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ry night
여름의 저녁바람이 시원하게 창을 타고 들어왔다. 한창 땀에 물까지 젖었던 몸을 씻고나오니,카이토는 집에 들어올 때까지 감고 있었던 눈을 멀뚱히 뜨고 거실 바닥에 앉아있었다. 성준은 혹시나 망가진 회색 눈까지 수복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 눈은 기계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물이 들어간 정도의 가벼운 고장처럼 보이진 않았다. 강물에 빠져 쫄딱 젖었던 카이토의 몸은 다녀오는 동안 축축하게 말라있었다. 저대로 놔두면 기분 나쁘게 옷이며 머리며 눅눅한 강물에 떠있던 풀냄새가 스며들 것이다. 성준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카이토를 불렀다.
“카이토, 옷 벗어봐. 세탁기 돌려야겠다.”
“제가 입은 옷이요?”
“응. 넌 그 사이에 욕실 가서 몸 좀 닦고 와. 어서 줘. 지금 세탁기 쓸 거야.”
“머플러까지요?”
성준은 대답 없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내놓으라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카이토가 옷이라는 명사의 뜻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닐 테니. 카이토는 다시 빤히 쳐다보더니 일어나 바지벨트를 풀어 벗은 후에 내밀고, 목까지 올려져 있던 코트의 지퍼를 내렸다. 코트 안은 의외로 평범한 회색 티셔츠와 검은 드로우즈 차림이었다. 코트의 품이 커다랬던 것에 비해 카이토의 몸은 단단하게 마른 체형이었다. 기다란 머플러가 감싸고 있던 목덜미는 얄팍했고, 목과 쇄골을 이어지는 선부터 검은 문신처럼 제조번호가 적혀있었다. 카이토는 쑥스러운지 목 뒤를 훑더니 하얀 옷가지를 말아 내밀었다.
“적당히 씻어. 그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지?”
“그런데 마스터. 갈아입을 옷이 없는데..”
“내 옷장에서 대충 찾아 입어. 얼른 들어가, 이상한 냄새 배기 전에.”
성준은 카이토의 등을 떠밀어 욕실로 보낸 후에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로 나갔다. 뜨겁고 습기찬 바람이 덜 마른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세제를 넣고 세탁기의 문을 닫은 후에 웅웅거리는 소리와 진동을 내며 돌아가는 등에 기대 느릿하게 지는 진홍색 노을이 내린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하나 태웠다. 허기가 진지 오래되어 음식을 할 기운이 나질 않았다. 카이토는 음식을 할 수 있을까? 보컬로이드에겐 기본적인 안드로이드 기능은 있다고 했으니, 요리나 청소 같은 가사도움 기능정도는 있을 테지만. 손상되었을지도 모른다. 심부름도 못 보내는 안드로이드를 집에 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작업하는 중엔 누구라도 신경 쓰기 귀찮고, 집중력을 깨는 것은 치워놓는 것이 편했다. 담배 하나가 끝나 갈 때 쯤 카이토는 헐렁한 티셔츠와 허벅지 아래가 훤한 드로우즈 차림으로 베란다에 나타났다. 카이토는 마르고 새하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남은 담배연기를 손으로 휘휘 저어 밀어냈다.
“마스터. 여기 계셨네요. 마스터 옷이 다 저한테 커서..”
“야..무슨 짓이야..바지는 어쨌어? 옷장에 반바지 많을 텐데.”
“바지는..흘러내려서요. 청바지는 불편하고..속옷은 커도 입었어요.”
“당연한 소리 자랑스럽게 하지 마. 아참. 너, 음식 할 줄 알아?”
“기본적인 기능은 있어요. 해 본적은 없습니다.”
검은 티셔츠를 원피스처럼 입고 카이토는 장을 보았던 리스트에서 할 수 있을 만한 요리를 손꼽기 시작했다. 요리라고 하기 민망한 샌드위치, 토스트, 간단한 파스타. 손가락은 고작 세 개를 접고 끝나버렸다.
“..그게 끝이야?”
“오늘 장 보신 게 식빵이랑 우유, 파스타면, 토마토소스, 커피캔 다섯 개. 아이스크림 두 개.맥주 여섯캔. 감자칩 한 봉지가 끝이라. 조합으로 검색되는 요리가 세 가지 밖에 없어요.”
“아이스크림은 넣은 적이 없는데?”
“제가 넣었습니다. 먹고 싶어서요.”
“가지가지 한다. 아무거나 만들어봐. 피곤해서 손도 까닥 하기 싫어.”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토는 가슴께까지 내려온 티셔츠의 목을 올렸다. 그러자 어깨가 드러나 더욱 이상한 꼴이 되어버렸다. 긴 바지나 여름엔 두꺼워 보이는 기다란 코트를 입었을 때보다 훨씬 가벼워보이는 몸짓으로 부엌으로 가더니 얼마 되지 않아 성준을 식탁으로 불렀다. 식탁 위에는 토마토 소스로 만든 파스타가 한 접시 놓여있었다.
