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물이 넘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코타로우가 기분이 좋겠구나, 노조무는 생각했다. 하늘만큼 넓은 바다에서 살아왔을 그이지만 작디 작은 욕실에서 겨우 수돗물에 염분을 맞춰준다는 가루를 풀어놓은 조잡한, 기다랗고 매끈한 몸이 전부 담기지도 않는 작은 욕조이다. 노조무가 살기엔 적당한 크기의 집이었다. 코타로우를 만난건 순전히 우연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아쿠아리움에는 사냥당해 한쪽 팔을 잃어버린 인어가 혼자 전시되어 있는 커다란 수조가 있었다. 일반인이 인어를 볼 수 있는 방법이란 그 우울한 얼굴의 외팔 인어를 경외의 대상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인어. 전세계에서 보호하는 멸종 위기 1급. 너무나 개체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환상의 동물이라는 수식어 깊은 바다에만 산다는 인어종을 과자 하나로 꼬여낼 수 있으리라고는 노조무도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싸구려 버터로 만들었을 시판 과자를 하루에 다섯박스는 먹어치운다. 환상의 동물이라 불리는 인어가 좋아하는게 부스러기가 잔뜩 떨어지는 과자라니, 농담소재로도 쓰지 못 할 것이다. 노조무는 5일만에 찾아온 휴일에 감사하며 다시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곧 귓가에서 처얼썩. 하는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부채처럼 넓은 꼬리로 수면을 내려치는 소리이다. 인간의 말을 하면서도 코타로우는 큰 소리로 노조무를 부르는 것 보다 그 쪽을 선호했다.

"부르는 건가.."

노조무는 뭉그적대던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작은 욕조에서 인어와 함께사는건 손이 많이 간다. 코타로우는 더위에도, 추위에도 약한데다 염도가 맞고 정수된 물을 자주 갈아줘야만 한다. 수도세가 몇 달 사이 다섯배는 치솟아 올라갔다. 멋대로 데려온-데려왔다기 보다는 코타로우가 따라왔다는게 더 알맞지만-값을 치루는 셈으로 야금야금 모아두었던 얼마 안되는 예금을 갉아먹었다. 애완동물에는 큰 관심이 없는 축이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빠듯했으므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행거에 걸려있던 후드자켓을 걸쳐입고 욕실로 들어섰다. 나른해 보이는 코타로우가 욕조에서 고개를 들었다. 

"안녕, 코타로우. 좋은...아침. 좀 늦었네요."
"응. 노조무. 나 배고파."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배고프다니. 어제 두 박스 놔두고 자러갔잖아요."
"다 먹었어. 빙글빙글 줘."
"너..환상종이면서 너무 입맛이 싸지 않아요? 뭐...비싼걸 사달라고 해도 그럴 돈 없지만."
"빙글빙글."

욕조에 손을 걸쳐올린 반신은 영락없는 성인 남성의 모습이었다. 딸기우유같은 머리색과 빛에 따라 진주처럼 여러색으로 빛나는 매끄러운 비늘이 빼곡한 꼬리는 형광등 아래에서 가장 아래의 분홍색으로 투박하게 빛난다. 동화에서 나오는 분홍 돌고래의 전설을 보고서 다시 창조주가 만들어낸 생물 같았다. 노조무는 강아지에게 말하듯 잠시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서 식탁에 쌓아놓은 과자박스를 들고 왔다. 생전 먹지 않던 과자를 

"자. 여기. 이제 편의점 직원이 날 과자중독자라도 되는 마냥 이상하게 본다구요."
"중독..? 그게 뭐야."
"하나만 계속 하는건 좋지 않은데도 열중한다는 말이에요. 코타로우 처럼. 그렇게 과자만 먹어서는.."
"같이 헤엄치자."
"이렇게 좁은 욕조에서 무슨 소리에요. 게다가 난 수영 못한다고 몇 번을 말해야...자, 잠깐-."

