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달성 보상!

 

※개인적인 캐해석이 다분합니다.

 

어떤 기억상자

 

창 밖으로 타스쿠가 보인다. 3층의 교실에서 내려다보는 운동장에서 한 무리가 모여 축구를 하고 있다. 왁자지껄한 웃음이 섞인 고함소리가 교정을 휘어감는다. 그 사이에 타스쿠가 있었다. 한참을 타스쿠의 동선에 눈을 따라간다. 체육복을 입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손을 휘두르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다. 멀리 있어도 몰아쉬는 타스쿠의 숨소리를 떠올리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흙과 땀으로 엉망인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고는 숨을 돌리려는 듯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간 서있다가 창문을 향해 커다랗게 손을 흔들었다. 어라. 이쪽을 보는걸까. 턱을 괴고 있던 츠무기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점심시간과 오후 수업시간 중의 짧은 휴식시간. 교실에는 츠무기 외엔 창문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양 팔을 들어 휘휘 젓던 타스쿠가 이번에는 입가에 손을 모아 소리쳤다. 어느샌가 타스쿠 주위로 몇몇이 모여들었다. 함께 손을 흔들어주는가하면 손가락으로 츠무기가 앉은 창가를 가리키며 펄쩍뛰는 녀석도 있었다.

 

"어이-. 츠무기."

 

그런 입모양이었다. 3층이라 들리지 않지만, 분명 그렇게 말 했을 것이다. 익숙한 목소리는 머릿속에 저장되어서, 듣지 않아도 머릿속에 울려퍼진다. 츠무기는 작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빌렸던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러 가야만했고, 가는 길에 운동장에 들러볼 수도 있었다. 서랍 안에는 며칠 전 받은 진로희망안내서가 그대로 들어있다. 형식적인 종이라고 해도 망설이고 있다. 지루한 논쟁이라 하더라도 진로와 꿈이 같은 선상에 있는지 아직 츠무기는 판단할 수 없었다. 이 중요한 문제야말로, 어린시절부터 친구였던 타스쿠와 상담을 해보는게 좋을테지만. 츠무기는 타스쿠의 진로용지에 어떤것이 적혀있을지 짐작하고있다. 둘이 함께 바라보는 객석의 풍경과 대본속의 세계를 동경하게되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막이 펼쳐진다. 연극속에서 둘은 연인이 되기도 하고, 적이되기도 했다. 츠무기는 연극부활동의 참고도서로 빌렸던 소설책을 들고 있었다. 1층으로 내려와 도서관으로 바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계단에 모여있는 무리로 다가가자 같은 반의 누군가가 손을 흔들었다. 타스쿠는 차가운 타월을 목에 감고 있었다.

 

"방금 들었어? 츠키오카-. 하고 크게 외쳤는데."
"하하, 무리야. 3층이였다고."
"일부러 내려온거야, 츠무기?"
"응. 도서관에 책도 반납해야하고. 그보다 타스쿠가 불렀잖아?"
"아아. 보이길래 무심코. 도서관..같이 갈까."

 

타월로 얼굴을 닦아낸 타스쿠가 축구공을 손에 들고는 나머지 손으로는 츠무기의 손에서 책을 빼앗았다. 책은 이번 연극대본의 원작이였고, 츠무기가 빌린것을 타스쿠도 함께 읽으며 연구했다. 문학은 츠무기의 특기였다. 이 문장에서의 주인공의 기분이나 마음은? 처럼 터무니없는 질문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 섬세한 감정이나 대사를 만들어내는것도 특기다. 대게 섬세한것은 예민하지만. 츠무기는 특유의 분위기로 날카롭지 않게 누그러뜨리곤했다. 타월로 닦아냈다고 해도 아직 운동으로 뜨거워진 몸으로 츠무기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부딪혀오는 몸에 츠무기는 케헥. 하고 같잖은 감탄사를 뱉었다. 손을 잡아도 키차이가 나지않던 어린날과는 다르다. 손을 잡지않고, 서로를 타쨩과 츠무라고 부르지않는다. 다만 작지만 같은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무거워. 타스쿠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성장기니까. 츠무기 넌 좀 무거워질 필요가 있고."
"으윽. 이렇게 누르면 자라던 키도 멈춰버리겠어."
"작년부터 전혀 크지 않았잖아. 그보다, 츠무기. 진로용지 써냈어?"
"음...아직이랄까. 아직 정하지 못했어."
"정하지..못했어. 인가."

