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低
비행은 독특한 경험이다. 각각의 비행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무거운 비행기 속은 고요했고, 이따금 웅웅대는 거대하고 웅장한 고동소리를 배려하는 사람들은 작게 속삭였다. 창밖에는 소리 없이 고요한 하늘. 그는 눈을 굴려 잡지를 읽고 있었다. 짐을 챙기고 쓸데없는 쓰레기들을 모두 버릴 때, 하나 정도 손에 남아 있던 것이었다. 그는 무신경하게 기름 냄새가 나는 얇은 종이를 팔락이다 익숙한 그림에 다다라 손을 멈췄다. 한 페이지를 모두 채운 그림 옆에는 작은 평론이 달려 있었다.
「김성준의 그림.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다. 색으로 전달한 마음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강하게 부딪히고, 소리 없는 외침의 선은 그 선을 따라가는 시선과 결합하여 무게를 지닌다. 그런 때에는, 느낀 것을 전달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란 얼마나 무의미한 지. 그림 앞에서 느끼는 울렁임으로 김성준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다. 평론가 이수경.」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개소리야?!!”
그는 읽고 있던 잡지를 집어 던질 수밖에 없었다. 꼭 그래야만 했다. 미술 평론가라는 자들은 다들 장님인가보지. 심미안 말이다. 아니라면 당장 평론가라는 직업은 그만두고 동네 화구 방에서나 일하는 게 그녀의 인생과, 그녀에게 평론을 받을 남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잡지를 주워 외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옆자리의 여자에게 지어보였으나, 그녀는 잠에서 깨 심기 불편한 눈길을 던졌다가 다시 몸을 뒤척이며 눈을 감았다. 그는 남은 비행시간동안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저따위 평론을 보는 것 보다 유익한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괜히 열만 올렸다.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평론에 신경이나 썼다고. 그들의 잣대란 겉치레며허식에 불과하다. 입으로 예술을 하는 자들. 캔버스보다 얄팍한글 쪼가리가 자신이 그린 그림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겠지. 그는 헛구역질이 나려했다.
축복받은 재능이라고 했다. 남들과 다른 세 번째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찬란하게 빛난다. 빛과 색채는 일렁이고, 소리와 음계와 감각은 그를 찾아왔다. 그는 하루하루가 바쁘게 숨 쉬는 순간을 기록한다. 재료와 질감은 새하얀 캔버스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래, 어린 그는 자신이 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손을 휘두르면 그림이 탄생한다. 당연하고도 아름다운 이치를.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찬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손과 눈과 영혼을 움직이던 때. 영원하리라 믿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람에 홀린 듯 나타나는 재능은 꿈처럼 사라졌다. 세상에 ‘현대 미술 작가 김성준’ 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뒤였다. 그의 세계는 누구보다 강하게 빛났으며, 조용히 멸망했다. 더 이상 그에게 천사의 속삭임은 들리지 않았다. 탁한 잿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그는 캔버스 앞을 서성였다. 손가락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던 붓을 살인도구나 되는 것처럼 노려보다, 무구히 하얀 머릿속은 영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삶의 의미. 숨 쉬는 이유. 그림 그리는 것 말고 다른 것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너 말이야, 좋은 사람처럼 웃고 있지만, 벽이 있어. 선을 넘지 말라는 느낌말이야.”
-그게 뭐가 어쨌다고.
“성준씨, 요즘 슬럼프이신가요? 최근의 작품들은 뭔가 빠져있는 느낌이네요.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뭔가 고민이 있다면 저희 협회와 상의해주세요. 저희는 전적으로 성준 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은 이해하지도 못할 뿐 더러,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
“성준아.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남자끼리 이런 관계, 길게 이어봤자 소용없어.”
-...
어차피 떠나려고 했어.
로마의 달콤한 휴일도 그에게는 쓰디쓴 절망만 안겨줄 뿐이었다. 한국에 잠시 들러 협회에 얼굴을 비춘 그는 다시 일본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번이 여섯 번째 로군요.협회의 여직원은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오랜만이라는 인사와 세계여행은 즐겁냐는 그녀의 질문에 성준은 그 동안 스쳤던 장소를 떠올리다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장소를 옮겨도 그는 하루의 절반을 질리도록 새하얀캔버스 앞에서 다른 세계를 동경했다. 언젠가 그가 있었던 장소를. 그립고 그리운 나의 세계.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일본.”
“저희는 성준 씨를 믿고 있어요. 생활하시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집과 일체를 준비해뒀습니다. 좋은 그림이 나오기를.”
그는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 협회에서 넘겨준 주소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었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어깨를 스미는 여독으로 선잠을 자는 성준을위해 듣고 있던 라디오를 끄고 창문을 올려주었다. 창 바깥에서는 소음과 노랫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성준은 암흑색의 꿈을 꾸다 점점 커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택시는 야외 공연장을 지나고 있었다. 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스쳐봐도 이질적인 느낌의 민트색 양 갈래 머리의 소녀가 노래하고 있었다. 성준은 신기하게 무대 위의 소녀를 바라보았다.무대와 소녀를 이어주는 전선, 팔에 새겨진 시리얼 넘버와 미묘하게 섞인 기계음은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저건 안드로이드인가요? 일본은 역시 안드로이드가 활성화 되어 있네요. 노래를 부르는 종류라니.”
“아, 손님. 보컬로이드를 모르시나요? 저 아이는 가장 유명한 보컬로이드죠.”