욕조에 까치발을 한 채로 쪼그려 앉아있던 자세로는 코타로우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노조무의 무게까지 더해져 욕조의 물이 가득 넘쳐흘렀다. 잠옷으로 입고 있던 반팔 셔츠와 반바지가 몸에 쫄딱 달라붙어 기분 나쁜 밀착감이 밀려왔다. 손이나 몸에 닿은 코타로우의 체온은 인간보다 훨씬 낮아 차갑고 미세한 솜털이 밀착되서 설명할 수 없이 이상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욕조에 엉긴 실타래처럼 엉망으로 구겨져 들어간다. 노조무는 코타로우를 몸에서 떼어냈다. 오래 만지고 있으면 코타로우의 맨살에 빨갛게 화상을 입은것 처럼 흔적이 남았다. 체온 차가 큰 탓이었다. 예전에도 몇 번 노조무의 손자국이 남아 따가워 하는 부위에 얼음찜질을 해 주었다. 여러번 반복했음에도 자각이 없는 모양이다. 위기감이나 현실감을 요구하기엔 코타로우의 존재 자체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최소한의 생존본능 정도는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과자를 준다면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들며 따라갈 지도 모른다. 코타로우는 얼음처럼 차가운 손으로 노조무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장난감을 만지듯, 신중한 손길은 아니었다. 나른한 눈빛으로 코타로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독."
"으아, 정말. 차갑다고요. 코타로우도 내 체온에 오래 닿으면 뜨겁잖아요. 이거 놔요."
"이게 중독. 맞지?"
"무슨 소릴 하는거에요. 자국 남기 전에 그만해요. 덕분에 샤워해야겠어요. 어휴.."
"...."

욕조에서 기어나온 노조무는 욕조에 샤워커튼을 쳤다. 하얀 장막에 코타로우의 인영이 탁탁 거리며 달라붙었다. 열어달라는 뜻이었다. 노조무는 작게 혀를 차며 잔뜩 젖은 옷을 떼어내며 차가워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거인지, 사육인지. 알 수 없는 형태의 공존이 이상한 결론으로 굴러가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채로, 미지근한 물을 샤워기로 끼얹으며 오후에는 과자와 담배를 사러 나가야 겠다고 다짐한다. 

인어 코타로우,.,.,.........................................이모가......좋아한다....






'노조무 로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딩AU] 7월은 비의 기억 下  (0) 2017.12.13
[고딩AU] 7월은 비의 기억 上  (0) 2017.12.12
슈크림 맛있겠다  (0) 2017.11.07
[420] 너라면 괜찮아  (0) 2017.11.07
[420] 어쩔 수 없네  (0) 2017.11.07
Posted by michu615
,
슈크림 먹고싶은 코타로우

거래처에서 선물이 들어왔다더니, 제법 많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층을 같이 쓰는 몇몇 부서 전체 메시지로 탕비실에 맛있는게 있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노조무는 메시지 창을 바로 끄고 작성하던 서류 프로그램을 다시 크게 띄웠다. 책상 앞에 올려둔 미적지근하게 식은 커피를 마시다 옆을 돌아보니 같은 부서의 직원 한명이 파티션 옆에 서 있었다. 아마 메시지를 보고 탕비실에 가려던 참일 것이다.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노조무에게 말을 걸었다.

"시노하라씨, 같이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아아. 전 괜찮아요. 별로 배 고프지 않고."
"그런가요. 우에다씨가 당연히 올 거 같아서, 시노하라씨도 갈 줄 알았는데."
"맛있는것..그렇네요. 빠질 사람이 아니고."
"그것도 우에다씨의 특기인 디저트라구요. 후후."
"디저트....인가요."

대부분의 음식을 가리지 않는 우에다였지만, 디저트나 단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달려들었다. 노조무는 들고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탕비실에 같이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몫까지 다 먹어버리거나, 우에다가 먹는 모습을 보고 다들 슬슬 피하는 광경을 생각하니 도무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

"노조무-."
"고칠 생각이 전혀 없군요. 제발 시노하라라고 부르세요. 회사에선."
"뭐야, 사이 좋잖아-. 부러워."
"슈크림 먹어."

우에다는 양 손에 커다란 슈크림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자리에 모인 몇몇 사람들이 저마다 종이컵이나 휴지에 싸서 들고 있는게 보이지 않는 걸까. 노조무는 금방이라도 손에서 흘러내릴 듯한 커스타드 크림이 담긴 연약한 슈가 그의 손에서 뭉게지는 미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방비하게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진득한 크림을 보란듯이 핥아먹는 우에다를 떠올리자 노조무는 고개를 빠르게 젓고 탕비실 한켠에 놓여진 물티슈를 들고와 자리에 앉았다. 옆에 다가온 우에다가 손에 든 슈크림을 노조무의 코 앞까지 내밀었다.

