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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24 [이능력자 AU]살아있는 씨앗 1

이능력자AU..

살아있는 씨앗.

오전 10시가 지나자 아침에 열어놓은 창문으로 환기된 공기가 가득찬 기숙사의 거실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학교나 직장처럼 저마다의 생활이 있는 단원들이 빠져나가자 커다란 거실에 놓인 쇼파의 구겨지 마저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츠무기는 오전의 햇살이 들기 시작하는 정원을 꼼꼼히 돌아보며 꽃이 핀 곳, 조금 시든 곳을 체크하며 마른 땅에 물뿌리개로 찬찬히 비를 내렸다. 정원의 모습은 매일이 달라진다. 낮과 밤, 어제와 오늘, 봄과 여름이 다르듯이 한 순간도 놓칠수 없는 소중한 장면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츠무기가 높게 자란 해바라기 봉오리에게 말을 걸었다. 올해 여름을 위해 열심히 키우고 있는 역작이었다.

"쑥쑥 자라...이런. 또 사고 칠 뻔 했네.."
"어이. 츠키오카. 오늘은 아르바이트 쉬는 날인건가?"
"우앗..! 사..사쿄씨. 으응. 네. 오늘은 아르바이트 없는 날이에요."
"잘됐군. 마침 부탁할게 있어서."

어느새 정원에 놓여있던 하얀 테이블에 사쿄가 앉아있었다. 보통이라면 일을 나갔을 시간일텐데. 츠무기는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작업복의 윗옷을 살짝 끌어내렸다. 이마에 잔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여전히 열심이군. 사쿄는 무미건조하게 눈을 정원으로 돌렸다.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황폐한 극단은 먼지투성이에 잡초만 무성히 자라 허물기에 아깝지 않을 정도 였다. 건물을 해체하는 일은 수도 없이 해 왔던 일이다. 하지만 사쿄는 어째서인지 만카이극단에게 몇 달의 유예를 주었다. 현재는 그 유예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다기엔 너무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츠무기를 바라보며 사쿄는 작게 조소했다.

"어떤 부탁일까요? 제가 해드릴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는 주의다만."
"아하하...그런가요.."
"마침 딱인 인원이 오늘 남아있던 참이라, 생각이 나서 중간에 돌아왔지."
"딱인 인원..?"
"츠무기...인가. 사쿄씨."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온것은 타스쿠였다. 이미 외출용 져지를 입고 손가락에는 차키가 들려있었다. 사쿄에게서 부탁의 내용을 들은 모양이었다. 사쿄는 타스쿠에게 인사겸의 손짓을 하고 야외용 테이블 위에 작은 나무상자를 올려놓았다.

"이게 뭔가요?"
"무언가의 씨앗이지. 원래는 플라스틱 통에 넣은 것이었는데, 츠키오카의 능력을 생각해서 일부러 한번 더 봉한 상태다."
"씨앗..아뇨, 씨앗 까지 틔우는 능력은 아니라서."
"아직 제대로 써본적도 없잖아. 만일을 대비해서다."
"뭐어. 제대로 쓸 일이 없는 능력인걸요. 그래서 부탁은 이것의 운송인가요. 언제나처럼?"

만카이컴퍼니는 부채가 엄청난 부실회사이다. 극단원들의 바람과 몇개 연극의 성공은 극단을 겨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놓았으나, 남은 부채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사쿄가 가져오는 '심부름'이라는 명목 하에 굴러들어오는 일들은 벌이가 좋았다. 대부분의 심부름은 미묘하게 법의 망을 피해갈 수 있는 이능력자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이능력자들이 운영하는 심부름 회사는 관리가 엉망인데다, 이능력자들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사쿄에게도 극단의 사람들에게 맡기는게 비용도 적은데다 믿을 수 있어 서로가 좋은 일이었다. 츠무기는 테이블에 있던 상자를 손에 쥐고 뚜껑을 열어보려했다.

"어라..안열리는데요."
"내가 방금 츠키오카의 능력이 걱정되서 봉해놓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열리지 않아. 내 능력으로 잠궈놓은 상태니까."

서로 다른 두가지 물체를 붙이는 능력은 사쿄가 잘 드러내지 않는 특기 비슷한 종류였다. 물체는 손에 잡히는 것으로 한정되기에 크게 쓰일 일은 살면서 없었지만, 언젠가 사이 나쁜 두 녀석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쓰였던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쓰임이었다. 그것 외에는 이런 식의 소소한 봉인정도이다.

