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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것/연성 릴레이 2016. 9. 18. 13:08

성준카이 센티넬버스...1,,,,,,


난장판이 된 방 안에서 남자는 웃었다.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앞으로 넘어진 선반과 책장에서 쏟아진 책과 물건들이 여기저기 부숴진 채로 뒹굴었다. 남자는 눈물로 엉망인 얼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두개골 속에 든 것이 바깥으로 터져 나갈듯한 두통.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어지러움. 이명. 혼자인 방에서 들리는 소름 끼치는 환청. 윙윙대고 삐걱거리는 불안한 소리가 점멸하듯 커졌다 줄어든다. 그는 아침부터 갑자기 찾아온 발작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발작의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좋은 징조는 분명히 아니다.


“또 혼자서 궁상떨고 있군. 센티넬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라고.”

“허억...S? 뭐야, 여긴. 여긴...어떻게..”

“아침부터 협회에서 너한테 서른 번 넘게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네가 죽었는지 확인해 달라더라.”

“전...화?”


전화에 신경쓸 겨를 따위 없었다. 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폭풍이 몰아치는 머리로는 간단한 사고조차 가로 막힌다. S는 그의 사생활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친하진 않지만. 사실을 알고 있는 자로서 생기는 기본적인 연민이란 게 있었다. 성인이 된 센티넬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발작은 때로 생명에 위험이 될 정도로 몸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연구는 대부분 이루어졌다. 센티미터의 뇌에 위치하는 특이한 병소, 혹은 부분 하나가 신경계 작용에 반응하면 전 뇌를 폭주하게 만드는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그것을 상쇄하는 가이드라는 존재.


“어이. 정신차려. 김성준. 성준?”

“머리가….머리…”

“예술가란 정말. 귀찮은 직업이군. 또 약했냐?”


성준은 알맞은 가이드를 찾을 수 없었다. 사춘기에 발현한 센티넬적 증상이 공교롭게도 그를 예술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감각의 폭주. 다중 감각. 정제된 환각이라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들의 결과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나타났다. 파장에 맞는 가이드를 찾는 건 현재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첫 번째 폭주 이후로 성준은 병원에 센티넬 등록을 하고, 피 검사 결과에 따라 자신에게 알맞으며, 현주소와 비슷한 곳에 위치하는 가이드를 소개 받았다. 그는 멋진 남성이었다. 단정한 목덜미가 인상적이었다. 늘 자신을 따라다니던 경미한 두통이 가라앉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짝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휩싸였고, 깨진 착각의 조각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가이드에 대한 불신. 센티넬로서 최악의 조건이다.


“아악..약은..하지 않았어...병원..”

“병원에 가면 또 어쩌려고? 진정제 맞고 누워있으려고? 그건 완벽한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씨발...그럼 어떡하라고!!! 지금 내 머리가 깨지려하는데!!”

“가이드를 소개 받아. 찾으라고. 너 이러다가 죽어!”

“싫어…”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는 공생이다. 가이드 또한 자신이 일반 사람에게 끼치는 일종의 마취 효과를 인식할 때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약한 공포감은 가이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장애를 만든다. 자신에게 맞는 센티넬과 가이드를 만나는 것은 그들의 삶의 질을 올리는 평화로운 방법이었다. 성준은 그동안 다섯번의 가이드 관계를 실패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미간을 크게 찌푸리며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던 성준이 밀려오는 구토 감에 바닥에 엎드려 구역질을 했다.


“미치겠군. 미친놈이 날 살인자로 만들 생각이야.”

“살인 방조죄에 해당하나요.”

“맞아. 날 범죄자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와서 이 새끼좀 진정 시켜봐, 카이토.”

“알겠습니다.”


