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특히 학교폭력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카이토 과거편.



리본의 기분 


안드로이드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깨진 그릇 처럼 일정한 감정이 담기지 못하고 흐르고만 있었다. 켄타는 자신이 괴롭힘 당하는 이유를 유약한 체격과 소심한 성격이라 여겼다. 절반은 사실이다. 동급생 사이에서도 작은 축에 속했고, 말재주나 성격이 좋아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었다. 켄타는 커다란 기타를 가지고 학교에 다녔으나 학교 불량배들에게 몇 번 빼앗겨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이후로는 기타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기타연주에 애정이 많은것도 아니었다. 다만 무개성한 자신을 조금이라도 나타내고자 하는 발악의 일종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다른 이들의 눈에 띄기 전에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악기사를 하는 집으로 돌아가려면 상점가를 지나야 만했다. 거기서 종종 불량배들과 마주쳤다. 어짜피 시골동네의 좁은 시가지라고 해봤자 독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다. 얼마 남지않은 용돈을 빼앗긴지 2주째였다. 용돈이 없는 켄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릴적 부터 살았던 상점가의 뒷골목을 돌고 돌아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만을 골라 걸었다. 겨울이 다가오는 12월의 날은 바람이 불어 차가웠다. 켄타는 멍하니 땅을 보며 거리를 걸었다. 언제쯤 상점가로 돌아가야 불량배들을 피할 수 있을지. 하루가 너무나도 길었다. 학교수업은 지루했고, 쉬는시간은 두려웠다. 나아질 방법을 생각해보아도 혼자서 할 수 있는건 숨죽이고 조용히 지내는것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겁쟁이는 겁쟁이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켄타는 문득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을 깨달았다. 땅에 쳐박고있던 얼굴을 들자 눈 앞에는 맨발의 상처입은 안드로이드가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켄타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런 날씨에 맨발로 뭐하는거야?"

"아무도 없는 장소를 검색했는데. 정보가 잘못되었네요."

"너..피가 흐르고 있어. 잠깐. 얼굴이.."

"얽혀서 좋을것 없습니다. 수리센터에 데려가도 소유주외에 수리는 불가능하니까 허튼생각.."

"뭐야..그렇지 않아도 한푼도 없어. 이 손수건으로 얼굴 닦아."


맨발의 안드로이드는 지저분한 흙과 먼지가 묻은 얼굴에서 끈적한 피가 흘러 마른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의 모양새가 여기저기 머리채를 잡아 끌린것 같았다. 안드로이드 학대. 켄타의 머릿속에는 어렵지 않은 결론이 떠올랐다. 안드로이드가 상용화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골에서 정밀한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는 적었다. 가사용 안드로이드는 완벽한 사람의 모양을 띤 비싼제품보다는 기본적인 돔모델이 보편적이다. 켄타가 내민 손수건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안드로이드의 얼굴에 손수건을 갖다댔다. 유기된 안드로이드가 회수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걸까. 그러나 얼굴과 몸에 난 상처는 새로운것으로 보였다. 손수건은 금방 안드로이드의 샛빨간 피빛으로 물들었다. 인공피는 시간이 지나도 새빨간 빛을 띄는 물감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켄타는 가방에 있던 물통을 꺼내 손수건에 묻혀 피를 씻어내고 안드로이드에게 다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손수건이 더러워져서..죄송합니다."

"더 물어보지 않을게. 손수건은 가져. 신발도 없다니. 유기?"

"물어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면, 사항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딱딱하네...가사용은 아니겠지."

"용도..라. 일단은 보컬로이드입니다."

"헤에. 그렇구나. 보컬로이드는 실제로 처음 봐."


자신의 기종명을 밝힌 카이토는 포기한 듯 옆에 쪼그리고 앉은 켄타를 한 번 바라보고는 한참 아무 말 없이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이 곳에서 기동한지 1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멀리까지 나온건 처음이었다. 본래 주인이 있는 안드로이드는 소유주의 반경에서만 활동하는것이 원칙이다. 카이토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알람이 울려 귀가 떨어져나갈 지경이었다. 목을 옥죄는 사슬을 깨고 도망쳐나온건 안드로이드에게도 기저에 존재하는 살고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마스터를 거역했다는 두려움, 공포, 그럼에도 그는 나쁘지 않다는 절대적인 연결이 함께 뒤섞여 얽힌 실타래처럼 뒤섞인 감정이 도출하는 결과는 끔찍한 혼란이다. 생존권을 위협할 만큼 마스터는 절대적인 존재인가. 그런 철학적인 문제는 카이토가 알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기본적인 손가락을 움직일 만큼만이라도 메모리를 할애하기 힘들었다. 주먹과 발로 걷어차여 넘어질때 충격을 받은 머리가 아직도 띵하게 울리고 있었다. 도망치는건 답이 아니다. 카이토가 어디에 있는지 쯤은 분실위치확인 서비스를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을 터였다. 어딜 가든 보고있다는 수치스러움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소년은 태평하게 얼굴을 닦던 피가 묻은 손수건으로 이번엔 상처난 발목을 닦기 시작했다. 피부 표면이 따가웠다. 