택시기사의 자랑스러운 말투에 성준은 고개를 돌렸다. 보컬로이드 소녀의 무대가 멀어져갔다.
“네, 처음 봐요. 보컬로이드라면..”
“악기 소프트웨어와 안드로이드의 합작이죠. 노래를 한다는 것 보다 주어진 악곡을 연주하는 느낌으로. 여기는 사람의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려주는 드로잉로이드도 이미 실용화 되어 있고요. 소문으로는 군사용의 안드로이드도 제작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소문일 뿐이랍니다.”
택시기사는 좋은 경험을 하셨네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붙였다. 그가 거주했던 나라에서나, 한국에서 조차 안드로이드는 기계라는 인식이 강했고, 인권이나 법령에 부딪혀 기본적인 가정용 안드로이드정도가 실용화 되어있을 뿐이었다. 인지하고 보니, 길거리에도 종종 안드로이드가 눈에 띄었다. 그들의 손이나, 팔에 위치한 인식코드나 특이한 머리색이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에 섞여있었다.
“...그야말로 기계와 사람이 공존하는 나라네요.”
“하하, 손님이 가실 곳은 시가지가 아니라서, 안드로이드는 많이 없을 겁니다.”
성준은 늘 도심과 떨어진 한적한 곳을 요청했다. 사람들과 많이 섞여봤자 눈만 탁해질 뿐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요청에 맞춰 아름다운 풍경이 유명한 노인들이 많은 조용한 마을을 선택했다고 협회의 직원은 설명했다. 설명은 틀린 곳이 없었다. 택시기사가 내려준 곳은 한국의 시골이나 다를 것이 없는 교외의 아파트였다. 먼저 붙여놓은 짐은 집에 도착했겠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던 성준은 텅 빈 1층의 복도를 둘러보았다. 우편물을 넣어놓는 철제 우편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해외활동이라고 너무한 것 아닌가.
“시발...요즘 세상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가 어디 있어..”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까지 올라오는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다. 혼자가 지내기엔 썩 좋은 스무 평 남짓한 방이 나타났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치고는 벽지며 가구도 깨끗했다. 캐리어를 현관에 던져두고 욕실이며 침실을 둘러보던 그는 중앙의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게 뭐야..?”
바닥에는 파란머리의 사람이 널브러져있었다. 성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곧 공포는 사그라졌다.머리에 떡하니 붙은 대형폐기물 스티커와, 일본에는 파란머리가 절대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안드로이드인 것 같은데,고액으로 거래되는 걸 이렇게 덜컥 버리고 가다니. 전 집주인은 부자였을 지도 모른다. 기왕 대형폐기물 스티커 까지 붙였으면 아래에 내려주고 가지.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커다란 안드로이드를 가지고 내려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물며 안드로이드를 깨워서 이제 널 버리러 갈 테니 걸어오라고 할 수도 없을 노릇이고. 안드로이드는 특이한 하얀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몇 번 보았던 가사노동용 안드로이드라면 앞치마를 입고 있을 터였다. 다가가자 그것의 손에는 CD가 쥐어져 있었다. 귀에는 헤드셋을 끼고 곤히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다.
“...아. 보컬로이드인가.”
그는 방금 택시기사와 이야기 했던 것을 떠올렸다. 연주하는 안드로이드라던. 보컬로이드라는 단어에 반응 하는 듯 안드로이드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져 있는 건가? 아닌데...? 스스로 켜진다고?”
남아있던 배터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전원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망가진 컴퓨터가 재부팅 되듯 안드로이드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성준은 신기하게 안드로이드의 기동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기계적으로 일정한 속도로 몸을 일으키더니 감은 눈을 서서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머리색과 비슷한 하늘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오른쪽은 그랬다.
“아하. 이래서 버린 건가.”
안드로이드의 왼쪽 눈동자는 먹구름이 찬 하늘처럼 회색빛으로 흐렸다. 동공의 안쪽은 빛나고 있었으나,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는 곧 부팅을 완료했는지 성준을 바라보며 엷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지만.
“마..”
짧은 말을 남기고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꺼져버렸다. 남아있던 배터리가 다한 것이었다. 안드로이드가 움직인 것은 순간의 찰나였지만, 성준은 세상이 느릿하게 지나감을 느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이윽고 그의 발목에서부터 찰랑이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선명하게 차가운 감각, 발목을 건드리며 물의 친근함이 그를 감싸 올랐다.
‘물이라니? 여긴 4층이라고.’
그는 울고 싶었다. 어째서, 이제야. 드디어 돌아 온 거야. 장소를 옮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을 해도 나타나지 않았으면서. 감각은 눈과 귀와 온 몸의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동안의 침잠이 무색하게 선명하게 날뛰는, 자신의 사랑스럽고도 그리운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오랜만의 공감각은 강하고 거세게 밀려왔다. 은은한 향기처럼 풍기던 예전과는 달랐다. 성준은 자신의 환각의 물살에 갇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시퍼런 물은 어느새 거실을 가득 채웠다. 물속에서 시야가 이지러져 보였다. 스쳐가는 여러 이미지가 하나로 수렴한다. 파란 안드로이드의 아득한 미소와 반짝이던 두 가지 색의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흔들린다. 물로 틀어 막힌 호흡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의 도약을 알리듯이.
잠시 후 그는 바닥에 놓여있던 CD를 주워들었다.VOCALOID KAITO. 카이토. 소리 내 읽어 본 뒤, PC가 설치된 안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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