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캐해석이 다분합니다.

※타스쿠랑 츠무기가 고등학생입니다


전력 주제 여름


 

햇볕이 쏟아지는 길목이 뜨겁게 익어가고 있었다. 주변에 심어져 있는 수국의 색이 은은한 푸른빛에서 선명한 쪽빛으로 바짝 물이 오른다. 바닥이 얇은 샌들을 신고 걷는 발바닥이 뜨거웠다. 타스쿠의 집으로 가는 길은 눈을 감고도 걸어갈 정도로 익숙한 모습이었다. 츠무기는 입고 있던 교복 와이셔츠의 가장 윗 단추를 풀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가는 길에 근처 가게에 들러서 시원한 음료라도 사갈까. 8월에 접어들자 몸을 익혀버릴듯한 무더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을에 있을 문화제에서 타스쿠와 함께 올릴 연극의 연습을 위해 며칠 간격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연습하는 중이었다. 올해 여름은 그런 식으로 지나갈 셈이었다. 땀으로 젖어가는 등에 붙은 와이셔츠를 손으로 펄럭이며 부채질했다. 방학이 시작하고 한달동안 타스쿠를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대본 연습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날 참이었다. 그러나 어제는 타스쿠와 만나지 않았다. 그저께 있었던 작은 말싸움을 벌이고는,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츠무기는 화해의 의미라기에는 보잘것 없지만, 자주 들리는 타스쿠 집 근처의 가게에 들러 시원한 캔커피를 샀다.

 

타스쿠는 올해 여름 네번째 고백을 받았다. 네번째 상대는 바로 옆반에 다니는 동급생 여자아이였다. 타스쿠를 언제부터 눈에 담아두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의 여자아이가 꾹꾹 참고있던 마음을 적은 러브레터를 방학식 첫날 츠무기에게 내밀었다. 어째서 나에게. 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전에 여자아이는 도저히 타스쿠의 눈을 보고 전해줄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며, 가장 친한 친구인 츠무기에게 맡긴다며 사정했다. 스스로도 부끄러운지 여자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울먹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전하고싶어서. 간절한 목소리에 츠무기는 손자국이 남은 편지를 받아들 수 밖에 없었다. 여자아이에게서 받은 편지를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두고는, 바로 그날 저녁 전해줘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타스쿠는 그런 방식으로 받은 편지는 단칼에 거절할 것이 분명했다. 이전 세번의 고백에서도 아직 여자친구를 만들 의향이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전력이 있는 타스쿠였다. 두명은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고, 한 명은 타스쿠의 어깨를 밀치며 도망갔다.

 

"인기 있는것도 곤란하네. 좀 상냥하게 말해주지 그랬어."

"거절할거면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게 좋아. 여자친구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전혀 없는거야?"

"있다와 없다 사이에 다른 말이 필요한거야?"

 

대답할 말이 없어진 츠무기는 애매하게 웃으며 대화를 넘겨버리고 말았다.가방에 넣어둔 편지가 방학이 시작하고 한달동안 묵혀갈 즘, 어떻게 알았는지 여자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미안하지만, 곤란하게만들어서 미안하지만, 하고 미안하다는 말이 잔뜩 적힌 문자였다. 곤란하긴 했다. 두 사람이 어릴때부터 친한 사이란 것은 교내에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츠무기는 결국 가방에 있던 약간 구겨진 편지를 꺼내 타스쿠에게 전해주었다. 옆 반의 그 여자아이. 귀엽고 착하다는 평판이 있다고. 좋은 아이일거라며 말을 덧붙였다. 타스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츠무기의 손에 들린 편지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로 표정을 구겼다.

 

"이걸 왜 네가 전해주는거야?"

"그게, 그 여자아이가 부끄럽다고..나한테 부탁했어. 어떻게든 전하고싶다고.."

"그럼 본인이 와야지. 비겁하게 다른사람을 시키는건 뭐야. 어찌됐든 거절 할 거지만. 난 받지 않을거야."

"그런...한번 읽어는 봐."

"됐어. 가져가."

 

자신의 러브레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편지에 츠무기는 기분이 나빠졌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마주보고 앉은 좌식테이블에서 츠무기는 꼿꼿이 타스쿠를 쳐다보았다. 대본에 눈을 두고있던 타스쿠가 볼멘 목소리로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라며 눈을 치켜떴다. 어째서 그런 말이 나온걸까.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타스쿠는 내가 고백해도 그런식으로 거절할거야?"

"뭐?? 갑자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아..그..그게 아니라...다른사람의 마음을 거절하는 게..."

