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님의 설정을 차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폭력, 살인에 대한 미화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개인적인 캐해석이 다분합니다.



1편 조금 이전의 이야기




lost and found


  


미카게는 정확히 일주일 뒤에 돌아왔다. 큰 다툼이 있었다. 어깨와 옆구리와 복부에 칼에 베이고 총알이 스쳐 벌어진 상처를 뚝뚝 흘리며 돌아온 츠무기가 말했다. 타스쿠는 침착한 척 했다. 츠무기가 동요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둘 중 한 명 정도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중요 급소를 노린것이 확실해보였다. 츠무기가 몸을 비틀어 동선을 피하고, 빠르게

 도망치는 장면이 머리에 그려졌다. 몇 년 간 함께 업계를 굴러왔던 츠무기의 행동 패턴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술보다 본능이 시키는 몸동작이다. 그렇다 해도 상처는 깊었다. 가게에 있던 소독약을 전부 쓰고도 깨끗한 천에는 피가 계속 배어나왔다. 악력이 굉장한 놈이였군. 타스쿠가 츠무기의 등을 살피며 새빨갛게 부어오른 날개죽지에 쿨링젤을 듬뿍 발랐다. 차가운지 츠무기는 온 몸을 부르르떨었다. 츠무기는 붉은 피가 퍼져있는 옆구리의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미카게씨가 공격한거야."

"뭐? 그렇게 힘이 셌었다니. 그런 편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역시 타스쿠는 타스쿠. 어째서-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지않는구나."

"이미 벌어진 결과에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어? 미카게 히소카는 적이다. 그걸로 끝이야."

"적..인걸까. 좀 이상했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미카게 히소카와는 알고 지낸 지는 3년 남짓 되었지만 업계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비밀이 많은 청부살인업자라는것 말고는 아는게 없었다. 그렇지. 그는 독특한 식탐을 가지고 있었다. 단 음식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가끔씩 가게에 놀러오곤 했던 히소카에게 츠무기는 녹인 마쉬멜로우와 초콜릿을 녹인 코코아를 만들어 주었다. 이 두 사실 외에 타스쿠가 아는 것은 없었다. 사람에게 정을 붙인다던가. 그런 감상적인 활동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살인청부의 일은 배운게 그것 뿐이라 하는 것이었다. 일 할때 사적인 감정을 넣지 않는다. 그러나 미카게의 정체는 누구라도 호기심을 한번 가져볼만한 것이다. 물론 타스쿠는 가지지 않았다. 결론은-. 친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다. 신분을 숨기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는 이 업계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찾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평소와 달랐어. 뭔가..이유가 있었을거야."

"너 답지 않아. 츠무기. 어떤 이유가 있더라해도 널 죽이려했어."

"그게 그렇지. 난 미카게씨가 죽일만큼의 가치가 없을텐데. 필사적으로 공격했다는게.."

"평소답군."

"에엑. 평소의 날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웃으니까 상처가 울린다며 츠무기는 두꺼운 수건을 가져와 옆구리에 대고 눌렀다. 츠무기는 강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믿음의 문제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츠무기는 홀연듯 자취를 감쳤고, 몇 년 뒤 청부살인자가 되었다며 자랑스럽게 나타났다. 우연히도, 타스쿠도 그 직업에 흥미가 있던 차였다. 곧 손을 맞춰보았고, 예전부터 그랬듯 더할나위 없이 깔끔하게 들어맞았다. 츠무기는 유키시로 란 자에게서 건수를 받아왔다. 그에게서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근육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몸이었지만, 그렇다고 군더더기가 붙어 움직임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그게 츠무기로서의 최선이다. 동작이 큰 공격은 흔적만 크게 남아 비효율적이다. 


"몸에서 열이나. 며칠 일을 쉬어야겠어."

"침대에 누워.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자. 유키시로에게 연락을 해두지."

"아냐. 내가 할께. 아까 유키시로씨의 부하도 있었어. 그들은 죽었어."

"그들..?"