"사쿄씨의 능력..그렇군요. 그럼 언제나처럼 A공원에 있는 벤치 위에 올려놓으면 되는건가요?"
"아니. 오늘은 C라는 가게의 포니테일을 한 여자점원에게 전해주는것."
"C. 라면 꽤 먼 거리네요. 보수는?"
"두 사람을 이용하는거니까. 30만."
"봉인까지 한 것 보면 위험한 물건인거같은데. 40만엔으로."
"이 극단 녀석들은 합의에 응하지 않는게 극단 규칙인가? 급한일이니. 받아들이지."
"가자, 츠무기. 넌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어."
"어어? 으..으응. 다녀오겠습니다."

타스쿠는 상자를 든 츠무기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학교에 다니는 단원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일을 마쳐둬야 의심을 사지 않을것이다. 비밀로 할 생각은 없지만, 알게되면 분명 자기들도 나서겠다며 이리저리 날뛰어 다닐 것이 눈에 선했다. 조용히 어른의 선에서만 끝내는게 좋았다. 어디에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닐뿐 더러, 이능력을 사용하는 것 또한 달가운 일이 아니다. 세상의 눈에 띄는 일은 더러 손가락질 받기 마련이다. 서둘러 외출복인 코트를 걸친 츠무기가 상자를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들어도 될까? 걱정되면 타스쿠가.."
"아니. 난 운전을 해야하니까."
"그렇네. 그럼 내가 소중하게 들고가도록 할게."
"음. 차는 아까 먼저 정문에 세워뒀어."
"타스쿠는..요즘 겨울조 대본을 읽고있던 참이였지? 그렇다면.."
"내가 능력을 쓸 일은 없어. 물론 츠무기 너도."

타스쿠는 차의 시동을 걸며 다짐하듯 말했다. 츠무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 속 상자를 움켜쥐었다. 상자가 작게 꿈틀거리며 진동하자 츠무기는 문득 상자를 다시 꺼내 눈높이에 대고 바라보았다.

"뭐하는거야?"
"아니, 기분탓인지도 모르겠는데. 상자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그럴리가. 설마 네 능력이.."
"새싹을 틔워본적은 한 번도 없는걸. 죽은 식물을 살리는 것 까지는 엄청 노력하면..죽은것을 살리는것과 아직 살지 못한것을 살리는것은 다른건가봐."
"그런식의 논리가 통하는게 이능력인가...모르겠지만."
"하하. 본인도 어떻게 쓰는 줄 알 수 없는게 이능력이라는 것이겠지."

잠시 대화가 멈추고 차의 시동소리만 웅웅댔다. 츠무기는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대화주제를 생각했지만, 집중하고 있는 동안의 타스쿠가 잡담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쿄가 맡긴 일은 쉬워보여도, 그만큼의 보수가 따른다는 것은 위험부담을 생각해야만 한다. 타스쿠는 분명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본인이 먼저 나설 성격이다. 어릴적부터 그랬고, 책임감을 깊게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했다. 어린시절 츠무기가 처음 이능력을 개화했을때 타스쿠는 패닉상태로 엉엉 우는 츠무기의 손에 묻은 흙과 식물뿌리를 털어주고, 온갖 형태로 자라 엉망이 된 할머니의 정원을 같이 정리해주었다. 츠무기는 옛 일을 생각하다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뭐야. 드라이브라도 하는 정도의 마음가짐이야?"
"아냐. 전혀. 그런게 아니라...엣날 일이 생각나서. 내가 처음 능력을 썼던날.."
"하아. 갑자기 옛날 일은 왜. 여기서 좌회전이군."
"그때는 타스쿠까지 이능력자인거, 몰랐지. 정말 의외였어."
"뭐, 연극을 하지 않았던 때니까."
"하하하. 타스쿠다운 능력이라서 조금 웃었지 뭐야."

타스쿠는 작게 코웃음 치더니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비로드거리를 벗어나 주택가의 중심을 지나고 있었다. 이른 오후의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츠무기는 창문가로 눈을 돌려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C가게...이 거리에 있어야하는데. 네비게이션으로 넣은 주소가 이쪽이야."
"으음..보이지않네. 차를 세워두고 좀 걸어야하나."
"그래. 이 쪽 주차구역에 세우고 내리자."

