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님의 설정을 차용했습니다.

※살인, 폭력, 기타 비도덕적인 소재 다량 있습니다.




fresh flesh 





유키시로 아즈마가 가게에 찾아왔다. 평소라면 두어명. 무서워보이는 인상을 한 남자들을 악세사리처럼 달고있었지만 오늘은 혼자였다. 히소카는 조용한 인기척에 엎드려 졸고있던 매대에서 고개를 들어 잠결에 희미한 시야로 새하얀 인영을 확실히했다. 그의 존재는 가게에 있어 필요불가결하다-.고 츠무기가 일전에 말했던 것을 히소카는 기억하고 있었다. 히소카는 오전 9시쯤 츠무기와 타스쿠가 함께 가게를 나섰고, 아마도 손님을 만나기 위함일 것이라고 천천히 말했다. 아리스는-아즈마는 히소카가 부르는 아리스라는 호칭에 대해 흥미로운 듯 제법  밝게 웃었다-출판사와의 미팅. 그리고는 다시 말 없이 아즈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신이 용무가 있을만한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없으니 떠나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담긴 눈빛이었다. 


아즈마는 가게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손님이다. 하얀 괴물. 아즈마가 어느 세계에서는 그런

 호칭으로 불린다. 그의 눈 밖에 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오싹한 도시전설과 함께. 그 도시전설을 실행하는 것이 가게이다. 손님을 대하듯 차나 자리를 권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는 히소카 대신 아즈마가 앉아도 되겠지? 하고 가게에 하나 놓인 먼지쌓인 테이블과 조잡한 철로 된 간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에게는 위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발톱을 숨기고 있는 매처럼. 목을 조여오는 뜨거운 더위에 보란듯 격식을 차린 정장을 입고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뱀의 껍질을 쓴 사람같다고 히소카는 생각했다. 구식 선풍기가 히소카가 앉아있는 고기진열용 유리장 앞에 놓여있었다. 해체작업을 하는 냉동고가 시원했기때문에, 더위를 느끼면 히소카는 냉동고에 들어가 입김을 불어내다 나오곤 했다. 냉동고는 언제나 겨울이다. 


"후후. 오늘은 미카게군을 찾아온거라. 다른 사람이 없는 시간을 일부러 택한걸."

"...나에게 무슨 용건이 있어? 난 그저...아리스가 저번에 가르쳐준 단어였는데. bucher. 도살자."

"그럴까나. 미카게군은 자신의 가능성을 너무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어. 물론, 지금의 용건은 도살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미 죽은 이후엔 어떻게 되도 상관없지 않았어? 당신은."

"눈에 띄지 않는다면 말이지. 나는...결벽증이라고할까. 그런게 좀 있거든. 맞아. 좀 어려운 단어였네. 더러운걸 보지 못한다는..뜻이야."

"시체는 더럽지 않아. 잘 세척하는걸."

"미카게군의 처리실력을 의심하는건 아니야. 다른 이도 아닌 내가 어떻게 그럴수 있겠어. 이건 표면적인 차원이 아니라.."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츠무기와 말하는 게 어때?"


기억을 잃게되면 지능도 떨어지는건 아닐까 아즈마는 잠시 생각한다. 처음엔 미카게가 기억을 잃었다니.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고 분노했다. 사람의 기억이란게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한 순간 사라질 수 있겠어. 업계에서 벗어나려면 파격적인 원인이 필요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진흙이 묻은 몸을 씻지 못하고 사라진다. 아즈마는 결벽증이 있었다. 미카게는 업계를 떠날 이유가 없었다. 아즈마가 아는 미카게 히소카라는 남자는 살육을 위해 태어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살인자였다.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것 조차 이전의 그가 듣는다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 망설여진다. 아즈마는 한때 미카게를 두려워했다. 공포에 군림하는 아즈마에게 공포란 감정을 느끼는 기재자체가 없는 미카게는 다루기 힘든 미지의 존재였다. 지금의 얼빠진 모습을 보고있자면 일말의 동정심마저 느껴진다. 미카게는 츠무기와 연결시켜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느적거리며 안으로 연결된 방으로 들어갔다. 기억을 잃었어도 여전히 제멋대로인 점은 똑같았다. 기저에 있는 기질같은 것이겠지. 