"내가 센 숫자는 열한명. 모두 미카게씨 혼자서 죽였어."


츠무기는 조금 전의 참상이 떠올랐는지 다시 불안한 눈빛으로 타스쿠를 바라보았다. 타스쿠는 의자에 걸려있던 담요를 가져와 츠무기의 어깨에 덮었다. 츠무기는 대부분 모든 일에서 침착했다. 잘 웃는 편이지만, 그것 조차 조용한 웃음이었다. 이렇게까지 동요하는 것은 타스쿠도 보기 드물었다. 유키시로를 만난다며 나갔던 츠무기가 어째서 미카게에게 휘말린 것인지. 당장이라도 유키시로에게 뛰어가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타스쿠까지 다쳐서 돌아오면 츠무기를 진정시킬 사람이 없어지게된다. 타스쿠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츠무기와 같이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츠무기는 유키시로에게 무언가를 결핍당했다. 그것만 찾으면, 다시 밝은 곳으로 함께 돌아갈것이다.


"최고의 청부살인자란 말이 아깝지 않네."

"무서웠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미카게는 원래 그런 느낌이였잖아?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도 꿈쩍도 하지않을거야."

"달랐어. 완전히 달랐어. 아무튼..한동안은 미카게씨를 보지 못하겠어. 아쉽네. 마쉬멜로우, 잔뜩 사뒀는데."



***


미카게는 정확히 일주일 뒤에 돌아왔다. 아직 츠무기의 어깨와 옆구리에 난 상처가 낫지 않았다. 츠무기는 당분간 일을 쉬겠다고 유키시로에게 말하고는 뜻밖의 휴가에 기쁜듯 취미로 키우는 가게 뒤 화단에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무리한 활동은 하지 않도록 약속을 받아냈다. 정원 가꾸기란게 보기엔 가벼운 시간때우기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작물에 맞는 땅을 조성하고, 작물이 잘 자라도록 주변 환경을 바꾸고, 관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먼저 제거하는 노동적인 요소가 많은 취미이다. 반나절만 잡초를 뽑고 있어도 타스쿠는 진절머리가나고 머리가 빙빙돌았다. 타스쿠는 아직 더워지기전인 오전 나절동안 조깅을 하겠다며 가게를 나섰다. 적당한 속도로 10km쯤 뛰고 올 생각이었다. 적당히 빨라진 심장박동은 머리회전도 빠르게 한다. 넓은 챙에 끈이 달린 밀짚모자를 쓴 츠무기가 시원한 차를 준비해놓고 있겠다며 얼마동안 걸어가며 배웅했다. 아직 어깨를 들기 힘들어보였다. 미카게를 다시 만나게된다면 최소한 한 대정도는 후려갈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두어시간쯤 뛰고 가게로 땀에 젖은 채로 돌아왔더니, 미카게가 테이블에 앉아 코코아를 먹고있었다. 타스쿠는 영문을 잃은 채로 문 앞에 우두커니 섰다. 츠무기가 말했던 '완전히 다른' 미카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멍한 눈빛으로 커다란 검정색 후드 티셔츠를 입은 미카게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가리가 커다란 짐승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었던 미카게는 얼마 전 다치고 돌아온 츠무기의 눈빛보다 더욱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물에서 건져진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다. 이런 얼굴도 할 줄 아는 구나. 타스쿠는 분노와 놀람이 뒤섞여 알 수 없는 얼굴을 하다가, 잠시 뒤 분노로 감정을 확정지었다.


"타스쿠. 왔어?"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어. 츠무기, 죽을 뻔 했다고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어? 어째서 코코아같은걸 만들어 주고 있는거지?"

"나도 믿지 못해. 하지만 한번 들어볼 가치는 있을것 같아. 유키시로씨의 비서가 미카게씨를 데리고왔어. 다쳤데. 해리성 기억상실 이라는 병으로. 지금의 미카게씨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가능한 걸까...싶지만..유키시로씨도 우리와 마찬가진가봐. 유키시로씨의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모양이야.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뭐야. 우리보고 저 말도 안되는 괴물을 맡으라고? 정신차려. 츠무기. 아직 어깨도 들지 못하면서, 잊었어?"

