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타] 백야

짧은것/A3! 2017. 6. 6. 22:09

※ 개인적인 캐해석이 있습니다.

※ 반리의 얀데레 묘사가 있습니다.

※ 비도덕적인 묘사도 있습니다.

※ 하나하키 AU, 다소 잔인하거나 징그러울수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백야

 

반리는 오늘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갈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 선생들에게 늘 똑같은 변명을 한다. 학교의 목적이 학력이나 인간관계의 확장을 위한 것이라면, 반리에게 그런것은 필요없다. 잔소리 듣기가 귀찮으니, 교복을 입고 기숙사를 나선 반리는 학교 문턱에서 슬쩍 사쿠야와 마스미를 따돌리고 뒤로 걸어갔다. 이미 두사람도 반리의 등교거부를 포기하고 눈감아 주는 일이 많았다. 일본의 꽉막히고 획일화된 교육방식과 맞지 않는 것이라고 두 사람을 간단히 설득했고, 둘은 판단없이 반리의 등교거부를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등교하는 학생들로 시끄러운 두 블록 사이를 여유롭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벗어난 반리는 서서히 걷는 속도를 줄였다. 대신 곰곰히 생각하며 머리의 회전율을 올렸다. 이타루가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은지 하루. 그러니까 21시간 정도 지났다. 회사에서 급하게 철야라고 하는게 아닐까-. 다들 별일 아닌 것 처럼 여긴다. 신작 게임때문에 철야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키였던가. 한참을 걷자 행인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만약을 대비해 백팩에 넣어두었던 커다란 흰색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근방은 폐건물이 많은 곳이라, 철거되다만 앙상한 건물이 드문드문 있었다. 주변의 비행청소년들이라면 다들 이 곳을 한번쯤은 와 본적 있을 것이다. 조심성 없는 발걸음에 먼지와 모래가 푹푹 날렸다. 반리는 여러개의 골목을 꺾어 들어가 1층 크기의 컨테이너박스 앞에 섰다. 6월에 접어들어 햇빛이 제법 따가웠다. 창문 하나 없는 컨테이너는 뜨겁게 익어가고 있었다. 주머니에 든 작은 카드지갑에서 날카로운 열쇠를 꺼내든 반리가 다시 밀려오는 토악질을 욱욱대며 삼키며 문을 열었다. 빌어먹을 꽃잎이 목구멍을 틀어막으려하자 반리는 손가락을 집어넣거나 배를 갈라 몸 속의 씨앗을 꺼내고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씨발...우욱...우웩.."

 

진득한 위액과 타액에 섞인 진분홍빛 꽃잎은 축축하게 젖은 채로 모래바닥에 천천히 낙화한다. 인터넷 괴담으로 떠돌던  하나하키. 꽃을 뱉는 병이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 현실이란 원래 비논리로 가득 차있다. 초능력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면 초능력을 쓰게되는 인간이 나타나게 되는 것 처럼, 그럴싸하게 꾸민 하나하키라는 이야기가 점점 퍼지자 정말 그런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이 발견되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몇몇 사례들이 소문처럼 퍼져나가 인터넷 괴담이 되어버린걸지도 모른다. 사례가 늘어나자 매스컴이 들러붙기 시작했고, 괴담의 끝무렵 사랑이 이루어지면 하나하키가 멈추게 되는가에 대한 것도 실험해보는 이가 늘었다. 반리는 하나하키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부터 천천히 몸에서 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신의 증상이 하나하키란 것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엔 가벼운 증상이었다. 기침이 늘거나 가래가 많은 정도로 뱉어내면 진득한 가래와 마른 꽃봉오리가 섞여 나왔다. 몇 달 동안 꽃의 부속물을 뱉어내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반리는 자신의 꽃이 이타루를 향한 마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타루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후부터 몸 속에서 꽃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굳이 원인을 찾자면 그것이 아닐까 추론했다. 이타루는 쉬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의 사랑을 얻는건 어렵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반리의 오만이었다.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이타루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자 반리는 이타루와 밤새 게임을 하다가도 목구멍에 차오르는 꽃잎때문에 몇번이고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이타루는 반리는 그저 놀기 좋은 게임동료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분명 둘은 가까운 사이였지만, 반리가 원하는 그런 식의 관계는 되지 못한다. 차라리 먼 사이였다면 이렇게 바라지도 않을텐데. 그것이 하나하키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아닐까. 첫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춘기처럼 심장이 조이고 두근거리는 나날이 이어졌다. 섣불리 고백을 한다해도, 이타루는 반리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선명한 결론이 괴로웠다. 그래서. 라고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는다.