“파스타를 만들었어요.”
“네 건 없어?”
“음식물은 처리하기 귀찮고, 제 것 까지 만들어버리면 마스터가 내일 드실게 없어요.”
“그럼 아이스크림 먹어. 나 먹는 거 이렇게 쳐다 볼 거야?”
“그건 마스터와 함께 먹으려고 했는데요.”
“난 아이스크림 안 좋아해. 애도 아니고. 둘 다 너 먹어. 하난 내일 먹든지.”
파스타는 생각했던 그대로의 맛이었다. 시간을 맞춰 면을 삶고 시중에서 파는 소스를 부은 평범하고, 칭찬 할 점이라고는 따뜻하다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잡고 눈을 빛내며 파스타에 대한 코멘트를 기다리는 카이토를 마주보니 무슨 말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성준은 두 번째 입을 꾸역꾸역 삼킨 후에 입을 닦으며 말했다.
“괜찮네. 아이스크림 먹을 값 정도는 했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맥주 하나 마실까...먹고 작업하려고 했는데.”
“마스터, 제가 꺼내드릴게요.”
의자 위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있더니, 카이토는 후다닥 일어나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왔다. 건네는 맥주를 받으며 짧게 고맙다는 말을 하자 카이토는 만족한다는 얼굴로 다시 의자 위에 올라와 앉았다. 열어 놓은 바깥 창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순식간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비운 후에 베란다에 나가 담배 하나를 더 피웠다. 그 사이에 카이토는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닦고 있었다. 마치 다음 일을 기다리는 듯 주춤거리며 다가오며 마스터, 하고 성준을 부르자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았다.
“수고했어. 설거지는 내가 해도 되는데. 이제 쉬어. 난 작업할거니까.”
“네. 마스터, 혹시 작업실 책장에 있던 CD를 들어봐도 되나요?”
“내 작업실에 CD가 있어?”
작업실의 책장은 협회에서 바로 들여놓은 짐이 정리되어 있었다. 노래를 듣는 취미는 없었고,하물며 CD를 사는 버릇 또한 없었다. 성준은 카이토가 말하는 CD를 확인하기 위해 함께 작업실로 들어갔다. 카이토는 미술도구로 엉망인 방 앞에서 손가락으로 벽에 있는 장식장의 두 번째 단을 가리켰다.
“이거...예전에 선물 받은 거네.”
“선물을 잊어버리시다니. 밀봉 되어 있는 걸로 봐선 들어본 적도 없으시죠?”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선물이지.”
선물 받은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아마도 뉴욕에서 지낼 때였다. 작업실의 옆집에 살던 캐나다인이었는데, 초대 하지 않아도 시간 빌 때마다 작업실에 놀러와 술을 마시거나 자신이 좋아한다는 재즈 음악의 CD를 틀어놓고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하곤 했다. 마약을 했다던지, 어떤 배우와 사귀었다가 헤어졌다던지. 대부분 가십과 거짓이 잔뜩 발린 쓸데없는 잡담이었다.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없는 저녁은 언젠가부터 쓸쓸하기 시작했다. 깊고 본연한 외로움이 이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외로움은 자각하기 시작하자 눈덩이처럼 불어나, 검은 눈을 가리고 감정의 늪구덩이에서 살아나기 위해서 그것이 사랑이라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것이 삶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
성준은 바닥에 깔린 미술도구 사이를 휙휙 넘어가 캐리어 안에서 낡은 CD플레이어를 꺼내 카이토의 손에 쥐어주었다. 버튼 여기저기에 먼지가 끼여 있었지만 사용한 적은 없었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용케도 이리저리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이걸로 들어. 그때 같이 선물 받은 거야.”
“그런 소중한 것을 제가 써도 되나요? 감사합니다.”
“됐어. 너 이어폰을 낄 수 있는 구조인거야 그 헤드셋이 있는 쪽은?”
“탈부착 가능해요. 이건 인이어 헤드셋이라고, 반주를 잡음 없이 들을 수 있도록 쓰고 있어요.”
한 손으로 헤드셋을 살짝 돌리자 딸깍 하는 소리가 나더니 왼쪽과 비슷한 모양의 귀가 나타났다. 카이토는 귓바퀴를 바로 잡으려는 듯 몇 번 만지더니 CD와 플레이어와 자신의 헤드셋을 품에 안고 생긋 웃었다.
“그럼 작업 수고하세요. 저는 거실에서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카이토, 잠시만. 손 풀게 크로키 몇 장 할 건데 들으면서 잠시만 앉아 있다가.”
