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캐해석이 있습니다.

※ 이타루가 의사입니다. 거의 1차소설에 가깝습니다.



tibia Fracture




웅성거리는 불쾌한 소리가 잦아들었다. 모래 바닥에 가래 침을 칵 뱉어버리더니 무리는 떠났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 자식들이. 싸우는 이유라고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그냥 이유가 없다는게 더욱 그럴듯한 이유이다. 이 나이대의 남자들은 대부분이 화가 난 상태이다. 서로 비슷한 진흙바닥을 뒹구면서도 조금이라도 잘난 녀석을 보면 밟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다. 어릴적 개미집을 부수고 개미를 발로 밟아 죽이던 아이가 크면 꼭 그런식이다. 서열이 서열을 만들고, 학교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에 갇혀 평화로운 굴레를 쓰고 움직인다. 반리는 어느쪽에도 속하는 것을 거부했다. 딱히 비행을 저지르려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지만 학교는 종종 빠진다. 빠지고 게임센터에 가는 것을 비행이라고 한다면, 뭐. 인정해야 겠지만. 오늘의 싸움은 우연히 게임센터에서 예전에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던 녀석들과 마주쳤다는게 이유였다. 혼자 있는 모습이 승산이 있어 보였는지,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부딪혀오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들개 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멱살을 잡는다. 생각보다 본능이 앞서야하는 때. 솔직히 싸움이 한창 없으려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때도 있다. 구제불능이다. 머릿속은 자기혐오와 그것을 보상하려는 자기위로로 엉망이었다. 반리는 질끈 감고있던 눈을 떴다. 이명이 남아있어 어지러웠고 구토감이 밀려왔다. 주먹질 당한 얼굴과 야구방망이로 맞은 왼쪽 발목이 특히 아파왔다. 


"아. 비행청소년 발견."

"뭐야, 넌?"


고개를 돌리자 눈 앞에는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연분홍색의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밝은 갈색빛의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손에 들고 있던 게임센터 포인트 카드를 뒷 주머니에 넣은 남자는 벽에 기대고 앉은 반리를 멀뚱거리며 쳐다보며 빨갛게 퉁퉁 부어오른 왼 발목과 정강이에 거침없이 손을 가져갔다.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자 반리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남자는 눈을 찡그리며 시끄러움에 대한 불쾌함만 표시할 뿐 발목에서 손을 떼진 않았다. 죽여버린다. 반리는 으르렁거렸다.


"으아아악!!! 만지지말라니까!!!"

"간만의 비번인데...이런. 너 다리뼈 부러진것 같네. 정확히는 비골..쪽인가."

"하아?"

"난 직업정신이 투철하니까. 구급차를 불러주지."

"잠깐!!"


또 싸웠다는 것을 가족에게 들키면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닐것이다. 벌써부터 귀가 따가워진다. 반리는 재빨리 남자의 팔을 잡고 자신의 사정을 호소했다. 징계횟수도 아슬아슬했고, 이제야말로 조용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지 얼마 안된 때였다. 넘어졌다는 걸로 속이고 넘어갈 작정이었다.


"보호자가 없어. 구급차는 부르지 않아도 돼. 나 혼자 갈 수있으니까."

"다리뼈가 아작난것 같은데 걸을 수 있다고? 너 철인 17호야?"

"놀리는거냐."

"내가 아는 병원으로 가지. 응급치료정도는 내가 보호자가 되어줄테니."

"켁. 쓸데 없이 친절하네."

"감사-."


구급차를 부르는건 죽어도 싫다며 부득부득 우겨 결국 반리는 부축을 받아 택시를 탔다. 가장 가까운 병원에 가는 줄로만 알았지만 남자가 말한 병원은 반리가 근처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남자는 반리를 뒷자석을 전부 쓰도록 다리를 펴서 앉혀놓고는 자신은 앞자리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반리도 꽤나 열심히 하는 게임이라 게임의 타격음만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집중력이 떨어지자 통증과 열감에 온 신경이 쏠려 발목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어오르고 있었다. 싸움에 휘말려 얼굴이나 팔을 베이거나 멍이 들거나 코피가 난 적은 있어도 본격적인 부상은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운이 없었다. 시덥잖은 쓰레기를 상대로 무리했다. 병원 응급실에 들어서자 휠체어를 끌고 들어온 간호사들에 의해 억지로 옮겨지던 반리에게 유유히 손을 흔든 뒤 이타루는 응급실에 놓여져있던 간이 의자에 등을 숙이고 앉았다. 


"어라..치가사키 선생님? 오늘 비번아니세요?"

"맞아맞아. 얘 좀 봐줘. 비골 골절이야. 하여간 이 동네 학생들. 질이 나쁘다니까. 기본 검사만."

"치가사키..선생님?"

"징그럽게 너까지 치가사키 선생님이라니...이타루? 뭐 그정도로. 나 이 병원 의사거든. 뭐야. 그 대놓고 경멸하는 얼굴은."