"내가 뭔가 잘못한거야?"


나긋한 미카게의 목소리를 듣자 타스쿠는 이성을 잃고 미카게의 멱살을 잡았다. 굳게 쥔 주먹을 얼굴 앞까지 가져갔지만 미카게는 눈도 끔뻑이지 않고 타스쿠를 바라보았다. 풀색 눈동자에는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치면서 삶에 대한 의지도 함께 잃어버린건가? 지금 당장 죽여주지. 타스쿠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던 군용나이프를 꺼내 눈 앞에 들이밀었다. 순간 타스쿠가 본 것은 안심하는 눈빛이었다. 


"지금 죽여주는거야..?"

"하아? 미치겠군. 어이, 미카게. 정말 죽고싶은거냐? 연기해봤자 소용없어!!"

"그만해, 타스쿠. 나도 이미 몇 번이나 해봤어. 목에 칼을 가져가도 가만히 있었어. 예전의 미카게씨라면 절대 그렇지 않았겠지..."

"그게 뭘 증명한다는거야. 뇌라도 꺼내서 살펴보기라도 한거야? 당장 내보내. 기억을 잃었다니 농담도 적당히 하라고."

"- 거기까지. 나도 타카토군의 말에는 십분 동감이야. 하지만 그게 정말 '미카게 히소카' 라면 절대 이대로 보내 줄 순 없지."


츠무기의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에서 유키시로의 목소리가 스피커 폰으로 울렸다. 숨기려하고 있지만 노기가 잔뜩 흐르는 목소리였다. 부하를 열 한명인가 죽였다고 했었나. 그래뵈도 가장 측근의 사람은 아끼는 족속이었다. 


"지금 나로서는 보는것 만으로도 머리를 부셔버리고싶어서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 츠무기가 당분간 일을 쉬어야하니...이건 내 사적인 부탁이야. 미카게 히소카는 이미 죽었어. 이 사실 만으로도 거리가

 시끄러워지고 있어. 우리쪽도 전력을 많이 잃었어. 거리를 안정시키는 것에 집중하려고. 가능하면 기억을 찾는 쪽으로, 불가능 하다면 예전의 미카게 히소카처럼 뛰어난 살인자로 만들어내. 계좌로 필요한 돈은 송금해놓지."


부탁한다. 유키시로는 짧게 한숨을 쉬듯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타스쿠는 츠무기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들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그가 선불휴대폰을 이미 가지고 있을 리는 없었다. 업무용으로 쓰는 휴대폰에서 문자음이 울렸다. 휴대폰에는 유키시로가 말한 필요한 돈이란게 송금되어 있었다. 타스쿠는 미간을 구기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쓰다듬었다. 또 유키시로의 함정에 빠졌군. 자조가 담긴 웃음을 쿡쿡대며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일련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있던 히소카는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 말하는 듯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라는 단어에는 힘이 붙어있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야.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거짓말 하지 않아."

"알겠어요. 미카게..히소카군. 히소카군이라고 부를게요. 나는 츠키오카 츠무기. 예전의 당신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저 남자는 타카토 타스쿠. 마찬가지로."

"...."

"이거. 맛있었어. 고마워."

"다행이네요. 취향이나 기호정도는 몸이 기억하고 있나봐."

"병원에 데려가는게 빠르지 않아?"


츠무기는 미카게의 상황을 설명한다. 사망처리가 되어 신분증명을 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으며, 위조 신분증명을 만드는것 쯤은 유키시로에게 손만 까딱하면 가능한 일이지만 머리를 깨부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어떤 부탁을 하겠는가. 처음부터 미카게의 신원증명서를 만들어 준 사람이 유키시로였다. 누구도 미카게가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자라서, 어떤 이유로 청부살인업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타스쿠는 알고 싶지 않은 쪽에 속했다. 어떤 괴로운 일이 있었다고 해도 살인자가 되는 이유로는 인정할 수 없었다. 츠무기는 금방이라도 미카게의 목을 조를 듯이 핏줄이 툭툭 올라온 타스쿠의 손을 손가락으로 더듬고는 잡았다. 긴 하루였어. 방에 올라가서 같이 빌려놓은 영화를 보자. 자물쇠가 풀리듯 타스쿠는 미카게의 멱살을 놓았다.


