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 숲

※ 악마 천사 AU

개인적인 캐해석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옥이로군. 사쿄는 발밑에 굴러다니는 살덩이와 코를 찌르며 썩어가는 시체 조각들을 대충 발로 치우며 걸었다. 그의 등에는 커다랗고 하얀 날개가 달려있었지만, 날개는 그저 그의 신분이 천사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퇴화기관에 불과하다. 날개가 아무리 커다랗다 하더라도, 날기위해 쓰는 에너지를 계산해보면 차라리 걷는게 훨씬 절약이었다. 치기어린 어린 천사들은 날개가 커다랗게 각성하는 것이 힘의 척도라 여기고, 어디까지 오를수 있는지를 내기하기도 했다. 사쿄는 낭비라는 단어를 죽어도 싫어했다. 전쟁에 참전하기 전 자신이 속해있는 부대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게 옳다. 어찌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싶어하는 천사들의 특성과, 교묘하게 인간을 등처먹는것이 본능은 악마들은 존재자체가 상극이었다. 이번 파병은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다. 아직 훈련이 덜 된 천사들이 많았고, 이 전쟁에 명분이란건 어디에도 없다. 이제 상부에서는 명분따위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사악한 악마들은 사악한것이 본능이고, 그것을 죽음으로 정화하는것이 우리들의 임무라는 허울 좋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마계는 하늘이 세피아빛이었다. 마왕의 취향이 그렇다던지. 현대의 마왕은 꽤나 선대보다 조용한 자였다. 선대를 빼닮은 붉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똑같았지만, 절대 선봉에 서는 일이 없었다. 선대 마왕은 전쟁에의해 태어난 전쟁의 화신이였다. 그는 적이였지만, 형형한 붉은 눈을 빛내며 전쟁의 최전방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정의를 세우고 적을 섬멸하는 모습은 존경할 만했다. 부대의 젊은 천사들은 마왕을 쓰러뜨리고 싶어했다. 그것이 얼마나 건방지고 가당찮은 일인지. 일개 천사가 쓰러뜨릴 만큼 마왕이 시시한 존재였다면 유구한 시간동안 천계와 마계가 싸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먼저 낙오되다니, 이거야 면이 서질않아.."

대열에서 멀어지지 말라고 주의하고 주의했지만 부대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녀석이 기습공격에 당해 멀어지는 것을 본 순간 사쿄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우리 부대는 전원 생존이 목표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대의에 달린 일이며, 무사히 돌아가는 것만을 목표로 한다. 사쿄가 출정하기 전 연단에서 한 말이었다. 땅에 고꾸라진 녀석을 찾아 숲으로 내려갔지만, 이미 숨이 멎어있었다. 사쿄는 눈도 채 감지 않은 시체의 눈을 감기고 영혼을 거둬 천계로 올려보냈다. 천사는 육체를 잃어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친구나 소중한 이들과는 다시 만나지 못할것이다. 죽지 않아도 이별은 슬픈 것이었다. 녀석의 영혼을 거둔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흉흉한 기운이 맴도는 검은 숲이었다. 자신이 낙오되어도 다른 부대장들이 부대를 이끌어 줄것이다. 숲은 무성한 가시나무가 가득했다. 날개를 펴고 날아갈 만큼의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다. 검은 가시나무가 하늘을 가려 숲은 어두웠다. 어쩔수 없이, 보이는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그리 넓은 숲처럼 보이지 않았고, 반 나절 쯤 걸으면 벗어나리라. 사쿄는 보이는 큰 나무마다 가지고 있는 작은 칼로 자국을 남기며 걸어갔다.

예전에 큰 전투가 있었는지, 숲을 걸어가는 종종 시체가 보였다. 이미 백골화된 시체도 있었고, 이제 막 썩어가는 것도 있었다. 사쿄는 못 볼것을 본 듯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를 막았다. 이따금 마계의 새가 음흉한 목소리로 우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밤이 오기 전에 숲을 벗어나야 했다. 사쿄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시체인가. 저건 정말 죽은지 얼마 안된..음..?"