성준은 희미한 시야를 뚫고 나오는 파란색의 인영을 응시했다. 눈이 풀려 흔들리는 초점으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커다란 손이 안개 속을 헤치고 다가와 뜨거운 이마에 가볍게 손을 터치했다. 작게 입꼬리가 올라간 모습이었다. 그리고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성준은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은 놀이기구에서 막 내린 것 처럼 몸이 흔들렸고, 폭주의 여파로 온 몸에 통증이 몰려들었다. 구토 감을 억제하려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성준이 어깨를 떨며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는 몇달만에 보는 S와 평범한 얼굴의 안드로이드가 서 있었다.


“뭐….우욱..”

“안녕. 성준.”

“무슨 일..인지는 아까 들었고. 그래, 일단은 고맙군. 그리고 저건 뭐지?”

“요즘 우리가 개발 중인 인공 센티넬기능이 탑재된 안드로이드야. 카이토 기종. 시범운행.”

“뇌파는 안정적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신체 기능이 많이 손상된 상태에요.”

“그건 눈으로 봐도 알아. 새끼 고양이처럼 떨고 있잖아.”

“닥쳐. 어디서 조잡한 장난질이야? 난 가이드 필요 없어.”

“가정부는 필요해 보이네. 널 위해 청소 기능도 넣어뒀어.”


이것 봐, 일부러 모델을 구해서 만든 거라고.  S는 자랑하듯 카이토의 오른 팔을 잡고 내밀었다. 새것 같지 않은 사용 감이 드는 카이토였다. 단종된지 오래 되었으니 중고를 구했어, 중고도 구하기 어려웠지. 나름 희귀 모델이더라고.  


“맘에 들지 않아? 예전 그것처럼 눈 하나를 없애버릴까?”

“닥쳐!!”

“워,워. 장난이라고. 아직 너에게 장난치기엔 일렀나?”

“구해준 것은 고마워. 그리고 저거 가지고 당장 사라져.”

“내가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네가 누워서 토악질 하고있을때 이미 소유자 설정까지 해뒀다고. 이제 네 거야.”

“뭣..??”

“그래. 사라지도록 하지. 주인님을 잘 모시도록.”


성준은 몸을 일으켜 S를 잡으려 했지만 사지의 근육이 찢어 질듯 비명 하는 고통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유유히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S의 뒤통수에 대고 욕지거리를 내뱉은 후 바닥에 누웠다. 깊이 숨을 들이키자 아직도 머리가 웅웅대며 흔들렸다. 폭주의 여파가 며칠은 갈 셈이지. 제기랄. 작품 마감 일이 일주일인가 남았던가. 폭주할 때 캔버스를 찢어버리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마스터 라고 불러도 되나요?”

“아니. 안돼.”

“아직 호흡 수와 맥박, 체온이 정상 범위에 도달하지 않았네요. 침대로 옮기겠습니다. 안정이 필요해요...당신에게는.”

“뭐...뭐하는거야? 미쳤어?”

“보행 불가로 판단되는 상태입니다. 바닥 주변에는 위험한 파편들도 있고요.”


성준은 자신의 몸을 짐짝 들듯 들쳐매는 것에도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했다. 아침 내내 일어난 발작에 지칠대로 지쳤고, 카이토가 다시 나타났든, 그렇지 않든 지금은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카이토는 조심스럽게 넘어진 책장을 넘어 엉망이 된 침대를 발로 대충 폈다.


“우욱..토할거같은데..”

“제 등에 토하시면 곤란한데요. 침대에서 다시 조정해보도록 하죠.”

“내...내려줘….화장실에…”

“숨을 깊이 쉬세요. 아주 깊이. 온 몸에 힘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해보죠.”


침대에 내려진 성준은 자신의 눈을 가리는 카이토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주문처럼 밀려드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따라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카이토가 몇 가지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듯 했다. 이전처럼 손을 잡지도, 격렬한 관계를 가지지도 않았지만 몸과 머리와 정신이 안정되어 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 의료 공학의 발전이란-. 성준은 띄엄띄엄 드는 생각 속에서 잊고 있던 얼굴을 떠올렸다. 잊으려 했던 것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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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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