 

"어이. 이타루씨-. 어휴. ..더워."

 

이타루는 잠들어있었다. 아니,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다. 이타루는 반리에게 아무런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리가 종종 패싸움을 하는 부류란것도 알고 있었으면서도, 게임중독자라는 것만 빼면 평범한 회사원의 시각에서 치기어린 비행청소년 정도로 반리를 여기고 있었다. 언젠가 얻은 튼튼한 수갑으로 컨테이너 안에 세워진 철기둥에 이타루의 손을 묶어버린 반리는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이타루의 휴대폰을 가뿐히 빼앗아 전원을 꺼버렸다. 예상보다 이타루의 반항은 미약한 편이었고, 여러 싸움으로 길들여진 반리의 힘에 이타루는 가볍게 통제를 포기해버렸다. 재미없게, 바로 몸의 힘을 풀고 순순히 따르는 이타루의 모습 조차 너무도 이타루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반리는 이타루의 손을 잡고 한참이나 구역질을 하며 꽃을 뱉어냈다. 위장까지 다 뱉어낼 요량으로 깊게 토악질했다. 추악한 가정의 산물이 젖은 꽃잎의 모양을 하고 이타루의 손 위에 축축하게 떨어진다. 수치스러웠다. 벌겨벗겨져 모든것을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반리는 죽을만큼 더러워진 기분으로 숨을 몰아쉬며 입을 닦았다. 이타루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꽃이지? 코스모스?"
"...알바냐. 제대로 된 모양은 이제야 봤어."
"무슨 상황인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반리에게 납치되었고, 반리는 꽃을 토하고. 이거 현실?"
"납치라니. 이야기좀 하자고...우..우욱.."
"진행이 안되는데."

 

그 뒤로도 한참 꽃과 위액을 토하다가 쓰린 배를 잡고 주저앉아버렸다. 이타루는 기둥에 묶인채로 바닥에 앉아 몸부림치는 반리를 몇번 부르다 이내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꼬여버린건지 이타루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고 싶지 않은 것도 많았다. 영문을 모르니 오히려 반항할 마음이 없어지고 말았다. 적당히 설득하면 해결될 것이다. 장소는 좀 으스스하긴 해도, 격투게임의 무대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면 무섭지 않았다. 생각 없이 저질러놓고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절실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반리와 말없이 눈을 맞추었다. 말 없이도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날 좋아해줘. 날 사랑해줘. 날 당신의 생활영역 안에 넣어줘. 나와 특별한 관계가 되어줘. 어린아이가 원하는 인형을 갖기위해 떼 쓰는 것 처럼. 반리는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다. 반리가 토해낸 여러 색의 젖은 코스모스 꽃이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버린 반리의 얼굴과 옷에 붙어있었다. 충동적인 사랑이라기엔 한번도 본 적 없는 진심이었다. 어째서-. 라고 물어봤자,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유로 인하여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의 선택지라 여겨본다면,  YES와 NO모두 배드엔딩이었다. 혼란 스러운 만큼 머리가 깨질듯이 울리고 있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 했다. 어제 정신을 잃을 적에 얻어맞은 머리가 아직 얼얼 했다.