택시 안에서부터 휴대폰 게임만 줄곧 해대더니, 이제 와서 의사라고? 반리의 어이없는 코웃음에 이타루는 정형외과 전문의. 치가사키 이타루. 하고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소중한 비번을 희생하여 이름도 모르는-. 음. 셋츠 반리. 진료 차트를 띄운 모니터를 슬쩍 넘겨다 보았다. 옆에 앉아있던 간호사가 영상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주었다. 다행히 심한 골절처럼 보이진 않으니, 응급 조치니 깁스정도면 되려나.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웅얼거렸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게임센터에 갔다가 발견했어."

"그런건 지나치는 부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실례잖아. 잠깐. 특대떴다."


휠체어를 타고 다시 응급실에 나타난 반리는 얼굴에는 거즈를 덕지덕지 붙이고 한쪽 교복 바지는 찢어 두껍게 압박붕대를 두른 채로 휠체어를 끌고 나타났다. 불만 섞인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휴지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가능하면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 애썼지만, 치료사처럼 보이는 가운을 입은 남자가 다리를 씻어내고 소독약을 들이 붓자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자 빽빽 소리를 질렀다. 반리를 보더니 자신의 남동생이 생각난다며 헛소리를 해대던 치료사가 쿡쿡 웃으며 얇은 플라스틱 부목을 덧대고 붕대를 탄탄하게 감았다. 어찌나 악을 썼던지 목에 피냄새가 올라왔다. 이타루는 흐음. 하며 탐탁잖은 소리를 내며 발로 붕대를 톡 건드렸다.


"아. 좀. 건드리지마. 울려서 아프다고."

"지금은 너무 부어있어서 통깁스는 무리였나보네."

"깁스하면 불편하니까. 내가 거절했어."

"그렇군. 조만간 수술대 위에 올라가고 싶은 모양이야."

"의사가 그런말 해도 되는거야?"

"의사도 직업인걸? 집까지 가려면 목발이 필요할거야. 빌려줄테니, 반납하라고."


이타루는 기대듯 들고 있던 목발 두개를 반리에게 던졌다. 반리는 슬쩍 이타루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좋은 녀석이네. 너."

"딱봐도 연상처럼 보이면 너라기보단 이타루씨나 이타루님으로 부르지 않겠어?"

"이타루님..?"


그럼그럼. 이타루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턱을 손으로 만졌다. 반리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이타루의 얼굴을 뜯어볼 수 있었다. 의사라면 20대는 한참 되었을텐데 어두운 색이라고는 없는 멀건 얼굴과 올라간듯 내려간 장난기를 머금은 눈매가 특이한 인상이었다. 눈색만 톡 튀어 붉은 빛인게 게임에서 나오는 왕자 캐릭터처럼 생긴 녀석이다. 이타루가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밀며 응급실의 직원들에게 내일 올게-. 하고 인사를 건넸다. 


"혼자 갈 수 있어."

"투정이 심하네. 넌 지금 잘못 디디기만 해도 뼈가 어긋날거야. 뭐에 맞았어? 각목?"

"...야구배트."

"어휴. 요즘 불량학생들은 과격한데? 야쿠자놀이라니. 음.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몸을 막 쓰다보면 일찍 게임오버될걸."

"누군 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시비를 걸어오니까.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싶지 않아. 쉽게 쉽게 사는게 인생 목표지만..그러면 가끔은 재미없어."

"..건방진 고등학생인줄 알았는데. 제법 생각은 있잖아. 나도 재미 없는건 딱 질색이거든."


천천히 병원 밖에 꾸며진 길가를 따라 휠체어를 밀며 이타루는 자신도 과거에 반리와 같은 눈동자를 한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필요이상의 자신감과 그에 따르는 권태감을 게임으로 이겨냈다며 몇 년 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째서 이런 필요이상의 말이 술술 나온것인지 이타루로서도 의외였다. 첫눈에 보자마자 느껴버린 동류에 대한 혼자만의 친밀감 때문일까. 반리는 이타루의 쓸모없는 이야기를 한귀로 흘려들으며 흐응. 으응. 하는 힘 없는 추임새를 넣으며 고개를 들어 이타루의 움직이는 입술과 얼굴을 감상했다. 뭔 얘길 지껄이는지는 몰라도 반리는 이타루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 억양이라고 생각했다. 팔을 뻗어 티셔츠의 목덜미를 잡아 이타루의 얼굴을 끌어내려 손으로 턱을 잡았다. 예상보다는 말랑한 감촉이었다. 옅은 땀냄새가 나는 볼에 일부러 소리나게 뽀뽀했다.


"자..잠깐..?"

"고맙다는 뜻. 다음부터는 건방진 고등학생은 함부로 줍지 말라고. 반해버리니까."

"뭐, 뭣?!"

"푸핫. 얼굴 좀 봐. 이타루씨. 답례라니까? 휠체어가 더 빠르겠네. 잠시 빌린다-."


재밌어지겠어. 반리는 빠르게 휠체어를 밀어 박차를 가했다. 생전 처음 보는 고등학생에게 볼키스를 뺏긴 이타루가 너, 너. 하고 당황한 얼굴로 손으로 볼을 문지르며 빠르게 쫓아갔다. 반리가 쿡쿡거리고 웃으며 몸을 들썩이자 붕대를 감아놓은 발목이 시큰거렸다. 이타루는 반리의 집에 찾아가 게임을 할 만큼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처음 기억만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화제가 나올때 마다 싫은 티를 강력하게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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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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