"근처에 주인이 있는거야?"

"질문 하지 않는다고...됐습니다. 네. 직선거리로는 가까운 장소에 있습니다."

"주인에게 맞은거야?"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고할까봐 그런거야? 무슨기분인지 알것 같아."


오히려 신고해보라며 낄낄대던 불량배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켄타는 도리질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세히 물어봤자 켄타가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닌것처럼 보였다. 켄타는 다시 입을 다물고 손에 들고있던 신발주머니에서 운동화를 꺼냈다. 체육시간에만 쓰는 런닝화였다. 


"자. 이거 신어. 너한텐 조금 작겠지만, 맨발보다는 나을거야."

"괜찮습니다. 이 근처는 포장된 길이라 다칠위험은 적어요."

"내가 못보겠어. 겨울에 맨발로 걸어다니는 안드로이드라니. 누가봐도 신고될거야."

"감사합니다. 신발은 깨끗이 씻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지 주소를 가르쳐주세요."

"여기 상점가의 악기점. 거기가 우리집이야. 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체육수업이 있어. 그전에 돌려준다면 좋을지도."


켄타는 주변을 살피더니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이토에게 손을 흔들었다. 카이토는 발가락에만 겨우 들어간 작은 런닝화를 신은채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왠지 켄타는 눈물이 날것처럼 눈자위가 아리었다. 눈물을 보이면 정말 바보취급을 받을것 같아서, 익숙한 방법으로 도망치고 만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누워 후회했다. 최소한 집이 어딘지 정도는 물어볼걸. 온 몸이 엉망이 될만큼 맞을 정도로 난폭한 주인이 있는 집으로 보내지말걸. 어머니 몰래 방으로 데려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토는 어떻게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갔을까. 카이토의 메마른 목소리가 다시금 생각났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는지 입으로 새어나오는 말들은 마스터는 나쁘지 않아. 나는 돌아가야해. 라고 세뇌하듯 반복하고 있었다.




***




카이토를 다시 만난건 다음 체육시간보다 이른 일요일이었다. 오전동안 가게를 혼자 보고 있던 켄타는 오후가 되어서야 외출을 허락받고 악기사에서 나섰다. 참고서와 악보 몇 개를 살 계획이었다. 겨우 어머니께 사정해서 가불한 용돈을 받아 켄타는 조금 들떠있었다. 저번에 사려고 했지만 돈을 빼앗기는 바람에 사지 못했던 것이다. 켄타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걸었다. 서점에 가기 위해서는 게임센터를 지나가야 했다. 돌아가려고 하려다, 주말이니 녀석들도 하루쯤은 쉬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안일한 생각이었다. 게임센터 입구에서 담배를 피고있던 카와시마를 맞닥뜨리고 만것이다. 카와시마는 잘생긴 얼굴에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소위 엘리트로 불리는 아이였다. 그가 뒷골목에서 돈을 빼앗는 비행을 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켄타 조차 당하기 전 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어-이. 켄타. 어디가는길이야?"

"아. 이런. 저..아..안녕. 카와..시마군."

"왜 그렇게 떨고 그래. 우리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이번은 좀 봐줘. 가불한 용돈이라고.."


카와시마는 익숙하게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음험하게 키득거렸다. 게임센터 앞은 지나가는 행인이 많았다. 카와시마가 어깨를 멱살잡듯이 잡고 골목 뒤쪽으로 걸어갔다. 켄타는 마지막 발악으로 실랑이를 계속했다. 이번에야 말로 신고하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겁쟁이 켄타가 잘-도. 하며 카와시마는 비웃었다. 이윽고 상점가 뒷편에 있는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르자 카와시마는 본격적으로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멱살을 잡고 벽으로 강하게 밀쳤다. 켄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의 폭력행위는 그만하세요."

"이 목소리. 카이토..?"