 

한참의 공백 끝에 이타루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연상이고, 지금 불리한 쪽은 이타루였기 때문에 먼저 나서야만했다. 이대로 반리가 타락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모든 조건을 차치하고 생각해본다면 반리와 섹스한번 쯤 해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일일것이다. 잘생겼고, 몸도 좋았다. 무엇보다 좋은 녀석이었다. 학생이라는게 좀 걸리긴 했다만, 반리 또한 자신을 학생으로 정체화하는 경우는 적었다. 섣불리 손 대지 않는 것은 이타루의 마지막 남은 양심에서였다. 같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연하에게 손을 뻗었다는 본인만의 죄책감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반리. 괜찮아? 진정해봐. 네가 말하는 이야기 좀 하자구."
"으윽...아아. 이제 좀 가라앉았어. 기분은 최악이지만."

반리는 몸을 부르르떨고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는 기색이었다. 이타루도 울렁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세게 꾹 감았다 떴다. 어긋난 반리와의 관계를 바로 잡아야한다. 지금 두 사람은 엇갈린 칼날 위에 서 있었다.

"이쪽도라고. 응. 그러니까. 반리가 나를 좋아하는 거지?"
"그걸 이제야 알았냐? 덕분에 좆같은 병이나 생겨버려서, 죽겠어."
"그럼...내가 반리를 좋아하면 해결되는 부분?"
"하아?"

 

그걸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하는거야? 반리는 오히려 반박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앓아왔던 연정인데 이타루는 너무 가볍게 여기는게 아닌가. 반리는 좀더 진지하게, 깊이 이타루를 여기고 있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뭐가 어때서? 무거운 관계는 딱 질색이었다. 서로가 없다면 죽어버리는건 게임의 배드엔딩으로 충분하다. 반리가 두가지 선택지로 뜬다면, 분명 YES를 선택 한다. 이타루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의 반리를 향해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다.

 

"좋아. 반리라면 섹스해도 좋으니까. 지금 할까?"
"무슨 개같은 소리야?"
"나, 반리가 그렇게 싫짆 않으니까. 섹스 한번 하면 좋아질지도."
"진심이야?"
"레알 진심."

 

미쳤어. 반리는 이타루를 허무하게 응시했다. 이타루를 바라보기만 해도 뱃속의 씨앗들이 들끓었다. 이타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관계를 갖는 상상을 수십번 반복해왔다. 자신의 것을 삽입하고 이타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삼켜버리면 이 욕망이 가라앉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코스모스가 잔뜩 뿌려진 폐허에서 반리는 스스로 일어나 그 꽃들을 마음껏 짓밟는 환상을 보았다. 짓이겨진 꽃에서 풋풋한 향이 나는 착각마저 느껴졌다. 이타루가 쏜 형태없는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고, 구멍없는 상처에서는 피대신 꽃봉오리들이 쏟아지는 꿈을 찰나의 어둠속에서 보았다. 이곳에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 어둠의 끝에서 만난 이타루가 빛이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반리의 착각이었다.

 

"이타루씨. 정말 좋아한다구요."
"아무리봐도 그렇네. 나쁜아이가 되어버리기 전에, 이것 좀 풀어줘?"
"도망가버리면?"
"나 그렇게 신뢰없는 사람이였냐. 먼저 옷이라도 벗기고 키스해도 좋아. 마음대로 망가뜨려봐."
"나야말로 그런 사람 아니니까."

 

반리는 이타루가 묶인 기둥 앞으로 기어갔다. 이타루의 가슴에 타액과 꽃조각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묻고 이타루의 빨라진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마음이 혼자만이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믿으며,  고개를 돌려 바닥에 침을 한번 뱉고는 말라붙은 땀으로 부쩍 수척하지만 여전히 빛나는 이타루의 몸을 파고들었다. 하나가 된 주변에 흥건했던 코스모스가 건조되어 바스락 거리며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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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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