴 시간을 담고 있었다. 들을 자격이 있던가. 노래가 잦아들자 손을 올려 숨을 깊게 뱉어냈다. 투명한 실자락들이 공중에 날아올랐다. 이것 또한 장관인걸. 셔츠 앞주머니에 있던 연초를 더 꺼내 물었다가 아차. 하고 다시 상자에 밀어넣었다.

 

 

 

한참을 손에서 가지고 놀더니 손을 뻗자 눈에 보이지 않는 선들은 마을 쪽으로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얼른 제자리를 찾아가라는 듯 입을 모아 불고서 아쉬운 듯 선이 날아간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말은 이름과 단어 하나, 노래 하나. 노래를 준 소녀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검은색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손을 잡아보고 노래하며 숲을 함께 거닐고 싶었을 뿐이다. 이 숲의 가장 깊은 곳 까지.

 

 

 

“-. 참. 네가 가져갔지. -. -.. 정말 안나오네. 신기한데.”

“....”

 

 

오래 잠겼던 몸을 일으키자 다리가 찌뿌듯했다. 가볼까. 대충 손을 흔들고 자리를 벗어나자 카이토는 아무말 없이 자박자박 두걸음쯤 뒤에서 따라왔다. 뭐야. 나 마을 갈껀데. 말을 걸어도 묵묵히 웃을 따름이었다. 손에는 먹다 남은 나무열매를 쥐고서 야금야금 주워먹으며 태평하게 제법 주위 구경도 하고. 깅코는 서랍을 뒤져 가을께에 쓰던 모자를 집어 씌워주었다. 뿔을 다시 보여줘 봤자 좋을 건 없겠지. 어짜피 눈색이든 머리색까진 숨길수 없겠지만. 한참을 걸어나오자 마을이 어른하게 나타났다. 깅코는 다시 카이토를 바라보았다. 언제 주워들었는지 나뭇가지를 흔들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여기부터 이제 마을이야. 들어갈 거야?”

 

 

카이토는 오묘하게 웃었다. 잎이 하나 달린 나뭇가지로 은발의 머리를 쿡쿡 찔러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소리없이 입을 움직였다. 속삭이는 소리 조차 나지 않았다. 숲에는 바람 부는 소리와 마을의 개짖는 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에이, 장난 치지 말고. 난 마을에 확인만 하고 갈거야. 모자는 너 가져.”

“-!”

 

 

들고있던 나뭇가지로 카이토는 땅에 글씨를 썼다. 글은 다시 배워야 겠는걸. 글을 막 배운 세 살짜리 아이처럼 고-마-워. 라고 적고선 옷깃을 잡아끌었다. 깅코는 카이토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피안과 자연을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동물쓰다듬듯 머리를 쓰다듬자 영 옷깃을 부시럭거렸다. 깅코는 연초를 피울까 싶어 만지작거리던 손을 빼 주머니로 가져갔다.

 

 

 

 

불을 붙이고 돌아보자 주위는 조용했다. 초를 다 태울 때 까지 자리에 서서 카이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하늘 여기저기에 연기를 내뱉었다. 마을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숲의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소문은 공기보다 가볍게 사라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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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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