커다랗고 메말라가는 가시나무 밑에 배에 커다랗게 상처가 난 악마가 누워있었다. 사쿄는 허리춤에 차고있던 은으로 만든 실탄이 든 총을 조용히 손에 쥐었다. 은으로 된 총을 맞은 악마는 재생하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간다. 사쿄는 가능한 단발에 죽이는 것을 선호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은빛머리를 가진 악마가 구멍뚫린 배에서 조각난 장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예상되는 상당한 고통에 숨을 헐떡이며 괴로운 얼굴이었다. 주변은 그가 흘린 샛붉은 피로 젖어있었다.

"가엽군. 고통없이 죽여주겠다."
"으음...당신은..?"
"안타깝게도, 나는 너의 적이야."
"아하. 지금 피를 너무 쏟아서 눈 앞이 보이지 않아. 당신, 천사인가 보네."

악마는 고통에 찬 피섞인 기침을 쿨럭였다. 배에 튀어나와 있던 내장이 함께 들썩였다. 사쿄는 그럼에도 징하게 말을 이어가는 모습에 혀를 찼다. 총을 악마의 이마에 가져다대고 철컥. 하고 장전하자 악마는 기침을 멈추고 몸을 떨었다.

"이곳에 최근 전투가 있었나?"
"아아. 숲으로 도망쳐왔어. 천사군도 그런걸까?"
"이 상황에 입만 살았군. 역시 악마새끼들이란..."
"나는 병사가 아니야. 다만 근처를 지나가다 운이 없었지. 날 죽여도 천사군이 얻는건...없을꺼야. 작은 온정을 베풀어 줄수 있을까?"
"내가 어째서 그래야하지? 널 살린다고 해서 내가 얻는것도 없는건 똑같지. 설마 치유능력을 바란건 아니겠지? 악마에게는 통하지 않아. 영혼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거냐?"

이런저런 설명까지 하긴 귀찮았다. 천사들 중에서도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는것은 극소수에 속했다. 그 능력 하나 만으로 천사가 선이니, 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니. 하는 말도 안되는 선입견이 생겨난 것이다. 사쿄가 아는 한 그런 능력을 가진 천사는 현세에 하나 밖에 없었다.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천계에서 숭상받았다. 천계의 명분이 되어버린것이다.

"후후...나는 인큐버스야. 천사의 정기가 우리에겐 최고의 넥타르지. 천사군에게서 달콤한 꿀의 향기가 나.."
"하아.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부류로군. 난 다른이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것들을 싫어해."
"매정해라. 고고한 천사군이네. 전쟁은 즐거워? 살생하며 얻은 명예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다른 이를 희생하는 것에는 어떠한 대의도 소용없는 것을...크으윽.."

은빛 악마는 구멍난 배를 붙잡았다. 악마들의 생명력은 바퀴벌레보다 끈질겼다.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관통상을 입어 주변을 자신의 피로 낭자하게 물들이고도 살아 있을수 있다니. 과연 상대하기 힘든 적이었다. 사쿄는 몸을 숙여 은빛악마를 바라보았다. 인큐버스는 특히나 다른 이를 홀리는 존재라, 선이며 얼굴이 준수한 편이었다. 황금빛이 감도는 녹안은 풀린 동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촛점의 행방은 간 곳 없었다. 반쯤 찢어진 한쪽 날개가 악마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었다. 끈질기게 숨을 몰아쉬며 생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가녀린 몸짓이 이어졌다. 검은 피를 입에서 쿨럭이며 쏟아낸다. 고여서 썩은 피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누구일까. 일개 천사에 불과한 자신은 세계의 대의를 위한 모래 한 줌이라 생각했다. 그 동안 사쿄가 돌려보낸 많은 영혼들은 안식을 찾았을지. 얽매여오는 생의 무거움이 파도처럼 사쿄를 덮쳤다. 이것 또한 이 악마가 자신을 홀리는 것일까. 은빛 악마는 마지막 숨을 옅게 뱉어내고 있었다. 사쿄는 몇시간 전 자신의 손으로 묻은 천사를 떠올렸다. 괴로움이 밀려왔다. 자신의 손을 거치는 것을 놓아버리는것은 그만 하고 싶었다.

