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캐해석이 있습니다.

※초회 공연 캐릭터의 크로스 오버입니다.

 

wings never broken

 

벤쟈민이 죽었다.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란스키녀석의 귀여운 동생 말이다. 패밀리에서 도망치듯 벗어난 이후에도 루치아노는 종종 보스와 연락을 했다. 편지를 쓰기엔 면이 서지 않아 동전 몇 개를 가지고 공중전화를 걸었다. 짧은 전화. 보스는 어제 만난 것 마냥 네놈들이 없으니 일이 느려졌다며 툴툴 거리면서도,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라는 말을 멋쩍게 남긴다. 패밀리로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보스에게는 목숨 서너개 어치의 빚이 있었다. 루치아노는 벤쟈민이 좋아하던 사과주스를 묘비에 뿌려주었다. 패밀리를 나온 란스키와 루치아노는 가장 먼저 벤쟈민을 병원에서 퇴원시켰다. 벤쟈민에겐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는 필요가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기 떄문이다. 용감한 벤쟈민은 그렇다면 형과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몇 달치의 약을 타왔지만, 벤쟈민은 약의 반도 채 먹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여행하는 동안의 벤쟈민은 병원에 있을때 보다 훨씬 많이 웃었고 즐거워 했기 떄문에 란스키는 결코 후회는 없다고 했다. 단지 짧은 동생의 삶을 안타깝게 여기며 당분간 혼자 있을 시간을 달라고 했다. 루치아노에겐 처음부터 가족이 없었다. 고아로 태어나 길거리를 헤메이며 빌어먹고 살았으니, 란스키의 기분이 어떤 것일지 어렴풋이 슬픔이라는 감정 중 가장 깊은 것이리라 짐작했다. 며칠정도 함께 살던 집을 비워주기로 마음 먹은 루치아노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했다. 마피아를 그만 둔 이후로는 심부름 센터의 일을 도와주며 돈을 벌었다. 성격이 죽어라고 맞지 않는 것만 빼면 둘은 상성이 좋은 콤비였다. 란스키는 생활력이 좋은 편이라 짜증나긴 해도 곁에 두고 있으면 편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포커게임장을 나온 루치아노는 정처없이 걷다 버릇처럼 벤쟈민이 긴 기간 입원해 있었던 병원으로 향했다.

 

"이 병원은 변한게 없군."

 

루치아노는 벤쟈민이 치료받았던 병원 앞에 있는 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벤쟈민과 앉아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킬킬대며 웃었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좋은 녀석이였는데. 수전노 란스키의 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루치아노는 호흡기가 약했던 벤쟈민 때문에 담배를 끊었었다. 담배 한대를 끄트머리까지 모두 태운 루치아노는 병원 옥상에 올라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곳은 추억의 장소라면 장소인데, 벤쟈민과 둘이서 란스키에게 장난을 친다며 옥상으로 불러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었던 곳이었다. 얼굴에 폭죽을 정통으로 맞고서도 건방지게 무뚝뚝한 얼굴이었던 란스키가 벤쟈민이 서툴게 만든 케이크를 보고선 처음으로 루치아노 앞에서 웃었던 날이다. 옥상의 문은 잠겨있었지만, 전직 마피아의 기술이라면 이 정도 헐거운 자물쇠를 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루치아노는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까치를 더 태웠다. 고작 몇 개월 함께 산 자신이 이렇게 쓸쓸하다면, 혈육인 란스키는 얼마나 괴로울까. 저답지 않게 감성적인 상념이 떠오른다. 진홍색 노을이 내려 앉아가는 하늘에 담배연기가 오르다 공중에서 사라진다.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던 루치아노는 이상한 하얀 물체가 머리꼭대기 한참 위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새라고 하기엔 커다랬고, 어떤 것인지 자세히 보기에는 너무 높았다. 아마 도시에서 보기 힘든 커다란 새일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새인줄 알았던 물체가 이상한 동선을 그리며 서서히 옥상으로 가까이 내려오기 시작하자 루치아노의 미간은 의심과 당황으로 찌푸려졌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희미하던 실루엣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저 물체는 날개를 단 사람이었다. 꿈을 꾸는 걸까? 루치아노는 물고있던 담배가 바닥에 떨어지는 줄도 모른 채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기 몸통만한 날개를 단 사람이 루치아노를 바라보며 싱긋 웃더니 서서히 가까워지며 옥상 바닥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
"뭔가 잘못이라도 한걸까?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거지?"
"아니...저...네 등 뒤에 날개가 달려있는데."
"그렇지. 나는 천사니까."
"....이 담배에 마약에 섞여있었나."
"후후. 당신. 재밌는 사람이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거야?"

