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과 생크림케이크 




츠무기 생일 축하해요 



부스럭 대는 건조한 이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새벽이었다. 타스쿠는 느리게 양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적적히 가라앉은 방엔 츠무기의 고른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아침 조깅을 다녀와서 츠무기를 깨워야지. 타스쿠는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운다. 배우라는 직업은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비정규적인 일을 하는 프리랜서나 다름 없다. 죽을만큼 노력해도 무대의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라 죽어가는 잡초처럼 누렇게 뜬 얼굴을 가진 이들을 타스쿠는 잔뜩 보았다. 하루의 일과를 잘 세우지 않으면 무심코 느슨해지기 마련이었다. 조깅. 발성 연습. 츠무기를 깨우기. 아침 식사. 회의. 큰 줄기를 세우는 사이에 작은 가지 하나가 솟아났다. 선인장에 물을 주어야 한다. 단순하게 쓰는 물건들이 놓여져 있을 뿐인 타스쿠의 책상 위에 얼마 전 작은 선인장 화분 하나가 놓였다. 손가락 두 마디 만한 선인장은 하얀 화분에 담겨 츠무기의 손에 들려있었다. 방에 두는 식물은 전부 츠무기가 가져와 기르고 있었으므로, 타스쿠는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았지만 곧 그 화분은 타스쿠에게로 안겨졌다.


 선물이야. 츠무기는 거절할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한 손에 들어올만큼 화분은 작았다. 식물을 기르는 취미는 너의 것 아니냐고. 타스쿠는 항의했지만 선물이란 이름과 츠무기의 환한 웃음에 지워지고 말았다. 물은 한달에 한 번. 까먹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매달 10일에 주자고 정해 놓았지만 15일이 되도록 까먹기 일수였다. 큰 관심이 필요하지 않아 기르기 쉽다고 츠무기는 말했지만, 오히려 적당한 관심을 주는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 달 이맘때 쯤 물을 주었으니, 생각난 김에 이번달은 오늘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선인장은 여전히 똑같아 보이는 길이와 모양으로 책상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꽃이 피기도 한다지만, 기적처럼 잘 벌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꽃이란게 츠무기의 손에서 마구 피어나는 일종의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쯤일 것이다.


다녀올게. 잠든 츠무기에게 들리지 않을 인사를 하고선 타스쿠는 방을 나섰다. 곧 츠무기의 생일이었다. 나서서 축하해주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필요한 선물을 고르는 것에도 서툴렀다. 츠무기의 생일은 늘 한 해의 끝에 맞닿아 있었기 떄문에 연말의 어수선하고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정작 제대로 챙겨지는 느낌이 들지 않은 적이 많았다. 왠지 모르게 석연찮은 기분으로 지나가는 생일은 어릴 적의 일이었다. 나이를 먹고서는 더욱 생일은 퇴색되고 의미를 잃어간다.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간단히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 통화로 때웠을지도 모른다. 작은 선물 정도는 챙겨주었을지도. 극단 기숙사의 모두는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었다. 누군가는 특기를 발휘해 선물을 줄것이고, 누군가는 아침 일찍 츠무기에게 달려가 생일 인사를 건넬것이다. 츠무기가 축하를 잔뜩 받는 것은 기쁜 일이나, 타스쿠는 왠지 그 모든 처음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아있다면 이상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독점욕이다. 


"다음 주, 츠무기의 생일이지?"

"오호. 그러고 보니 그렇다네. 츠무기에게 어울릴만한 시를 선물해야겠군."

"츠무기. 생일...."

"생일 케이크 정도는 함께 준비하는게 좋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타스쿠?"

"케이크. 좋지."


츠무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즈마가 먼저 생일에 대한 주제를 꺼냈다. 얼마 전 축하를 받았던 히소카는 아직 여운이 남아있는 듯 보기 드물게 마쉬멜로우를 선물로 주고싶다는 말을 했다. 기특하게도. 아즈마가 눈을 접어 웃었다. 오미가 어떻게든 케이크를 구워 줄 테지만, 최근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로 지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모아서 선물을 사는것 보다는 케이크가 낫지 않을까. 아즈마의 정리는 깔끔하고 논리적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동업자의 생일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거리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호마레가 수긍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타스쿠에게로 향했다.