 

의식하기 시작하자 츠무기는 새빨개진 얼굴로 변명같은 설명을 주절거렸다. 여자아이들의 고백을 거절하는게 사람에 대한 중요도를 평가하는-.. 머릿속에 꼬인 실타래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타스쿠는 짐짓 당황과 황당이 섞인 얼굴로 츠무기를 바라보았다. 츠무기는 엉켜버린 실타래 끝을 잡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우정 이상의 어떤 것이 둘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도, 정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타스쿠는 올해 여름 첫번째로 고백했다. 그 상대는 츠무기였다.

 

"나왔어-. 타스쿠. 실례합니다."

"아아. 마침 잘 왔어. 전화라도 해볼 참이었는데."

"타스쿠..어디 가려고?"

"올해 아직 바다를 보지 못했잖아. 머리도 식힐겸."

 

타스쿠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어깨에 작은 백팩을 매고 있었다. 나갈 채비를 마친 모습으로 문가에 서있던 츠무기의 손을 잡고 다시 바깥으로 향했다. 문가에 매여있던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츠무기에게 뒤에 앉으라며 안장을 두드렸다. 손에 들고있던 비닐봉투는 받아서 자전거 앞 주머니에 넣었다. 얼떨결에 자전거 뒤에 앉아 타스쿠의 어깨를 잡은 츠무기가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를 떠올렸다. 어렸을때 차를 타고 몇번 놀러가 본적 있는 곳이었다. 작은 백사장이 있는 얕은 바다였다. 타스쿠는 조금 들뜬 얼굴이었다.

 

"바다..라면 거기 말하는거야? 자전거로는 한시간도 더 걸릴거야."

"한시간 정도는 거뜬하다고. 꽉 잡아. 이제 우리 두사람이 타기엔 자전거가 작으니까."

 

중학생때 까지만 하더라도 둘이 타면 딱 맞는 정도의 크기의 자전거였다. 타스쿠는 점점 보기 좋은 몸이 되어갔고, 츠무기도 그에 따를 바는 되지 않지만 키가 조금 컸다. 고등학교에 와서 타스쿠의 자전거에 타는건 오랫만이었다. 타스쿠가 시원하게 발길질을 하자 집 앞을 가뿐히 벗어난 자전거는 유유히 방금 걸어온 골목을 지나쳤다. 어떤 말보다 더 솔직한 타스쿠의 마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익숙한 풍경과 서서히 배어나온 땀으로 뜨겁게 젖어가는 타스쿠의 목덜미를 바라보자 이상하게 마음이 시려왔다. 정수리를 찌를듯 쏟아지는 햇빛에도 어딘가 섬뜩한 냉기가 감돌았다. 타스쿠의 고백을 거절해서일까. 분명 그래서 일것이다. 타스쿠는 그 날의 일은 모두 잊은듯이 행동했다.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 마악 꺼내입은 반팔 셔츠의 빳빳한 어깨 선이 닳지 않은 때에. 언제나 자신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고 믿은 친구에 향한 감정이 자신과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츠무기는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타스쿠는 너무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면서도, 올바르게 자신을 대하는 사람이었다. 츠무기라면 죽어도 꺼내지 못했을 말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수식의 결과를 말하듯 꺼낸것이다. 널, 좋아해. 다른 무엇보다. 짧은 몇 마디의 말이 츠무기의 몸에 화살이 되어 꽂히고, 구멍난 자리를 후벼파기 시작했다. 츠무기는 잡고 있던 타스쿠의 옷자락을 힘껏 움겨쥐었다.

 

“타스쿠, 힘들지 않아? 잠시 쉬었다 갈까.”

“아아. 좋지. 거의 다 온것같아.”

 

커다란 나무 아래 작은 벤치가 있는 길가에 자전거를 세웠다. 관성에 흔들린 몸이 어지러웠다. 츠무기는 멍하니 벤치에 앉아 메고있던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타스쿠와 쏟아지는 빛살과 녹음이 일렁이는 시야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응답할 수 있을 만큼 눈부신 사람이었다. 서로를 잡아두는 관성에 갇혀버렸다고 생각할때, 늘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타스쿠였다. 시원한 물 한병을 모두 비운 타스쿠가 벤치로 걸어와 보란듯이 벤치 끄트머리에 턱하니 앉았다. 아무리 체력이 좋은 고등학생이라고해도, 둘을 태운 채 쉬지않고 수십분을 달리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어깨를 매만지며 이리저리 관절을 꺾다가 길게 한숨을 내쉰 타스쿠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 바다에 갔었던 일, 기억하고 있어?”

“언제? 소학교때의 일인가. 나, 그렇게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네가 인어공주를 읽은 다음날 부터 그렇게 바다에 가고싶다고 조르고 졸라서. 형이랑 갔었잖아. 인어공주를 만나겠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으면서.”