"다음에 다시 올게. 츠키오카군..만이라면 괜찮으려나. 늘 타카토군과 함께지. 타카토군은 좀 곤란한데.."

"지금 츠무기가 온대."

"앗. 안에 들어간건 전화를 위해서.. 나도 참...미카게군의 페이스에 휘말려버렸어."

"수상한 사람이 오면 언제든지 전화해. 츠무기가 말했으니까."

"수상...나 그런 이미지였어? 유감인데. 미카게군과는 깊은 유대가..뭐. 말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즈마는 입맛을 다시더니 포기한 듯 자리에 다시 앉아 턱을 괴고 앉아 휴대폰으로 몇 통의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츠무기가 숨을 몰아쉬며 가게로 들어선 것은 채 이십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동안 히소카도, 아즈마도 아무 대화없이 가만히 가게 밖 백색소음을 들었다. 가게의 간판은 정육점의 것이었지만 가게에 고기를 사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빨간 조명이 달린 고기용 진열장을 놓아두었지만 먼지만 뽀얗게 쌓여있었다. 히소카는 진열장에 자신의 작품이나 다름 없는 해체육들을 놓아두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본다. 괴로운 얼굴로 죽은 머리도 예술적이라고 아리스는 말했다. 예술은 그로테스크, 드라마틱, 비극, 고통, 그런 여러 단어로 치환된다. 이것 또한 아리스의 문구이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문장을 만드는게 히소카에겐 어려웠다. 기억이 사라진 탓이겠지. 아마도. 먼 곳에서 탁탁 거리는 뜀박질 소리가 들리더니 가게의 입구 위에 달린 작은 종을 울리며 츠무기가 뛰어들어왔다. 새빨개진 얼굴로 어두운 시트지가 발린 가게의 문을 잡고 숨을 헐떡였다. 


"유키시로씨?? 연락도 없이...하악...허억...어쩐..일.."

"츠무기, 체력이 여전히 약하구나. 언젠가 발목을 잡게 될거라고 말했을텐데."

"헉...허억...그..그게아니라.. 미카게군이.."

"수상한 사람. 오면 연락하라고.."

"물론 그렇지만, 그건 처음보는 사람이나..유키시로씨는 미카게군도 종종 봤잖아요?"

"말릴수 있다면 말렸을텐데. 미카게군의 기척은 나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어. 연락없이 찾아와서 미안해. 다음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아즈마는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입구로 걸어갔다. 입구에 서 있던 츠무기가 문고리를 잡고 자신을 막아서는 듯한 자세를 취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츠무기로서는 아즈마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누가 위이고 아래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고있는 바였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 필요에 의한 관계가 끝나면 완벽한 아군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용건이 있어서 오셨던거 아닌가요? 가게로 직접 찾아왔다는건.."

"근처를 지나가다 문득 들렸어. 용건. 미묘한 문제가 생겨서. 한 가지만 확실히 하지. 시체를 다시 되판다던지, 보관한다던지. 그런 짓을 하고 있는건 아니지?"

"물론이죠. 특히 유키시로씨의 주문 건은 다짐육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됐어. 타카토군이 오면 시끄러워질테니, 난 여기서 이만."


아즈마는 눈을 내리깔더니 겨우 숨을 고른 참인 츠무기의 어깨를 살짝 만지더니 딸랑이는 가게 종을 울리며 밖으로 나갔다. 무거운 공기가 일순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츠무기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는 히소카에게로 다가갔다. 아무일도 없었지. 마침 계약건이 거의 끝나서, 나머지는 타스쿠에게 맡기고 뛰어왔다며 히소카가 묻지도 않은 사이의 일까지 조곤조곤 말했다.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손에 숨겨 쥐고있던 군용칼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휴대폰을 꺼내 타스쿠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키시로씨였어. 응응. 별일이긴 하지. 아무 일 없이 돌아갔어. 나머지는 돌아와서. 재고확인? 그렇네. 해봐야겠어."

"재고확인?"

"만일을 대비해서. 내가 할테니까, 미카게군은 쉬어도 좋아요. 음, 불러줘서 다행이네. 고마워요."