실눈을 뜬 켄타가 막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이토의 발목에는 켄타가 이전에 주었던 손수건이 피에 찌들어 묶여져 있었다. 이번에는 거실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구석 모서리에 앉아있던 카이토가 몸을 비틀며 일어나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왔다. 카이토가 걷는 자리마다 핏방울이 한두개씩 떨어졌다. 왼 손가락 몇개는 뒤로 뒤틀려 꺾여있었고, 얇은 반팔을 입은 옷에는 핏자욱이 배어있었다. 카와시마는 황당한지 코웃음을 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미친..뭐야. 저 너덜너덜한건?"

"그렇군요. 상황은 알겠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협박하거나 때리는 것은 강도죄입니다. 제가 본 그대로의 영상을 경찰서에 제출하면 되겠네요. 메모리를 지우는건 저의 소유주만이 가능하단것을 가해자님께 알려드립니다."

"무슨.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뭐야 저거?"

"녹음. 녹화. 0.1초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어서 그 손을 놓으세요."

"으, 저, 저 안드로이드 피투성이잖아!! 씨발, 나도 몰라!!"


멱살을 놓은 카와시마가 욕을 커다랗게 소리치며 골목을 뛰어갔다. 다리에 힘이 풀린 켄타가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발을 이상할 정도로 절뚝이며 걸어온 카이토가 더러운 붕대가 감긴 손을 켄타에게 내밀었다. 아래에 분명 상처가 있을것 같은 손을 잡기보다는 옆의 빈자리를 툭툭 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카이토는 잠시 고민하더니 벽에 기대어 앉았다. 


"당신도 혼자인가요?"

"그런가봐. 미나미 켄타. 내 이름. 켄타라고 불러."

"신발은 깨끗이 씻었어요. 돌려주러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만날줄 몰라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또 얼굴이 엉망이네. 주인에게 맞은거야?"

"이건...그렇지만 제가 나쁜일을 했기 때문이니까, 정당방위로 분류되겠죠."


안드로이드 학대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완벽한 법 조항은 명시되어있지 않았다. 개인의 소유물을 파손하는 일이 기물파손죄에 적용되는것도 우스운 것이다. 마스터가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마스터가 상냥하게 대해주던 때도 있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마스터가 원하는 노래를 카이토는 부를 수 없었다. 마스터는 조교법을 공부하거나, 작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컬로이드를 주크박스쯤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카이토가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악보 파일만 끼워넣은 노래는 표시가 나기 마련이었다. 사기만 하면 제대로 된 노래를 부를줄 알았다고. 마스터는 말했다. 흥미를 잃고도 계속 부과되는 사용료에 화가 났을 것이다. 카이토는 마스터의 행동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걷어차이며 매일 빌었다. 카이토를 돌아보지 않는 냉랭한 눈빛에서도 따뜻했던 언제가를 떠올리며 쏟아지는 폭력을 받아내며 견뎠다. 그렇게 지내온 것이 8개월째였다. 신발장 앞에서 충전하고 있던 카이토에게 간만에 마스터가 말을 걸었다. 카이토의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고. 이 녀석이라면 너처럼 쓰레기같은 노래를 부르진 않을거라고- 웃었다. 그 웃음은 카이토가본 것 중에 가장 공포스러운 얼굴이었다.


"이렇게 될 만큼?"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켄타는 어려서 잘 모르겠지요."

"에. 작아보여도 나는 중학교 3학년이라고? 그러는 카이토는 몇 살인데?"

"저에게 나이의 개념은 없습니다. 기동한지는 1년 3개월째. 본체의 연령설정은 20대 정도."

"헤에. 형이잖아. 카이토 형. 말투도 어른스럽고."

"..그렇습니까. 마스터이외의 사람과 길게 대화해본 적이 없습니다. 형이라는 호칭이 알맞은지는 모르겠네요."


켄타는 형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 순간 카이토가 살짝 미소짓는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상점가 뒷편의 막다른 골목길은 둘의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되었다. 카와시마의 협박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겁쟁이인채로의 학교생활은 마찬가지였다. 카와시마는 종종 그 안드로이드. 만나면 부셔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켄타를 위협하곤 했다. 무섭지 않으면서도, 카이토가 걱정되었다. 카와시마가 나서지 않아도 카이토는 곧 부서질 것 같았다. 켄타로서 해 줄수 있는건 새 붕대를 사와서 감아주거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게 전부였다. 어딜 나가든 신경쓰지 않아서 나오는것 뿐이라고 카이토는 말했다. 돌아가면. 켄타는 물음을 끊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물음의 답을 알고 있었다. 카이토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마 보기조차 힘든 폭력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감내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말 조차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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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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