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캐해석이 있습니다.

※연성교환. 주제 문장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인력의 저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기숙사 방문을 연 호마레는 고요한 방의 낌새에 흠. 작은 콧소리를 내고는 눈을 좌우로 돌렸다. 마쉬멜로우 이외의 음식을 히소카에게 먹이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필요하다. 츠무기는 어린 아이를 달래듯 타이르는 방식을 사용했고, 호마레는 뒤에 있을 보상인 마쉬멜로우를 언급하는 방식을 썼다. 타스쿠와 아즈마도 종종 둘의 잔소리에 말을 보탠다. 그래도 20대의 성인 남성이 먹는 양이라기엔 너무 적은 양을 먹었다. 오미가 히소카의 영양실조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말을 한 적디 있었다. 생각보다 마쉬멜로우의 열량은 많은 편이라고, 대신 변명하듯 호마레는 말했다. 확신할 근거는 없지만. 히소카라면 그렇게 해도 살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막 생기기 시작한 겨울조의 씨앗 앞에 소나기처럼 나타난 히소카였다. 금새라도 사라 질 것 처럼 희미한 존재감을 가졌던 그가 점점 뿌리를 내린다. 연기라는 장르를 알지도 못했을 히소카가 처음 보여준 연기는,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러와 머리에 입력한 듯한 모습이었다. 연기이긴 하였으나, 연기 같지 않은 종류였다. 오히려 초혼이나 빙의가 더 알맞았다. 호마레는 그 순간. 스산함을 느꼈다. 살아 있는 진짜 사람이 맞는 것일까. 하고 우스운 의문이 떠올랐다. 초현실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맹신하는 편이 아니지만, 만카이 극단에 들어와 겪은 일련의 일들로 부정할 수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처럼, 천재인 호마레로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란게 있을 것이다. 히소카는 살면서 겪어온 부조리의 정 반대편에 서있었다. 오히려 동류라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일찍 저녁을 먹은 히소카는 먼저 방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어째서 방에 없는 것일까. 거짓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갑자기 마음이 동해 밤 산책을 났을 지도. 호마레는 눈을 감고 마음속의 돋보기를 꺼냈다. 사람이란 살면서 한번 쯤은 신기한 일을 겪는 법이다. 남을 보는 눈이라고 하면 장님이나 다름 없던 호마레의 마음에 동하듯이 나타난 돋보기는 이제 손에 잡히지 않지만, 상상하며 헤아려본다. 히소카군이라면 만족스럽지 않은 저녁을 먹은 뒤에 어디로 향하겠는가. 그래. 반짝였다. 호마레는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으로 중앙정원으로 향했다. 츠무기가 봄부터 정성들여 가꿔놓은 정원은 초여름을 지나 저마다의 녹색을 뽐내고 있었다. 히소카는 짧게 깎인 잔디가 드리운 땅에 서있었다. 사그락거리는 잔디 밟는 소리가 호마레의 존재를 알렸다. 


"맞췄다네. 히소카군?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로 비친 달이 아름다웠으니, 자네가 정원에 나와있을거라 생각했다네."

"..정답. 축하해."

"같이 달구경이라도 하고 돌아감세. 이런 곳에 앉아있지말고, 저어기. 츠무기가 아끼는 야외 테이블에서. 홍차를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홍차보다는 마쉬멜로우."


호마레는 대답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은지 눈을 접어 쿡쿡 웃었다. 평소처럼 어긋나는 대화의 모양새가 재미있다. 호마레가 내민 손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사교댄스에 응답하듯 가볍게 손을 겹친 히소카는 왠지 모르게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날렵하고 기민한 몸을 가진 그였다-. 호마레는 이상하게 이질적인 높이감에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히소카의 발이 지면에서 미묘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히소카는 공중에 물장구치듯 걷고 있었다. 세간에서 기인이라는 평을 받으며 살아온 호마레로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오래된 SF소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자전거를 타고 달 그림자가 되는 소년과 외계인의 이야기. 하나의 발걸음 소리만 들리는 정적을 깨고 호마레가 입을 열었다.


"..히소카군? 어쩐지..뭔가...커진 기분이 드네만. 착각이 아니라..발이 떠 있는.."

"아..응. 그렇네."

"이럴때까지 침착한겐가. 너란 아이는."

"놀라고있어. 나, 천사가 된걸까."

"이거야 원. 이곳에 와서는 신기한 일 투성이군."

"맞아."


