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바다의 끝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그래. 어째서일까.’

 

성준은 빌라의 계단을 뛰어오르며 턱까지 차오른 숨을 겨우겨우 삼켰다. 머릿속으로는 카이토와 함께 보냈던 여름을 떠올렸다. 그가 바라던 조용한 일상을 변조하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몇 년이고 유행이 지난 노래를 부르는 카이토의 모습을 떠올렸다. 종일 거실에서 홀로 노래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작업실에서 나온 성준을 반기며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과 소리 없는 웃음. 보라색 노을이 물들어가는 거리를 산책하며 자신이 보지 않은, 영영 볼 수 없을 것들을 꿈꾸며 말하는 목소리. 마스터가 그리는 바다라는 곳으로 가보고 싶어요. 마스터와 산책하고 싶어요. 노래하고 싶어요. 현관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성준은 곧장 카이토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카이토!! 문 열어!!! 할 말이 있어.”

할 말이 있다고. 중요할지도 몰라. 문 열라고! 이게 정말...켄타가 뭐라고 했지. 그래. 강제명령이야! 문 열어!!”

 

곧바로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사이를 빠끔히 내다본 카이토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켄타가 만일에 카이토가 문을 열지 않으면, 하고 가르쳐준 방법이었다. 스스로 나왔으면서 억지로 끌려나온 듯 멀뚱히 성준을 쳐다보더니 잠시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명령 실행 했습니다...켄타군, 치사한 것을 가르쳐 드렸네요.”

치사하다니, 앞으로 자주 써먹어야겠다. 너 이리 나와서 식탁에 앉아 봐. 물어볼 게 있어.”

갑자기 질문이라니. 이상한 바람이라도 부신건가요? 노래에 대한?”

그 놈의 노래타령 그만하고 앉아. 그리고 내가 묻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한다고 약속해.”

전 거짓말을 못하는데요. 뭐든지 편하게 여쭤보세요.”

 

성준은 카이토와 마주앉아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몇 달을 함께 했지만, 며칠 만에 보는 카이토 얼굴은 새로웠다. 진지한 분위기에 카이토는 어색한 듯 눈을 깜빡이다 콧잔등을 문질 거렸다. 화를 낼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성준의 표정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다급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했다.

 

너의 전 주인은 어떤 사람 이였지?”

아하. 그건 저도 열람할 수 없는 봉인이라, 몰라요. 사용자가 바뀌면 이전의 메모리는 전부다 봉인되는 게 안드로이드 절대원칙이라.”

눈은 언제 다친 거지?”

안구 손상은...34개월 전. 손상에 대한 정보는 따로 보관하고 있어요. 그럼 다음질문은..어째서. 시겠죠. 그건 이전 사용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봉인상태입니다. 다만 등록된 손상의 이유는..외부 충격이네요. 이게 중요한 것인가요?”

날 만나기 전에 노래 해 본적 있어? 네가 볼 수 없다는 메모리 안에 음악파일이 있어?”

“...없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거죠? 사실은 한 번도 노래 불러 본 적 없으면서, 이제 와서....인가요. 그러네요.”

 

카이토는 고개를 숙였다. 괘씸하게. 이미 한 번 사용된 기기에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기동 이상의 것을 바란다. 반쪽짜리 눈이 간지러웠다. 바라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마스터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더라면. 이런 감정은 없는 편이 나았다. 얼굴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이 밉고 미웠다.

 

카이토, 고개 들어.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거야. 너는 나를 좋아해?”

..?”

 

금지된 단어를 들은 듯 카이토가 흠칫 몸을 떨었다. 흐르던 눈물이 고개를 들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스터가 그런 질문을 할 리가 없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성준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리고 대답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좋아한다고. 처음부터, 마스터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고. 프로그램으로 이미 정해진 것이라도. 사람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종류일지도 모른다고 비논리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다. 카이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좋아..좋아해요.”

그래. 어떤 좋아요 인거지? 내가 너의 주인이라서? 너를 거두고 버리지 않아서? 임프린팅 설정을 끄더라도, 너는 나를 좋아할 수 있어?”

...확률적으로...혹은 실험적으로..”

미친..집어치워. 지금 생각 한 너의 결론을 말해. 네가 정확하게 나에게 바라는 걸 말하라고. 지난번의 기세는 어디 갔어?”

마스터..마스터에게 제 노래를 들려드리고..그러면 마스터가..절 좀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웃는 마스터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무리겠지만..”

그래. 만족스러운 대답이야.”

 

성준은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카이토를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머리 위에서 시퍼런 바닷물이 쏟아진다. 천정에서 밝은 백사장이 펼쳐진 듯이 파도치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푸르게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성준은 본 적이 있었다. 살면서 보았던 바다 중에 무엇보다 깊고 조용하면서 거대한 생명체처럼 의지를 가진 듯 유영하는 물방울의 군집. 차가운 물이 목 뒤를 스치며 떨어진다. 가만히 두면 커다란 바다는 서서히 사라진 다는 것도 성준은 알고 있었다.

 

“...싫으신가요? 마스터는 제가 정말..귀찮기만 하신가요? 제가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면..노래를 할 수 있다면..”

아니, 왜 계속 울어? 나는 나쁜 말 한 것도 없는데. 다 큰 남자가 징그럽게 눈물이나 뚝뚝 흘리고. 소름끼치니까 그쳐.”

우윽...흐엉...마스터어..”

울지 말라니까 왜 더 우는 거야...그래. 좀 더 이야기 해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이런..”

 

성준은 손을 뻗어 한 쪽에서만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의 시야 속 카이토는 자신이 만든 바다 속에서 투명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장면은 온 몸의 감각을 지배한다. 차가운 물을 넘어 깨문 입술로 가져갔다. 성준은 J와 헤어진 이후로 다른 누군가와 키스하는 건 처음이 아닌가 세어보았다. 부끄럽고 불행히도 처음이었다. 물속에서 키스 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카이토의 혀는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고 부드러웠다. 닿은 볼 사이의 가까운 거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카이토의 감은 눈 사이에서 남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게 내 대답이야.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라고. 멍청아. 너 때문에 시야가 불투명하니까.”

거짓말...거짓말이죠. 장난치시는 거죠?”

내가 거짓말 할 만큼 한가해 보여?”

 

성준은 손바닥으로 카이토의 뒤통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울렁이는 바다가 그치질 않았다. 쿵쾅거리는 심장고동이 먼 바다에서 지나가는 커다란 함선의 궤적처럼 귓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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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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