"히소카군에게는 남는 다락방을 쓰게 하면 되겠어."

"마음대로 해."




***




타스쿠는 히소카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놓지않고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했다.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순간 티가 나는 때가 올 것이다. 잠깐의 틈만 보여도 지체없이 가슴 주머니에 넣어다니는 소형 권총으로 머리를 쏴버릴것이다. 유키시로에겐 사고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아마 유키시로도 처리문제로 골을 썩히고 있을 것이다. 이미 죽었다고 선포한 남자가 멀쩡히-모든 기억을 잃은채로-돌아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카게 히소카였다. 이름을 들은것 만으로도 자살하는 타겟이 있을 정도로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살인청부업자. 그에대한 소문은 부풀려진 것도 몇 가지 있었다. 이를테면 미군에서 훈련을 받은 소년병이였다던지. 분쟁지역에서 버려진 난민이였다가 테러집단에서 자랐다던지. 그의 이국적인 외모가 불러오는 이물감이 업계에선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였다. 사실일 수도 있지만, 타스쿠는 그렇진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분쟁지역에서 저렇게 특이한 외모가 살아남을 리가 없다. 예전에 구경거리가 되어 참수된 머리가 마을입구에 걸려있었을 것이다. 타스쿠는 그 곳에서 말 도 안되는 일을

 수 없이 보았다. 마찬가지의 지옥이지만 종류가 다르다. 츠무기에겐 말하지 않았다. 츠무기가 말하지 않는 똑같은 시간동안 겪은 일이다. 공백의 시간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츠무기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돌리곤 했다. 말을 돌리는 패턴이 지겨워 타스쿠는 더는 그 기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타스쿠, 좋은 아침. 커피 괜찮아?"

"또 커피포트를 왼손으로 들고있잖아. 무리하지 말라니까."

"이제 괜찮아. 이것봐. 만세-.도 할 수 있어. 가벼운 일 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 시체처리는 어떨까. 히소카군에게도 견학시켜주려고."

"그게 무슨 좋은일이라고 견학이야. 의뢰는 몇시야?"

"오후 세시. 20분안에 처리."

"넉넉하군. 미카게는 어디있어?"

"아직 자고 있을텐데. 준비하려면 깨워야겠어."

"내가 가지."


타스쿠는 받아든 커피를 한번 홀짝이고는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츠무기가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뒤돌아서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원래의 미카게가 잠이 많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의 미카게는 비정상적으로 잠을 길게 자고, 잠에 이기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기억상실도 뇌손상의 일종이니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해도 비정상처럼 보이는건 어쩔 수 없었다. 밥을 먹다가도 테이블에 코를 박고 잠에 빠지곤 했다. 미카게가 쓰는 창고겸 다락방 앞에 선 타스쿠는 방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다 문을 세게 두드렸다.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이. 미카게. 그만 일어나. 문 열어."

"문 열라고. 내말 안들려? 젠장. 어린애도 아니고...문 연다."


타스쿠는 두어번 더 문을 크게 두드린 후에 문을 열었다. 방에는 상자 몇 개와 바닥에 깔린 이불이 전부였다. 미카게는 이불 속에서 죽은듯 자고있었다. 큰 소리를 내면서 들어왔는데도 미동조차 없었다. 타스쿠가 혀를 차며 발로 이불을 걷어내자 츠무기가 입던 낡은 잠옷을 입은 미카게가 몸을 뒤척였다. 츠무기가 중학생까지 입던 하늘색의 잠옷이었다. 미카게는 츠무기보다 작은 체구인지라 옷은 형편없이 헐렁했다. 꼴사납군. 타스쿠는 몸을 숙여 미카게의 목덜미를 잡아들었다. 일어나. 언제까지 먹고 자기만 할거냐고. 밥먹은 값은 해야지. 나는 널 인정못해. 그런식으로 도피하는 패배자는-. 