 

아냐. 내가 미친 걸 수도. 루치아노는 천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미친 시절이라지만 갑자기 천사가 눈 앞에 나타날 것 까지는 없는데 말이다. 루치아노의 당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천사는 커다랗게 펼치고 있던 날개를 수납하듯 접어 어깨에 붙였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루치아노를 가볍게 지나쳐 두 발로 걸어갔다. 루치아노는 무심코 걸어가던 천사의 날개에 손을 가져갔다. 새의 날개깃털 처럼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물고기의 비늘 처럼 미끈한 재질이었다.

 

"아얏! 뭐 하는 거야. 실례잖아."
"가장 연극이라던지...아니지? 진짜 천사?"
"응. 그렇지만 네 호기심에 대답해 줄 시간은 없어. 얼른 그녀를 만나러...아니, 이젠..."
"그녀? 천사가 누굴 만나러 온거지?"

 

루치아노는 옥상의 문으로 걸어가던 천사의 앞길을 막았다. 신기한 걸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천벌이나 신의 분노를 사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하지말아야 하는 짓을 한 두번 한 것도 아니고. 이런 타이밍에 만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 곳 없는 허망한 분노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다. 이리 저리 피해 지나가려는 어딘가 어수룩한
 천사의 앞을 왔다갔다 하며 놀리듯 막자 천사는 가만히 멈춰서선 전혀 무섭지 않은 표정으로 루치아노를 노려보았다. 드디어 천벌이 내리는 걸까. 루치아노는 폭죽을 피하려는 아이처럼 눈을 슬쩍 찌푸렸다.

 

"비켜. 너랑 장난 칠 기분 아니야."
"헤에. 천하의 천사님이 뭐가 그리 바쁘셔서. 아니-. 잠깐만 있어 보라니까."
"뭐야. 소원을 들어준다던지 그런건 내 영역이 아니라서 부탁해봤자 소용없어."
"그런건 천년만년 빌어봐야 안들어 준다는거, 이미 알고있어."

 

더러운 무법지대를 굴러다니던 절망스러운 어린 시절에 루치아노는 셀 수 없이 많은 신에게 빌었다. 빌어먹을 인생을 구제해 줄 것이 아니면 그냥 거둬가시라고. 신은 아무런 대답 없이 텅 빈 손과 굶주린 배를 쥐어줄 뿐이었다. 결국 루치아노는 어떻게 해서든 그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허나 벤쟈민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걸 결정하는건 누구지? 화풀이할 상대가 다르단 것은 알았지만 이미 터져버린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천사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분노와 처연함이 섞인 루치아노의 말에 서서히 기울어져 그대로 천천히 귀를 열었다. 그리고 제 풀에 식어버린 루치아노가 씩씩 대던 숨을 멈추자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똑같이 생각 하고 있는 바야. 내가 사랑하는 이도 아무 죄 없이 신의 곁에 불려가버렸으니까."
"....그게 방금 말하던 그녀?"
"맞아. 네가 말한 삶의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어. 그것을 만든 신조차 알 수 없지. 동생의 일은 유감이야...나도 말이야. 이제 여기에 올 필요가 없는데도 매일 오게돼. 바보처럼."

 

천사는 루치아노와 똑같은 감정을 담은 눈동자를 하더니 옥상에서 나가는 손잡이를 잡았다가 그만 놓았다. 그녀가 죽었을때 주변의 천사들은 인간이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슬퍼하는 미카엘을 이상하게 여겼다. 인간은 그렇지 않으니, 부러웠다. 처음 만난 인간에게 세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미 그도 짧게 살다간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그 답례라고 여기며 입을 열었다. 오늘로 이 병원에 오는것도 마지막이라고 굳게 다짐한 차였다.