 

츠무기는 이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 어깨에서 떨어지는 타스쿠의 무거움이 무겁다. 얼마만큼 연극을 좋아하는가. 그걸 얼마나 삶으로 이어가느냐. 매진할것이냐. 모든것이 동등할 순 없다.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짧은 거리동안 긴 침묵이 계속되었다. 타스쿠의 굳게다문 입술과 살짝 구겨진 이마가 그의 언짢음을 여지없이 보여주고있다.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 놓여진 길은 하나였다. 이제와서 길은 열려있으니 자유롭게 선택하라는건 억지스럽다. 오히려 길에서 내쳐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진학할거란 생각은 가지고있지만. 어떤것일지 망설이고 있어."
"거기에 연기라는 선택지는 있는건가."
"그렇지. 물론, 다른걸 공부하더라도 연기는 계속 하고싶고...배우라도 다들 다른 직업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고."
"뭐, 그거야 그렇지."
"잠시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께."

 

나는 아니야. 라는 말이 귓가에 울린다. 숨겨진 말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츠무기는 어색하게 웃어보이고는 타스쿠의 손에 들린 책을 받아내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츠무기는 이번에 준비하는 연극을 위해 공책을 두권이나 썼다. 그렇게나 연기와 연극을 좋아하는데도 다른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츠무기를 잘 알고 있기에 화가 났다. 무엇이 츠무기를 망설이게 하는건지, 그런건 말해주지 않는다. 물어도 분명 말해주지 않겠지. 어렸을때는 곧 잘 고민을 말하면서 울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츠무기는 타스쿠앞에서 울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츠무기의 얼굴은 예전에 보았던 우는 얼굴과 닮아있었다. 웃는 표정으로. 츠무기는 역시 섬세한 감정표현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금새 평소의 대화주제로 돌아간다. 부활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심부름으로 들릴 가게가 있다고 츠무기가 말하고, 타스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로에 대한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다. 츠무기는 두 가지 안을 썼다. 대학 진학. 공무원으로의 취업. 학과는 끝내 적지 않았다. 그게 타스쿠에대한 최소한의 의리였다.

 

 

-

 

 

 

"라는 일이 있었지. 타스쿠, 기억나? 진학희망안내서 내는 날 말이야."
"뭐. 대충은."
"꽤 고민이였지-. 혹시 함께 연기를 못하게될까봐.."
"어이, 셋츠. 진로같은건 본인이 선택하는거야.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어."
"에에. 그래서 그렇게 삐져있었어? 며칠동안 화난 얼굴이였잖아, 타스쿠."
"내가 언제."
"언제라니..잊지않았으면서. 그러니까, 결론은...하고싶은것이나, 해야만 하는것이나. 어떤것을 선택해도 어떻게든 길은 찾아 돌아오게 되어있으니까. 지금의 반리군의 선택에 맡기면 되는거 아닐까?"

 

"하아? 그거 너무 책임감 없는 대답 아니냐고, 츠무기씨."

 

커피를 다 마시고도 끝나지않은 츠무기의 말에 지겹다는 듯 빨대를 씹어대던 반리가 드디어 질린다는 얼굴로 말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셋츠 반리의 이름만 적힌 진로용지를 저주라도 걸린 종이인것 처럼 손가락으로 끄트머리만 잡고 구기듯 접었다. 적당히 적어서 내려는 것을 하필이면 이 연극바보콤비에게 들켜버리고 만것이다. 둘러대려했지만 이미 두 사람은 과거회상에 돌입해버렸다. 츠무기는 타스쿠의 옆구리를 지르며 끝까지 뭘 적었는지 말해주지 않을것이냐며 툴툴거렸다. 물론 타스쿠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예전일을 말해서 뭐하느냐고 딱 잘라 말했다. 보면 볼수록 어울리는듯 어울리지 않는 콤비라고 반리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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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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