"...좋은 아침. 타스쿠..우.."

"어이..던져버리기 전에 제대로 눈뜨지 못해?"

"졸려.."

"한심하게. 오후에 일이 있어. 언제까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셈이야?"


아무것도. 타스쿠의 마지막 말을 되풀이하던 히소카가 몸을 일으켜 섰다. 왠일로 순순히 따라오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자기 몫의 마쉬멜로우가 잔뜩 든 코코아를 집어들었다. 츠무기가 시체처리를 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가 막 죽인 시체를 흔적이 남지 않도록 포장해서 가게로 가져오는 간단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높은 곳에서 총을 쏘는 방법은 안전하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람이 죽어버리기에 눈에 띌 가능성이 있다. 처리반이 주변에 상주하고 있다가 빠르게 처리하는게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중요하다. 히소카는 알아 듣고 있다는 듯 고래를 끄덕였다. 


"괜찮겠어? 아직 총을 사용하기엔 무리지 않을까. 차라리 내가 하는것이."

"아냐. 오래 쓰지 않으면 감각이 무뎌지니까. 이쯤이 제격이라고 생각해. 한 발로 안 될 수도 있으니, 세 발 정도 예상해줘."

"츠무기가 죽이는 거야?"

"응. 어떤 타겟이냐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다르게 해야해요. 타스쿠는 저격보다는 접근전에 강하고. 저는 그 반대고. 그래서 우리가 팀을 만든거죠."

"그럼 나는?"

"히소카군? 음...히소카군은..뭐든지 잘했던걸로 기억해요."


츠무기는 무겁게 보이는 검은 서류가방을 꺼내 비밀번호를 능숙하게 돌려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에는 분리된 장총이 들어있었다. 건조한 천으로 부품을 꺼내 하나씩 닦으며 히소카에게 부품의 이름과 조립방법을 말했다. 예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니 조금이라도 기억나는게 없냐고 묻자 히소카는 고개를 저었다. 히소카라는 이름 외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츠무기는 다시 위화감을 느꼈다. 총을 조립하고 지지대를 꺼내 연결해보고, 보안경과 정밀렌즈를 함께 챙겼다. 타스쿠는 커다란 모포자루와 비옷을 챙겨 밴에 옮겨넣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뒤 뜰에 심어놓은 모종에서 싹이 나왔더라고. 히소카군도 함께 물을 줬어. 호응을 유도하는 츠무기의 말에 타스쿠는 무덤덤하게 그랬겠지. 하고 짧게 대답하며 걸어갔다. 


"히소카군에게 무기를 주는 게 좋을까? 총은 무리겠지."

"말도 안돼는 소리. 내 옆에 가만히 있을건데 무기가 왜 필요해. 뭐, 죽으면 거기서 그만일테지."

"타스쿠도 참. 뭐, 위험하지 않으니까. 괜찮을거야. 히소카군."


츠무기는 히소카에게 등에 맞는 백팩과 타스쿠 몰래 들고 있으라며 주머니칼과 비상약품이 든 패키지를 넣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바로 유키시로씨에게 넘기고, 외식을 하자. 츠무기의 말에 뒷좌석에 앉은 히소카가 가슴에 안고있던 백팩을 꼭 끌어안았다. 츠무기 몰래 마쉬멜로우를 한 봉지 넣어두었다. 차가 출발하고 곧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요람처럼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차의 진동에 전혀 기억나지 않는 태초의 안심이 떠오른다. 눈을 몇 번 가물거리더니 히소카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타스쿠가 그럴 줄 알았다고 뒷 좌석을 비춰보더니 꺼내는 볼 멘 소리와 웃으며 받아 넘기는 츠무기의 소리가 자장가 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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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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