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캐해석이 있습니다.



여섯시




바람이 불었다. 사막의 바람은 모래로서 형체를 가진다. 누런색으로 먼 지평선에서 선호를 그리며 소용돌이치는 일련의 회오리를 바라보던 호마레는 시계탑의 꼭대기, 사람 둘이 서 있기 빠듯한 좁은 곳으로 올라가는 원형의 계단을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히소카가 있을것이다. 호마레가 둘러준 검은 천조각을 둘러메고 오후의 열기에 녹아가면서도 그 곳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행위를 마치 하루의 중요한 일과인 마냥 반복했다. 호마레가 히소카를 모래무덤에서 주워온 날 부터. 체력을 회복하려는 듯 며칠 동안은 죽은듯이 잠만 자던 히소카는 예전의 기억은 모두 잊어버렸다고 했다. 히소카라는 이름은 호마레가 읽었던 시계탑의 수 많은 책 중 문득 떠오른 인물의 이름이었다. 소년. 그래 너. 라는 호칭으로 상당한 기간을 함께 할 자를 칭하기엔 서먹하지 않은가. 호마레는 문학을 즐기는 자였다. 시계탑은 말만은 거창해도 외벽에 붙은 커다란 시계와 시계를 지탱하는 수백개의 톱니바퀴와 나사가 돌아가는 조정칸이 탑의 전부였다. 시계탑을 책으로 채운 것은 호마레였다. 오아시스가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나 발길을 끊은지 오래였다. 읽은 책을 또 읽으면 재미가 있느냐고 히소카가 묻자, 재미를 찾기 어려운 것이지 재미가 없진 않다고 대답한다. 직접 쓴 책도 여러권이였다. 히소카는 그것을 최초로 읽은 독자가 되었다. 


"미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아, 이런 안타까울때가."

"글이라는건 알겠어."

"말을 아끼게. 히소카군."


세상에 알려지기에 백년은 이르지. 암. 호마레는 히소카의 손에 들려있던 두꺼운 책을 빼앗아 높이 세워진 책장의 손이 닿는 가장 끝에 넣었다. 두꺼운 고급 종이로 쓴 책은 시계탑이 무너져도 모래더미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호마레는 장편 연작시의 세번째 권을 끝내고 네번째 권을 쓰고 있었다. 최근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이었다. 시계는 아주 느리게 테엽과의 간격을 줄여갔다. 조정은 몇년에 한번이면 충분했다. 호마레는 계단 옆으로 뚫린 바닥으로의 공간을 바라보며 조용히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는 커다란 톱니바퀴를 내려다보며 눈과 시간의 간격을 셌다. 째.깍. 아직 1초보다 간격은 좁았으므로, 호마레는 만족한 듯 눈을 돌려 꼭대기로 향했다. 불러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꼭대기층에 앉아있을테지. 나무로 된 두꺼운 자물쇠를 손으로 열자 제법 매케한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리스."

"기척을 알아챘는가. 바람 소리가 시끄러운데."

"그래도, 알 수 있어."


덮고 있던 천조각을 풀어 입을 드러낸 히소카가 호마레의 동선에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정찰하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동자는 사막에서 보기 드문 이국의 바다에서 난다는 보석과 같은 색이다. 위험하다고 말해도 끄트머리에 앉아 물장구를 치듯 발을 동동거리는 히소카의 옆에 선 호마레가 시선의 끝을 맞추었다. 공간의 거리는 시간의 거리와 같다고. 우주를 연구하는 책에서 그리 말했다. 모래소용돌이가 회전을 더하면 폭풍이 된다. 비가 만드는 태풍의 눈은 고요하지만, 모래폭풍은 배고픔에 굶주린 맹수처럼 자가복제한 모래언덕을 부수고 집어삼킨다. 얼마나 무의미한 파괴인가. 그리고는 어느날이 되면 모래언덕은 다시금 지나간 모양대로 솟아있다. 아래에 커다란 고래라도 헤엄치는 듯 물결모양이 남아있다. 호마레는 검은 천을 벗은 히소카의 목덜미에 있는 작은 균열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손가락을 누르면 균열은 공간이 되어 나타난다.


"슬슬 다시 감아야할 시간일세. 여기서 다시 감으면 모래가 들어가버린다고?"

"응. 해도 지고."

"지겹지 않은가. 모래, 모래, 모래 뿐인 풍경이."

"글쎄. 아리스도 매일 보는데 지겹지 않은걸."


히소카는 목에 무적처럼 열쇠를 매고 다녔다. 목에 있는 균열과 딱 맞는 한 쌍으로, 모래무덤에서 잠들어 있을때는 손에 쥐고 있었다. 테엽이 모두 돌아가면 거부하기 힘든 수마가 쏟아졌다. 구멍은 목 뒤에 있었기에 혼자 다루기엔 불편했다. 아마 혼자 살지 못하도록 만든게 분명하다고. 히소카의 제작자는 성격이 고약한 녀석이었을 것이다. 히소카의 테엽장치가 팔이나 다리에 있었더라면 히소카는 아마도 훨씬도 전에 호마레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호마레는 그런 쪽에선 자신감이 없는 편이었다. 아무런 대화 없이 한사람이 겨우 통할 만한 너비의 계단을 내려오며 길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는 바닥을 치고 울렸다. 정교한 인형이 유행한 것은 백년도 전의 일이었다. 시계탑도 화려하고 세밀한 세공을 자랑하기 위한 자의식 과잉의 일종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테엽세공품에겐 쥐약인 모래사막에 시계탑을 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호마레는 바닥층에 다다라 낡은 담요가 깔린 나무 의자에 앉은 히소카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미세한 테엽소리가 한 층 더 가까이 울렸다. 


"몇 번 정도?"

"하루는 세 번. 일주일은 스무 번."

"세 번으로 하지."


히소카는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육각별 모양의 홈과 열쇠가 삼켜지듯 맞아 들어갔다. 호마레는 천천히 테엽을 감았다. 한 번. 히소카가 여덟시간 동안 호마레를 찾지 않을 것이다. 두 번. 열 여섯시간. 세 번. 꼬박 하루. 테엽은 부드럽게 돌아간다.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스무 번은 충분히 감을 수 있을 것이다. 호마레는 자신의 제멋대로인 은색 인형을 어디까지나 손에 두고 만지고 싶었다. 실제로 히소카가 그걸 허락하는 시간은 오후의 낮잠 시간 뿐이었지만. 


"내가 만일 테엽이 더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면. 그걸 멈추는건 아리스가 해줬으면 해."

"그거야 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히소카군이 멈추는 일은 없을걸세."


열쇠가 목에서 떨어지자 히소카는 어깨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다시 열쇠를 목에 걸려는 것이었다. 즐거운 시간은 아쉽게 지나간다. 막 테엽을 감은 히소카는 생기가 돌아보였다. 착각일 것이다. 테엽을 스무번이나 감고나면, 어깨에서 날개라도 돋아 날아가버리는거 아닌가? 호마레는 농담처럼 웃으며 마주보는 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히소카에게 날개가 돋는다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은 세공품 처럼 빛날 것이다. 궁금하면 해보지 그래. 히소카는 간단히 대답했다. 겨우 소년의 몸을 벗어난 테엽인형에게 날개라니. 책을 많이 읽어서 상상력이 대단한걸.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은 듯 호마레가 고개를 커다랗게 끄덕였다. 여섯시 정각이 되자 시침이 돌아가는 짧은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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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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