“크로키라면, 빠른 스케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앉아있어도 되고. 서있어도 돼. 말은 하지 말고, CD들어도 되니까.”
성준은 바닥에 있던 크로키용 스케치북을 꺼내들고 기다랗게 깎인 연필이 여러개든 통에서 끝이 뭉툭한 것을 하나 골라 종이의 모서리에 대고 휘갈겨 다듬었다. 카이토가 앉은 창 뒤로 해가 져 완연히 검보랏빛 구름이 느린 바람에 흘러갔다. 이어폰을 귀에 넣고 CD를 재생한 카이토는 정물처럼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열어둔 창에서 부는 바람이 머리와 옷을 흔들었다.
"하나 끝났어. 가만히 잘 있네. 이제 다른 자세 해봐. 눕던지, 뒤로 돌아서 앉는 거나..“
“헤에. 봐도 되나요? 마스터 손이 굉장히 빨리 움직여서, 신나는 곡의 지휘를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와서 봐. 비슷한 걸로 두 세 개 더 한건데. 머리카락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지.”
카이토는 이어폰을 내려놓고 다가와 밝은 얼굴로 스케치북을 바라보았다. 지나간 찰나가 스며든 종이에는 검게 칠해진 명암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카이토는 자신을 창작이라는 인간의 특권의 부수물이라 여겼다. 음악 이외의 방식이라 해도, 창작은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 장의 스케치는 이어지면 눈을 감는 동작으로 이어졌다.
“신기해요. 저와 똑같다고 할 순 없지만, 비슷한 특징은 보이네요. 제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나 보네요. 대칭이..”
“그런 식의 평가는 그만 둬. 노래는 어때?”
“마니악한 길거리 재즈 음악이에요. 바의 라이브를 바로 녹음한 것이라 객석의 소음이 함께 섞여있어서 생생한 분위기이고, 피아노 반주가 항상 엇박으로 시작하는 것이 재밌네요. 유명한 재즈곡을 밝게 편곡한 2번 트랙과 우울하게 편곡한 3번 트랙이 대조되네요. 장난기가 많으신 분이에요.”
“그랬지.”
“..아시는 분이신가요?”
카이토는 CD의 뒷편에 써져있던 글귀를 보았지만 모른 척 했다. 데이터베이스에 검색 되지 않는, 가장 자신 있는 곡을 선택해서 한 사람만을 위해 녹음한 CD. 노래에는 사랑이 흘렀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노래를 하던 바를 눈앞에 드리웠다. 어두운 조명, 나이를 제법 먹은 피아노. 시간은 아마도 한밤중이 되기는 이른 초저녁. 익숙한 반주자와 손을 맞추지 않아도 서로의 리듬을 조화롭게 만드는 오랜 세월. 그리고 목소리에는 가득히 한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FOR J. with love.
성준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는 변덕스러웠지만, 영 변하진 않을 거라 믿었다. 가장 괴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멀어진 관계는 영원히 멀어지고 말았다. 사람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생각과 마음은 언제든지 바람에 흔들리고, 숨이 이어지는 한 모든 순간 사람은 변한다. 그림처럼 박제된 관계는 없었다. 괴로움이나 외로움도 사라지고, 무뎌진다. 일렁이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가슴께가 욱신거렸다.
“예전 일이야.”
“제가 마스터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보다 보잘 것 없어서 분하네요.”
“네가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제 모든 것이죠. 저의 음악과 짧은 생활과 기성품인데다 조금 망가진 몸까지.”
가진 모든 것을 바쳐도 멋진 시간, 장소, 사람, 음악, 그의 사랑.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다.안드로이드의 무력감은 이어진다. 기계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언제라도 잊히기 쉽고.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에 대한 사랑을 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야 발자취에라도 닿을 수 있을지 까마득했다. 성준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카이토에게 손짓을 했다. 은은한 담뱃불 사이로 비추는 마스터는 괴로워 보였다. 행복한 시간을 할퀸 흉터는 깊고, 잠들어 있던 고래가 숨을 펴듯 수면 위로 차고 올라와 마음의 수면을 흔들었다.
“마스터, 괜찮으세요?”
“옆에 있어.”
“작업 하시는데 괜찮으신가요?”
“됐으니까. 그냥 옆에 있어.”
다 태운 담배를 바닥에 있던 종이컵에 넣은 성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카이토가 앉은 바닥 옆에 앉았다. 카이토는 망설이더니 손가락 하나를 잡더니 어깨에 기대고 한참동안 가만히 심장에서 퍼지는 불규칙적인 두근거림과 마스터의 숨이 드나드는 공기소리를 들었다. 어느새 잠든 밤이 지나 새벽이 이어지듯 언제까지고 이어지길 바라며. 언젠간 노래로 괴로운 밤을 메우고, 마스터의 빈 어느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이루어지기 힘든 기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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