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소카 생 축 해 욧 



달과 생크림케이크



 

계절이 그렇게 흘러들었다. 가로수의 색이, 거리에 행인들이 입은 외투의 색이 겨울을 맞아 짙은 빛으로 바뀌었다. 따스함이 느껴지던 바람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연말을 맞이한 상점가는 작은 전구가 달린 장식물을 가로등 사이에 달아놓았다. 저녁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끝낸 히소카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한참 동안 서서 점멸하는 색색의 전구를 바라보았다. 깜빡이는 대로 눈을 깜빡였다. 여름에 함께 보았던 불꽃놀이의 반짝거림, 얼마 전 높게 뻗은 밤에 올려다본 별자리와는 다른 반짝임이지만 나름대로 거리를 빛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배고픔을 느낀 히소카는 주머니에서 먹다남은 마시멜로 봉지를 꺼냈다. 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저녁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다는 감각보다 커다란 공허함이 밀려온다. 혀 아래에서 녹아들어가는 마시멜로의 가벼운 달콤한 맛에 잠시나마 위로를 느낀다. 아침에 호마레가 매어준 머플러를 목에 한 번 더 둘렀다.

 

며칠 전, 츠무기를 정원에서 만났다. 낮잠을 길게 잔 탓인지. 믿을 수 없게도 졸리지 않았다. 보석같은 시간이 찾아오자 히소카는 오늘의 달이 무슨 모양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계절이 바뀌는 것 보다 더 빠르게 달의 모양도 바뀐다. 보일 듯 말 듯 어둠에 걸린 초승달과 차오르기 시작하는 상현달을 생각하며 정원으로 내려가자 야외 테이블에 츠무기가 앉아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대본책이 놓여있었다. 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밤의 정원을 즐겨보려고. 히소카에게 저녁인사를 하고선 싱긋 웃어보였다. 테이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손에 들고 나온 마시멜로를 꺼냈다. 츠무기라면 하나 정도는 줄 수 있었다. 마시멜로를 츠무기에게 내밀자 그는 기쁜 듯 활짝 웃었다.

 

"와아. 자랑해야지. 고마워, 히소카군."

"아리스한텐 말하지마. 귀찮아질 것 같아.."

". 정말? 호마레씨한테도 준 적 없는 마시멜로를 나에게 주다니..기뻐. 타스쿠에게 알려주면 깜짝 놀랄 거야."

 

미간을 찡그리며 허탈한 얼굴로 츠무기의 자랑 아닌 자랑을 듣고 있는 타스쿠의 얼굴이 떠올랐다. 타스쿠에겐 마쉬멜로를 줘도 기뻐하지 않을 테니. 주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츠무기는 손에 놓인 마쉬멜로를 손가락으로 작게 떼어 입에 넣더니 자극적인 단맛에 짜릿하게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히소카는 어둠이 내린 정원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여름엔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 자리를 깔아두고 낮잠을 자던 곳이다. 하늘에는 커다랗고 둥그런 만월이 떠있었다. 기운이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졸리지 않은 걸까. 하얀 상아색의 달은 손가락으로 쿡. 찍어 입에 넣으면 잘 빚어진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맛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마시멜로 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진하게 느껴지는 우유의 고소하고 깊은 단 맛도 히소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생크림 케이크 같아."

"그렇네. 하얗고 동그랗고. 예쁘지. 생크림 케이크. 왠지 딸기가 올라가지 않으면 아쉬워."

"마쉬멜로를 올리면 더 맛있을 거야."

"장식으로는 좋으려나. 전부 하얀 느낌으로...오미군에게 부탁해볼까. 히소카군의 생일케이크."

"생일.."

 

기숙사에는 많은 생일이 있다. 모두의 축하와 선물을 받고, 준비한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며 다음해의 소원을 빌었다. 생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히소카는 모른다.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날이 과거의 페이지를 잃어버린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제를 모르기에 내일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부터 호마레는 생일 선물로 무엇이 받고 싶은지, 이를테면 시대 최고의 시인이 쓴 축하 시를 예로 들며 히소카를 괴롭혔다. 마시멜로와 따뜻한 배게를 베고 잠을 자는 것 외엔 바라는 게 없었다. 그런 시시한 대답을 하자 호마레는 김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들며 조용해졌다. 아즈마와 대화를 나누었다. 생일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시무룩한 목소리였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한다는게 대단하다며 아즈마는 히소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조금 더 살아 보았지만, 매년 생일은 다른 느낌이었다.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기쁨과 내년도 마냥 온전히 지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니라 멋진 조언은 하지 못한다.

 

"히소카가 원하는 대로 맞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게 뭔지 모르겠는걸."

"그래. 마음속에 있을 텐데. 직접 겪어야 아는 것도 있으니까. 같이 생일을 기다려보자."

"."

"분명 즐거운 날이 될 거야."

 

아즈마가 눈을 접어 웃어주었다. 좋은 꿈을 꾸라는 인사를 하고 아즈마의 방을 나왔다. 조용한 한 밤중의 기숙사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꿈이 가득한 이 장소에 있기 때문에, 텅 빈 백지가 계절로 채워져 가는 것처럼 생일은 첫 글자를 쓴다. 달처럼 하얗고 동그란 생크림 케이크. 장식처럼 올라간 마시멜로와 선의가 묻어나는 축하인사가 가득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밤이 지나면 빛나는 나날이 다가올 것이다.

 

 

히소카 생일 축하해...저렴한 생축전 미안......이모가 많이 아낀단다...겨울조 안에서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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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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