“뭐..뭐야.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거야. 정말.”

“갑자기 떠올랐을 뿐이야. 내년엔 진학으로 바쁠테니까. 연극부 활동도 지금처럼 활발하게 하진 못할테고.”

 

응. 그렇네. 츠무기는 웅얼거리며 고개를 들어 옅은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른하게 잠이 쏟아지는 한 낮 이었다. 방학이 끝나면 곧 문화제였다. 고등학교까지는 자연스럽게 같은 학교를 들어갔지만, 이후에도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린아이의 그것과는 달랐다. 타스쿠가 진학을 할것인지, 직업을 구할 것인지 조차 물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언젠가는 서로의 길로 떠나게 될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타스쿠를 잡지도 못했다. 비겁해. 나는. 비겁했다. 비겁하다고 인정 하는 것 조차 괴로웠다.

 

“마지막 추억. 같은 거네?”

“마지막..? 어째서 마지막이 되는거지. 내일도 연습 해야하는데?”

“그거야, 내가 타스쿠의 고백을 거절했으니까.”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잊어버려. 내가 잠시 착각했어.”

 

어서 가자. 타스쿠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뒷 말을 생각할 새도 없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서 발을 움직였다. 저 멀리서 부터 거울을 부셔놓은 듯 반짝이는 먼 바다가 보였다. 내리막길에 다다라 자전거는 빠르게 아래로 향했다. 줄지 않는 속도감에 무서워진 츠무기가 타스쿠의 허리를 양 팔로 껴안았다. 어,어. 하고 살짝 흔들리던 자전거가 급하게 도로를 따라 좌회전 했다. 눈 앞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졌다. 츠무기는 저도 모르게 와아. 하고 상쾌하게 소리쳤다. 해변가에 자전거를 세워둔 두 사람은 홀린 듯 모래사장에 걸어들어갔다. 모두 유명한 해수욕장에 가버렸는지, 작은 해변가는 동네 꼬마처럼 보이는 몇몇 아이들만이 모래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깊은 모래 탓에 귀찮았는지 타스쿠가 먼저 신발을 벗어 던졌다.

 

“뜨겁지 않아? 모래?”

“참을 만한 정도. 너도 신발 버리기 전에 벗어버려.”

“음. 그래도 온 김에, 발은 담그고 가야지.”

 

바지를 걷어낸 타스쿠를 따라 흰 운동화를 벗고 츠무기도 발목까지 바지를 걷었다. 옅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와 맞닿은 곳으로 나란히 걸었다. 뒤에는 기다랗고 동그란 발자국이 이어졌다. 바닷물에 젖은 모래에 발가락이 닿자 차갑고 축축하지만,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발가락을 서서히 간지르는 물결이 발등까지 차올랐다. 츠무기는 어느새 부터 타스쿠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한 손에 든 신발 때문에 온전히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시원해. 바다에 오길 잘 한것 같아. 고마워, 타스쿠.”

“응. 열심히 온 보람이 있어. 넓은 바다를 보고있으니까 내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는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있잖아.”

 

츠무기는 잡고 있던 타스쿠의 손을 놓고 바다로 걸어갔다. 걷어 놓은 바지가 적실만큼 깊은 곳에 서서 몸을 돌려 타스쿠와 마주보았다. 많은 것이 떠올랐다. 아주 어릴 적 타스쿠와 함께 놀았던 희미한 기억속의 놀이터. 신나게 뛰어가던 골목길. 처음 함께 연극을 하던 날. 대본을 외우며 밤새도록 웃고 떠들던 밤. 아침에 창 밖에서 들려오던 타스쿠의 자전거 벨 소리. 어느 것 하나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들이었다.

 

“내가 타스쿠를 좋아 할 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줘. 타스쿠는 내 소중한 사람이니까.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게 내 대답이야.”

 

멀리서 천천히 밀려오던 파도가 츠무기의 다리를 흔들었다. 휘청거리며 넘어지려는 츠무기를 순간 첨벙이며 뛰어간 타스쿠가 팔을 잡았지만, 둘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서로 엉겨붙은 모양으로 한참이나 바닷물을 맞으며 서로를 껴안았다. 언제 엇갈렸는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언젠가 처럼 웃어버리고 말았다.

 

 

 

 

 

 

 

 

 

 




'짧은것 > A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이타] 꽃말연성-포인세티아  (0) 2017.05.29
420자 단문 이것저것  (0) 2017.05.23
[타스츠무]口渴  (0) 2017.05.23
[아즈사쿄] 가시나무 숲  (0) 2017.05.23
[히소호마] 생채기  (0) 2017.05.16
Posted by michu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