"안 먹어?"
"전 별로. 어서 드세요. 준비는 다 됐습니다."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물티슈를 손에 든 노조무가 먹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에다는 눈을 슬쩍 찌푸리더니 손에 든 슈크림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노조무가 생각했던 미래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입가와 손가락에 흐르는 크림이 옷에 떨어지기 전에 손에 들고있던 물티슈를 빠르게 겹쳐안았다. 아깝다는 듯 바라보는 눈빛까지 완벽히 노조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였다. 노조무는 만족한 듯 미소지었다.

"제가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알겠죠?"
".....맛있어. 노조무도 먹어."
"으앗. 손에 묻은거 내 입에 넣지 말아요-!!"



밝게 쓰려고 노력은 해봤다..결과물은 모르겠음



'노조무 로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딩AU] 7월은 비의 기억 上  (0) 2017.12.12
[인어 AU] 인간 중독..  (1) 2017.11.07
[420] 너라면 괜찮아  (0) 2017.11.07
[420] 어쩔 수 없네  (0) 2017.11.07
[420] 숨막히는 시간  (0) 2017.11.07
Posted by michu615
,
420자 너라면 괜찮아.

가지고 있는 가방중에 가장 큰 백팩에 배게를 쑤셔넣었다. 둘둘 말아보려다 배게 솜에 튕겨 실패하고는, 마구잡이로 어떻게든 넣는 방법을 시도했다. 가방이 배게 모양처럼 둥글게 부풀어올랐다. 칫솔은 백팩의 옆 주머니에 넣었다. 머릿속에 적어두었던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간다. 간이로 사두었던 휴대용 재떨이 갑과 휴대용 가글액. 마지막으로 지갑. 성인이 되고 다른 사람의 집에 정식으로 자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우에다는 자신의 집에 다 있으니 몸만 오라고 말했지만-그리고 확실히 그럴것 같은 인상이었지만-최소한 바뀌는 잠자리에 잠을 설치면 어쩔까 싶기도 했고. 실례되게 재떨이가 없어서 찾게되는 일 같은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전 몇 번의 방문으로 구조 정도는 익숙해 진 그의 집이었지만, 워낙 넓은 탓에 느껴지는 괴리감과 호텔에 온 듯한 착각이 떠나질 않았다. 우에다는 이미 노조무 전용의 실내화까지 사둔 참이었다. 그런 준비는 철저한 편이다. 물론 약속시간인 저녁 9시가 20분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연락이 없는 점은 철저하지 않았다.

"슬슬 전화라도 해볼까..어디쯤 헤메고 있으려나."

-

"네. 여보세요, 우에다씨? 응. 마침 전화하려고 했었는데..어디쯤..인지 알겠어요?"
"글쎄. 저번에 왔던 카페를 지나고있어."
"네? 기다려봐요, 지나가지 말라구요. 바로 안쪽 골목이잖아요."
"안쪽. 그래."
"매번 놀라게 하네요. 다 온 것 같으니 나가 있을게요. 빌라 앞."

노조무는 전화를 끊고 빵빵한 가방을 어깨에 매려다 한쪽 어깨에만 걸친 채로 빌라를 나섰다. 골목 안으로 자동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손에 든 휴대용 재떨이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주머니에서 가글 스프레이를 뿌리자 나타나는 차가 그의 것이란걸 알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집에 방문 하는 것과 하룻 밤 자는 건 확실히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의 제안을 받고 10분을 멈춰서 고민했고, 그 사이 우에다는 자신의 집에 손님을 대비하여 완벽한 비품이 구비되어 있으며, 노조무를 위해 실내화와 침구세트까지 하나 더 사두었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런 조건은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와 다르게 말 수를 늘려가며 조곤대는 목소리가 더욱 중요했다.

"안녕, 노조무."
"좋은 저녁. 우에다씨. 데리러 오느라 고생했어요. 매번 말하지만, 제가 찾아가도 된다니까요."
"싫어."
"싫은겁니까. 오늘 하루 잘 부탁드러요."
"응. 어서 타."

당신이라면 괜찮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조무 로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어 AU] 인간 중독..  (1) 2017.11.07
슈크림 맛있겠다  (0) 2017.11.07
[420] 어쩔 수 없네  (0) 2017.11.07
[420] 숨막히는 시간  (0) 2017.11.07
[420자] 사실 그거 싫어해  (0) 2017.11.07
Posted by michu615
,