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화

-테디베어...

성준은 정물화를 보듯 카이토의 모습을 뜯어보았다. 미술학도는 기본적으로 그림에 필요한 해부학을 가볍게 배운다. 성준은 책에서 보았던 근육이나 뼈, 장기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살아있는 실제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은 카이토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카이토는 처음부터 사람이 되다 만 석고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정상으로 짧은 팔과 다리에 더러운 붕대가 엉망으로 매어진 뭉툭한 사지 끄트머리를 버둥거리며, 카이토는 살아있었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유기적인 의미는 아닐지라도. 두 뼘만 한 사지를 자신에게 뻗자 성준은 뒤로 물러나다 호기심에 다가섰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호기심이었다. 미지의 물건은 생경한 감각으로 피부에 닿았다. 카이토가 기댄 벽과 바닥에 흥건한 검은 액체의 경계선을 밟은 성준은 비릿한 냄새에 눈을 찌푸렸다. 인기척에 드디어 잔 상처가 가득한 얼굴에서 눈을 뜬 카이토는 언제나처럼 빈 회색 눈으로 성준을 응시했다.

마스터, 오랜만이에요.”

아아. 그러네.”

이런 모습이라.”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

짜증 나니까. 성준은 입에 붙은 오래되고 단물 빠진 단어를 씹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때도 있었지. 몰이해와 몰지각의 스트레스가 짜증이라고 인식되던 때도. 이상하게 따뜻한 목소리나 급격하게 차가워지는 손을 잡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환각이라면 피하고 싶은 종류는 아니었다. 아닌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렇게 더 망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어도 됐을거라는 잔인한 상념마저 떠올랐다. 마치 자신의 생존을 입증하듯 성준의 호칭을 부르며 기어오려는 몸의 중심이 바닥으로 기울었다. 성준은 무의식적으로 넘어지려는 몸을 신발을 신은 발로 저지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든 건 이후였다. 카이토는 몸이 온전할때도 꽤 무거운 편이었다. 팔다리가 잘린 지금은 이전 보다는 가볍겠지만, 여전히 성준이 들만 한 무게의 기계는 아니었다.

발이라니. 너무해요.”

더럽잖아.”

그건 절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스터의 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전히 눈치 없네.”

발에 가해진 압력때문인지, 카이토 몸에 감겨있던 붕대에서는 검은 액체가 배어나왔다. 불쾌하게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빛은 성준의 비위를 자극했다. 성준은 과거의 잘못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돌아온다는 과거의 금언을 떠올렸다. 죄는 비극으로. 비극은 눈으로. 손으로. 자신의 손으로. 몸을 숙여 거친 붕대에 손을 가져가자 카이토가 움찍였다.

어째서냐고? 그런 눈 보기 싫으니까. 애매하게 나타나선..”

저의 존재는 저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면서.”

누구의 의지도 아니지.”

한 꺼풀씩 벗겨지며 드러나는 맨몸에 성준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마주친 투명하게 파란 카이토의 눈이 흔들릴 때, 무언가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카이토의 피가 검게 썩어 곪은 양 팔의 남은 흔적의 끄트머리에. 어설프게 봉제인형의 모습을 따라한 울퉁불퉁한 기형적인 골격을 응시하자 카이토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성준은 손에 묻은 진득한 검은 액체를 입에 가져갔다. 다분히도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역겨워.”

익숙한 단어네요.”

 

 

'긴것 > 연성 릴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거울과 여름  (2) 2016.05.21
07. 바다의 끝  (0) 2016.03.18
06. 새로운 시간은 새로운 마음으로  (0) 2016.02.22
good bye!  (0) 2015.07.25
05.夏夕空  (0) 2015.07.21
Posted by michu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