 

"-. 천사가 인간을 사랑하다니. 그런 일도 있구나."
"이상하지 않아? 이를테면 인간이 파랑새를 사랑하는 일과 같은데."
"글쎄. 살면서 뭘 그렇게 사랑해 본적이 없어. 난 살아남는게 다인 인간이라. 딱히 이상하지도 않고. 파랑새라고 비유하니까 말이지. 예쁘잖아. 그럼 된거 아냐."
"그래? 후후. 그렇게 말하는 존재는 네가 처음이야."
 
어느새 루치아노는 천사와 둘이서 옥상 끄트머리에 앉아 보라빛으로 밤이 내러앉아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치아노는 천사의 흑단색 머리칼 위에 붉은 빛이 떨어져 신비한 색으로 바뀌는 것을 넋을 잃은 채 쳐다보았다. 하얀 날개는 더욱이 아름다웠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마피아로 살아오며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감각이 무뎌진 루치아노라 하더라도 가슴이 울렁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천사란 모두 그런 존재인가? 이야기 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속에 있던 오래된 묵힌 감정들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가 란스키에게 말하면 헛소리 집어치우라며 혀를 찰 것이 분명했다.

 

"담배 한 까치 피워도 되겠지?"
"마음대로. 그렇게 해서 너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뭐, 습관 같은 거야. 권유하긴 미안하네. 천사도 담배를 피는 줄 물어보면 어이 없으려나."
"재밌네. 어디, 여긴 날 관찰하는 자도 없을테니. 흠."

 

농담조로 던진 말에 천사는 덥썩 루치아노의 손에 있던 담배곽으로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남은 두개 중 하나를 가져갔다. 또다시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뻔한 루치아노가 서둘러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천사는 아주 맛있게 담배를 삼키더니 길게 뱉어냈다. 구름처럼 하얀 연기가 어둠이 내려 앉은 머리 위를 흘러갔다. 밤이 된 병원은 고요했다.

 

"좋은 것을 피우네. 의외로 입맛이 고상한가봐."
"너무하네. 대놓고 무시하잖아?"
"장난이야. 아아..뭔가 편해졌어. 네 덕이야. 고마워."
"별 말을. 갑자기 무턱대고 소리질러서 미안하네."
"나는 소원을 들어 줄 순 없지만. 방향 정도는 잡아 줄 수 있지. 지금 너와 함께사는 자가 너의 미래를 이끌 열쇠가 될거야. 놓치지 않도록 해."
"하아? 란스키? 그녀석은 안 될 놈이야. 어딘가 고장나 있다고."
"담배 잘 태웠어. 남은 길에 행운이 따르길. 이 미카엘의 말을 따라서 손해볼 건 없을거야."

 

천사는 접고있던 날개를 뒤로 길게 피우더니 만개하듯 크게 펼쳤다. 미카엘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보다 훨씬 웅장한 모습이었다. 루치아노는 무심코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몇 번 천천히 날개를 아래 위로 퍼덕이더니 작은 발돋움으로 공중에 살짝 떴다. 밤이 되어 하늘에는 구름 그림자와 솟아나는 볓들이 몇개 빛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거지?"
"비밀이야. 이건 마지막 선물."

 

루치아노의 허리보다 높은 곳에 둥둥 떠있던 미카엘이 손으로 루치아노의 머리칼을 넘겨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작은 빛이 이마에서 별처럼 반짝이다 사라졌다. 마음을 나눈 이에게 작은 축복을 나누어 준 미카엘이 루치아노에게 싱긋 미소지어주었다. 루치아노는 기습당한 이마를 손으로 닦으며 머쓱하게 손을 흔들었다.

 

"고..고마워?"
"천만에."

 

미카엘이 밤 하늘을 날아올라 다시 내려다보고 커다랗게 손을 흔들고는 점점 새하얀 점으로 사라졌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루치아노는 남은 마지막 담배를 태우고는 벤쟈민을 위해 잠시간 기도했다. 별처럼 스러진 소중했던 친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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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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