"츠무기는 어떤 케이크를 좋아해. 타스쿠?"

"글쎄. 그 녀석이 음식을 그렇게나 좋아한다고 한 걸 본 적이 없어서."

"소꿉친구면서. 케이크 취향 정도는.."

"뭘 사줘도 항상 좋아했으니까. 모르겠어."

"헤에..다른 의미로 취향이라는 거구나."


무슨 의민지 모르겠군. 타스쿠는 고개를 돌리고 모두가 모여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크는 타스쿠가 사오는 걸로-. 아즈마가 뒤통수에 대고 손을 모아 말했다. 어차피 사오는 건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다. 타스쿠는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흔들었다.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비로드 거리에도 베이커리는 많았고, 크리스마스에 연말 이벤트까지 합쳐진 상가는 붉고 반짝이는 빛으로 가득했다. 어디든 골라서 적당한 케이크를 골라오면 되는 것이었다. 츠무기에게. 생일 축하해. 라는 멘트를 초코렛으로 적은 장식이 올라간 케이크를.


마지막 글자를 제외 하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타스쿠는 조깅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일부러 상점가를 지나갔다. 막 개점 준비를 하는 가게들이 많았다. 다들 크리스마스용 산타장식이나 통나무 모양을 한 초코케이크같은 것을 광고하고 있었다. 전부 특별한 것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것도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화려한 것은 츠무기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특별하면서도 독특하지 않은 유일한 것을 찾아다니고 있다. 넓은 잎과 꽃이 가득한 정원에 어울리지 않던 선인장이 타스쿠의 책상 위에서는 유일한 초록으로 빛나고 있다.


-


츠무기에게 선인장을 선물 받고 한 달 뒤. 문득 츠무기가 선인장에게 물을 주었냐고 물어왔다. 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다고. 타스쿠는 꽤나 당황한 얼굴로 물을 떠와야겠다고 대답했다. 


"어떤 물을 줄거야, 타스쿠? 주방에서 나오는 물, 냉장고에 사둔 미네랄워터?"

"츠무기. 장난치는거지?"

"물 온도는 어떻게 생각해? 물을 얼만큼 줄거야?"

"장난 치지 마."

"아하하. 더 이상 말하면 정말 화내겠네. 물은 흙을 적당히 적실 정도로만 주는게 좋을거야."

"그냥 네가 키우는게 어때? 난 이런덴 전혀 흥미가 없어."

"내가 보고 싶은걸. 식물을 기르는 타스쿠의 모습. 요즘 인기래. 식물 기르는 남자가."

"누가 그런 이상한 정보를 가르쳐 준거야. 오히려 너 잖아."

"난 별로 인기 없는거, 타스쿠가 더 잘 알면서."


츠무기의 눈은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기르는 식물들이 가진 초록이 깃든 눈동자는 깊은 숲처럼 바라보고 있자면 끝 없이 펼쳐진 것만 같다. 츠무기의 감독 하에 타스쿠는 선인장에게 겨우 한 모금도 안 될 정도의 적은 물을 주었다. 지나가며 가끔은 햇빛을 보라고 해가 들고 있는 창 아래에 당겨두었다.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 걸 까먹었다고 떠올릴 때면 다시 선인장은 본래의 책상에 돌아와 있었다. 아마도 츠무기겠지. 츠무기는 그런 녀석이다. 어딘가 모르게 위태한 모습으로 휘청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옆에서 호흡을 맞추어주고 있다. 상호보완이라기엔 이상한 관계였다. 이 관계의 이름을 타스쿠는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오래 된 친구. 츠키오카 츠무기. 


-


타스쿠는 결국 평범한 생크림 케이크를 사기로 했다. 겉 보기엔 새하얀 케이크 속에는 철을 맞기 시작한 생딸기와 딸기크림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케이크를 자르면 탄성이 나올지도 모르지. 생일 축하해. 츠무기에게. 글자가 적힌 초코장식을 케이크 위에 올리자 제법 생일 케이크라는 표시가 두드러졌다. 가장 먼저 생일 인사를 건네자. 그걸로 충분한 아침이 될 수 있도록.




츠무기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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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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