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ye!

긴것/연성 릴레이 2015. 7. 25. 18:18

지금 당장 옆사람을 쏘지 않으면 죽는다 


good bye!

 

 

세계가 멸망한다는 사실은 맛없는그러나 풍요로운 영양을 위해 꼭 먹어야하는 음식처럼 억지로 씹어 넘기고 나자바로 그 날은 내일로 다가왔다갑작스럽다 투덜거려도 어쩔 수 없었다지구에 충돌하리라고 운석이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오히려 끌어들인 것은 중력이라 하니 더욱 할 말이 없었다그것은 그동안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게 한 생명의 기원이었지만중력은 그런 자신을 너무도 과신한 걸지도 모른다사람은 중력의 덕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이제 와서 염치없이 중력의 탓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1.

 

창밖으로 시퍼렇고 커다란 운석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밖은 해가 진 저녁보다 새벽처럼 어슴푸레한 빛이었다. TV에서는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한동안은 궤도를 측정한다며 여론을 선동하더니 이젠 그들도 포기한 모양이었다마지막 아침을 맞은 성준은 허무하도록 상쾌하게 기지개를 피며 거실로 나와 손에 든 물건을 카이토에게 내밀었다.

 

카이토이런 게 머리맡에 있었어.”

안녕히 주무셨어요작은 쪽지네요전 쓴 적이 없는데요총은 갑자기 어디서 나셨어요?”

이건..믿을 수 없겠지만 꿈이었는데..”

 

성준은 한 달 동안 지구를 향해 점점 다가오는 운석을 그렸다날이 지날수록 망원경을 쓰지 않아도 굴곡진 모양이나 우주 어디선가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얄밉게도 운석의 빛은 카이토의 눈의 색과 닮아있었다내일이 마지막이라 완성은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고작 유감인가세계가 멸망하는 것이.”

당신은 뭐야?”

유감 이상의 감정을 가진 것이지어때선택 하나 해볼래?”

 

꿈의 천정에서 작은 권총과 쪽지가 팔랑이며 떨어졌다권총은 성준의 손에 맞게 적당한 사이즈였다.

 

[쪽지가 사라지기 전에 총으로 살인을 하면세계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살인..?”

자살은 재미없으니 제외하지그럼다시 만날 수 있기를.”

 

머리맡에는 시커먼 권총과 반듯한 글씨체의 쪽지가 놓여있었다꿈이라 하기엔 꺼림칙하게 생생했다천정에서 누군가가 바라보는 듯 한 느낌에 성준은 위를 올려다 보았으나 쏟아지는 것은 불안한 기운과 귓가를 울리는 카이토의 당연한 질문 뿐이었다.

 

살인...꼭 살인이여야 하는 건가요?”

 

쪽지의 끝이 검게 변하더니 카이토의 손 위에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처음 들어보는 권총은 묵직했다권총 뒤의 고리를 잡아당기자 실탄 하나가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권총을 들자마자 공격불가 알림과 메시지가 눈에 나타나 가뜩이나 좁은 시야가 붉은 창으로 뒤덮였다.

 

밑져야 본전이지어차피 오늘로 끝이라는데.”

마스터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살인이 가능한 경우는 하나 밖에 없잖아머리를 쏴.”

싫어요마스터 오늘 좀 이상해요.”

쏠 수 있지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어느새 쪽지는 작은 귀퉁이 하나만 남겨져 있었다성준은 총구를 이마에 가져갔다한쪽 눈 밖에 없는 카이토가 제대로 쏠 수 있도록 정중앙에 두고서 점점 흩어지는 남은 쪽지조각을 보며 조급하게 외쳤다.

 

카이토어서.”

마스터죄송해요...”

됐으니까 빨리!!”

 

허공에 총성이 울려 퍼지자 성준은 질끈 눈을 감았다운석이 충돌하면 지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불타 사라진다고 했다고통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TV나 라디오의 유일한 위안이었다권총을 이마에 맞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귓가를 칼로 후벼파듯 날카롭게 찌르는 총성의 메아리가 울리고카이토의 손에서 권총이 떨어졌다커다란 소리에 귀에서는 이명이 왱왱거렸다아직 살아있는 무감각에 눈을 뜨자 바닥의 권총 위에는 기름 냄새가 나는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총의 반동으로 카이토는 미친 듯이 손을 떨고 있었다.

 

“...전 사람은 해칠 수 없게 프로그래밍 되어있어요미리 말 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이런 멍청아!! 그러면 말을 했어야지네 팔은 왜 쏘는 거야?! 안 그래도 병신이면서!!”

제가 해를 입힐 수 없는 대상은 물건도 포함돼서요..쏠 곳이 여기밖에 없어요.”

 

아쉬웠던 총성과 함께 쪽지는 공중에서 작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카이토가 입은 새하얀 코트 밖으로 시뻘건 피가 물들고총알이 박힌 팔은 반쯤 떨어져 제멋대로 너덜 너덜거렸다출혈 속도로 보았을 때오늘 까지는 버틸 수 있겠다고 카이토는 웃으며 말했다.한낮인지 알 수 없는 어두운 하늘이 운석의 그림자로 드리워지자 성준은 캔버스에 파란색의 붓을 계속 덧칠했다파란 물감에 검은색을 섞어 아래쪽부터 명암을 만들었다운석이 다가오는 소리가 웅웅대며 커지고땅이 일어나 운석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듯이 울렁거렸다카이토의 피로 가득한 바닥에 앉은 성준은 붓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행이다오늘 이내로 끝날 수 있어서요슬슬 출혈량이 위험했어요.”

불가능한 선택지를 주고 허세부리긴괜히 기분 더럽게 놀아났잖아.”

그 분이 제가 보컬로이드인걸 모르셨을까요?”

그럴 리가.”

 

그 세계는 연기처럼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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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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