만월이 가득 찬 밤이었다. 달의 인력에 이끌린 것일지도 모른다. 평면에 쓰여진 대본이 연극으로 인해 현실이 되듯, 머릿속으로 떠올린 장면이 펼쳐진다. 느린속도로 조금씩, 벌어지고 있던 균열은 침착하고 착실히 히소카 안에서 쌓인 비현실의 지층이 되고. 마침내 땅에서 멀어진다. 히소카는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멀어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사람보다 훨씬 자는 시간이 많은 것도, 평범한 식사는 모래를 씹는 맛이라는 것도. 평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히소카로서는 당연하다. 누구도 다른 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것은 불가능하다. 호마레는 그것으로 오랜기간 괴로웠다고 한다. 어째서. 히소카라면 그런 고민은 십분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호마레는 표정변화가 많았다. 높은 소리로 웃다가도 금새 가라앉아 날카로운 눈매가 되기도 했다. 연기를 하지 않아도 연극을 하고 있는것 처럼. 관찰하고 있는건 흥미로운 일이다. 호마레는 발과 떨어진 공간을 바라보며 이내 비애에 빠진 얼굴을 한다. 


"히소카군. 이 곳에서 사라지고 싶은겐가."

"글쎄. 어떨까."

"애매한 대답은 괴롭다네."

"괴로워? 내가 사라지면..아리스는 괴로워지는구나."


히소카는 다시 땅에 발을 딛었다. 호마레는 이것을 일시적인 현상이라 여겼다. 히소카와 함께 지내며 설명하기 가장 힘든 것은 히소카 자체라는걸 깨달았기에 잠깐 놀란 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뜀박질 한 정도로 낮은 높이로 떠 있던 히소카는 점점 더 지면과 멀어졌다. 기숙사의 방 밖을 나갈때엔 손을 잡아야 겨우 걸을 수 있었다. 겪고 있는 본인도 원인을 모르는 현상을 보여주면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질것이라고 히소카는 말했다. 며칠 전 히소카는 보기 드물게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래도 달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츠무기에게 부탁해 빌린 책을 읽으며 달의 중력은 지구의 반의 반보다 작기 때문에. 달의 이끌림 보다 지구의 이끌림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되새겨 속삭인다. 저녁식사 시간. 최근,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말을 아즈마에게서 들었다. 손을 잡고 다니는것이 보인 탓이다. 억지로 잡아당기고 있다-라고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호마레는 적당히 식사를 마치고 기숙사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온 호마레를 불안하게 일그러진 눈으로 그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다급하게 불렀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방의 천장에 히소카가 붙어있었다. 히소카도 동요한 눈치였다. 침대에서 자고 있길래 깨워서 저녁 식사에 데리고 오지 않았더니 이런 결과다. 아리스. 이름을 부르는 히소카의 목소리는 확실하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점점 더 멀어질거야."

"말하지 않아도 보고 있다네."

"붙잡아 줘. 아리스가 괴로워 하는건 보고 싶지 않아."

"누구를 위해서-. 말해주게. 말하지 않으면 나는 알 수 없다네."

"아리스라면 할 수 있어. 아직 이 장소와. 아리스와 함께 있고 싶어."

"이리오게나. 히소카군."


호마레는 모서리 앞에 서서 양 팔을 벌렸다. 히소카의 몸이 천장에서 자석 떨어지듯 가볍게 천장에서 톡, 솟아 오르더니 갑자기 무게를 얻어 빠르게 품으로 떨어졌다. 몸을 받아내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며칠 전보다 무거워졌다. 그것 만큼의 현실감이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다. 손을 내밀면 잡고, 얼굴을 만지면 눈물이 고이는 사랑을 기리며 몇 개의 감정을 땅에 묻었는가. 이미 평범한 사랑이 아니었다. 무덤을 파헤치고 식어버린 감정을 삼키려다 새로이 태어나는 감정을 놓치고 만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확실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인력은 쌍방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책의 뒷장에 써 있었다. 거리감을 유지하게 위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싸움을 반복하고 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푹 안겨있던 호마레가 손으로 팔을 밀어 숨구멍을 틔어냈다.  


"무겁다네. 히소카군. 그리고 놔 주게나."

"놓지 않을거야."

"호오. 히소카군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평범한 사랑이란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사랑인게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무것도 없던 진공은 두개의 질량으로 가득 차오른다. 달이 차올랐다 기울어지며 만드는 인력의 차가 파도치며 밀려온다. 한동안 히소카는 호마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짧은것 > A3!'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스츠무] blue midnight  (0) 2017.09.11
[정육점AU] lost and found  (0) 2017.08.30
[타스츠무] 어떤 기억상자  (0) 2017.08.16
[정육점AU] fresh flesh  (0) 2017.07.29
[반이타] tibia fracture  (0) 2017.07.18
Posted by michu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