타스쿠는 부드럽게 선에 맞춰 주차를 하곤 시동을 껐다. 안전벨트를 풀고서 츠무기에게 상자의 여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차에서 내렸다. 사쿄가 말했던 가게의 이름이 걸린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츠무기와 타스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간판의 이름을 입으로 말하며 세어보았지만, C는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지도와 GPS를 켜고 세번을 왕복했지만 가게는 없었다. 타스쿠는 빠른걸음의 끝에 깊은 숨을 내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오후였다.

"곤란하네..휴대폰으로 검색해도 이쪽으로 뜨는데 말이지. 가게가 없어진걸까?"
"음. 슬슬 귀가시간이 맞물리겠어. 할 수 없군..츠무기. 잠시 행인들의 시선을 끌어줘."
"뭘하려고?"
"이제 그녀는 행복해졌어-."
"아..이런. 이런, 잠시만!! 타-쨩!!"

츠무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타스쿠는 쪼그리고 앉아 발돋움을 하더니 위롤 솟구쳤다. 날았다. 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직선적인 움직임이었다. 분명히 아름답게 날개를 휘날리는 천사에 대한 극이였는데, 타스쿠의 운동신경과 합쳐지니 이런건가. 츠무기는 점점 작아지는 타스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높게 비치는 햇살에 눈을 찌푸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으으. 이런 사람이 많은곳에서..쑥쑥 자라라..예쁘게 자라라.."

거리의 가로수에서 나뭇잎과 꽃잎들이 무수히 피어나더니 공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츠무기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라진 타스쿠의 그림자를 쫓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어디에 돌풍이라도 부는걸까. 하고 혼잣말을 하며 가로수에 손을 대고 있는 츠무기의 옆을 지나쳐갔다. 타스쿠의 이번 능력은 신기한걸. 자신이 이해한 극에 대한 능력이라니, 역시 타스쿠는 연극배우의 길을 타고난걸지도 모른다. 연둣빛의 잎이 한차례 흩날리더니 어느새 사이에서 핀 꽃잎이 섞여 분홍잎이 눈처럼 쏟아졌다. 눈처럼, 비처럼 쏟아지는 꽃잎들은 연극의 한 창면 같기도 했다.

"슬슬 그만해야 하는데..타스쿠 아직인가.."
"..츠무..."

거리의 보도블록에 페인트가 발린 듯이 여러색의 꽃잎들이 쌓이고 있었다. 발이 땅에 닿는 소리가 잎을 밟아 조용히 묻힐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눈 속임용의 이능력은 아니지만, 츠무기는 능력을 조절하는데 서툴어 여러방면의 활용이 힘들었다. 츠무기는 몽롱한 표정으로 하늘거리는 꽃잎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스쿠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가로수 옆에 서있는 츠무기의 어깨 잡았다

"어이. 츠무기. 그만해. 꽃잎에 파묻히겠다."
"앗. 미안. 나도모르게..가게는 찾았어?"
"고약한 위치야. 저 건물의 옥상에 있는 옥탑건물이야. C라고 적힌 아주 작은 명패가 걸려있더라."

츠무기는 잠에서 깬 듯 기지개를 펴고 맑은 청록빛 눈동자를 깜빡였다. 어깨를 잡은 타스쿠의 눈을 바라보더니 그제야 안심한 듯 미소지었다.

"사쿄씨..일부러 알려주지 않은걸까."
"본인도 거래장소는 답사해보진 않잖아. 몰랐겠지. 아무튼 가자."
"응. 벌써 저녁시간이 가까워. 감독이 혼자 준비하고 있을텐데."
"그럼 카레겠군."
"나는 좋은걸. 감독의 카레."
"싫다고 하진 않았어. 약간 지겨워 질때도 된것같은데, 감독 본인도."
"전혀 그렇지 않대."

츠무기는 상자에 묻은 찌그러진 꽃잎을 떼어내고 타스쿠를 따라 커다란 빌딩안으로 향했다. 일반 회사의 건물로 쓰는 듯한 평범한 사무용 빌딩이었다. 그런곳의 옥상에 잡화점이 있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타스쿠와의 대화에 휘말려 작은 의심정도는 묻어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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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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