"그래도..혼자 쓸쓸히 죽는것 보단...천사군이 있는 앞에서.."
"누굴 저승길 동료로 삼으려는거지? 재수없는 소리 집어치워. 정기란건 어떻게 주면 되는거지?"
"아...아아. 신이시여. 자아, 이리 가까이.."
"나는 신이 아니야. 그 분은 아주 멀리, 아주 가까이 계시지....이렇게 하면 되는건가."
"잘..먹겠습니다.."
"....?!!!"

은빛 악마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피가 가득한 손으로 사쿄의 얼굴을 매만지며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살면서 처음 맛보는 혀가 녹아 내릴 정도로 달콤한 타액이 서로의 입에 닿았다. 어미의 젖을 탐하듯 엄청난 기세로 혀를 엮는 아즈마에게로 무언가가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가 멍하고 눈 앞이 하얗게, 그렇지만 몽롱한 기분이 들뜨게 하여 불쾌하지 않았다. 인큐버스의 키스가 어느정도의 위력인지는 책에서 배운 것 뿐이었다. 사쿄는 저항해야겠다는 일말의 여지 없이 악마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듯 다시금 눈을 뜨자, 악마는 상기된 얼굴로 사쿄의 볼에 한번 더 입을 맞추고 입술에 쪽, 하고 소리가 나게 키스했다. 그의 배에 있던 상처는 완벽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연녹색 눈동자를 구슬처럼 반짝이며 사쿄를 바라보고는, 멋진 천사군이였네. 하고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기분 좋아. 천사군도 좋았지?"
"내 이름은 천사군이 아니라 후루이치 사쿄다. 그리고 방금 그건 내 첫키스였고...이게 무슨. 이런 식이라고 말 한 적은 없잖나."
"어머. 후후. 천사의 첫키스라니. 값을 톡톡히 해야겠는걸. 나는 유키시로 아즈마. 당신이 방금 살린 첫 생명."
"이 숲을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거나 말해."
"아하. 그렇네. 내 트랩이 잘 먹힌 모양이야."

아즈마는 손에 입을 맞추더니 공중에 후. 하고 입김을 불었다. 신기루 사라지듯, 가시나무 숲이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쿄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가 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사쿄는 아즈마를 노려보았다. 방금까지 하늘을 가리고 있던 가시나무숲은 온데간데 없고, 코를 찌르던 시체들도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아즈마는 생글거리는 웃음을 쿡쿡 내뱉었다. 우연히 재수없게도 전투에 휘말리게 되어 상처를 입고 말았지만, 이젠 한계라고 생각해서 마지막 힘을 짜내 천사를 유인하는 환각을 만들었다. 주변은 이미 철수한 뒤라, 확률은 희박했지만. 신께서 사쿄를 내려주신게 아닐까. 딱딱한 상대는 오히려 녹이기 쉬웠다. 황당하다는 표정의 사쿄의 볼에 손가락을 찌르며 아즈마는 부드럽게 웃었다.

"나, 꽤 오래 살았으니까..이런 잔 재주 정도는 부릴 수 있지."
"야비한 악마새끼.."
"어머어머. 고고하신 천사님이 이 정도 환각도 구별 못 할 정도라니. 나도 꽤 실력이 좋아졌나봐..후후. 하지만 살려준것은 내 남은 삶을 모두 바쳐도 좋으니까. 천사군도 그렇지?"
"떨어져라. 또 죽고 싶은건가?"

사쿄의 살벌한 언사에도 아랑곳없이 사쿄의 날개를 만지며 천사의 날개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라며 깃털을 쓰다듬었다. 간지러운듯 손을 털어내려 사쿄는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역시 이번 파병은 오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안좋은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 편이니까. 악마를 살려주었다는 것이 들키면 병사로써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둘 사이의 고삐를 죄고 있는 것은 아즈마 쪽이었다. 사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세피아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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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chu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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