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noir +

짧은것/X KAITO 2014. 8. 25. 19:30

Atelier noir +



누군가의 모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 타인화 하는 것이며 자신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 또한 화자의 감정에 동하면서, 동하지 않으면서, 그 컨셉의 느낌을 창조하고 이끌어주는 것-


“...말로는...거의 프로네.”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 제발 눈 좀 깜빡이지 말아줘, 내가 새내기 대학생처럼 반 쯤 눈감은 사진이나 찍기를 바라는거야, 하고 그는 올라오는 짜증을 숨기지 않는다. 카이토만큼 생각하는 것이 표정이나 행동으로 잘 나타나는 모델은 없을 것이다. 노래 부를때의 행복한 얼굴, 나를 부를 때의 따스함, 사랑스러운 눈길. 자연스럽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 표정 하나하나는 모두 자신의 것보다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지금의 어색함, 부끄러움, 공감의 부재. 이해의 부족. 당연히 글로서 나타날 것이 아니므로 글로 이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벌써 네통째의 필름을 간 그는 빈 필름 통을 벽에 던져버렸다. 새로운 사진이 나와야할 마감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말 멋진 작품을 생각했는데. 카이토가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그는 이제 던져진 필름통 소리에 놀라 가슴을 부여잡은 카이토의 겁에 질린 눈을 바라본다. 아마 저 파란 눈에서는 곧 눈물이 떨어질 듯이 아슬아슬한 물기들이 어려있다.


죄송해요..그치만, 정말 모르겠어요..”

, 아니야.”


. 죽어있는 편이 더 나았을까요.

카이토는 이번 사진을 위해 한 달 전부터 옷 치수를 재고,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함께 들었던 노래들을 기억하려 애쓴다. 필요한 정보는 모두 집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그것은 하나의 형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상상해봐. 하고 마스터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상상이란 게, 가능할 리가. 비슷한 느낌의 연산은 가능해도 그 정보들에서 무엇을 창조하는 것은 사람만의 기능이라고 말씀 드렸지만 아마 내가 그것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스터도 그것을 왜 못하는지를 이해 못하는게 분명하다. 사진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최대한의 신중을 기했다. 절대로 그것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나도 의도한대로 노래가 불러지지 않으면 나 자신이 싫어지고 목소리가 미워져 말 한마디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나는 마스터의 목소리와 같은 존재니까.


사진으로만 표현 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 세계는 아주 조용하고, 또 동적이고, 정적이며. 색채가 가득하기도 하고, 혹은 빛의 양으로만 표현되기도 하는. 아름답고도 고요한 폭풍의 풍경들. 마스터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소리 없는 회오리, 바람, 무언가의 흔적들이 마구 쏟아지는 장마가 떠올랐다. 나름 마구 정보들을 조합해서 최고의 연상을 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 얘기를 들은 마스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금 실망한 목소리로 그래에. 하고 말끝을 흐렸다. 예술은 인간이 하는 모든 정신 활동 중에 가장 고차원의 것이라고 해요. 저는 모르겠지만.


너도 예술을 하..하잖아. , 그런식..의 말은..무책임하지.”

저 따위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 마스터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모델은 누가 봐도 티가 난다. 생기 잃은 눈빛보다 더욱 보기 싫은 눈이다. 작품을 작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상서로운 감정들이 여실히 드러나는 카메라 속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백만 원 짜리 물건이라 던지지 못하는게 한이다. 카이토는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훨씬 익숙했고, 정작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시스템에 들어있지가 않은 것인지 답지 않게 무슨 짓을 해도 자존감이란 것이 올라가질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카이토를 사랑해도, 그 과분한 사랑이 자신의 아름다움 인줄을 모르고 그저 나를 신격화하기에 급한 모습은 과거의 찌질 했던 자신을 떠올리게한다. 고통스러운 평행선이었다.


미안, ..화내버렸네. 오늘은 그..그만하자. 이리와.”