"천만에." 


츠무기는 냉동고의 비밀번호를 능숙하게 치고 문을 열었다. 멀리 앉은 히소카에게까지 냉기가 전해져왔다. 냉기에 시체의 축축한 냄새가 섞여있다. 싱싱한 사체가 들어오면 장기를 꺼내 세척한 뒤 한달 이상의 숙성이 기본이다. 사체가 가진 이름이 세상의 관심에서 잊혀질 때에 딱딱하게 얼은 사체덩어리를 꺼내 냉동육 자르는 기계에 넣어 조각낸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분쇄기계를 바라보고 있자면 이상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츠무기는 작은 수첩을 꺼내 재고와 물건을 맞추고 있었다. 가게의 의뢰와 작업은 모두 츠무기의 손을 거친다. 


"다리..스물다섯개...좋아. 숫자는 모두 맞아요. 다만..손가락은 항상 수량부족이네요. 미카게군?"

"...."

"듣고 있어요, 미카게군? 손가락정도는 지문을 없애면 괜찮으니까, 봐주고는 있지만...유키시로씨가 말한 건이 확실해지기 전 까진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요. 타스쿠와 호마레씨가 돌아오면 상의 해봐야겠어요."


혼잣말에 가까운 대화였다. 히소카는 진열장 뒤의 차가운 대리석 매대에 엎드려있었다. 혼자서 가게를 본다는 자각은 있는지, 가게의 다른 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진 않았다. 히소카는 해체한 사체의 손가락 한 두개를 챙기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손가락을 모아 어디에 쓰는지, 어디에 모으는지 가게의 누구도 모른다. 호마레씨라면 알고 있을 거라 츠무기는 짐작했다. 물어본 적은 없다. 두 사람의 기묘한 유대감에 대해선 츠무기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난 시기는 가장 최근이지만, 호마레는 히소카를 만난 순간 소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감을 느꼈다고 한다. 가게로 들어온 원인이 되어준건 고마운 일이다. 호마레는 자칭 천재 시인이라고 말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천재적인 것은 살인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인 또한 호마레에겐 영감을 부르는 의식의 일환에 불과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이해를 필요로하는 영역은 아니지만, 호마레의 이유에 대해선 평생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냉동고의 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나온 츠무기가 손을 비비며 차가워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새로운 의뢰는 계약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다음주에는 이전번의 사체를 처리해야했다. 여름은 사체가 빨리 부패하기때문에 특히 신경쓰는 점이 많았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마쉬멜로우봉지를 꺼내왔다. 봉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기민하게 고개를 돌린 히소카가 벌떡 일어나 츠무기에게 다가갔다. 봉지를 뜯어 적당히 단단하고 차가운 마쉬멜로우를 하나 입에 넣고는 나머지 봉지는 히소카에게 내밀었다. 하나만 먹어도 혀가 오그라드는 단맛인데도, 히소카는 이미 세개를 한꺼번에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무표정하게 기계적으로 씹어삼키는 행위를 계속하는 히소카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짙은 잔디색의 홍채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카게군."

"웅."

"전 정말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나도. 츠무기를 소중하게 생각해."

"카피한 말이 아니겠죠?"

"아마도."


그렇다면 좋겠네요. 츠무기는 단맛을 견디지 못하고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들이켰다. 아즈마가 가게에 직접 혼자서, 히소카만 있을 시간을 골라 왔다는 사실은 분명 단순한 변덕이나 우연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가게를 잠시 쉬어야할지도 모른다. 아즈마의 눈 밖에 들어서 좋을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했다. 츠무기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타스쿠는 한시간 남짓. 호마레는 두시간 남짓이면 가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 불안감은 애매한 오후의 시간 탓인지. 가만히 앉아있자니 과거의 쓸모없는 잔상이 떠오른다. 과거는 괴로운 일 투성이니 기억을 한번 쯤은 잃어도 좋을 일이다. 분명 히소카의 사건도 그런 바램이 통한것은 아닐까. 누구보다 괴로워 했으니. 지금의 히소카는 예전보다 행복해 보이는건 아니지만, 불행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구원이란건 존재한다고. 츠무기는 긍정적인 성격이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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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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