풀어줄게. 나의 감정들에서. 억지로 맡겨버린 여러 역할들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동작들에서.

그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다가오는 카이토를 보며 다른 여러 장면을 생각했다. 저 자연스러운 모습자체 그대로를 담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건 사진작가라면 누구나 가져볼 꿈의 모습이다.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를, 바로 화면으로.

며칠째 혼을 빠지게 흔들어 놓은 카이토는 말없이 묶인 손목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주었지만 이미 팔뚝은 시뻘건 줄과 어제의 멍이 겹쳐 보랏빛이 감돌았다. 매듭을 푸는 내내 아픔을 참지 못한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손목을 잡자 카이토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아파요, 만지지 마세요. 아파요.”

..아프지. 미안해..,울지마.”


약 가져올게. 하고 마스터는 허둥지둥 서랍을 뒤지러 나갔다. 부어오른 손목이 욱신거렸다. 처음엔 살살 묶었다가 움직일 때마다 풀어지자 조금씩 조여 본 것이 결국 지금이다. 손목 밑 감각이 모두 통증으로 느껴진다. 아마 내일도 손을 묶을 수밖에 없겠지. 사실적인 통증보다는 마스터에게 공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들 힘도 없어 늘어뜨린 손에 마스터는 어제와 같이 소독을 한다. 알콜이 바늘같이 부어오른 곳을 찔렀다. 참아보려 했지만 불에 댄 듯 타오르는 감각에 나는 눈을 찌푸리고 움찔거렸다.


!! ..살살..”

..어떡하지..너무 너무..부었는데..”


묶는 소재를 바꿔볼까. 아니면 살색테이프를 감고 묶어볼까. 살살 묶어도 되는 구도로 할까. 뒷모습, 옆모습. 마스터는 속사포처럼 대안을 읊었다. 이럴 때 만은 말을 더듬지 않았다. 아마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그대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팔목은 혈관들이 터져 붉게 멍이 들었다. 나는 그다지 내구성이 좋은 편이 아니다. 아마 이 외부적 상처들이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며칠 동안의 상처가 합쳐져 손은 죽은 보랏빛을 뗬다. 욱신거리는 괜한 죄책감에 손을 뒤로 가져갔다. 약상자를 들고 고개를 숙인 마스터가 결론을 내렸다.


이대론 안 되겠어.”

이건 포기야.”


그 말은 나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이 들렸다. 이 정도로 오래 준비하고 열심히 해오신걸 고작 나 때문에 포기한다는 게, 떨어지는 믿음의 소리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가.


그러지 마세요, 죄송해요. 제가 잘할게요. 하나도 안 아파요, 거짓말이었어요.”

저는 이게 아니면 살 이유가 없단 말이에요.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그는 그제야 카이토가 사람이 아니란 것을 조금은 이해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지독스럽게도 아플 손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에서 더럽혀진 동정녀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큰 굴레를 씌우고 있었는지도. 그가 사랑하는 환상을 깨트리지 않도록 카이토는 무단히도 연상했던 것이다. 보여주지도 않는 그의 머릿속을.

그는 카이토의 손을 잡았다. 손은 열기로 뜨끈했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니가 이렇게 아프면서 까지..해주길 원하지 않아.”


모델을 소중히 하라.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줄 매개체를 자신으로 여기지 말 것. 모델은 렌즈의 역할일 뿐 거울이 되어주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되 매혹당하지 말 것. 여러 가지 말이 생각났지만 어느 것도 카이토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카이토의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안다. 카이토는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동적으로 카이토는 그의 손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눈을 감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단어들이다.


....그게 아니어도, ..나는..더 좋은 사진을..만들 수 있어.”

알아요. 마스터는 최고에요.”

그런..그런 게 아니라, 좋은 피사체가 있으니까.”


나는 카이토를 울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의 열 두 번째로 카이토를 또 울려버렸다. 미안한 말이지만 우는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카이토는 언제나 나의 좋은 모델이 되어준다. 본인은 알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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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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